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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신작시/심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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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언주
11월
단풍은
술 냄새만 맡아도 얼굴이 붉어진다.
술을 나누어 마셔도 혼자 취한다.
바람은 붉나무 손목을 부러뜨릴 듯이 분다.
삼치 꼬리지느러미가 더 바싹 구워지는 동안
남은 한 방울 피가 바스락 소릴 내며
떨어진다.
몸도 못 가누는
푸석푸석한 여자,
살았나 죽었나
길은 이따금씩 엎질러진 단풍을
뒤집어본다.
선승과 전범
12월 13일은 엇갈린 날이었다. 선문답을 하던 서옹 스님이 앉은 채로 입적하던 날 대통령 후세인은 털북숭이가 된 채 땅속 구덩이에서 끌려 나왔다. 백학 날아가는 백양사 깊은 하늘에서 분분히 눈이 내렸고 전범 끌려가는 붉은 새벽 바그다드 하늘로 축포가 터져 올랐다. 철권과 울력 사이로, 체포와 입적 사이로 13일이 저문다. 선이라는 것이 무엇 하는 건지 나는 모르지만* 지난 봄 서옹 스님 머물던 백양사 길 양쪽으로 유난히 벚꽃 환했었던 걸 벚꽃보다 가볍게 내가 날아올랐었던 걸 나는 기억한다.
*‘선이라는 것인지 무엇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정지용의문장지 추천사 중에서.
심언주․
충남 아산 출생
․200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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