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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지난계절 작품읽기(소설)/정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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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계절 작품읽기|【소설】
정이현의 「1979년생」
(≪문학과 사회≫ 2005년 가을)
역사, 프레임에 갇힌 진실
문학평론가|정재림
정이현의 「1979년생」의 주인공은 1979년 7월 7일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나’는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장기독재가 막을 내린 역사적인 해에 태어난 것이다. 추측컨대 ‘나’는 1980년 첫 시판된 컬러텔레비전을 보고 자랐을 것인데, 어린 시절 프로야구 어느 한 팀을 응원했을지도 모른다. 풍문과 최루탄으로 간접 체험한 거대 민중항쟁보다는 인터넷과 소비문화에 관심이 더 많은 N세대일 확률이 크다. 79년에 태어나긴 했지만, 문화적․정서적 면에서 70년생보다 80년대생과 일치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면 된다!”는 70년대식 표어를 믿지 않는다. “놀고먹는 인간을 혐오”하고 “허투루 돈 쓰는 행위를 죄악으로 치부”하는 엄마와 남자친구의 가치는 ‘나’와 대립될 수밖에 없다.
확고한 윤리의식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나’는 거짓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개인적 유희에 목적을 두었던 늑대소년의 거짓말과 달리, ‘나’의 거짓말은 화폐로 교환된다. ‘나’의 거짓말은 밥, 커피, 담배, 맥주, 교통카드로 교환된다. 의뢰된 회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용 후기를 작성하고 별점을 주는 것이 ‘나’의 직업인데,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부추기기 위해서는 과장을 일삼을 수밖에 없다. 가령 ‘나’는 W사의 러닝머신의 리뷰를 이렇게 작성한다.(물론 ‘나’는 이 기계를 사용해 보지 않았다.) “고요하고 적막했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녀석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자마자 저는 알았습니다. 지금 지구에는 우리 둘뿐이구나, 하나도 시끄럽지 않구나, 외롭지 않구나, 녀석에게 별 다섯 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 소음 없는 기계의 성능을 과장할 뿐만 아니라, 러닝머신이 인격을 교감할 친구라도 되어줄 듯한 환상을 조장하며 최고의 별점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함부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 이 문장의 의미가 온전히 이해되기 위해서는 방점이 “함부로”에 찍혀야 한다. 후기를 쓰고 별점을 매기는 컴퓨터 앞에서만 하루 스무 번 거짓말할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위층에서 “절굿공이를 방바닥에 대고 리드미컬하게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나’는 “고독한 게임”에 휘말리게 된다. ‘나’는 밤잠을 방해하는 소음이 폭력이라며 분개한다. “주먹으로 때리거나 칼로 찌르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야. 자의건 타의건 간에, 부주의하건 무신경하건 간에 타인이 가진 권리를 강제로 침해하는 것. 당하는 사람이 속수무책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런 게 다 극심한 폭력행위 아니겠어?”라며 제법 똑똑한 소리를 한다. 그런데 쿵쿵거리던 소리의 정체는, 자신이 이용후기를 썼던 W사의 러닝머신에서 나는 소음이었다. 노인은 “아주 조용하다는 인터넷 이용 후기를 읽고” 러닝머신을 구매했다고 하니, ‘나’는 자신의 거짓말에 보기 좋게 복수를 당한 셈이다. ‘나’는 1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자신의 ID로 W사의 러닝머신의 이용 후기를 다시 올린다. “고요하지도, 적막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만약 달리고 싶다면 아래층의 누군가를 잊지 마세요. 당신의 땅이 누군가의 지붕일 수도 있습니다. ★★-mkh7977”라고. 무윤리적이던 자아의 윤리적 전회라고 할까. 어쨌든 자신의 거짓말이 타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그러나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1202호의 문을 열고 나타난 노인이 죽은 박정희 대통령과 꼭 닮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가 죽은 대통령과 꼭 닮은 사람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건지, ‘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죽은 대통령이 아파트 위층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자 남자친구는 이렇게 대꾸한다. “영화도 나왔었잖아, 그 아저씨 죽던 날에 관한, 백윤식이 총 쏘고 한석규가 줄 잘못 섰다가 개털 되고, 가위질을 하네 마네 시끄러웠었지.” 남자친구의 말에서 역사적 인물의 실명은 영화배우의 이름으로 대체된다. 영화라는 허구를 통해 역사와 현실이 새로이 이해되는 방식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허구의 막강한 힘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략적 광고나 이용자 후기가 상품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과 유사한 방식이다. 어느 역사학자의 말대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역사적 사실은 부동하는 진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가치와 관점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는 유동적 진실인 것이다. 최근 학계와 정계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도 어떤 현실적 필요 때문일 것이다. 죽은 대통령은 권력 유지를 위해 무고한 피를 흘리게 했던 독재자로 뭇매를 맞다가도, 어떤 시대적 필요에 의해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재조명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확고부동한 진실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당신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당신의 가족? 두 명의 여자아이와, 한 명의 사내아이? 전에 어디선가 그들과 함께 찍은 당신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 한 일자로 꾹 다문 입매는 그대로였지만 당신의 눈, 그래, 눈은 미소를 띠고 있더라. 도토리처럼 여물어가는 자식들을 병풍처럼 등 뒤에 두른 채 사진기 앞에 앉은 사내의 내면에 대해 내가 알 턱이 없지. 그때 느꼈던 내 이물감의 정체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나’가 느끼는 “이물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족사진 속에 존재하는 한 가장의 미소가 독재자의 모습과도,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그가 사진이라는 네모난 틀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진의 틀은, 영화의 프레임은, 직사각형의 소설책은 객관적 사실을 전달할 수 없는 법이다. 카메라의 시선이 아무리 냉혹하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이미 어떤 관점과 가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1202호에 살고 있는 노인, 죽은 대통령을 꼭 닮은 노인은 현실에 의해 다시 호출 받은 과거일 것이다. 온전히 저승으로 가지 못한 과거는, “귀신” 혹은 망령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여전히 지금-여기를 떠돌고 있다.
“고독한 게임”을 치루고 난 ‘나’는 가짜 ID로, 가짜 이용 후기를 써야만 하는 회사를 그만둔다. 혼란한 역사적 진실을 감당할 수는 없지만, 우선 자신의 진실과 진정성부터 찾겠다는 각오일 것이다. 그리고 퇴직금과 해약한 적금으로 “나만의 공간”을 찾기로 결심한다. 어느 옥탑방이라도 얻어 무위도식과 허송세월을 보내겠다고 한다.
그러다가 또 너무 심심해지면 아작아작 팝콘을 씻으면서, 내가 태어난 해에 씌어진 한국어로 된 책들을 모조리 읽게 될지도 몰라. 그럼 나는, 저 미지의 1979년에 대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될까? 1979년 7월 7일 서울의 대기온도와 바람이 불어오던 방향, 바람의 속도 같은 것들. 1979년 7월 7일생의 불완전한 거짓말, 진짜 비밀의 공포에 관하여.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옥탑방에 틀어박히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79년에 출판된 책을 모조리 읽고, 사소한 사실들을 찾아낸다고,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불완전한 거짓말” 혹은 불완전한 진실일 것이다. 어차피 프레임에 갇힌, 해석된 진실일 것이므로.
정재림․
200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한국예술종합학교 및 극동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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