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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시/김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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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81회 작성일 08-02-26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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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옥


토르소


장자골에 가려면 조금씩 이가 맞지 않는 난간과 발목이 빠질 만큼 틈이 벌어진 다리를 건너야 한다 내 유년의 그 다리는 두려움이었다 벌어진 틈새로 문둥이가 아이를 잡아다 삶아 먹는다는 얘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곤 했다

그 밑에 언제부터 그가 살고 있었는지, 땅꾼이라고도 했고 거지라고도 했다 그는 우리가 모를 낼 때나 보리를 벨 때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들밥을 먹었다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늘 그를 불렀다 나이를 알 수 없었다 온통 시커멓게 털로 덮인 얼굴, 구부정한 등, 어느 날 그가 찔레나무 아래 아버지와 앉아 있었다. 부엌에 계시던 어머니는 나에게 간장 한 병 담으라고 하셨다 간장을 담으며 흘낏 본 그의 뒷모습, 푹 눌러쓴 모자와 검은 겉저고리, 사람이라기보다는 그저 한 덩어리 어둠 같았던……. 그러나 간장병을 받아든 그의 손은 놀랍도록 희고 가늘었다. 그때 그가 낮고 어두운 소리로 언뜻 토르소…….라고 했던가? 그 후 좀처럼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 말. 느닷없이 다리 밑에 사방공사가 벌어졌다 그의 집이던 가마때기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는 없었다 검게 탄 양은 냄비와 책이 몇 권, 그리고 시커먼 옷들, 아! 그리고 우리 집 간장병, 그 후 그가 잡혀갔다느니 무내미 어디 다리 밑에서 봤다느니 신문에 난 사람이 ‘그’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왜 토르소……를 떠올렸을까?

몇 년 후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교탁 위에서 만난,
팔도 다리도 목도, 없던 그!
토르소…….


        *장자골. 무내미 : 인천 장수동




질경이


화단에 수북하게 자란 질경이를 뜯어다 삶았는데요 어머니
푹 삶아내야 쇠심줄 같은 줄기 물렁해진다 하셨기에
불을 괄게 피고 뚜껑 꼭 닫고 기다렸지요
끓고 있는 냄비 속에서 딸랑딸랑 쇠풍경 소리 들리고요 마차바퀴 굴러가는 소리 덜커덩덜커덩 들리고요 맨발에 개흙칠한 어머니가 부엌 한쪽에 소맷단을 접어 올리며 서 계시고요
뚜껑을 열자 뿌연 김이 오르는 냄비에 시퍼렇게 우러난 물이 끓고 있었는데요
데쳐진 것에 양념을 하고 볶다가
입안에 살아있던 어머니의 그 맛을 꿀꺽 삼키고 물큰해진 나물을 먹어보았지요
‘웬 맛이 이리 지려 풋내도 나고’

어머니, 어머니질경이는 달큰했지요 논둑에 흔전해서 마차바퀴에 밟혀 짓이겨지고 소가 뜯어 이파리 하나 온전한 것 없었지만 그것들 틈틈이 도려내 바소쿠리에 얹어놓았다가 느지막이 집에 돌아와 저녁 찬거리가 되기도 했었지요 어머니는 무명실처럼 질긴 줄기를 뚝뚝 끊어 화덕에 삶아내고 간장에 무쳐 볶아내기만 했었던 그 맛을

논둑을 끌고 가신 어머니 달이 지는 곳에 부려놓은 질경이를 뜯어냈지요 그 자리마다 어둠이 채워져 어머니를 지우고 있었지요


김종옥․
인천 출생 ․2005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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