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20호 특집/한기호
페이지 정보

본문
|특집|청소년문학, 어디로 가는가?
청소년 출판의 현실과 작가의 자세
한기호|출판인
나는 2003년 여름에 <청소년 출판>이라는 제목의 원테마 잡지를 펴낸 바 있다. 그 책을 기획하게 된 것은 청소년을 위한 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100여 출판사가 청소년 출판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지만 청소년 출판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청소년 출판은 시장성이 충분치 못하다고 판단해 ‘현실’로서가 아니라 ‘당위’로서만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 인식 때문에 그 책 머리말의 제목은 「당위로서의 청소년 출판」이었다.
그 서문에서 나는 “일찍이 독서습관은 ‘지적 권위를 상징하던 대학이나 학교의 규범, 시민적 교양으로 성숙되어 온 민주주의의 규범’ 아래 지탱되어 왔지만 오늘날의 청소년은 그런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읽고 싶은 것만 읽는, 즉 판타지나 로맨스 소설 등 가벼운 책을 주로 ‘취미’의 수준에서 읽는다는 분석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 분석은 결국 청소년에게 ‘규범’으로서의 독서는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개인이나 국가의 미래가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위로서의 청소년 출판을 목청껏 외쳐야 할 입장”이라고 기획의 변을 밝혔었다.
또 나는 그 책에 기고한 「왜 지금, 청소년 출판인가」에서 지금 청소년 출판의 한계를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했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맞는 책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는 생각보다는 의식적으로 아이들의 생각을 바꿔주어야 한다는 청소년 출판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주관적 의도가 과도하게 개입되었다는 점, 당위성(혹은 운동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저자들을 동원하게 되어 적지 않은 청소년 도서에서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점, 문학선집이나 입문서나 논설집 등에서는 원고를 새로 집필하지 않고 기존의 것을 가지고 중복 출판 또는 짜깁기 출판을 하고 있고, 명작소설․고전․명저 등의 경우 원문을 그대로 살리기보다는 출판사와 필자의 필요성에 의한 다이제스트식 출판이 일반화되었다는 점, 기획 상품에 대한 자신 부족으로 인해 거의 모든 책을 지나치게 학습에 연계시켰다는 점, 장기적인 비전 부족과 마케팅 전략 부재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당위’를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문학․철학․역사․과학․예술․종교 등 각 영역에서 입문서 수준에 머물러 있는 청소년 도서를 다양화하고 전문화․세분화하는 방향으로 확대시키고 끌어올려야 하고, 전문적 지식과 현장성을 담보한 전문 필진들을 개발해야 하며, 소명의식을 가진 출판 경영자나 전문 편집자의 확보가 필요하며, 효과적인 마케팅을 통해 안정된 진열공간의 확보를 통한 판매의 증진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런 한계를 극복했는가? 물론 인문, 사회, 과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수준 있는 책의 출간이 늘어났다. 사계절의 ‘1318문고’처럼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문학작품을 발굴해 제공하려는 노력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앞의 한계는 여전하다. 출판계 의식 또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앞의 지적은 그대로 지금 상황에도 적용될 정도다. 아니, 최근에는 더 열악해졌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것은 ‘추천도서’와 ‘논설’ 두 측면에서 그렇다. 서울대학교가 교양필독서 100종을 다시 선정해 발표하자 출판사들은 경쟁적으로 그 추천도서를 염두에 두고 ‘고전’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물론, 그중 일부 출판사는 서울대 발표 이전에 이미 기획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많은 수의 출판사들은 누가 읽거나 말거나 ‘수요’가 있다고 보고 죽어라 시리즈를 내고 있다.
고전은 오늘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한다. 다시 씌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의 것을 그냥 그대로 번역해 내놓고 무조건 읽으라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사실 재해석한다는 일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런 경험을 해본 필자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요’는 있다 해도 진척은 부진하다. 수요를 보고 서둘러 낸 책은 질적 한계로 말미암아 시장성을 키울 수 없다.
하지만 논술은 다르다. 논술 관련 시장은 날이 다르게 커지고 있다. 이 분야에 뛰어든 사람들은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대학입시 시스템 때문이다. 지금 대학입시에서는 ‘수시’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수시에서는 교수들의 집단심층면접이 중요한 점수를 차지하는데, 면접에서 응시자가 선택받으려면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장 교사들의 지적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책을 읽은 사람이 아니면 심층면접에서 자기 생각을 제대로 발표하기 어렵다고 한다. 당연히 이런 일은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지만 실상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단기간에 해결하려 들다보니 논술 지도나 논술 참고서가 ‘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예를 들며 청소년 출판의 활성화 운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소년 출판을 펴내고 나서 나에게도 청소년 출판을 생각하게 하는 중대한 계기가 있었다. 그 책을 본 몇몇 교육계 종사자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청소년 출판이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학교도서관부터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학교도서관을 활성화하기 위한 시민운동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지극히 당연한 제안이었다. 그래서 교사․교육위원․학부모․출판인․대학교수․문화운동가 등이 함께 모여 만든 학교도서관 문화운동 네트워크(약칭 학도넷www.hakdo.net)가 출범하게 됐고, 나도 그 일원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학도넷은 ‘각급 학교의 학교도서관을 활성화하고, 학교도서관의 발전을 위한 제도와 정책의 대안을 제시하며, 실천적인 행동을 통하여 바람직한 학교도서관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마침 교육인적자원부가 5개년 계획으로 학교도서관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해 학교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던 시기에 이런 단체가 탄생한 것은 의미가 컸다. 사실 학교도서관이 활성화되려면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책의 출간이 우선이다. 책이 없고서야 도서관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런 면에서 학도넷의 여러 행사에 참석하면서 청소년 출판은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청소년들이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신간이 학교도서관에 수시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도서관으로 보면 학생은 일종의 ‘소비자’다. 소비자 앞에 쉬어서 버려야 할 두부나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만을 나열해 놓았다면 장사가 될 리가 없다.
그런데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육인적자원부마저도 앞장서서 독서 이력철이나 독서능력 검정시험을 도입하겠다고 난리다. 아이들을 책으로 이끌겠다는 생각보다 관리하겠다는 생각이 앞선 결과로 보인다. 망국적인 대학입시 제도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에 적당히 ‘책읽기’를 끼워 넣은 것이다. 대학입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이 나라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도 수단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독서 이력철이나 독서능력 검정시험이 바로 그런 꼴이다.
독서 이력철이나 독서능력 검정시험은 객관성이 생명이다.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아무 책이나 읽게 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추천도서를 선정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런 추천도서가 질의 여부를 떠나 아이들의 관심을 제대로 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서오경을 읽은 것만으로도, 조금 여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자치통감이나 사기 같은 역사서를 더 읽고 교양인 행세를 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10여 권의 책만 읽어도 관리가 되어 국민을 통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추천도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읽어야 할 책을 고르지 못하니 선험자들이 읽을 만한 책을 골라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독서 수준이나 관심, 놓여진 처지 등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그것도 반강제적으로 책을 읽히려 드는 발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교과서로도 충분하다.
물론 우리 출판의 발전 과정을 보면 그런 발상이 나올 법도 하다. 오늘의 한국출판은 ‘40대’를 빼놓고서는 논의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40대는 출판시장에서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386세대가 주축인 지금의 40대는 독서의 효용과 가치를 깨닫고 자라난 세대다. 가령,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창비) 같은 책을 읽고 인생의 행로가 바뀔 정도로 책이 지닌 ‘폭력적인’ 미디어로서의 깊은 경험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대학시절에 1980년대 인문사회과학 시대를 경험하면서 책이 갖는 변혁성만은 깊이 깨달은 세대다.
40대는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의 원초적 경험을 했을 뿐만 아니라 IMF라는 ‘신자유주의’의 원초적 경험을 톡톡히 했다. 더구나 IMF라는 사상초유의 ‘국란’은 그들이 사회 초년병 시절에 터진 일이었다. 그때 그들은 그동안 해놓았던 인생설계를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날려버리는 처절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사회적 중추가 되었으며 인문사회과학서적이나 경제경영서의 주요 독자층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독자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책의 저자이기도 하면서 권유자가 되었다. 우리 아동출판이 세계에서 인정할 정도로 성장한 배경에는 어린 자녀들에게 양서를 읽히고자 하는 이들의 의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밖에도 전교조의 합법화로 인한 교육시스템의 변화, 어린이도서연구회 같은 시민단체들의 노력, 전문서점과 전문도매상의 등장, 출판사들의 노력, 저자권의 확립 등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세계 초유의 교육열에 힘입은 부모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부모들의 극성으로 책을 읽고 자란 세대들이 이제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어린시절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 온 그들 대부분이 다시 ‘책맹’으로 퇴행한다는 일선교사들의 지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도야마 시게히코는 근대독자론에서 “독자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기에 어떤 계기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며 “자기를 의식하는 독서, 또 그것에 의해 생기는 독자는 결국 읽는 이와 작가, 작품이라는 상호관계에 의해 부상한”다고 말했다. 우리 청소년들은 아직 그런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책을 읽는 습관이 어설프게 형성되어서일까? 적어도 그동안의 독서교육에 치명적인 약점은 없는지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초등학생 시절에 책을 읽는 습관을 제대로 키웠다면 그것은 평생 습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책을 쥐어주는 ‘북 스타트’ 운동을 벌이는 것 아닌가? 그러나 초등학생 때는 맹렬하게 책을 읽던 사람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책에서 손을 ‘떼고’ 책을 놓는 일이 일상화된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중학생이 되면 부모들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는 오로지 대학입시만 염두에 두다 보니 과외로 아이를 내몰지언정 책은 사치라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청소년 출판이 활성화되려면 책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일상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하며, 그것은 바로 학교도서관이어야 한다. 물론 공공도서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자라나는 아이일수록 책으로의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다. 책에 ‘미친’ 아동은 도서관이 산꼭대기에 있어도 찾아가겠지만 책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도서관이 자주 눈에 띄는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곳은 “책 특히 어른과 소년소녀가 난잡하면서도 심오한, 뜨겁지만 차가운, 독도 되고 약도 되는 ‘(어린이 런치 세트가 아닌) 진정한’ 우주대의 책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든 도서관”이어야 한다.
여기서 인용한 것은 일본의 한 도서관 직원이 한 말이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극약본’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극약본은 어른이나 읽는 ‘위험한’ 책을 말한다. 그것은 가벼운 소설일 수도 있고 일확천금에 관한 책일 수도 있다. 지금 성인이 된 사람들 중에도 분명히 누가 볼까 쉬쉬하며 보던 책이 있을 것이다. 지금 알려진 독서가들은 판타지나 순정만화에 중독 되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아이들에게는 우연히 접한 극약본의 발견(충돌)이 충격파가 되어 독서 연쇄를 낳게 되고, 이는 출판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정보의 불규칙성 속에서 새로운 것을 느끼는 경험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청소년 출판이 활성화되려면 학교도서관이 신간을 꾸준히 볼 수 있는 도서관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청소년 출판은 지금, 성장이 불가능해 보인다.
청소년 출판의 현황
그렇다면 지금 청소년들에게 추천하는 책이 어떤 유형인가를 소설로 살펴보자. 나는 2003년의 문학베스트셀러 10을 2000년 이전에 출간됐던 책만으로 꼽아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바스콘셀러스, 동녘), 아홉살 인생(위기철, 청년사), 창가의 토토(구로야나기 데츠오, 프로메테우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 카터, 아름드리), 냉정과 열정 사이(에쿠니 가오리 외, 소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이성과힘), 봉순이 언니(공지영, 푸른숲), 연탄길(이철환, 삼진기획),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웅진출판), 연어(안도현, 문학동네)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이 중 네 종은 이른바 ‘느낌표 선정도서’다. 하지만 그 책들은 선정도서가 되기 전에도 잘 팔렸던 책들이다. 그러니 선정도서가 되었다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책들은 대부분 이른바 ‘성장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성장소설이란 “젊은이의 내면적 성장 과정을 담고 있으며, 자기 성취의 정열이나 젊은 시절 겪게 되는 이상과 좌절을 통해 개인이 보편적 교양이념을 성취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고 한다. 주로 ‘자아’나 ‘세계’에 중점을 두기 마련인데, 어느 것에 비중을 더 두는 것이든 궁극적으로 인간이 자기실현을 하기 위한 길을 제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아이들이 읽고 있는 성장소설이란 어떤 것인가? 앞의 목록들은 젊은이의 내면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요즘 아이들이 겪을 법한 내용이 아니다. 국내외 서적을 막론하고 대부분 ‘과거에 이랬다’ 하는 ‘대한뉴스’식의 성장소설로 부모 세대의 경험일 뿐이다. 오로지 입을 줄이려고 남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거나 전쟁 통에 길거리의 풀뿌리를 뽑아 먹는 이야기는 역사적 교훈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요즘의 아이들이 겪게 될 가능성은 정말로 단 1%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 성장기의 아이들은 입시라는 ‘감옥’에 얽매여 성장통을 앓을 겨를조차 없다. 성장통을 앓는다는 것은 곧바로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 그들이 성장소설을 통해 ‘관념적 성장통’을 앓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요구’나 ‘사회적 강압’에 의해 이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른들은 자신들의 성장사를 다룬 이 책들을 읽으며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 성장소설이 지금까지는 가족 단위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나 교양을 돋을새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온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들은 명백한 한계를 보인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겪는 경험과 그에 수반하는 고통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거리감을 느낄 것이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 소설들은 대부분 사회적 문제와 첨예하게 대응하지도 않는다. 결론적으로 본격적인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 읽고 좋아하는 책은 대부분 판타지, 만화에세이, 일본소설들이다.
나는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발행하는 시사월간지 <논좌> 12월호에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일본소설에 빠져있는 ‘일류(日流)’ 현상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그 글에도 썼지만 지금 대학도서관 대출 순위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등 몇몇 대하소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본소설들이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2000년에는 은하영웅전설(다나카 요시키, 5위), 대망(야마오카 소하치, 6위), 로마인이야기(시오노 나나미, 7위), 아루스란 전기(치사토 나카무라, 19위), 미야모토 무사시(시바 료타로, 20위) 등 대출 순위 20위 안에 모두 다섯 종이 포함돼 있었다. 2001년에 8위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몬 후유지)는 2002년 1위에 오른 다음 그 여세가 2004년까지 지속됐다. 로마인이야기, 은하영웅전설, 대망은 2000년 이래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데 2004년에는 각기 4, 7, 11위를 차지했다. 또 2003년에 19위에 올랐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14위를 차지했으며 오다 노부나가(야마오카 소하치), 료마가 간다(시바 료타로)가 2004년에 처음으로 20위 안에 들었다. 여기에 5위를 차지한 十二國記(오노 후유미)까지 포함하면 2004년에는 일본서적(주로 소설)이 모두 8종이나 된다. 서울대의 연도별 순위는 아래와 같다.
2000년2001년2002년2003년2004년 5/은하영웅전설 3/은하영웅전설 1/도쿠가와 이에야스 1/도쿠가와 이에야스 1/도쿠가와 이에야스 6/대망 4/로마인이야기 1/은하영웅전설 3/로마인이야기 4/로마인이야기 7/로마인이야기 7/대망13/대망 9/대망 5/十二國記19/아루스란 전기 8/도쿠가와 이에야스10/은하영웅전설 7/은하영웅전설20/미야모토 무사시17/왜란종결자19/미야모토 무사시11/대망18/태엽감는 새13/오다 노부나가14/미야모토 무사시 6/료마가 간다서울대 순위 비교-연도별(20위 안에만)로 비교
그렇다면 다른 대학은 어떤가? 2004년 고려대학교 대출 순위에는 냉정과 열정 사이 Blu(츠지 히토나리, 3위)․냉정과 열정 사이 Rosso(에쿠니 가오리, 4위)․낙하하는 저녁(에쿠니 가오리, 5위)․키친(요시모토 바나나, 7위)․반짝반짝 빛나는(에쿠니 가오리, 8위)․창가의 토토(구로야나기 테츠코, 17위)․로마인 이야기(18위)․티티새(요시모토 바나나, 20위) 등이, 서강대학교는 해변의 카프카(무라카미 하루키, 4위)․티티새(7위)․반짝반짝 빛나는(8위)․두려움과 떨림(아멜리 노통, 10위)․밤의 거미 원숭이(무라카미 하루키)․키친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와타야 리사, 이상 공동 15위)․NP(요시모 바나나, 18위) 등이 각기 20위 안에 8종씩 포함돼 있다. 조사 대상의 다른 대학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은 대형서점 베스트셀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2004년 교보문고의 소설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일본소설이 10위권에 3권, 100위권에 15권이 포진되어 있다. 그 가운데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이 4종(냉정과 열정 사이․울 준비는 되었다․반짝반짝 빛나는․낙하하는 저녁), 요시모토 바나나가 2종(NP 키친), 하루키가 1종(해변의 카프카)으로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 350만 부 이상의 판매기록을 세워 화제가 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카타야마 쿄이치)나 최연소 아쿠다카와 상 수상작인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등의 화제작이 순위에 올라 있다.
이런 책을 중고생들까지 열렬하고 있는 지는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내소설이 대부분 몰락하고 그 틈을 일본소설이 급격하게 메워가고 있는 지금 추세를 볼 때, 청소년들이 이런 책만을 즐겨 읽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지금 일본소설은 화제를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됐다가 곧 사라지기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의 작가군을 중심으로 꾸준히 영역을 넓히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는 앞의 세 사람이다. 이 세 작가는 한국에서 칼의 노래의 김훈을 제외하고 그 어떤 한국작가보다도 더 인기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왜 이렇게 인기를 끌까? 출판칼럼니스트 박지현이 분석한바(「일본 감성소설이 주목받는 이유」, <기획회의> 4월 20일자)에 따르면,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소설의 주인공은 대체로 독신이거나 룸메이트와 동거를 하는데 전문직 여성도 있고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프리터도 있다. 그들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독립적 사고를 하는 쿨한 캐릭터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흥미로운 캐릭터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풍요로운 일상 속에서 뭔지 모를 상실감을 느끼는 젊은 여성들에게 ‘관계의 쓸쓸함’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한다. 모든 존재가 객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아무리 칙칙하고 어두운 소재라도 말갛게 그려내는 섬세한 문체와 분위기,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몽환적 분위기나 상상력, 일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 등은 일본소설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여성독자를 중심으로 국내 대중을 매료시키며 소설시장을 한 축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소설들이 우수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논좌>에 발표한 글에서, 최근 일본소설들은 한 사람의 애인이나 가족만이 등장하는 등 극도로 축소된 인간관계만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우리의 청소년들이 이런 소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세상의 변화에 대해 철저하게 외면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중시하는 듯한 성향처럼 비춰질 수 있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성장소설이 없는 것은 까닭이 있다. 나는 다른 글에게 우리 사회가 인문적 교양지식을 축적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과 자서전 문학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그 이유로 들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극심한 경쟁에 내몰렸고, 그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왕따’를 일삼는다. 폭력으로라도 남을 누르지 못하면 내가 당한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에 빠져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학교 내 폭력이 문제가 되자 학교에 전직 경찰을 투입하지 않았는가? 부산에서부터 시행된 이 실험의 효과가 좋으면 전국으로 이를 확대하겠다는 따위의 말을 이 땅의 교육 수장이 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는 최상의 길은 청소년들이 어디서든지 마구 뛰어놀면서 자유로운 사회화 경험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하루빨리 조성해주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아이들이 입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그렇게 교문(집) 밖으로 쉽게 나서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성장통을 실감나게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성장소설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이야 말로 청소년 출판이 바람직한 길로 나아가는 첩경이 될 것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사람에게 있어서 비타민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런 작품 하나 생산해내지 못하는 구조에서 우리가 청소년 출판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청소년 출판의 한계는 바로 저작자 특히 작가(저자)들의 한계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된 출판물을 원천적으로 생산해내지 못하는 한계 말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e북이 아니라 e콘텐츠다 등
․제41회 백상출판문화상 출판상(기획부분) 수상
- 이전글20호 특집/김남석 08.02.26
- 다음글20호 특집/고명철 08.02.2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