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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시/유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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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연
신 비단길
앙코르와트 가는 홍토길
해안을 따라 내륙을 한바퀴 돌면 비단길로 이어지는 길
안팎의 나무와 꽃과 집은 제 몸의 각질처럼
붉고 두꺼운 얼룩을 켜켜이 입고 있다
차창 밖으로 먼지 속 아낙이
홍토구덩이에 고인 물로
수저며 그릇을 씻는다
산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한가한 음악처럼 구름이 멀다
간질하듯 흔들리는 차창에 먼지같이 막연한 표정들
겹쳐진다 침으로 으깬 붉은 흙먼지 목젖을 지나
단단한 벽돌이 된다 뼈 속, 골수 속에 진흙 벽이 쌓인다
시바신*이 굽어보는 이승과의 시간들
붉은 얼룩으로 저승을 급히 끌어당긴다
천년 동안 밀림에 묻혀 있던
거대한 정신의 視界를 희롱하듯 붉은 벽돌들
뼈 속, 골수 속에 고생대의 석회층처럼 켜켜이 쌓인다
삶에 먼지만한 미련도 없는 막막한
표정들 위로 홍토먼지 휘돌고
그 표정들 툰래샾 호수의 흙탕물처럼
휘휘 돌아 어느 視界로 밀려가고 있는 걸까
*힌두교 파괴의 신
타임캡슐
화창한 봄날, 햇살 고요한 뜰엔
꽃이 피듯 소리가 없다
그 고요를 둥근 선으로 타닥타닥 가르는 소리
내다보니 혼자 줄넘기하는 여자아이
하나 둘 셋 넷을 넘기지 못하고 핰 핰 하 -악
숨차다 혼자 숨이 꼴깍, 넘어간다 엄마도 없이
어린 시간이 혼자 고통스런 어떤 공간을 건너간다
노오란 봄 햇살 때문일까
줄넘기가 그리고 가는 둥근 타원이 마치
허공을 유리칼로 둥글게 자르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제 몸을 가두는 둥근 타원
폴짝 뛰어 오를 때마다
錯視가 일으키는 錯時 현상이 두꺼운
난시렌즈를 통과하는 빛처럼 어지럽다
아이는 제가 만든 타임캡슐에 갇힌다
미래란 둥근 타원이 만든 시간의 허상이다
유수연․
1998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치자꽃 심장을 그대에게 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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