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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시/김자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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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흔
고장난 꿈
옛다 받아라, 죽은 어머니가 나타나서 흔쾌한 목소리로 병아리 세 마리를 방바닥에 던져 주셨다 오오 요 이쁜 병아리! 보듬어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다가 문득, 이것들도 정 줘서 키워야 하나, 숲 속에 갖다버린 새끼 고양이들은 어떡하나, 이것들도 조금 키워 건사하기 힘들어질 때 내다 버릴까, 나는 시원치 않는 오줌줄기를 질금거리다 밑씻개도 없이 한 무더기 똥을 철푸덕 싸질렀다 아무래도 버린 고양이들을 다시 데려다 키우는 게 낫지 그런 생각을 하는 참인데, 입안에서도 노란 똥이 줄줄 새어 나왔다 동글길쭉한 새끼 고양이 똥, 입 닦을 휴지를 찾는 동안 휙 하니 바람이 불어오고 길게 구멍 난 창호지 문짝이 벌커덕 열리며 무엇이 불쑥 쳐들어오는데, 어이쿠 깜짝이야! 버려진 새끼 고양이가 냐옹 냐옹 소리치며 껑충 뛰어 들어 왔다 이미 까만 토끼로 변해버린 고양이를 끌어안고 나는 엉엉 우는데, 기척도 없이 그렇게 뛰어들면 어쩌자는 거야? 죽은 어머니가 새끼 고양이 꼬랑지를 치켜들고 엉덩이짝을 철썩 갈겨댔다 화들짝 놀라 눈을 뜨니 방 한 구석에 머리 맞댄 병아리가 삐악거리며 줄줄 흐르는 눈물을 서로 핥아주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죽은 닭 벼슬이 하얗다. 생닭집 여자는 단 한번으로 닭 모가지를 뎅겅 동강내고, 탁 탁 탁 능숙한 솜씨로 몸통과 분리해 비닐봉지에 담나낸다. 양 날개 홰를 치며 길게 내지르고 싶은 소리의 충동, 잘 길들여진 목청은 불과 일순의 시간을 놓쳤을 뿐인데, 불안하고 혼란스런 일들은 예측 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키스를 하고 나면 목 졸라 죽이고 싶어.” 모가지 움켜쥔 백정은 단방에 닭의 멱을 땄을까.
나는 쪼그리고 앉아 가위를 벌린다. 푹 삶아진 닭 머리가 가윗날 한번에 물큰하게 잘려진다. 잘릴 때마다 질질 흘러내리는 기름, 번질거리는 기름을 털어내고 나는, 어제 아침 여섯 마리 새끼를 쏟아낸 어미 고양이의 몸보신을 시켜준다. 밤낮을 혹사시켜 알을 부화시킨 양계장 주인, 그의 핏발 선 눈이 웃고 있다. 모가지 비틀려진 소리의 고통을 어미 고양이는 가늠할까. 실컷 배불린 어미 고양이, 냥냥냥 포만감에 쌓여 제 새끼들에게 젖을 빨리러 들어간다.
김자흔․
2004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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