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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신작시/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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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시멘트 가라사대,
시멘트 가라사대, 태초에 시멘트가 계시니라. 시멘트가 너희와 함께 계셨으니, 너희 가정이 곧 시멘트로 충만하시니라. 시멘트가 너희에게 이르되 나는 시멘트로 났느니 어미는 레미콘이며 태생은 문명이니라. 강철의 자궁에서 쏟아져 나오는, 너희는 달려들어 나를 비비느니 내 몸은 뚝, 뚝 떨어져서 지상에 임하니라. 나를 믿는 자에게 부귀와 영화가 있으니 나는, 너희 자본의 구상이며 비용이니라.
시멘트 가라사대, 태초에 시멘트가 계시니라. 시멘트가 너희에게 이르되, 나는 금값도 되고 똥값도 되느니라. 이는 너희가 이룬 땅이 증거함이니라. 나는 감옥이자, 간수이자, 내 감옥의 죄수이니라. 나는 나를 격리하고 나를 뛰어넘는 나를 올려다보느니라. 때로 나는 끌려가 형틀에 묶이고 손목에 발목에 못 박힌 시멘트의 아들이니라. 나는, 오, 저들은 저희가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오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너, 너희는, 미장칼로 내 입을 쓱쓱 문대어 버리니라.
사람들은 새들의 식탁을 밟고 다닌다
열쇠가 어디 있을까, 요 푸득푸득 날고 싶은데, 요 열쇠 없으니 날 수 없네, 요 비탈진 골목 전선마다 달린 기우뚱한 풍경들 스륵, 기울어지는, 나는, 열쇠가, 여기 어디, 있을 텐데 있을 것 같은데, 요 철컥! 돌려놓고 나온 집은 나를 못 믿나봐, 요? 무말랭이뿐이라도 허기지면 철사로 구멍 쑤셔보지 않겠어 요? 일용할 양식이 있는 곳, 요 망한 줄 알지만, 요 콧구멍 들이대고 냄새 좇는 내게 모이 쪼며 한 발 다가오는 새 한 마리, 보였지 요 나는열쇠를꺼내려푸득푸득대문에서열쇠찾다 나도 모르는 내 갈라진 틈 어딘가 떨어진 열쇠만이 분실한 슬픔인가 생각했지요 사람들은 새들의 식탁을 밟고 다닌다? 大門에서 받은 이 大問, 막막하게 받아들고 나는 몸을 구부렸지요 꼬박꼬박 절하며 성찬 속으로 들어오는 새, 나는 무뢰한 발을 식탁에서 내리어 이 땅의 구루에게 一拜하고 싶었지요 이 땅이 우리에게도 식탁이었던. 오, 가끔 열리나 봐요? 분실한 세계, 덜컹! 열리는, 미래!
박지웅
․2004년 ≪시와사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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