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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신작시/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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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63회 작성일 08-02-2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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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이동 중
―자야*에게


어디론가 정처 없이 흘러가던 너는 지금 내 발끝에 있다
그러다 어느새 발끝이 피워 올리는 저녁,
그 저녁이 하늘에 던져놓은 당나귀, 환한 눈썹 안에 있다
(너는 강에서 초승달로 移動 중이다)

너와 내가 같지 않다는 것은 결국 길 때문이다
길을 가다보면 끝없이 알 수 없는 마을이 나와
나는 문득 네가 그리워진다
너를 생각하다보면
밤은 낮의 가장자리에 지쳐 있고
밤의 까만 눈동자 속에는 별들이 지쳐있다
(그러므로 너와 나는 어디론가 異同 중이다)

너를 놔두고 더 걸어갈 수 없다는 것
그래도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것
그 사이에 길이 있다

나는 오늘 마음이 울적해서 혼자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너에게로 향했지
의정부 기지촌도, 이동 막걸리도
마음을 쉽게 다스릴 수 없는 법이어서
나는 돌연 광릉수목원의 굵은 나무들 까칠한 살갗에
내 얼굴을 비벼댔었지
(나는 너를 만나러 二洞으로 가야 하는데……)

어느새 장마가 지고, 내 마음에도 물이 불어
어디론가 정신없이 흘러들어가고 있었지
생에 물이 진다는 것이
한 계절을 적시는 눈물 같은 것이어서
계절이 바뀌고, 가물가물 별빛 근처에서
네 이름이 깜박거리고 있는데도
내 마음은 늘 장마철이었지

가을하늘엔 늘 별이 맑아서 외롭고,
네가 없는 북쪽 하늘로 떠나보냈던
기러기떼 한 줄 고치에 꿰어 오뎅국물과 함께
들이켜던 포장마차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내 눈물은 여전히 너를 향해 이동 중이었지

        *자야:백석이 사랑했던 여인.



天均 저울


이 땅의 모든 것들은 저울을 가지고 있다
어디론가 기우뚱거리는 것들의 무게를 재는 저울
서로 다른 무게와 무게 사이에 끼어
끊어진 것들을 이어주고 피 흐르게 하는 저울

숨 가쁜 생의 오르가즘을 느끼듯
거친 소리를 내며 급박하게 흘러가던 계곡물이
바다에 이르러서야 평온해지는 것은
물이 제 몸에 저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뜨는 해와 저녁에 뜨는 달도
우주가 제 저울추를
빛과 어둠 사이에 매달아놓은 것이다
나는 저울추의 무게를 느끼며
밤하늘이 쏟아내는
무수한 별똥별의 방향을 읽는다

밤하늘의 찬란한 아픔과 무게로 반짝이던
별똥별이 쏟아져 내린 허방 쪽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잠시 기우뚱거린다
그럴 때면 내 몸속의 해와 달, 별들도
天均을 잃고 불안해진다

나는 종종 세상을 바라볼 때
내 몸의 저울을 느낀다
세상을 향해 자꾸 기울어지려는 나를
기울어지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저울,

흐린 날, 우리네 어머니
신경통 저울의 주인이 어머니가 아니듯이
내 몸속 저울의 주인도 내가 아니다
그래서 내 몸은 늘 불안하다



박남희․
경기 고양 출생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폐차장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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