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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문화산책/김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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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97회 작성일 08-02-2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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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임상수 감독의 작품세계


김시무(영화평론가)



처녀작 <처녀들의 저녁식사>
1998년 임상수(林常樹) 감독은 <처녀들의 저녁식사>라는 매우 특이한 제목의 데뷔작으로 영화판에 입문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평자가 아는 한 이 영화는 한국영화들 가운데 ‘여성의 성에 관한 최초의 임상학적 보고서’라 할 만한 담론을 담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으로 인하여 임상수 감독은 영화판 입문 즉시 차세대 감독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유보 조항을 달아야겠다. 여성의 성에 관한 최초의 임상학적 보고서라는 대목에 오해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영화들은 여성의 성에 대하여 지나치리만큼 풍성하게 다루어왔고, 이는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여성성이란 것은 이미 가부장적 시각으로 덧칠해진 그러한 종류의 것들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남성의 입장에서 본 여성의 성이란 으레 이럴 것이다 하는 그러한 기성담론들뿐이었다는 얘기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는 전혀 다른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야말로 처녀들의 질펀한 얘기들. 그렇다면 당장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임상수 감독도 역시 남자가 아닌가? 그래서 감독에게 물어보았다.

김 : 제목 그대로 처녀들의 은밀한 성 담론을 노골적으로 다룬 이야기인데, 감독은 어찌 그리도 빠삭하게 여자들의 속내를 간파해 낼 수 있었는가?
임 : 다 임상(수)적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아는 여자친구들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들을 토대로 하여, 모니터도 하고 각색도 하여 에피소드 식으로 여성들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려고 애썼다. 물론 여성들 입장에서 동의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캐릭터는 세 명의 커리어 우먼이다. 호정(강수연), 연희(진희경), 순이(김여진)가 그녀들이다. 감독은 이 세 명의 여성 캐릭터에게 각각 그들만의 색다른 애정관을 부여함으로써 이야기 전개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먼저 호정은 섹스에 관한 한 다다익선(多多益善)형이라 할 만한다. 자유주의자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그녀는 섹스 파트너 선정에 있어서 지위고하를 막론함은 물론이고 체위에 있어서도 상하좌우를 막론한다. 사랑하는 애인이 따로 있지만, 그녀에게 섹스란 애정 없이도 치를 수 있는 일종의 게임과도 같은 것이다. 연희는 사랑과 섹스는 하나라는 일반적 통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은 일종의 내숭형 캐릭터다. 다른 말로 하면 전통주의자쯤 되겠다. 그녀는 거의 동거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남친(조재현)과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지만 실제로 삽입보다는 포옹과 키스를 통해서 더 많은 쾌감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호정의 대척점에 서있는 캐릭터는 바로 순이다. 그녀는 시쳇말로 천연기념물에 가깝다. 주변에 남자친구들은 많지만 아직 이렇다할 육체관계를 나눈 이성(異性)은 없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대형사고를 친다. 술에 만취한 연희의 남친을 유혹하여 잠자리를 가진 것이다. 생애 첫 섹스로 임신에 성공한 그녀는 아빠의 존재를 숨긴 채 애를 낳아 키울 야무진 생각을 한다. 섹스의 본래 목적인 종족번식에만 충실한 자연주의자라고 할까.
이 영화에서는 이처럼 제각각인 그녀들의 애정관이 반주(飯酒)를 곁들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터져 나오면서 풍성한 성 담론을 제공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청춘남녀가 만나서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가를 다룬 애정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욕(sexuality)에 대하여, 나아가 자신의 성기(보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그녀들의 걸쭉한 대화를 통해서 진솔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일종의 보고서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종전 여성의 성을 관습적으로 다룬 여타 한국영화들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그녀들의 진솔한 애정관 그 자체가 아니다. 사실 호정과 같은 프리섹스를 주장하는 캐릭터는 이전에도 많았다. 연희의 캐릭터의 경우, 엄밀히 따지면, 대다수 한국영화의 여성 주인공의 애정관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미혼모가 되려는 순이의 경우도 그 자체만으로는 그리 신선할 것이 없다. 어떻게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 땅의 여성 캐릭터들을 세분화한다면, 자유주의자, 전통주의자 그리고 자연주의자라는 위의 세 가지 범주에 해당하지 않을 여성은 없을 터이다. 문제는 이들 캐릭터들을 어떻게 위치지울까 하는 것이다. 지배적인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그녀들이 나름대로 추구하고 있는 애정관이 어떻게 자리매김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라는 말이다. 임상수 감독은 이 점에서 매우 현명했다. 그는 그녀들의 애정관을 노골적으로 펼쳐 보이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리하여 그녀들의 성 담론을 그저 술자리의 가십 정도로 격하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그것은 상업영화의 메리트는 될지언정 작가영화의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얘기가 될 터이니 말이다. 과연 감독은 무엇을 얘기하고자 했던가?
먼저 호정의 경우를 좀더 살펴보자. 호정은 그야말로 사람(남자) 차별안 하고 자유롭게 섹스를 추구하다가 어이없게도 간통죄(姦通罪)라는 덫에 걸려들고 만다. 그저 섹스 파트너의 성격이 좋아 몇 차례 더 만나 육체관계를 가졌건만, 결국 그 파트너의 와이프한테 고소를 당하여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된다. 극중 둘도 없는 친구인 연희마저도 내심으로는 ‘그것 쌤통’이라 할 정도로 그녀의 자유분방한 애정행각은 애당초 단죄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굴욕적인 합의 끝에 풀려난 호정은 프랑스로 이민을 갈 결심을 굳힌다. 극중 연희 남친(男親)의 말처럼 그것은 ‘정치적 망명’에 다름 아니었다. 개인의 아랫도리마저도 법망으로 감시하는 이 나라에서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존재 이유가 없다면, 그것은 단순 이민이 아니라 망명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프리섹스를 백안시하는 사회에서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프리섹스를 몸소 실천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녀는 어쨌든 그 사회의 이단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여기서 우선 지적할 것은 호정처럼 분방한 여성 캐릭터의 말로(末路)가 어떠한가를 보여주려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호정의 상처를 가장 깊은 애정으로 보듬어 안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애인이었다. 호정의 남성 편력에 가장 분노를 느껴야 할 애인이 진정으로 호정을 위로하고 나선 것이다. 호정은 과감하게도 일부일처(一夫一妻)로 위장한 가부장적 일부다처(一夫多妻) 관행에 온몸으로 저항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호정의 캐릭터는 진정한 성 해방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좌절하는 여성은 자유주의자 호정만이 아니다. 전통주의자 연희라고 해서 좀더 여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 이후의 안락한 삶을 꿈꾸는 연희의 소망은 우선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저 다른 여성들만큼만 살면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가 여자들에게 부여해 놓은 기준에 합당하게 조신하게 지내면서, 소박하나마 가정을 꾸리고 살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 자신이 여자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자신이 여자임을 구별해주는 생물학적 표지(생식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성행위시 남친(男親)의 성기가 삽입되었을 때에만, 그 존재감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던 자신의 보지가 어떻게 생겨먹었나 갑자기 궁금해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스스로 그것을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반성적 사고력이 마비된 지 오래인 보통 사람의 의식은 화석처럼 견고해서 누군가 그것을 깨주어야만 의식화가 가능한 것이다. 자유주의자 호정은 성의 해방에 관한 한 선각자답게 연희에게 자신의 보지를 한번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지난 수백 년간 ‘순결이데올로기’라는 정조대(貞操帶)로 굳게 채워져 있던 자신의 보지를 한번 들여다보라는 호정의 권고는 일종의 계시였다.
처음에는 호정의 권고를 묵살하고 샤워를 하던 연희는 불현듯 자신의 성기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보기(seeing)’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성성에 대하여 여성 자신이 새까맣게 모르고 있던 ‘비밀의 문’을 열어보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미지의 것’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만큼 가혹한 것이었다. 연희는 자신의 보지를 보는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던 것이다. 처음에 그 대가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욕조에 간신히 버티고 서서 대형 거울에 자신의 거시기를 비추어보던 연희는 그만 미끄러져 팔이 부러지고 만다. 부러진 팔로는 서빙을 제대로 할 수 없는지라 직장(레스토랑)에서 한직(주차요원)으로 밀려났던 연희는 몇 달 공백을 거치면서 그 알량한 자리마저도 박탈당하고 만다. 생계의 주된 원천이었던 직장에서의 퇴출은 결혼이라는 제도권 진입마저 위협하고 말았다. 자신의 거시기를 한번 들여다본 여자에게 내려진 형벌치곤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고작해야 거시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연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시몬느 보봐르는 일찍이 탁월한 혜안(慧眼)을 발휘하여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무슨 말인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남성의 시각으로 주조된 존재에 불과한 것이 여자라는 말이다. 그러니 자신의 정체성(여성성, 나아가 그 바탕을 이루는 생물학적 표식인 보지)에 대해서는 감히 알려고 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여성이 만들어지는 존재인 한, 그녀의 성기는 남성의 전유물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연희가 들여다본 것이 단순히 자신의 생식기의 모양만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갑자기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사회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연희는 호정의 불온한(?) 사상에 물든 대가를 톡톡히 치렀으나, 그 혹독한 대가는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시련(試鍊)을 거치지 않은 혁명이 어디 있었던가? 단련(鍛鍊)을 거치지 않은 연장이 어디 있다던가?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연희는 비로소 성 해방의 의미를 깨닫는다. 남친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던, 그리하여 삽입의 불편함마저 감수해야 했던 연희는, 자신이 성적 대상이 아니라 성적 주체임을 깨닫게 된다. 이 모두가 계시에 따라서 자신의 보지를 들여다본 이후에 생긴 일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아무튼 연희는 아는 것이 힘임을 새삼 절감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의 도입부에서 남성을 마치 가야금처럼 다루고 싶다던 그녀의 소망은 라스트 신에서야 비로소 결실을 보게 된다. 그 연주 후의 황홀감(enjoyment)을 팬티차림으로 맛보아야 한다는 점은 평자로서는 심히 불만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감독이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그러한 상황 설정을 영화 전체의 결절점(結節點)으로 삼았다니 참으로 탄복할 만하지 않은가?
이제 순이 이야기를 할 차례다. 단 한차례 성관계로 임신을 하고, 그 여세를 몰아 미혼모의 고단한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순이는 확실히 상식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무척이나 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일부일처제라는 테두리 속에 들어가야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그 바깥에 배치된 숱한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미혼모라는 형극(荊棘)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통 멜로물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부터 본격화된 타율(他律)에 의한 미혼모 이야기는 이제는 식상할 지경이다. 하지만 순이의 경우는 다르다. 요컨대 그녀는 제도권 바깥으로 떠밀렸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결단에 의하여 미혼모가 되려한다는 점이다. 그래 그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애는 갖되 남편은 필요 없다는 인식이 일부 여성 싱글즈들에게 팽배한 지금 그러한 캐릭터 설정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다. 문제는 순이의 그 결심이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처녀들의 저녁식사>라는 텍스트 속에서는 말이다. 순이는 평소처럼 산행을 떠났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조난을 당하는 바람에 유산(流産)을 하게 된다. 왜 하필 유산일까? 감독의 변은 이랬다.

임 : 난 우리 사회에서 (자율적) 미혼모 되기가 그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안토니아스 라인> 같은 이른바 페미니즘 계열의 영화를 보면, 그것을 쉽게 결심하고 또 착착 실행에 옮긴다는 설정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낭만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마치 석사논문 수준의 고민 없는 결말들……. 사회는 그리 만만치 않다. 아직 (자율적) 미혼모가 홀로 설 자리는 없다.

그랬다. 감독은 미혼모에 대한 섣부른 환상을 깨기 위하여 순이의 고결한 의도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꿈은 좀더 나중에 가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콘텍스트 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예컨대 <바람난 가족>에서 은호정(문소리)이 옆집 고딩과의 성관계 후 임신을 하게 되는데, 이는 다름 아닌 자율적 미혼모 되기의 2차 시도라 할 만한 설정이다. 이렇게 본다면,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순이 캐릭터가 <바람난 가족>에서 은호정으로 탈바꿈을 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터이다. 감독 역시도 그 점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단순한 성적 농담에 그치는 얘기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많이 인구에 회자된 표현이지만, 임상수 감독은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처녀들의 대화를 통해서 진지하게 탐색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안까지를 모색하고 있지는 않다. 처녀들은 역시 처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성성이라는 화두(話頭)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또다시 결혼이라는 몸서리쳐지는 제도권을 몸소 체험했던 바람난 아줌마들의 수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불륜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 <바람난 가족>
2003년에 공개된 임상수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바람난 가족>은 바람의 문제를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작이다. 나는 이 영화가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고 본다. 감독 역시도 그 점을 의식하고 이 작품의 제작에 임했을 줄 안다. 말하자면 그때 그 시절 처녀였던 한 캐릭터(순이)가 결혼 이후 겪는 또 다른 성적 담론이라고 할까. 아무튼 이 영화의 핵심 화두(話頭)는 제목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불륜(不倫)이다. 기존의 불륜을 다룬 영화 내지 드라마들을 보면, 보통 남자(남편) 쪽의 바람과 그로 인한 가정의 파탄을 다루거나 아니면, 보복 차원에서 행해지는 여자 쪽의 맞바람을 다룸으로써 바람의 진원지를 어느 한쪽으로 돌리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바람난 가족>은 남편, 아내, 시어머니 할 것 없이 온 가족이 동시다발적으로 바람을 피운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하겠다. 결국 바람이란 그 바람을 피우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바람은 과연 불륜인가? 아니면 로맨스인가? 영어식 표기로도 바람(amour)과 불륜(immorality) 간에는 엄청난 뉘앙스의 차이가 있기에 하는 말이다.
남편 주영작(황정민)은 20대 여성 사진작가인 김연(백정림)과 은밀하게 만나면서 테크니컬한 섹스에 깊이 탐닉한다. 아내 은호정(문소리)은 10대 고삐리 신지운(봉태규)과 사귀면서 평소 남편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성적 황홀감(enjoyment)을 맛본다. 호정의 시어머니인 홍병한(윤여정)은 남편 주창근(김인문)에게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오르가즘을 초등학교 동창과의 섹스를 통해 처음 체험한다. 이처럼 한 가족에 전염병처럼 퍼진 바람이라면 분명 그 바람의 이유가 있을 터이다. 도대체 왜 다들 바람을 피우는 것일까? 일찍이 프로이트는 이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불륜을 꿈꾸는 심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그는 성욕 이론의 대가답게 이른바 바람의 근원에 대하여 매우 설득력 있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여기서 그의 이론을 상세히 요약할 만한 여유가 없으므로 단순화하자면 이렇다. 우선 무엇보다 남자가 불륜을 꿈꾸는 이유는 심인성 발기부전(psychosexual impotence)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기부전이 초래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때가 차면 남자는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때 애정(愛情)과 육욕(肉慾)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결혼을 통해서 정신적 사랑(애정)과 육체적 사랑(육욕)이 하나가 됨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보통 결혼을 사랑의 완성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현실에서는 애정적 성향과 육욕적 성향이 하나로 결합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가부장적 일부일처 결혼제도라는 견고한 틀 속에서는 결코 그럴 수가 없다. 애정 따로 육욕 따로 일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어쩌면 심인성 발기부전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지도 모른다. 프로이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남편)는 자신이 만족을 얻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헌신할 수 있을 때만 완전한 성적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그런 성적 쾌락은 곱게 성장한 그의 아내에게서는 감히 느껴보려고 시도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히 그는 타락한 성 대상, 즉 윤리적인 측면에서 저속한 계층에 속하면서 그가 어떤 심미적인 가책을 느끼지 않을, 그러면서 그의 다른 사회적 관계는 알지도 못하고, 또 그의 그런 사회적 지위를 평가할 수도 없는, 그런 여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는 애정(정신적 사랑)의 모든 감정을 격이 높은 여성(즉 아내)에게 쏟아 부을 때도 자신의 성적 능력(육욕)은 온통 그 저급한 여성에게 바친다.”
요컨대 남편은 아내를 육욕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애정의 대상으로만 과대평가하다 보니 성욕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발기부전일밖에. 그리하여 육욕적 성향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찾게 된다는 논리다. 그것도 과소평가할 수 있는 하층 계급의 여자를 말이다. 이 때문에 바람을 불륜(不倫), 즉 부도덕한 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던가. 여기서 우리는 프로이트가 그가 살던 20세기 초 부르주아 계급의 기혼 남자가 하층 계급의 여자를 정부(情婦)로 맞아들이는 경우를 예로 들고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 남편이 바람을 피우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얘기지만, 아내를 너무 과대평가하다 보니 애정 따로 육욕 따로라는 메울 수 없는 심연(深淵)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요컨대 정신적 사랑 대 육체적 사랑이라는 유서 깊은 이분법이 바람의 원천인 셈이다.
<바람난 가족>에서 남편 주영작은 아내 은호정과의 섹스를 시도하지만 발기부전이거나 조루에 그치고 만다. 혹자는 주영작과 은호정의 섹스가 지지부진한 까닭은 애정과잉 탓이 아니라 애정결핍 탓이 아니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두 사람간의 애정은 이미 식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프로이트의 설명은 공연히 끌어들인 셈인가? 그렇지 않다. 애정 과잉과 애정 결핍은 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게 정신적 사랑을 육체적 사랑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으로 강하게 끌리는 이성과의 육체적 관계를 불결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프로이트가 지적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마찬가지로 애정이 메마른 탓에 육체적 관계에 몸서리를 치게 되는 것도 보통 냉전 중인 부부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냉각 상태일 때면 각방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요컨대 애정 과잉(과대평가)이나 애정 결핍(과소평가)이나 모두 육욕적 성향의 충족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프로이트는 불륜을 꿈꾸는 여성의 심리도 남성의 경험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얘기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의 문명화된 세계에서 여성들 역시 그들의 성장과, 더 나아가 남성들의 행동에 대한 그들의 반응 속에서 남성들과 비슷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에겐, 남성이 처음에는 자신을 높게 평가하다가 일단 소유하고 나면 낮게 평가하는 태도가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남성이 온전한 성적 능력도 없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경우 역시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때로 페미니스트들한테 가부장적 편향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엄밀한 과학성을 지향하는 대학자답게 여성 심리를 예리하게 꿰뚫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요약하면, 남성들은 구애할 때는 여왕처럼 떠받들던 여자라도 일단 육체적으로 소유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정복자(征服者)연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를 여성이라고 모를 리가 없다는 얘기다.
<바람난 가족>에서 은호정은 친구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난 결혼하고 나서 오히려 더 섹스를 안 하는 것 같아. 무슨 중성적인 취급을 받잖아.” 여기서 중성적인 취급을 받는다는 은호정의 말을 프로이트식으로 바꾸면 과대평가(또는 결혼 이후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는 뜻이 될 터이다. 결혼한 순간부터 여성은 더 이상 한 여자가 아닌 아내(양처)로 어머니(현모)로 살아가도록 재배치되는 셈이니까 말이다.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에 빠진 시어머니인 홍병한 여사의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나 섹스도 해, 안 한 지 15년 만에. 요새 생전 처음 오르가즘이란 걸 느껴. 얘, 인생 솔직하게 살아야 되는 거더라…….” 평생 현모양처를 미덕처럼 알고 살았던 그녀는 남편의 과대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서야 비로소 삶의 희열을 되찾게 된 것이다. 며느리 은호정의 경우, 시어머니가 평생 걸려 터득한 진리를 좀더 일찍 깨달은 것뿐이랄까. 언제부터인지 그녀는 남편과의 잠자리가 탐탁치 못하다. 심지어 남편과의 전희(前戱) 없는 짧은 정사 이후 남편 앞에서 자위를 하며 노골적으로 욕구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그녀 앞에 풋내기 청소년 신지운이 나타난다. 그는 갖은 불량 끼를 다 드러내지만 실은 여성의 성기 구조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얼빵한 고삐리다. 성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두 사람의 은밀한 정사가 시작되지만 녀석은 피스톤 왕복운동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정을 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은호정의 불감증(不感症)이 어디 남성의 물건 탓이었던가. 남편은 애인 김연을 만나서는 그야말로 변강쇠로 돌변하지 않던가.
성 관계가 합법적이었던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는 오히려 중성 취급당했던 은호정은 제도권 바깥의 금지된 사랑을 통해서 비로소 관능적 욕구를 느끼는 여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평소 남편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성적 충실성을 풋내기 애인에게서 맛본 은호정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가족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아내의 불륜을 관대히(?) 포용하려는 남편의 화해의 제스처도 한번 희열을 맛본 아내의 결단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영화 <바람난 가족>은 최소한 어느 일방에 의하여 상대방의 바람을 단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람 자체를 불륜(immorality)으로가 아니라 일종의 로맨스(amour)로 다루고 있는 흔치 않은 소수파 영화에 속한다고 하겠다.
물론 이 영화에 불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자칫 바람의 문제를 전통적인 통념으로 얼버무릴 여지가 다분한 무리수가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은호정과 주영작 두 사람이 합의하여 입양한 사랑스런 아들 주수인(장준영)의 느닷없는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 아들의 죽음 탓에 이 영화는 진한 성적 함의를 담고 있는 파격적인 블랙 코미디에서 돌연 심각한 사회 문제를 다룬 보수적 영화로 해석될 여지를 남기고 말았다. 온 가족의 동시다발적 불륜으로 결국 애꿎은 아이만 결단 났다는 식의 주장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이에 대해 감독은 다른 견해를 밝힌다. 감독의 변을 토대로 나름대로 윤색을 했다.

임 : 입양아의 죽음을 평자들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는 혈연(血緣)에 입각한 가족관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 싶었다. 사실 그 아이의 죽음의 간접적 원인 제공자는 주영작이다. 그가 오버했다. 문제는 은호정의 태도다. 그녀는 그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친자(親子) 이상으로. 이 점이 중요하다. 그녀는 아이를 가슴에 묻은 후 홀로 등산을 감행한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산에 올라 목놓아 대성통곡한다. 이는 일종의 영원한 결별의식 같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제 그녀에게 더 이상의 가족은 필요치 않게 된다. 신지운과의 섹스와 그로 인한 임신은 그녀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준다. 처녀 적에 꿈꾸었다가 실패한 (자율적) 미혼모(未婚母), 아니 이제는 이혼(離婚) 모(母)의 소망을 이제 이룰 차례가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바람난 가족>의 연계성은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은호정은 앞으로 재혼(再婚)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을 터이다.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남편 없이 홀로 애를 낳아 키울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처녀 적의 어설픈 이론이 아줌마 시절의 강인한 생활력을 거치면서, 그녀는 진짜 타고난 여자로 거듭났으니까 말이다. 이처럼 감독은 일련의 ‘여성영화 시리즈’를 통하여 ‘가족의 해체’ 또는 ‘위기의 가족’이라는 매우 첨예한 현실적 문제로 관객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임상수 감독은 언제나 현실(reality)이라는 끈을 굳게 거머쥔 채 영화작업을 해왔다. 이는 하마터면 그의 데뷔작이 될 뻔했던 <눈물>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그에게 주어진 키워드였다. 참고로 <눈물>의 본래 제목은 <나쁜 잠>이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가 먼저 장안의 화제로 떠오르는 바람에 기획을 접고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에게 <눈물>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데뷔작의 성공으로 다소 심적 여유가 생긴 감독은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눈물의 의미를 찾는 영화 <눈물>
임상수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인 <눈물>은 좀 신파조로 말하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라고 하겠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지난 2000년 10월에 열렸던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 때였다. 그렇지 않아도 볼만한 새로운 화제작들 내지는 미지의 영화들이 200여 편이나 되는데, 굳이 국내 개봉이 확실시 되는 한국영화를 빡빡한 일정을 쪼개서 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먼저 감상 목록에 올려놓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 영화는 기존의 상업영화와는 달리 6미리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서 만든 비주류권 영화라는 점이 일단 평자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뿐이라면 아무 때나 보면 그만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꼭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진정한 이유는 다름 아닌 장선우 감독이 만들었던 <나쁜 영화>와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확인해보고 싶은 비교 우위론적 관심사 때문이었다. 임상수의 <눈물>도 <나쁜 영화>와 마찬가지로 거리에서 방황하는 10대 아이들의 삶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무언가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 솔직히 평자는 <나쁜 영화>를 정말로 나쁘게 보았다. 청소년 연기자들이 아닌 실제 거리의 아이들을 캐스팅하여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는다는 발상은 좋았으나, 그 거리감이 너무 지나쳐 인간적인 따뜻함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심지어 장선우 감독의 영화적 실험에 아이들이 놀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쁜 영화>와 <눈물>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가급적 연출을 자제하고 아이들이 실제로 겪었던 체험담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면, 후자의 경우 상당 부분 연출에 의존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몰래 카메라로 그들의 일상을 담담히 담아내기만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나쁜 아이>의 ‘나쁜 아이들’이 진짜로 거리의 10대 아이들이었던 데 비해, <눈물>에서의 ‘나쁜 아이들’은 수차례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초짜 연기자들이다. 이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눈물>의 내용을 좀더 살펴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영화는 비록 주류 내러티브의 닫힌 형식은 아니지만 일정하게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냥 즉흥 연출이 아니라 탈고에 탈고를 거듭한 정선된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영화라는 말이다. 이처럼 잘 짜여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등장인물은 네 명의 이른바 ‘나쁜 아이들’이다.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반항아의 전형인 창(봉태규), 그와 단짝 친구이면서 순진한 구석이 있는 한(한준), 단란주점에서 일하며 세상의 온갖 풍파를 몸소 겪어내는 란(조은지), 그리고 활달한 성격의 이면에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새리(박근영)가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문제적 주인공들이다. 그렇다. 이 점이 중요하다.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 아니 진짜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의 제목이 주는 ‘눈물’의 의미만이라도 포착해낼 수 있다면, 그는 벼랑 끝에 내몰린 비극적 주인공들의 삶에 동참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동참이라니?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다. 여자 친구를 원조교제로 몰아넣고 등쳐먹으려는 막돼먹은 아이에게, 또는 아버지 앞에서 맞담배질하는 싸가지 없는 아이에게 공감을 하란 말인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여관방에서 뽄드나 흡입하면서 금지된 장난(성적 유희)에 빠져드는 것을 어른의 입장에서 보고만 있으란 말인가?
만약 누군가가 바로 이러한 입장에 서서 이 영화를 보고 불쾌감을 느꼈다면, 그는 그 불쾌감의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모를 만큼 무지하거나 아니면 모른척하면서 회피할 만큼 위선적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게다가 그 아이들을 성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착취해 왔던 어른들이 있었기에 그 같은 비참한 결과가 초래된 것이 아니었던가. 감독은 영화의 제목에 대해 “아이들에게서 눈물을 앗아간 ‘동정(同情) 없는 세상’에 대해 어른으로써 흘리는 내 자신의 피눈물”이라는 뜻으로 그런 제목을 달게 되었다고 말한다. 늘 현실(reality)의 한쪽 끈을 부여잡고 고민해왔던 감독은 마침내 감독의 영화 경력의 한 단계를 마무리할 (즉 중간평가를 할) 시점에 이르렀고, 그 시금석(試金石)으로 내놓은 작품이 바로 <그때 그 사람들>이다.


허구(fiction)와 실제(fact)의 경계에 선 영화 <그때 그 사람들>
2005년 벽두(劈頭). 한국영화의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권력자의 치부를 드러낸 영화 한편이 제작되었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는 한국현대사의 물줄기를 일거에 바꾸어놓은 전대미문의 대통령 저격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다. 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인 궁정동 중앙정보부 내 비밀 접대실에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수하들에 의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하여 차지철 경호실장과 다수의 경호요원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 직후 김재규를 위시하여 사건에 가담했던 정보부 소속 요원들이 체포되어 내란음모죄를 적용받아 사형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일으킨 파장은 컸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그의 18년 장기집권은 종식되었지만, 그 사건을 일으킨 주체들의 유야무야로, 또 다른 군부정권의 탄생을 가져오는 악순환을 초래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박정희 생존당시부터 열화와 같이 끓어오르던 민주화의 열풍은 또 다시 전두환 대통령에서 노태우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군화에 뭉개지고 말았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사실 이러한 긴박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포괄적으로 다룬 역사드라마는 아니다. 이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당하기 전후의 상황들을 그저 미시적인 시선으로 냉철하게 다루고 있을 따름이다. 영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대략적인 상황은 이렇다. 그날 삽교천 방조제 준공 기념식에 참석하고 온 대통령 일행은 궁정동에서 저녁 만찬을 갖기로 한다. 그러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백윤식)은 그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통령 전용 헬기에 자리가 없다하여 경호실장이 동석을 막은 것이다. 경호실장이 직권을 남용하여 월권(越權)을 행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편 중앙정보부 소속 의전과장(한석규)은 만찬에 동석시킬 여가수와 술시중을 들 여대생을 물색하느라 무척이나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중앙정보부장은 그날 궁정동 만찬 준비를 지시하면서 수하들에게 대통령 일행을 제거하겠다는 지령을 하달한다. 마침내 최후의 만찬을 시작되고, 김재규 정보부장은 ‘야수의 심정’으로 독재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게 된다.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는 참모총장과 함께 육군본부에서 각료들을 소집하여 비상시국 대책을 논의하지만 이렇다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허둥대기만 한다. 결국 육군 보안사 장교들에게 체포되어 그 자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이 영화의 상영을 중지하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사실 국내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리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한편에서는 우리나라가 이만큼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박통의 최대업적이라면서 그에 비하면 독재는 오히려 불가피했다고 본다. 다른 한편에서는 박통의 18년 장기집권 기간 한국의 민주주의는 황폐화되었고, 이는 오로지 그가 물질적 번영에만 집착해 온 탓이라고 본다. 이 같은 거시적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박정희 개인에 대한 선호도도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이 현 실정이라 하겠다. 그를 흠모하는 어떤 보수적인 인사는 박 대통령이야말로 탁류(濁流)를 맑게 하기 위해 일신의 영화(榮華)를 내버린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은 언제나 낡은 가죽 벨트만을 착용했다는 점을 들어 그의 청렴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박정희 시대를 절대화하는 이들에게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신성모독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박통의 철권통치하에서 민주주의의 싹이 잘려나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온몸으로 항거했던 인사들은 당연히 그와는 상반된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일제(日帝)의 잔재를 그대로 간직했던 희대(稀代)의 독재자가 바로 박통이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상반된 평가 속에서 박통에 대한 향수어린 추억이 우리 국민 상당수에게 잔존해 있는 것도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박 대통령의 막내아들인 박지만 씨가 법원에 상영중지 가처분신청까지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가 이처럼 극약처방을 택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인의 장녀인 박근혜 씨가 현재 야당의 지도자라는 것도 무시 못 할 정치적 이유였을 터이다. 어쨌든 극중 박 대통령이 일본어를 사용하고 여가수 및 여대생을 불러 술판을 벌이는 설정은 고인에 대한 악의에 찬 왜곡이라는 것이 고소인 측의 논리였다. 이에 대해 제작사측은 박 대통령이 만주 소재 일본 군관학교 출신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며, 박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심심찮게 주색에 빠졌다는 것도 역시 측근들의 증언에 의하여 공공연하게 밝혀진 비밀이라고 반박했다. 그리하여 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져 나왔다. 사법부의 판단은 나왔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이 영화의 첫머리와 끝부분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필름이 문제로 지적된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 장면에서는 유신(維新) 말기 정국(政局)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마항쟁에 관한 기록영화의 몇 장면이 삽입되었고, 영화의 끝부분에는 박통의 장례식을 다룬 기록영화의 장면이 삽입되어 있었는데, 법원이 이들 장면들을 삭제할 것을 명했던 것이다. 이유는 영화의 내용들 자체가 픽션인데, 영화의 앞뒤로 다큐멘터리를 삽입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픽션과 역사적 사실을 혼동케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제작사측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큐멘터리 부분을 검은 화면처리로 삭제한 채 자막으로 채워 극장에 걸 수밖에 없었다. 법원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고소인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을 얼버무리면서도 결국 영화 자체를 수정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나름대로 솔로몬의 선택(The Choice of Solomon)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어정쩡한 결정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픽션과 실제(fact) 간의 경계 짓기의 문제였다.
영화평단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난 2005년 2월 28일 대학로 흥사단에서 ‘역사적 사건의 영화적 재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고 그 문제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그때 그 사람들>의 부분 삭제에 관련하여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 간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 주된 토론 의제였다.
계명대학교 영화과 서정남 교수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 Shakespeare in Love>와 <아마데우스 Amadeus>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실제(fact)와 허구(fiction)를 결합하는 이야기하기 방식이 일반화된 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며, 이를 지칭하는 팩션(Faction)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잘 알다시피 전자는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창작하는 실제적 과정(fact)에서 작가의 개인적인 연애담을 토대로 했을 것이라는 추정(fiction)을 가미하고 있다. 후자는 모짜르트의 생애를 사실적으로 다루면서 그와 동시대를 살았지만 늘 그의 명성에 뒤쳐진 살리에르가 시기심에 그를 독살했을 것이라는 허구(fiction)를 가미하고 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도 박정희 시해라는 실제사건을 토대로 해서 당시 그 사건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던 사람들의 내면의 심리적 갈등을 허구적으로 묘사한 일종의 팩션(Faction)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법부의 판결이었다. 사법부는 고소인의 고발에 따라서 그 영화에서 묘사된 내용들이 과연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느냐를 따져서 법대로 처리를 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사법부는 어처구니없게도 작품 속의 극영화(dramatic fiction) 부분과 다큐멘터리 부분을 따로 분리하고는 후자를 삭제토록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참으로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작품을 하나의 통합된 소우주(micro-cosmos)로 볼 때, 그 안에 포함된 모든 요소들은, 그것이 다큐멘터리든 아니든, 그 자체로 작품 전체의 구성 부분을 이루게 된다. 그것이 비록 다큐멘터리 필름일지라도 일단 허구의 세계로 편입된 이상 극적 리얼리티(dramatic reality)를 제고(提高)하고 극적 개연성(dramatic probability)을 담보하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게다가 그 다큐멘터리 때문에 관객들이 진실과 거짓을 혼동한다는 사법부의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역사적 사건을 직접 다룬 다큐멘터리만이 진실(truth)이고, 역사적 사건을 극화한 극영화는 거짓(falsehood)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발로(發露)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자체로 드러나는 순수한 팩트(fact)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역사적 사건에 바탕을 둔 극영화일 경우 그곳에서 묘사된 내용이 팩트(fact)냐 허구(fiction)냐 하는 문제는 스타일 차원에서 간단하게 가려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거기에는 창작 주체의 해석이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논점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과연 허구(fiction)냐 실제(fact)냐 하는 것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 자체를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하나의 해석(interpretation)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매우 정당하게도 바로 그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영화는 역사적 가능성들에 대한 일종의 패스티쉬(pastiche)인데, 그러나 이 영화는 역사를 어떤 목적론적 내러티브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독특한 역사 해석이라고 평가한다. 더욱이 이 영화는 역사를 미화하는 지배계급의 시선을 단호히 거부할 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도 역시 거부한다. 그리하여 결국 임상수 감독은 철저하게 제3자적인 시선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1979년 10월 26일에 일어난 사건을 관찰한다. 김영진은 이렇게 말한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논쟁점은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 방법론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런데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이 영화가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역사에 대한 어떤 지향점을 강요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희미하게 드러나는 난센스 정신을 깔고 의미의 판독이 불가능한 역사를 향해 혼돈(chaos)의 에너지로 대적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영화는 모든 사람들을 ‘그때 그 사람들’로 은밀하게 호명함으로써 거꾸로 자신의 정체는 감춘다. 이 영화에서 대통령의 암살은 시해(弑害)도 구국적 거사(擧事)도 아니다. 그냥 돌발적인 사건일 뿐이다. 이것 자체가 이 영화가 내세운 가장 도전적인 해석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한국현대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던 거대한 사건이 일어난 원인에 대하여 영화 매체를 통해서는 사상 처음으로 주관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결론은 이미 앞서 살펴본 대로 그냥 ‘우발적인 사건’에 불과했다는 것이어서 한편으로는 당혹감을 초래하기도 했다. 영화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 영화에 내포된 이러한 해석과 관련하여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박정희 시대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무언가 부족한 듯 보였다.
한 토론자는 “왜 이제야 이런 영화가 나왔느냐. 박통 사망 후 바로 그 다음날 이런 영화를 찍었어야 하지 않느냐. 목숨 바쳐 반독재 투쟁에 나선 감독이 왜 한명도 없느냐! 한 열 명쯤 감옥에서 죽었어야 하는 것 아니었냐.”고 전제하고, 소위 정치를 다룬 <그때 그 사람들>이 <전함 포템킨(Battleship Potemkin)>에 비하면 조야하기 그지없고, 정치적 지향성도 없고, 그냥 시대를 잘 만나 기회주의적으로 만든 사이비 ‘정치적 영화’라고 폄훼(貶毁)하기도 했다. 요컨대 임 감독이 객관적 역사의식을 간과한 채 너무 세부적 심리묘사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이었다.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의 걸작 <전함 포템킨> 같은 ‘정치영화’를 우리도 진작 만들었으면 보다 나은 정치적 환경을 창출했을 거란 요지였다. 요컨대 탁월한 예술적 텍스트가 역사적 콘텍스트를 변경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던 셈이다.
이에 또 다른 토론자는 “그때는 서슬 퍼런 검열이 횡행하던 시절이어서 체제 비판적 영화는 물론이고 독재 권력자를 다루는 영화는 제작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변호를 하면서 시대적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나의 생각도 <전함 포템킨>의 제작 여건과 <그때 그 사람들>의 제작 여건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전함 포템킨>은 러시아 혁명의 성공 이후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국책영화(선전선동영화)였다. 결코 반체제(체제 비판적) 영화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승만 대통령에서 박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우리 감독들은, 의도적으로 체제 비판적인 정치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즉 소박한 휴머니즘적 영화를 만들어도 정권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끌려가 고초를 받고 거의 죽어갔던 것이다. 영화 <전함 포템킨>은 러시아 혁명의 견인차가 아니라 바로 그 혁명의 산물이라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영화 <그때 그 사람>은 감독도 지적했듯이 역사에 대한 블랙코미디가 결코 아니다. 오프닝 크레딧에 의례적으로 명기되었듯이 단순한 ‘픽션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감독 자신의 관점으로 본 ‘그날 밤의 진실’이었다는 것이다. 감독 말대로 임상수 판(버전) 진실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 영화가 과연 픽션이냐 아니냐 하는, 또는 역사적 사건을 ‘올바르게’ 영화적으로 재현을 했느냐를 가리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하나의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두고 그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떠들어대기에 바빴다. 일종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논리가 아닐 수 없었다.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신성모독이라고 분개했고, 한편 그 시대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정치적 지향점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이러한 양 극단의 비판이 미치지 못하는 어느 지점에 이 영화가 놓여 있음을 살펴보았다.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객관성이란 이해관계를 떠난 사유가 아니다. 모든 것은 단지 하나의 관점에 입각한 앎일 따름이다. 하나의 대상을 보기 위해서 보다 많은 다양한 눈을 사용할수록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개념과 객관성은 보다 완벽해질 것이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임상수 감독이라는 하나의 관점에 입각한 그때 그 사건 및 그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해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관점조차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정치적 금기(political taboo)를 넘어서보려는 예술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역사영화였지만, 그러나 공권력의 제재를 받아 원래 의도와는 달리 불구가 된 채 일반에 공개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흥행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하나의 망령(spectre)이 여전히 영화계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신(維新)의 잔재라는 망령이.

임상수 감독은 지금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그는 데뷔 이후 7년여 동안 4편의 영화를 만들 정도로 부지런한 감독이다. 4편 모두 그 자신이 시나리오를 썼다. 4편 모두 장르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한 작품이 마무리되면 흥행 여부와는 상관없이 곧바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감독의 자세는 그 자체로 높이 살만하다. 이제 상업성을 띤 대박 장르영화 한편 만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평자의 우문(愚問)에 감독은 “현재 각색 중인 󰡔오래된 정원󰡕이 황석영 작가의 원작이라 현실의 끈을 놓기가 힘들다.”고 대답한다. 현답(賢答)이다.




김시무․저서
󰡔영화예술의 옹호󰡕
․한양대, 세종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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