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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지난계절 작품읽기(시)/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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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계절 작품읽기|
【시】
마종기 「압구정동」
(웹진 ≪문장≫ 2005년 창간호)
압구정동에서 뱀을 만나다
정우영(시인)
이조 후기의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압구정>에는 강변의 작은 돛단배 두 척에 어부가 한 사람씩 서 있다. 몇 점쯤 되었는지 안개비가 마을 쪽에 자욱하다. 성긴 소나무 숲 사이로 작은 초가집 몇 채가 언덕에 기댄 채 한가하게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압구정, 좀이 먹은 그림의 강물 자리에는 살찐 물고기 떼가 몰리고 있는지, 구름이 천천히 자리잡자 참새인지 제비인지 몇 마리 날던 새가 공중에 멈추어 선다. 오래 밀린 잠이 이제야 돌아오기 시작한다.
내가 고국에서 밀려나던 60년대 초에는 강남구도 압구정동도 없었다. 내가 떠난 뒤 늙은 소나무 언덕을 싹쓸이로 깎은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수없이 줄서고 높은 백화점이 일어서고 그 사이에는 상점과 식당과 소음이 들어찬 모양이다. 땅 밑으로는 뱀들을 쫓아내고 전철 레일을 깔았다. 전철은 큰 소리로 건물 지하주차장의 밑과 사이를 누볐다. 밤인지 낮인지 모를 찬란한 풍경은 과연 끝이 있을까. 간지럼 타는 압구정의 충혈된 눈은 아무와도 초점이 맞지 않는다.
귀국해서 친구랑 술을 섞어 마신 며칠 전, 3호선 전철을 타고 압구정역에서 내렸는데 4번 출구였나 6번 출구였나, 층계를 이리저리 오르니 내 앞에서 집 잃은 뱀 한 마리가 나에게 정중히 길을 물었다. 고개를 드니 어둑한 곳에 초가집 몇 채 사립문 열고 나를 맞아준다. 침침한 방에서는 어느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리고 어느 동생이 나 부르는 소리도 들은 것 같다. 나는 깜빡 잊고 흙길에서 두 무릎을 꿇었다. 압구정의 지상은 무릎이 아픈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종기 「압구정동」 전문
압구정동에는 지금 사람이 살고 있을까. 자본에 젖은 현대인들만이 사는 건 아닌가. 이 시의 문제의식은 여기에 놓인다. 압구정동을 통해 우리의 삶을 둘러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 압구정동은 당연하게도 조선시대 <압구정>을 그린 겸재 정선 같은 이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60년대 초에 살았던 시인에게도 압구정동은 미지의 세계이다. 다시 더 내려오자. 2000년 언젠가 나도 압구정동에 발 디딘 적 있었는데, 길들이 어찌나 나를 밀어내던지 한참 동안 고생했다. 휘황하고 낯선 집과 길들, 그리고 현대인들의 현란한 몸짓에 빠져 상당한 시간을 헛돌았다.
자, 궁금해진다. 압구정동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지만 시인은 압구정동의 현재적 모습에는 별 관심이 없다. 시인의 눈은, “땅 밑으로는 뱀들을 쫓아내고 전철 레일을 깔았”으며 “늙은 소나무 언덕을 싹쓸이로 깎은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수없이 줄서고 높은 백화점이 일어서고 그 사이에는 상점과 식당과 소음이 들어”찬 곳에 가 닿는다. 여기에서는 자연과 사람의 ‘공존’이 허락되지 않는다. 땅 위와 땅 밑을 오로지 현대인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안다. 현대인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사람을 멸하는 첩경임을. 뱀과 소나무가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아니라면, 세상은 세상이 아니다.
나는 그런 점에서 시인이 뱀을 만나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3호선 전철을 타고 압구정역에서 내렸는데 4번 출구였나 6번 출구였나, 층계를 이리저리 오르니 내 앞에서 집 잃은 뱀 한 마리가 나에게 정중히 길을 물었다.” 뱀이 이처럼 귀하게 여겨지다니!
시인은 뱀을 통해 과거와 조우하고 동시에 공존과도 조우한다. 이때 뱀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공존의 매개자이면서 사람과 자연, 호오(好惡)의 매개자이다.(혹은 자아를 찾아가는 무의식적 발로일 수도 있다.)
시인은 “밤인지 낮인지 모를 찬란한 풍경은 과연 끝이 있을까.” 하고 묻는다. 답은 다음 시행에 있다. “간지럼 타는 압구정의 충혈된 눈은 아무와도 초점이 맞지 않는다.” 초점 맞지 않는, 충혈된 눈으로 끝없이 현대성을 늘려가는 한, 그 끝은 없을 것이다. 멸의 순간까지도 “밤인지 낮인지 모를 찬란한 풍경”으로 상징되는 탐욕의 촉수는 뻗어갈 것이다.
하지만 비관해하지는 말자. 우리에게는 뱀이 있지 않은가. 뱀을 매개로 하여 우리는 “초가집 몇 채”와 어느 “침침한 방에서” 들리는 “어느 아버지의 기침 소리”와 “어느 동생이 나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여기가 어디인가. 겸재 정선의 <압구정> 그림 속 아닌가.
그곳에서 시인은, 혹은 우리는 “오래 밀린 잠이 이제야 돌아오기 시작”함을 느낀다. 하여 그 공간은 이제 단순히 그림 속의 공간만은 아니게 된다. 그곳은 과거가 현재의 우리에게 뿌리내린 무의식 공간 속 이상향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혹 어떤 이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림이라는 게 결국 이미지에 불과한데, 현재적 삶 속에서 어찌 그런 이미지를 믿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나는 시인을 대신하여 당당하게 답한다. 이미지가 세상을 바꾼다고.
굳이 연(緣)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시인이 그려놓은 이미지인 ‘압구정동’은 현재를 통해 과거로 들어간다. 과거와 현재가 흔연히 한 공간에서 만난다. 이건 판타지가 아니다. 마음속에 박힌 이미지의 힘이 우릴 이끌어간다.
의심스럽다면 당신도 한번 시도해 보라. 3호선 압구정역 4번이나 6번 출구 층계를 이리저리 오르다가 혹 그 뱀을 만날지도 모르잖은가. 정중히 길을 묻는 뱀. 그러나 실은 길을 묻는 게 아니라 당신을 현재에서 과거로 끌어가는 뱀. 이렇게 보면 뱀은 타임머신이기도 하다. 자유로이 시간을 열고 맺는.
정우영․
1960년 전북 임실 출생
․1989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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