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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시/정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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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겸
유황온천탕
신장개업 중인 스카이사우나
오색풍선으로 장식한
아치형 문을 사이에 두고
천사 복장을 한 도우미 아가씨들이
빠른 댄스곡에 맞춰
경쾌하게 몸을 흔들고 있다
매표소에는 사은품을
먼저 받으려는 남녀들로 뒤엉켜 있다
탈의실에서 거울을 본다
生과 死의 모습이
실루엣이 되어 얼비치고 있다
최후의 만찬 油畵 아래 놓여진
전자저울에 심판을 받듯 몸을 실어본다
삐리릭 경고음과 함께
과체중이라는 문자메시지가 뜬다
욕탕 안으로 들어선다
친환경 황토탕, 독을 제거한다는 금탕과 은탕
신비의 쑥탕과 마늘탕을 지나서
유황온천탕에 몸을 담근다
몸이 녹아내릴 듯 뜨거운 탕안,
뿌연 수증기 속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초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
모두가 알몸이었다.
대나무에 대한 小考
일제시대 때 할아버지가 郡守를 지냈고
삼대가 연이어 벼슬을 했다는
김판사 댁 조선기와집 뒤쪽으로 대나무 숲이 있다
정갈하고 곧은 몸매
꼿꼿한 마디마다 근육질의 경계가 또렷하다
사시사철 푸르른 울타리 안쪽으로는
雜木 하나 없고
참새들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언제 보아도 당당한 숲
퍼렇게 날을 세운 잎사귀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하늘을 찌르고 있다
노랗게 질리며 쏟아지는 노을 앞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허리 굽히는 대나무들
흔들릴 때마다 흙 속에 감추어져 있던
썩은 뿌리들이 살짝 드러나고 있다.
정 겸(본명:정승렬)
․2000년 ≪세기문학≫, 2003년 ≪시를사랑하는사람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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