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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신작시/류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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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서
얼굴 박물관 가는 길
누군가, 할머니의 대소쿠리를
엄마의 플라스틱 낡은 물바가지를
옜다 네 얼굴! 하고 내 코앞에다 들이민다
어떤 얼굴은 화덕 속에 어떤 얼굴은 접시 위에 있다
한 얼굴은 가시 울타리에 한 얼굴은 구름 위에 얹혀 있다
서천서역 먼 길이 무거워 코와 입을 모래바람에 던져준 사내와
일생 신의 얼굴만 그리다 눈이 먼 사내 뒤를
뒤뚱뒤뚱 회분칠 얼굴로 오백의 나한이 걸어간다
검은 선글라스 속에 얼굴을 감춘 숙녀가
모자처럼 얼굴을 손에 든 신사가
이 얼굴은 너무 무거워 저 얼굴은 너무 가벼워 흥얼흥얼 노래하며 간다
잃어버린 그 얼굴 저기 있을까, 얼굴 박물관
금일 휴관의 표찰을 입구에 걸고 있다
어쩔거나 얼굴에서 얼굴까지 머나먼 거리
나는 여전히 얼굴 밖에 서있다
죽은 나무
그 나무는
층 층 늑골 아래가 바람의 카타콤이다
가지와 가지 사이 지하계단에
십자가도 없이 매장된
바람의 유골들
빛이 죽은 검은 밤
한 벌 잎새의 수의조차 입지 못한 바람의
가난한 혼령들이 돌아와
삐걱 삐걱
허물어진 저의 몸을 흔들어 깨운다
류인서
․대구 출생
․200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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