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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지난계절 작품읽기(소설)/고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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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64회 작성일 08-02-2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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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계절 작품읽기|【소설】

방현희 「13층, 수요일 오후 세시」
(≪리토피아≫ 2005년 여름)

일탈과 사랑,
혹은 다른 사람으로 살기


고인환(문학평론가)


방현희의 「13층, 수요일 오후 세시」는 근대 사회의 일상성과 소통 욕망을, 동성애와 죽음의 코드를 통해 음각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은 누구나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현실 속에서 현실 너머를 꿈꾸는 모순된 운명은 인간의 유한한 존재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지루한 일상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우연을 찾아 모험을 감행하는 존재는, 타락한 시대,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성을 찾아나서는 근대 서사의 ‘문제적 주인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작품에서 ‘그녀’와 ‘명’의 관계는 이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13층>의 주인인 그녀는 점을 치며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보잘것없는 삶에서, 우연한 기회에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손님들의 기대를 채워주며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점쳐주지만, 실상 그녀에게 이 일은 지루한 일상일 뿐이다. 이러한 일상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향한 작은 문’이 열린다. ‘수요일 오후 세시’ ‘명’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그녀’와 ‘명’은 일상을 벗어난 낯선 공간에서 특별한 만남을 가진다.
4층 ‘조주협회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명’ 또한 사층과 혼동하기 쉬운 삼층의 유리문을 열고 매주 수요일 오후 세시 ‘그녀’를 찾아온다. 일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빠져들고 싶은 욕망이 빚어낸 은밀한 만남이다. 더구나 일상의 관습을 일탈하는 동성애적 관계다. 현실원칙 너머를 욕망하는, 쾌락원칙의 시․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이들의 만남이 ‘13층, 수요일 오후 세시’로 고정되는 순간, 또다시 지루한 일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는 지난겨울 세 번째 수요일 ‘명’이 찾아오지 않았을 때,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반복되는 일상을 견딜 수 없는 자에게 주어진 길은 그리 많지 않다. 먼저, 일탈이 관습화되기 전에 또다시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는 우연히 사랑에 빠져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죽음으로 일탈을 영원히 완성하는 것이다. ‘그녀’가 택한 삶의 방식이다.
다음으로, ‘명’이 선택한 방법을 들 수 있다. ‘명’에게는 ‘일탈’ 자체가 중요하지 ‘어떻게’ 탈주할 것인가, 혹은 탈주의 순간을 공유하는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다. ‘그녀’이든 ‘그녀’의 삶을 대신 살아가고 있는 ‘그’든, ‘명’에겐 중요하지 않다. 일탈 혹은 소통의 순간만이 소중할 따름이다. 이러한 일탈은 근대의 일상성 속에 함몰되어, 특유의 전복성을 상실하기 쉽다.

이 작품의 화자 ‘그’는 ‘그녀’와 ‘명’의 탈주 사이에서 길항(拮抗)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녀’와 ‘그’의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자아의 정체성을 깨고 다른 존재로 거듭하는 행위다. ‘나’와 ‘너’가 하나됨을 통해 ‘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됨의 순간은 결코 지속되지 못한다. 화자인 ‘그’는 이 순간적인 하나됨이 좌절된 경험을 지니고 있다. 청년시절 동성애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친구를 잃은 것이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그와 하나됨을 욕망하지만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다. ‘친구의 뇌수에 이를 것 같았다’나 ‘친구와 그의 구분이 없어질 것 같았다’라는 가정형의 진술은 이를 뒷받침한다.
완성되지 못하고 가정형으로 존재하던 소통 욕망은 ‘그녀’의 죽음을 통해 상상적으로 성취된다. 이는 ‘그’가 ‘그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로 드러난다. ‘그녀’는 죽음으로써 ‘그’의 몸속에서 부활한다. ‘그’는 ‘그녀’의 숨을 들이마시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버린다.
이러한 ‘그/그녀’가 ‘명’을 만난다. ‘그’는 ‘명’을 통해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명’은 이미 박제화되어 버린 ‘그녀’의 삶과, ‘그녀’에 의해 지워진 ‘그’의 삶을 동시에 호명한다. ‘명’에게 ‘그’와 ‘그녀’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여기에서 ‘명’은 한층 정교해진 겹의 일상성을 표상한다. ‘그/그녀’와 ‘명’의 만남은, ‘그녀’와 ‘명’의 관계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관습화된 일탈이지만, ‘그녀’와 ‘그’ 사이의 하나됨을 매개한다는 점에서 비일상화된 소통이다. 이렇듯, ‘그’의 삶은 일상(관습화된 일탈)과 일상 너머(비일상화된 소통)의 경계에서 진동한다.

그는 밤이 되면 침대에 오른다. 침대에 오르면 딱 세 번 발을 까딱거린다. 처음 말을 걸었을 때처럼 반드시 다리를 교차시키고서. 그러면 오직 그의 귀에만 들리는 작은 소리로 침대는 머리맡에서 대답을 한다. 촉촉촉. 그 소리를 밤새도록 듣고 싶지만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것도 아닌 소리가 될까봐, 그는 더 이상 발을 까딱거리지 않고 잠은 잔다. 어쩌면 그녀는 더 이상 그 소리에 감동하지 않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른 소리를 찾아 간 것인지도 모른다. <13층>을 떠난 그날 밤의 야산에서 그녀가 특별한 사람을 우연하게 만났을지 누가 알겠는가. 목젖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사람이라든가, 바람이 불면 귓바퀴로 바람이 소용돌이쳐 들어가는 통에 머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사람이라든가.
그래서 우연히 그와 함께 사랑에 빠지고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져 있는 상태는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과 같으므로.(「13층, 수요일 오후 세시」, p.84)

‘그’는 ‘오직 그의 귀에만 들리는’ 침대의 화답 소리나, 우연히 사랑에 빠져 ‘다른 사람으로 살’아 가는 것 등으로 표상되는 일상 탈주의 욕망을 짐짓 가슴 한켠에 남겨두고, ‘딱 세 번’만 ‘발을 까닥거린다.’ ‘그녀’가 되어 사는 삶이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되어버릴까 조바심을 내는,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일상성의 환멸과 매혹 사이에서 길항(拮抗)하는 근대인의 초상이 아닐까.



고인환․
2001년 <중앙일보> 평론 등단
․저서 󰡔결핍, 글쓰기의 기원󰡕 등 ․≪문학과 경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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