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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소시집/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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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저녁의 염전 외 9편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 온다
물 안에 스며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 속의 어둠
선실의 바닥엔 어린갈매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이
부푼 소금처럼 하늘에 뿌려진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 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펴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 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 천 년을 물 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들을 본다
몽상가
―날아가는 새가 사람의 머리카락을 물고 가면
그 사람은 밤에 날아다니는 꿈을 꾸게 된다*
긴 머리를 자르기 위하여
긴 머리를 자르기 위하여 밤을 나선다 밤에 머리를 자를만한 곳이 없다고 수첩에 옮긴다 나는 비스마르크제도에 사는 초록파푸아 달팽이의 느린 생을 이야기하고 싶다 맥주거품 같은 구름이 근원에 홀린 듯 떠있는 밤, 생은 먼 데서 흘러오고 나는 수천 년 전부터 벼락이 하늘을 흐르다 찾아온, 숲 속 가장 어두운 나무의 눈을 떠올린다
맥주의 매복지
맥주를 사러 가기 위해 우리는 방안에 매복해 있었다 게릴라처럼 우리는 웃었고 게릴라처럼 우리는 코피를 흘렸다 그러나 게릴라처럼 매복지에서 죽지 못했으므로 우리는 맥주를 사러 가기 위해 일어났다 누군가 창문 앞에서 인생이라는 혐의를 벗어나고 싶어라고 말했으나 그는 곧 우리가<입술 깨물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했으므로 검은 라이방을 쓰고 몇 개의 검은 종이학을 탁자 위에 접어놓았다 그리곤 스스로의 영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음악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불빛처럼 조금씩 떨면서 땔감처럼 푸르고 축축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 가운데에는 음악을 향해 날아온 섬도 있었고 <한번도 우리는 그 섬에 가본 적이 없었고> 코레아의 감나무에 매달린 칠레 사내의 칠레 같은 푸른 발목도 있었다 연기 같은 눈을 가진 아름다운 청년이 사랑한, 책 읽는 소녀 동상도 있었다
물 속에서 건져 올린 머리칼
당신들은 한패로군 저녁마다 서로 말을 나누는 사이임에 틀림없어 그녀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감겨주던 세숫대야를 찾고 있다고? 미안하지만 이 가계에 그런 건 없어. 이보게 그런데 지금 자넨 담배를 거꾸로 물고 있군. 인생이란 가끔 오후에 혼자서 방에 앉아 눅눅해진 바나나를 벗겨먹는 거야. 이런 당신들은 정말 한 패로군 내 새장의 새들이 오늘은 입을 열지 않아
연두색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불가피하게 너를 사랑해서 내 뒤편엔 무시무시한 침묵이 놓일 테지만 너를 사랑해서 오늘은 불가피하다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영혼에 처벌 받을지 모르지만 시체를 사랑해서 묻지 못하는 사제처럼 불가능한 영혼을 꿈꾼다 환영에 습격 받은 자로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하게 오늘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몇천 년 전부터 살았던 바람이 내 머리칼을 멀리 데리고 날아갈 것이지만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로 시작되는 연기가 연두색 담배의 끝물에서 흘러나온다
기타를 멘 잠수부
용기를 얻기 위해 창가에서 나는 조용히 침대로 간다 비가 오는데 창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수첩에 쓴다 무서워서 으으으 나는 입이 거의 돌아가는데 머리를 자르기 위해 밖에 나가야 하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나는 시조새처럼 꾸루룩거리며 날개를 바닥에 펼쳐놓고 타이핑을 하지 기타를 멘 잠수부들이 강물 속에서 또 음악을 연주하는군. 수면으로 뽀글뽀글 올라오는 음악의 냄새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새들이 어디선가 주워온 머리칼을 물고 내 노래 위에도 앉아있지
*중국 고전 박물지의 한 구절
쥐며느리가 주머니에서 나오는 저녁
집에 돌아온 지 오래되었는데 주머니를 뒤집으니 쥐며느리 한 마리가 나온다 밥풀과 함께
등본을 떼러가는 가기 위해 나는 저녁이 다 되었다 동사무소에 아직 불이 켜져 있는데 부스럼 같은 불빛으로
마른 배를 가진 벌레들이 먼지처럼 푸르르 깔린다 등본을 떼러가기 위해 집에 돌아 온 지 오래되었는데
주소를 적어놓지 못한 세월들이 그믐처럼 흩어지듯 저녁엔 처음 본 집 녹슨 대문들의 주소도 갸륵하게 마음에 피어오른다 그게 나였을까
손바닥에 올려놓고 쥐며느리의 몸에서 나는 서글픈 냄새를 맡아보는 것인데 둥글게 몸을 말아 만드는 저 작은 그늘
희미하게 옛집이 생각나는 것인데 처음부터 우리는 귓속처럼 서글프게 냄새나는 것들이었는데
밭에 들어가 오줌 누던 누이들을 먼발치에서 지켜주듯. 나 혼자 딴전 피우고 사는 세상인 듯. 말없이
집에 돌아오면 오늘은 흰 배를 문지르며 벽으로 돌아눕던 몇 마리 쥐며느리들이었는데 나는 그 주머니를 다 뒤져보고 싶은 저녁이다
the wall*
그날 아침 나는 애인과 팔짱끼고 조조할인 극장 가서 직장 잃고 혼자 영화 보는 아버지를 보았다
애인은 계속 팝콘을 입에 쑤셔넣어 주었지만 나는 자꾸만 시가 쓰고 싶어졌다
보험회사 다니는 어머니 매일 아침 찬송가를 부르며 수금 나가는 당신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나는 이불 속에서 오래 나오지 않는다 이런 아침에 이불 속에서 피우는 담배는 꼭 허구 같다
장꼭또,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마르크시즘<분도 출판사 12번>, 사악한 지식인, 에곤 쉴러의 화집, 로테르크의 자화상, 영화 브레이킹 더 웨이브<라스폰 트리에 감독> 이런 것들을 나는 스물에 보았다 등대지기, 심야의 택시 운전사, 포크레인 기사, 초록색 기타를 가진 집시, 레코드점 사장, 중세의 기사 나는 이런 것들을 서른까지 되고 싶어 했다 플롯 없이 참 잘살아 왔다
얼마 전 담배를 끊은 누이는 바밤바를 물고 家系에 대해 REPORT를 쓰고 있다 누이는 자신의 빤스가 석 장뿐이란 걸 기록할까?
누구 말대로 나의 죄는 너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려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혹은 고욤나무의 성대처럼
내 피노키오 책상 서랍 속엔 하늘이 흥건하다 얼마 전 소주 한 병 들고 밤 마실 나간 아버지가 내 방에 들어와 몰래 서랍 속에 부어놓은 하늘이다 손님이 오면 아버지는 찻잔에 이 하늘을 조금씩 내놓기도 하고 심심한 날이면 내가 없는 틈을 타 거기 욕조를 띄우고 들어가 발가락을 만지고 놀거나 애인을 안고 뒹굴거나 바둑을 두기도 한다 나는 흐린 날이면 서랍 속에 자전거를 띄우고 푸르릉 푸르릉 애인을 뒤에 태우고 달리다가 절벽까지 달려가서 떨어져 죽고 싶어진다
이때 나는 애인이 가끔 애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팔 나는 문법도 모르고 저 하늘을 다 배웠다
수음을 하다가 어머니한테 들켜도 이젠 부끄럽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머닌 다음날 복음대신 오천 원을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정액이 말라붙은 내 이불을 빨면서 어머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관은 예배당처럼 따뜻하다 아버지는 이제 영화관엔 오질 않나보다 어떤 슬픔도 나를 증거하지 못하리니……오멘
살아있으세요 허구처럼.
인류는 외로워지면 허구가 된다
애인이 빌려준 돈으로 아버지를 위해 새 바둑판을 하나 사오는 밤 나는 너무 뜨거운 행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3초간 울었다 이 영상을 내 생의 화면에서 삭제시키기 위해 나는 3시간 동안 혼자 술을 마셨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계약처럼 술이 넘어갔다 돌아오는데 첫 번째 애인이 떠날 때 했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짐승! 지옥에나 가라! 그녀는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었고 바하<바다와 하늘의 첫 운을 따서 지은> 그런 촌스런 이름의 아이를 다음날 지웠다 밖에서 나는 구구단을 뒤에서부터 외우며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카스테라와 바나나 우유를 사주었다
“천사가 되었으면 좋겠어…… 흑흑”
“아니. 천사는…… 이런 슬픈 세상엔 살 수 없어*……”
신파를 이해하면 세상은 오해하기 쉽다
유행가처럼 엽전처럼 고통은 돌고 돌다가 가끔 내게도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천한 슬픔을 가진 사내로 살다가 끝장나고 싶다
공원에서 아버지는 눈에 노을을 옮겨와 가족들에게 보이고 있다
저 눈을…… 오래 쳐다보면 안 된다……
내 전성기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을 때였다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손가락만한 갱엿 하나 물고 토끼풀 무성한 풀밭에서 잠들던 나는
도지사<1986,임기> 둘째딸과 공기놀이를 하던 중 사랑을 느끼고 마는 젊은 베르테르였다 그러나 나는 습작노트처럼 하루 한 줄씩 너무 빨리 늙어갔다
파란 체육복만 입고 다니던 베르테르는 그녀의 집에 놀러가 그녀의 청바지를 한번 몰래 입어보았다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옆에 있던 성경책으로 따귀를 맞았다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나는 작고 녹슨 하모니카라네 누구라도 뜨거운 입술을 갖다 대주면 그에게로 가서 가장 뜨거운 그의 노래가 되겠네
시인을 꿈꾼다는 것은 지상에서 해볼만한 아름다운 예의 중 하나이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부모의 반대가 그리 심하지 않는다면 해볼만한 음악이다 그러나 지상에선 함부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선 안 된다
연합고사 보고 서점에서 책 훔치다가 걸려서 손들고 벌설 때 나는 창 밖으로 아버지가 혼자서 영화관에 들어가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평면이던 내 가슴 숨겨둔 1인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장이 그냥 준 그 시집 속에 나는 그 1인치를 꽃아두었다
환상은 또 다른 현실이다 호프만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하늘은 나를 아직 이 영상에서 편집시키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다
캠코더를 들고 지구를 촬영하고 있는 예수 그의 임기는 얼마나 남았나?
*핑크플로이드의 곡 제목.
고양이가 정육점 유리창을 핥고 있는 밤
고양이가 자정의 정육점 유리창문에 붙어 있다
뒤꿈치를 들고 유리를 앞발로 긁는다
죽은 까마귀를 물고 사라졌다가 돌아와서다
갈고리들 눈빛이 반짝인다
붉은 고깃덩어리 안 고여 있던 핏물이 떨어진다
똑똑 물이 떨어지는 형광등 속에서
축축한 벌레들이 죽은 알을 낳는다
검은 혀가 천천히 유리를 핥는다
거미들이 거리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 귓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내장을 핥고 있는 고양이의 허기가
가시처럼 가로등불에 훤히 드러난다
혀가 핥고 있는 황홀한 굴욕
골목을 돌던 한 여자의 입이 틀어 막히고 있다
히야투스*
어깨에 검은 전선다발을 메고 철탑을 오르고 있는 인부. 민둥머리 새가 꼭대기에 앉아 물어온 담배꽁초를 파먹고 있다
빨간 핀의 여자 아이가 비가 고인 웅덩이에 쭈그려 앉아있다 성기를 가랑이 사이로 드러내놓은 채 웅덩이에 알을 낳고 있는 나방의 날개를 손가락으로 꽉 집는다
철탑 아래서 나는 성냥을 긋는다 철탑은 하루 두 번 머리를 벅벅 긁는다 생각 없이.
도로에 바지를 내리고 술똥을 푸루루 누고 있는 중년의 사내, 건너편 철탑에 노란고무줄처럼 흔들리고 있는 사내의 썩은 눈 주변을 웅웅거리는 파리떼. 똥을 누며 무심히 바라본다
E-LAND 직원들이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담배를 물고, 가계 앞 물청소를 하고 있다 며칠 전 트럭에 치인 노파의 내장들이 흘러나왔던 자리들을
철탑의 꼭대기에 오른 인부가 잠시 눅눅한 구름을 바라본다 담배 두 대를 품속에서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땡땡이 넥타이를 목에 건 사내가 담배를 문 채 검은 전선에 묶여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간다
마지막까지 무언가 입으로 내보내려 했군요…… 기도에 쌓인 바람이 아직 따뜻해요
창문 깨고 투신하기 전 법의학자가 적어둔 메모는 이렇다
며칠 전 나는 누군가의 휘파람을 열었다
*동일한 것을 서로 밀어내는 물리 현상. ex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어쩌면 벽에 박혀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허공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어둠 속에 조용히 떠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어둠 속에서
빈 가지처럼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
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
어느 낡은 여관의 일이다
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놓고
거미 한 마리가
스르르 입 밖으로 기어나 올 때까지
몸이 휘었다
못은 밤에 몰래 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이 우는 것은
자기가 기르는 짐승의 주인이 비로소 되는 것이다
설탕공장 소녀들의 문자메시지가 출렁출렁 건너가는 밤
영하 나의 아름다운 설탕들이 녹고 있어 아으 박테리아처럼 떠다니는 눈송이들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전염병 같은 눈을 맞아 눈을 많이 맞으면 몸이 녹아내린다는데 우리들은 발소리를 죽이고 옥상에 올라가, 문자메시지를 날리지 보고 싶어 영하 오늘밤엔 추워서 담요를 하나씩 더 나눠준대 나의 아름다운 설탕들이 녹고 있어 새 모이를 사러 가야 하는데 영하 오늘밤엔 가. 나. 다. 라. 마. 바 눈이 내려 잠이 창문으로 날아올까 새벽엔 까만 색 정로환만한 똥을 누면서 기숙사 쪽창으로 가. 나. 다. 라. 마. 바 내리는 눈을 바라봤어 아으 나의 아름다운 설탕들이 녹고 있는데 새가 얼어 죽으면 나는 밤새 눈을 뜨고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해 눈을 뜨고 죽은 새를 안고 있다면 밤새 그 사람은 그 뜬 눈을 따라 날아가야 하는 게 생이래 나를 겨울나무에 올려놓고 그렇게 말한 오빠야의 시는 아름다웠어 지금 그 문장들은 어디 갔지 오빠야 몰려가서 개구멍을 파 새 모이를 사러 가야 하는데 새로 산 플라스틱 귀걸이가 자꾸 바닥에 떨어져 나의 아름다운 설탕들이 녹고 있는데 눈부신 알전구 속에 벌레들의 차가운 눈들이 부서지고 있어 옥상에 널어놓은 희뿌연 팬티들을 하나씩 가슴에 품고 내려가는 순간마다 우리들의 설탕은 어디로 날아가는 거지
종아리가 각설탕처럼 부서지지 나의 아름다운 설탕들이 녹고 있는데 머리 속에 빨간 눈들이 마구 날려 담 아래 모여 주머니에서 꽁꽁 언 츄잉껌을 돌려 씹어 나의 아름다운 설탕들이 녹고 있는데 눈송이의 지느러미가 도시에 풀풀 날아다녀 영하 나도 마네킹처럼 속눈썹을 올리고 밤에는 속삭이며 살고 싶어 아으 잠옷을 입고 포장을 하고 있는 꿈은 지독해 나의 아름다운 설탕들이 녹고 있는데 나는 스피아민트 나는 쥬시후레시 치마 속에 운동복 치마 속에 운동복 좁은 화장실에서 팬티를 내리듯 이곳에선 이별은 사상처럼 부끄러운 게 아니야 아으 나의 아름다운 설탕들이 녹고 있는데 내가 만든 눈사람 속에 나는 들어가 있어 돌아와 줄래 비누를 깎아 만든 사슴을 줄게
간을 먹는 밤
간을 먹는다 모여서 먹는 간
간을 먹어서
오늘밤엔 우리들 간이 깊어간다
간이 나온다 한 접시에 이천 원
순대는 빼고 간만.
간을 먹는다
여름밤의 간만 한 접시
간을 먹는다
물 없이.
제 양말 뒤집어 신는지 모르고
사는 空
자꾸 시커메지는 성기처럼
몰라주는 참혹
똥이 똥글똥글해질까
간을 먹는다
가족이 모여서 밤에 먹는 간
허리띠에 구멍 하나 더 뚫어야겠다
어머니가 방에서 가족의 머리를 잘라주신다
어머니가 가족의 머리를 잘라주신다 가위를 검은 물에 적셔가며 머리를 방에서 잘라주신다 새들이 사람이 빠져죽은 물을 물고 날아 올까봐 아버진 미늘창을 굳게 닫는다 창 밖엔 묘지들이 공중을 떠다니며 가장 깊은 추억을 떠돈다 어머니 내년엔 창고를 하나 만들어주세요 얘야 널 그곳에 가둘 수는 없단다 신문지 바닥에 검은 머리칼들이 봄밤처럼 쌓인다 당신도 머리가 많이 자라셨군요 고개를 좀 들어보세요 여보 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더 편해요 그런데 눈들이 바람에 잘리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불빛이 얼어붙은 전구알 속, 유리가루 같은 벌레들, 겨울이면 벌레의 눈은 왜 그렇게 희미해지는 걸까 머리칼을 안고 버리러 나가신 아버지 마루에 앉아 우산을 쓰고 계신다 아버지 비도 안 오는데 우산은 왜 쓰고 계세요 이리 가까이 오너라 거기 있으면 삶에 젖는단다 신문지에 싸놓은 머리칼들이 장독단지 아래서 우글우글 부풀고 있다 죽은 아이가 저수지에서 검은 물풀처럼 건져지고 있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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