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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시/이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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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인
거품
만성피부염을 앓으며
공장을 돌아다닌 신발은 이제 괴로운, 가려움에서 벗어났다
붉은 심장소리를 안고 엄마하고 …… 절벽 아래로 떨어진 이는,
파도 앞에까지 와서 무릎을 꿇었다
구름의 이마가 찢어져서 흘러나온 피는, 바다와 쉽게 섞여버렸다
기계가 멈췄을 때처럼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누군가 낡은 슬리퍼를 한짝 주워왔다
익사체의 퉁퉁 부은 발은 그 작은 슬리퍼를 신을 수 없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게들이 흰 거품을 물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거품을 물고 살았던 이들이 있다
붓 자국
‘비단에 먹’이라는 옛 그림을 한 점 사귀었다
……나룻배가 강물 위로 먹먹하게 흘러가는 그림
사공은 강물에 무얼 빠뜨렸는지 노 젓기를 멈추고 강물을 보고 있다,
사공은 처음엔 무시되었던 풍경이었다
시간이 흘러서 피어나는 풍경이 있다, 지워진 풍경이 있다
한평생 강물 소리를 듣는 사공의 가슴엔 먹먹한 먹빛이 있다
이기인․
인천 출생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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