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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시/류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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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희
무인 경비 지역
할 일 없이 노는 햇빛뿐이다.
인적 드문 산자락에 나앉은
그 집을 드나드는 건
쌓여있는 먼지의 두께를 가늠하다가, 내부 깊숙이 들어가
책갈피 속 빛바랜 흔적을 함부로 뒤적이다가
치명적으로 곰팡이의 푸른 내력을 파헤치다가
유리 밖에서 맑게 미끄러지는 새소리 구경하다가
거미줄에 갇힌 메마른 침묵 서너 번 흔들어도 보다가
심심해지면
마을 쪽으로 뻗어나간 금속성 혈관에 은밀히 귀를 열다가
낮 동안,
쳐놓은 내면의 그물망을 뚫고
독차지한 햇볕
팽팽하게 시간을 닦고 있다.
파밭을 지나며
냉이꽃밭인지
파밭인지
아득한 비탈밭
경계가 없다.
된서리 하얗게 내린
동지섣달
푸른 삭신 주저앉히며
삭힌 매운맛
한밤에도
꽃잎 지우던
봄비 그치고 나니
한층 두꺼워진 그리움
단맛으로 올라
우후죽순 같은
직립의 살점들
흙을 놓을 기세다.
일제히
류제희․
199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산벚꽃과 옹달샘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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