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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단편/윤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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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23회 작성일 08-02-26 22:56

본문

|신작단편|


눈물

윤지강




내가 쌍둥이냐고? 문득 희주의 말을 떠올린 나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쓸쓸하기만 했다. 심야방송의 음악프로에서 감상적인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이런 내가 미워질 만큼 울고 싶다 네게 무릎 꿇고. 듣기에도 낯간지럽던 그 노래가 오늘은 무척 간절하게 들려왔다.

엄마는 보스턴에서 나를 낳았으며 아버지와는 나를 임신한 직후 헤어졌다고 한다. 그 나쁜 자식은 엄마와 사랑놀음을 한 게 분명하다. 여자가 임신한 걸 알자 줄행랑쳐버린 것이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의 사진이라도 보여달라고 하자 엄마는 배신감 때문에 사진을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될 수 있는 한 아버지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때로 이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의 기분은 정말 더럽다. 온몸의 기운이 쫙 빠져나간다. 팔다리의 뼈들이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해져 침대에 누운 채 몇 시간이고 꼼짝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아프다. 그것이 육체적인 고통인지 정신적인 고통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진짜 죽을 만큼 아프다. 그럴 때면 눈물이라도 흘리며 펑펑 울기라도 한다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눈에서는 눈물이라는 것이 나오지 않았다. 나의 고뇌는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도 눈물을 배출시키지 않는 내 눈이었다.
윤수와 헤어진 것도 실은 눈물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난 주말에 종로의 비좁은 영화관에서 ‘블러디 선데이’를 보았다. 윤수는 데리시의 시민들이 군인들의 무차별 사격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 콧물을 훌쩍거렸다. 나도 가슴이 아팠지만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윤수의 눈은 토끼 눈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윤수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운 것은 광주의 5월이 생각났기 때문이야.”
나는 죄인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의 눈빛은 내가 광주의 5월도 모르는 외계인처럼 느껴지게 했다. 나는 죄의식을 느꼈다. 속으로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등신, 하고 나를 욕했다. 그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면서 버켄스탁 슬리퍼 앞쪽으로 땅바닥을 몇 번 두드렸다. 한 손은 주머니에 찌른 채 삐딱한 자세로.
빌딩 숲 저편으로 붉은 노을이 막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노을보다 더 새빨갰다.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서웠다. 어디로든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멍청히 그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었다.
“넌 정말 냉혈동물이야.”
그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때로 나도 그렇게 느낄 때가 많았다. 직장 동료들이 그토록 열광한 ‘다모’나 ‘미사’ 따위에 나는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그네들이 하지원과 소지섭에게 열광할 때 나는 그들이 매우 리얼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만 했다.
“물론 나는 계집애들이 질질 짜는 건 딱 질색이다. 하지만 너의 드라이함에는 질렸어.”
그는 되돌아서 버켄스탁 슬리퍼를 소리가 나게 끌면서 사라졌다. 그 슬리퍼는 내가 지난번 그의 생일 때 사준 것이었다. 그의 오피스텔은 경복궁 역에서 부암동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난 후 그의 오피스텔에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기로 했었다.
윤수와 그런 식으로 결별한 것이 꼭 열흘 전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내게 전화하지 않았고 나 역시 전화하지 않았다. 아니, 전화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냉혈동물.
그 말은 내게는 거의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은 사라지고 내 피는 차가워진다. 슬퍼지면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사람들은 나의 마음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술에 취해 옛 애인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는 직장 동료를 볼 때마다 내 자신이 외계인이거나 복제인간이라는 냉소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했었다.
내가 한국에 온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고 그때부터 사귄 단짝친구는 언제나 내게 찰싹 달라붙어 있으려 했다. 3학년 때 제주도에서 한 아이가 전학 왔고 선생님은 그 애를 내 옆자리에 앉혔다. 그 애는 서울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아이들은 그 애가 말하는 제주도 방언을 해독하지 못했다. 그 상황은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와 비슷했다. 그 때문에 나는 전학 온 아이에게 조금 친절했을 뿐인데도 단짝친구는 마구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넌 냉혈동물이야.”
나는 냉혈동물이라는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말을 한 그 애도 단순한 질투심 때문에 툭 던진 말이었겠지만 나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이미 나는 내 스스로의 정체성에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넌 내 딸이지만 어쩜 그렇게 애가 차갑니?”
어느 날 엄마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엄마, 그거 나보고 냉혈동물이라는 거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졌다.
“어?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렇다고 할 수도 있나? 잘 모르겠는데…….”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은 엄마의 오래된 아주 나쁜 습관이었다.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늘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엄마,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문제야, 그거. 만약 내가 국어의 작문숙제를 하는데 그 둘의 차이를 모르면 안 되잖아.”
엄마는 의외로 단순했다.
“차다는 것을 더 강하게 비꼬면서 악의를 섞어 말하고 싶을 때 냉혈동물이라고 해.”
“그럼 엄마도 내가 냉혈동물이라고 생각해? 엄마, 내가 그 말의 의미를 찾아보았거든. 피가 차갑다는 뜻이었고 냉혈한은 심장이 없다고 되어 있어. 나, 심장이 없는 거야? 내 피가 차가워? 엄마도 그래?”
엄마는 내 눈에 가득 담긴 슬픔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 우리 가야 피는 뜨겁고 네 심장은 아주 따스해. 그 말은 한국 사람들의 농담이야. 그들이 악의 없이 하는 농담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면 안돼.”
엄마는 조금 전 악의를 섞어라고 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었다.
내게 한국어는 미로찾기 게임 같았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외할머니가 엄마를 보고 늘 미친년이라고 하는 것이 나는 몹시 이상했다. 이모에게 미친년의 의미를 묻자 애정이 담뿍 담긴 애칭이라고 말했다.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그 말을 남용했고 결국 엄마가 학교로 불려왔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야 엄마는 나를 데리고 유명하다는 안과에 갔다. 그때까지도 엄마는 내가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혼자 침대 속에서나 우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엄마는 운전을 하는 도중 간간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안과 의사는 내 동공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눈물샘이 막혔으면 수술을 해서 샘을 틔워주면 됩니다. 하지만 아가씨의 눈물샘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아직 지독한 슬픔이 무엇인지 모르는 행복한 아가씨군요.”
나는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원을 나왔다. 엄마가 헐레벌떡 내 뒤를 쫓아나왔다. 나는 갑자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시늉을 했다.
“너 진짜 우는 거니? 이런 걸 심리치료라고 하는 거지? 그렇지?”
나는 얼굴에서 손을 떼고 그 의사 선생의 말투를 흉내 내 아직 지독한 슬픔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가씨군요, 으하하하, 하고 웃었다. 엄마는 뾰로통해서 저만치 걸어가다가 프라다의 하이힐 굽이 보도블록 틈새에 끼고 말았다.
“으이구! 도대체 이 나라는 왜 보도블록 하나 제대로 깔지 못하는 거야?”
지나가던 행인이 뜨악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불쾌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허리를 좌우로 비틀며 천천히 엄마 옆으로 다가갔다.
“핼로우, 미세스 김. 왓 이즈 프로블럼?”
“영어 쓰지 마, 여긴 한국이야.”
엄마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왜, 아까 이 나라가 어쩌고 할 때는 뭐고.”
결국 엄마의 프라다 구두는 굽이 떨어져 나갔다.
“엄마, 정말 아깝겠다.”
엄마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이거 이미테이션이야.”
명품족인 엄마는 언제나 그 모든 것들이 이미테이션이라고 말했다. 내게 사치를 가르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엄마의 변명이었다.
아무튼 내게 눈물을 흘리게 해주고 싶었던 엄마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냉혈동물’이라는 악의 없는 농담에 대한 나의 고뇌를 윤수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마시고는 천장을 향해 벌렁 드러누웠다.
“가야, 너, 혹시 쌍둥이 아니니?”
희주의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사실 희주의 그 말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희주를 만난 것은 지난 금요일 밤이었다. 희주는 새카맣게 그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연인과의 이별, 취업실패 등의 고통을 말끔히 씻어버린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썬탠이 되었네? 까마귀가 지나가다가 사촌 하겠어요.”
희주가 눈을 흘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은 유치원 때 미국에 놀러왔던 외할머니에게서 배운 말이다. 외할머니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나를 찾아내면 언제나 하이고! 까마귀가 지나가다 사촌하자고 덤비겠네,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까마귀가 진짜로 나와 사촌인지 무척 궁금했다. 엄마와 피크닉을 갔다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보고 사촌이 저기 있다고 말했다가 핀잔만 먹었다.
“으휴! 이태리 사람들은 덩치는 커 가지고 모두 조그만 잔에 에소프레소만 마시는 거야. 그것도 컵에 딱 반잔만 줘. 여기서 벌컥벌컥 마시던 커피가 몹시 그리웠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희주는 종업원에게 에소프레소를 주문했다.
“그런데 왜 또 에소프레소야?”
“그게 다 그런 거지 뭐. 거기서는 이곳이 그립고 이곳에 오니까 그곳이 그립고.”
“그런데 꼭 할 말이라는 게 뭐야? 괜히 그러지 말고 선물이나 내놔.”
희주는 갑자기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내가 말이야. 너만큼만 생겼어도 모든 걸 할 수 있을 텐데…….”
“모든 걸 할 수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이지. 첫째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거.”
“우리 엄마가 들으면 제일 싫어할 얘기야.”
“그래, 난 너희 엄마가 내 삶의 첫 번째 불가사의였어.”
“왜?”
“우리 집 알지? 딸만 여섯, 난 그 중에 다섯째 딸이지. 우리 엄마는 딸들을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보낼 목적으로 살아왔어. 엄마는 여자는 그저 좋은 남자 만나서 식모 부리며 살면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미모가 빼어난 너희 엄마가 남편 없이 사는 게 난 정말 이상했어.”
“우리 엄마 남자 있어.”
“뭐?”
“그게 그러니까 엄마도 아마 나 몰래 연애 같은 걸 할 거라는 얘기야.”
“난 너희 엄마가 재벌가의 숨겨둔 여인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 어떤 유명한 재벌은 숨겨둔 여자가 아들을 낳으면 입적을 시켜주지만 딸을 낳으면 돈만 쥐어주고 미국으로 보낸대. 그는 자식이 열이나 되지만 그런 이유로 딸은 한 명도 없어. 너희 엄마도 너를 미국에서 낳았잖아.”
나는 기가 막혀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내심 찔끔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너 그 따위 소리 지껄였다만 우리 엄마한테 다시는 예쁜 옷 얻어 입지 못해. 우리 엄마는 엄연한 드라마 작가였어. 숨겨진 여자 같은 거 못해, 성격상. 시청률 때문에 대본을 수정하라는 피디와 대판 싸우고 그걸 집어치웠대.”
희주는 감탄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너희 엄마가 그냥 의상실 여주인인 줄만 알았어.”
핵심에서 벗어나는 건 희주의 특기였다. 내가 냉혈동물이라는 얘기를 듣는 것처럼 희주는 건망증 환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 전 희주는 오랫동안 사귀어오던 남자와 헤어졌다. 남자네 집이 너무 가난한 게 걸림돌이었다. 그날 희주는 자정이 후딱 넘은 시간에 나를 찾아왔다. 그 때 나는 윤수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윤수는 마뜩찮은 얼굴로 그녀가 돌아가기를 기다렸지만 마스카라가 시커멓게 번진 그녀의 눈을 보더니 두말없이 나가버렸다.
그날 희주는 독한 양주를 들이켜고는 밤새도록,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마치 그 남자와의 모든 추억이 독이라도 되는 것처럼 완전히 토해내려고 했다.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를 지껄였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이 어딘 줄 알아? 정독 도서관이야. 그때 나는 대학 4학년이었고 졸업 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 집에서는 줄줄이 선을 들이대며 결혼하라고 성화였지만 나는 언니들처럼 살기는 정말 싫었어. 조건만 보고 결혼한 언니들은 하나같이 프란체스카 신드롬에 빠져 사랑할 대상을 찾는 거야. 심지어 불륜은 혁명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러다가 드디어 작은언니가 사고를 쳤어.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다가 어린 시절 남자친구와 눈이 맞아버린 거야. 조카들이 정말 불쌍해, 애들이 무슨 죄가 있어.”
희주는 늘 그런 식이었다. 어떤 얘기를 시작하면 마치 말꼬리 이어 붙이기처럼 되어버렸다. 예를 들면 기차-차부-부사장-장미-미술관-, 그런 식이었다. 맨 처음 등장한 기차의 이미지, 즉 낭만과 여행은 사라지고 딱딱한 법률이 덜렁 남았다.
희주는 엉망으로 취해 다시는 연애도 하지 않고 더더구나 결혼은 생각도 하지 않겠다고 횡설수설했다. 그리고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아이만은 꼭 낳고 싶어.”
“혹시 너, 임신했어? 응?”
내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묻자 희주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도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말했다.
“아이는 어떻게 낳을 건데?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고.”
희주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말했다.
“정자은행에 가서 그 자식보다 더 우수한 정자를 살 거야. 우리 그 영화 봤잖아. ‘안토니아스라인’, 그 영화에서도 아이를 낳기 위해 멋진 남자를 헌팅하러 모녀가 도시로 가잖아. 아냐, 아냐, 앞으로는 난자만 가지고도 아이를 낳을 수 있대.”
그 말을 끝으로 희주는 침대에 푹 고꾸라져 버렸다. 희주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니 이상하게 정신이 맑아져 왔다.
‘그래, 엄마도 혹시 나를 낳기 위해 정자은행에서 나를 골랐을지 몰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아버지의 이름도 사진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캔맥주를 꺼내 창가로 갔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 때문에 나는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그것이 벌써 일년 전의 일이었다.
“무슨 얘기인지 그만 뜸 들여, 니가 다시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뭐라고 안 할께. 꼭 하려는 얘기가 뭐야?”
희주가 다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가야, 혹시 너 쌍둥이니?”
그녀는 정색을 하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쌍둥이라니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내 말은 너 미국에서 살 때 쌍둥이가 있었냐 그 말이야. 너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질 때 쌍둥이를 한 명씩 나눠 키우기로 했냐 이거야.”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깜짝 놀랐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느라 고개가 꺾어지도록 젖히고 있었지. 단테의 인페르노에 나오는 뱃사공 카론을 찾는 중이었어. 너무 목이 아파 고개를 바로 한 순간 네가 보이는 거야. 한 일이 초 동안 나는 꿈을 꾸는가 했어. 서울에 있어야 할 네가 왜 내 앞에 있나, 하고. 손으로 눈을 문지르고 다시 봐도 분명히 너였어. 너무 반가워서 네 쪽으로 가려고 했지.”
나는 멍청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새까만 흑인 아저씨가 너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고 곧 너는 내 눈앞에서 사라졌어. 시스티네 성당 밖으로 나가 긴 회랑을 돌아다니며 너를 찾았지. 결국 한 바퀴를 빙 돌아 다시 신비의 방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그 애는 네가 아니었어, 비슷하기는 했지만. 그 애는 머리가 무척 짧았고 너보다 키가 조금 더 컸어. 피부도 더 희었고…….”
그녀의 표정이 점점 비장해졌기 때문에 내가 비극의 히로인이라도 된 것 같았다.
“절대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그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은 있을 수 없어. 쌍둥이가 아닌 다음에야. 난 고등학교 때부터 너와 친구였어. 그런 내가 착각할 정도였으니……. 네 엄마는 네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거야.”
출생의 비밀? 나는 자라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물론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부모가 이혼한 아이도 있었고 아버지가 죽은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애들은 모두 아버지의 사진과 빛바랜 신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만이 아버지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나는 화이트 헤드의 ‘과정과 실재’를 읽다가 이런 구절을 읽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존재는 저마다 세계 전체에 널리 스며들고 있다.’
나는 화이트 헤드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말은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울림을 주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는 혼자 잠드는 내게 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중에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구렁이의 각시가 된 어느 처녀의 이야기였다. 밤이 깊으면 잘 생긴 총각이 처녀에게로 놀러왔다. 어느 날 밤 총각이 처녀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처녀의 아버지가 목격했다. 처녀의 아버지는 크게 꾸짖으며 바늘에 실을 꿰어 총각의 몸에 꽂아두라고 했다. 처녀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총각의 옷에 바늘을 꽂아두었다. 다음 날 아침 처녀는 실타래에서 풀어져 나간 실을 따라가 보았다. 실은 마을 어귀의 연못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천년 묵은 구렁이가 살고 있는 연못이었다. 처녀는 얼마 후 임신을 했고 아기를 낳았다.
어린 나는 외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럼 나도 구렁이 딸이야?”
외할머니는 내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해 쩔쩔맸다.
“아가야, 사람이 어떻게 구렁이의 딸이 되겠니?”
“서동왕자는 구렁이의 아들이랬어요. 나도 아버지가 없잖아요?”
나는 할머니가 쪄준 옥수수도 먹지 않고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할아버지도 구렁이에요? 왜 우리 엄마도 아버지가 없어요? 왜 우리 집에는 남자가 한 명도 없어요?”
할머니는 엄마가 일하는 곳으로 전화를 걸어 무슨 아이가 저렇게 고집이 세냐고 화를 냈다. 엄마는 당장 택시를 타고 집으로 달려왔다. 나는 엄마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왜 나는 아버지가 안 계셔? 우리 아버지도 구렁이야?”
엄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말이 어딨어? 어떻게 사람이 구렁이의 자식이야?”
“서동왕자는 구렁이한테서 태어났단 말이야.”
“그건 옛날이야기야.”
“아니야. 서동왕자는 나중에 신라의 왕이 되었어. 그건 옛날이야기가 아니야. 서동왕자는 역사적 인물이랬어. 우리 선생님이 그랬단 말이야.”
어린 나는 신화와 전설과 민담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다른 모든 애들한테 있는 아버지가 왜 나한테만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3반에는 아버지가 없는 애는 나를 비롯한 두 명뿐이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소방수였는데 불을 끄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애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글짓기 시간에는 오직 아버지에 대한 추억만을 썼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이름도 모르고 사진조차 볼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만이 아버지가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열 살이 되자 나를 성당 교리반에 집어넣었다. 교리 시간에 수녀님이 마리아의 처녀 잉태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어느 날 마리아가 항아리를 들고 우물가에 서 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다는 것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찬미 받으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복되시도다.”
마리아는 곧 잉태했고 예수를 낳았다. 나는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후 질문했다.
“수녀님, 여자 혼자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나요?”
수녀님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했단다.”
나는 환희에 젖어 집으로 돌아왔다. 미카엘 천사의 축복이 내게도 내려진 것 같았다. 성령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나 역시 성령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녁때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아버지는 성령이야?”
엄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는 나를 낳을 때 성령과 결혼했어?”
엄마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외톨이인 내 존재. 아버지도 없고 형제도 없다. 친구도 없다. 나는 삼각형의 모서리일 뿐이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엄마는 언제나 피곤에 절어서 집에 돌아왔고 주말이면 누군가와 여행을 떠나고는 했다. 나는 혼자 빈 아파트에 버려졌다, 마치 구겨진 종이처럼. 아버지에게도 버려지고 어머니에게도 버려지고 결국 연인에게도 버려질 나, 그래서 나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무서워했다.
엄마는 늘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 가야는 독립심이 대단해요. 아마 어릴 때 미국에서 자라서 그런 가봐요. 모든 걸 혼자 하죠. 난 도무지 한국의 엄마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일기도 그림도 모두 써주는 엄마들은 아이를 망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도 별로 친구가 없다. 엄마 역시 나처럼 삼각형의 한 모서리이다. 우리는 각자의 꼭짓점에서 둥지를 틀고 까맣게 타들어갈 뿐이다.
“우리에게는 소실점이 있단다. 너와 나는 소실점에서 만나지는 거야. 아름답지 않니?”
하지만 그것은 엄마의 생각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무엇 때문에 나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엄마들을 욕할 생각이라면 그냥 미국에서 미국사람들처럼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도시락을 깜빡 잊고 가져가지 못했을 때도 엄마에게 전화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이미 출근해서 부유한 사모님들의 옷 치수를 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내 짝의 엄마는 택시를 타고 학교로 달려왔다. 그 애 엄마는 점심도 굶고 딸에게만 김밥을 사주고 부랴부랴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나는 다른 친구들의 밥을 얻어먹는 비위도 없었다. 그런 날은 용돈까지 책상 위에 두고 왔다. 하는 수 없이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읽고는 했다. 그래서일까, 우연히 빼 읽는 모든 책의 모든 구절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때 내가 읽은 시 중의 하나가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6월’이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빈 도서관의 창가에 앉아 생각하곤 했다.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그리고 어딘가에 존재할 아름다운 마을에 대해서, 어딘가의 아름다운 거리에 대해서, 어딘가의 아름다운 사람에 대해서. 나는 어려서부터 또래의 아이들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 그건 내가 특별히 조숙해서가 아니라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에서였다. 책읽기 외에 달리 외로움을 푸는 방법을 나는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세계에 대해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깨우치게 되었다. 오직 아버지만이 미지의 존재였다. 나는 어딘가의 아름다운 마을에 살고 있을 아름다운 사람에 대해서 늘 꿈을 꾸었다. 언젠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 내 인생의 빅뱅이라고 생각했다. 오이디푸스 왕이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깨닫는 순간 스스로의 눈을 찔러 눈먼 성자가 된 것처럼 나 역시 아버지를 찾는 순간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프로이드는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준다는 이야기에는 진리가 들어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황새가 아이를 물어온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다고 한다.
같은 반의 말썽꾸러기였던 남자아이는 형들이 저 녀석은 다리 밑에서 주워 와서 저 모양이라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 그 아이는 다리를 찾아 나섰다. 다리 밑에는 거지들이 움막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갈등을 하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나중에 그 아이의 일기를 본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다 키워놨더니 친부모 찾아간다고? 그래, 가자. 지금까지 키워준 값 받아야겠다.”
남자애의 엄마는 등짝을 후려치면서도 웃고 있었다. 순간 그 아이는 이 분은 틀림없는 나의 친엄마라는 통찰을 얻었다고 말했다.
나 역시 점심을 굶고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던 그날 통찰했다. 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무슨 동영상처럼 떠오른 게 아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태어났다, 엄마에게서.’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의 사진들을 스크랩해 두었다. 배가 부풀어오른 엄마는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병원에서 나를 낳자마자 찍은 사진들도 있었다. 확신하건대 나는 고아원에서 입양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유보하기로 했다.
‘내게 아버지는 이 세계 그 자체이다. 화이트 헤드의 말대로 모든 존재는 저마다 세계 전체에 스며들고 있다, 아버지와 나는 언젠가 반드시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빅뱅 이론’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 미국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곳에 가면 아버지를 찾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텍사스의 정자은행에서 나를 택했든, 아니면 혁명으로 태어났든,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세계에, 그리고 우주에 스며 있는 아버지의 존재를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라는 나 자신의 진실을 따르기로 했다.
희주는 계속 떠들었다. 나는 여전히 멍청한 얼굴로 얘기를 듣고 있었다.
출생의 비밀과 황새, 그리고 다리, 프로이드와 쌍둥이,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내 앞에서 불꽃처럼 춤을 추었다. 그것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황새가 물어온 것은 비의였고 그곳에 내 삶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프로이드가 아니라 나여야만 했다.
그녀는 계속 지껄였다. 이번에는 쌍둥이가 아니라 미켈란젤로였다.
“교황의 비서는 미켈란젤로를 미워했어. 질투했는지도 모르지. 공공연히 미켈란젤로를 비웃고 다녔어. 그림도 못 그리는 놈, 게으른 놈이라고 하면서.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그리면서 그림 맨 아래쪽 지옥 편에 교황의 비서를 그려 넣었어. 얼굴을 잔뜩 찌푸린 그의 몸은 뱀에 칭칭 감겨 있고 뱀의 머리는 그의 고환을 물고 있어. 그는 예술가를 모독한 대가로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치르고 있는 거야. 비서는 교황에게 그 부분을 지워달라고 통사정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지. 미켈란젤로는 성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살가죽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놓았어. 그 가죽은 성인의 살가죽이야. 예술가 역시 순교자라는 얘기겠지?”
갑자기 희주가 말을 멈추었다. 내가 입을 꽉 다물어버린 것을 뒤늦게 눈치 챈 것이다. 그녀는 내 얼굴을 흘긋거리며 맥주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날 우리는 노래방에서 서른 곡쯤 노래를 부르고 나서야 헤어졌다. 희주는 내 볼에 입을 맞추면서, 가야, 너 혹시 나 몰래 로마에 왔었던 거 아니지?라고 물었다.

침대에 똑바로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이 그곳에 그려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천국과 연옥과 지옥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는 나와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여자애를 천국에 그려 넣었다.
사실 내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뱀에게 고환을 물린 교황의 비서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는 영원히 번식할 수 없는 멸망의 상징이었다.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지옥으로 떨어트렸다. 하지만 희주가 말한 나의 쌍둥이는 순교자 바르톨로메오처럼 내 영혼 속에서 생생하게 부활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 애의 복제인간일지도 모른다. 히틀러의 복제인간이 세계 곳곳에서 탄생한다는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에서처럼 나를 닮은 아이들은 세계 곳곳에 펴져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들고 긴 머리를 싹둑싹둑 자르기 시작했다. 엄마 말대로 나는 독립적이었다. 머리도 혼자 자르고 때로는 옷도 직접 만들어 입었다. 치마 같은 것은 대충 바느질을 해서 입지만 바지만은 만들기 어려워 엄마의 의상실에 맡겼다.
때로 같은 사무실의 동료들이 내 옷을 어디에서 구입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메이커가 뭐야?”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메이드 인 가야.”
“가야 씨 엄마가 만든 옷이야?”
그들은 대부분 그렇게 물었다.
“아니, 내가 만들었어.”
치마는 그냥 자루처럼 꿰매 밑단에는 같은 색의 실로 레이스 뜨기를 했다. 그리고 같은 빛깔의 천을 20센티미터로 잘라 벨트를 만들어 허리에 둘렀다. 그 위에 내가 틈틈이 짠 니트의 가디건을 걸치고 가는 끈의 샌들을 신었다. 치마는 연두색이거나 황토색이었고, 가디건은 주로 분홍색이거나 노랑색이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면 촌스럽다고 놀렸지만 직장동료들은 내게 희랍여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는 한술 더 떠 우리 아버지는 연못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말하는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깔깔거렸다.
내 색채 감각은 화가인 이모에게서 터득한 것이다. 이모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 엄마와 내가 살고 있는 뉴욕에 와서 그림공부를 했다. 이모는 어린 나에게 스케치북을 주고 그림을 그리라고 시키고는 했다.
“봄이 되면 외할머니네 집 앞의 산은 분홍색이 된단다.”
나는 분홍색 크레용으로 산을 쓱쓱 칠했다.
“집 앞의 파밭은 바다처럼 푸르고 푸르단다.”
나는 짙은 청색으로 땅을 파랗게 칠했다.
“가을에는 모든 들판이 눌눌한 배추색으로 물들지.”
나는 눌눌하다는 뜻이 무슨 색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는 심술궂게 그 색을 배추벌레 터진 색이라고 말했다. 이모는 엄마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한국은 아름다워. 나도 한국의 봄산과 가을의 배추밭을 그리워해.”
찔끔한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분명히 이모가 한국에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왔을 거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분홍과 초록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모는 엄마가 내게 입히던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와 리바이스 청바지를 벗겨내고 이모가 만든 옷들을 입혔다. 이모는 내게 특별히 치마저고리를 만들어주었다. 엄마의 장롱 속에서 해묵은 분홍치마와 노랑저고리를 꺼내 가위로 싹둑싹둑 잘랐다. 며칠 동안 이모는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유치원의 졸업파티에 입을 내 의상을 만들었다.
졸업식 날 이모는 내 머리에 물을 바르고 싹싹 빗어내려 한 가닥으로 땋아주었다. 그리고는 저고리와 같은 노랑색 띠로 머리를 묶어주었다. 나는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난생 처음 입어보는 그 옷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린 나는 유치원 졸업파티에 아버지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예쁜 내 모습을 보고 감동한 아버지가 다시 우리와 살게 될 거라고 꿈꾸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무참하게 깨져버렸다. 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새 내 머리는 ‘슬픔이여, 안녕’의 진 세버그처럼 아주 짤막해졌다. 거울 속에는 희주가 시스티네 성당에서 마주쳤던 그 애가 미소 짓고 있다. 보이시한 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나보다 키가 조금 더 큰 여자애, 아버지와 같이 살았을 그 애. 내가 엄마의 반쪽 사랑으로 컸다면 그 애는 아버지의 반쪽 사랑으로 자란 아이이다.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갑자기 핸드폰의 벨이 울렸다. 새벽에 전화할 사람이라면 엄마와 윤수, 그리고 희주 셋 중 하나밖에 없다. 나는 아무와도 통화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자 음성메시지가 들어왔다. 냉혈동물이라는 거 아무 의미 없어. 진짜 보고 싶은데 너는 괜찮은 거야? 윤수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그만두었다. 윤수는 내가 보고 싶다기보다는 화가 나 있는 것이다. 내가 자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상처받은 것 같았다. 그는 엄마만큼이나 단순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옆에 있는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없다. 언제나 자기가 일을 만들고 그르치고 울고불고 한다. 일이 끝났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한 얼굴로 쇼핑을 하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
윤수란 존재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그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는 광주의 5월에는 분개하지만 나의 상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희주의 표현에 의하면 원래 부자들은 다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난한 남자와는 왜 헤어졌느냐고 묻자 그는 자기 야망만 들여다보고 있어 지겨웠다고 말했다. 부자도 지겨운 데가 있다고 하자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윤수의 직업은 문화평론가이다. 출근도 하지 않았고 날마다 빈둥대면서 글 몇 줄을 써서 먹고 살았다. 그가 쓰는 대부분의 돈은 복부인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엄마에게서 나왔다. 그의 엄마는 그를 대학교수로 만들기 위해 거금의 돈을 주고 청탁을 넣었다. 그 사실을 안 윤수는 화가 나서 뉴욕으로 날아갔고 그의 엄마는 교수로부터 절반의 돈만을 돌려받았다.
그래서 취재차 보스턴에 갔던 나와 윤수가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보스턴 미술관에 걸린 고갱의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긴 제목의 그림 앞에서였다. 나는 그 그림 앞에서 과연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하고 생각했었다.
가야. 가락국기의 찬(贊)을 상고해 보면, 자줏빛 끈 하나가 내려와 둥근 알 여섯 개를 내려주었다. 이 다섯 개 알은 각 읍으로 돌아가고 한 개는 이 성에 남아서 수로 왕이 되었는데 나머지 다섯 개는 각각 다섯 가야의 주인이 되었다 한다. 삼국유사의 가야 편이었다.
미국에서 나는 가야라는 이름으로 놀림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이름 때문에 매번 놀림을 받았다. 나는 그때 ‘원탁의 기사’를 읽고 있었기 때문에 아서라는 이름으로 고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이름을 짓지 않아.”
엄마가 생각해 낸 것은 유리라는 이름이었다. 엄마는 ‘유리의 성’이라는 만화를 열심히 읽던 때였다. 하지만 우리가 이름을 고치려고 동사무소에 갔을 때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원에 개명 이유를 적어내야 하고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이후 나는 이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대신 내 이름의 신화를 썼다.
“우리 조상이 가야국의 시조인 수로 왕과 친척 간이었어. 그날 이후로 집안의 첫 번째로 태어나는 계집애에게는 언제나 가야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내 얘기를 사실로 받아들였다.
거울 속의 그 애, 나와 쌍둥이처럼 닮은 그 애는 어떤 이름을 가졌을까? 나는 그 애 이름을 ‘열대어’의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이름을 따 요시다라고 지어주었다.

요시다와 나, 희주 셋이서 푸른 정원이 내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다. 회화나무의 흰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눈처럼 땅바닥에 쌓였다.
내가 그 애를 요시다라고 부르자 희주가 그 애는 일본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화를 냈다. 희주가 지나치게 화를 내자 요시다는 화장실에 간다면서 일어났고 나도 따라 일어났다. 요시다와 나는 화장실에서 옷을 바꿔 입었다. 그 애는 내가 입었던 에스닉 레이스의 블라우스에 보헤미안 스커트를 입고 나는 그 애가 입었던 슬리브 리스의 살구색 탑에 엉덩이가 꽉 끼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다. 내 머리에 둘렀던 스웨이드천의 노란색 반다나를 그 애의 머리에 둘러주었다. 거울로 보니 요시다가 가야 같고 가야는 요시다 같았다. 우리는 거울을 향해 혀를 날름 내밀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희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둘을 번갈아 보았다. 우리는 둘 다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누가 가야지?”
우리는 둘 다 웃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토라진 희주가 소리를 꽥 질렀다.
“쁘로바빌멘떼 삐오베라 넬 뽀메릿지오(아마도 오후에 비가 올 것 같다).”
요시다는 엉겁결에 대답을 하고 말았다.
“노, 아셋소 삐오베(아니, 지금 내리고 있잖아).”
희주가 하하 웃었고 나와 요시다도 큰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썰렁했다. 그런데 갑자기 희주도 사라지고 요시다도 사라졌다. 나는 수북이 쌓인 회화나무의 흰 꽃잎무더기 위에 망연히 서 있었다. 비를 맞으며 엄마 집으로 갔다.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요시다가 엄마와 함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을 만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낯선 얼굴로 바라보며 오늘은 자기 딸이 와 있으니 다음에 오라고 말했다. 엄마, 그 애는 요시다야, 가야가 아니야, 하고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한마디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면서 엉엉 울었다. 신기하게도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나온다는 게 너무 기뻐서 큰 소리로 엄마, 나 좀 봐, 눈물이 나와, 하고 말하려 했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사람의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마녀에게 준 인어공주 같은 꼴이었다. 눈물을 얻은 대신 목소리를 빼앗긴 것이다. 하지만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이 기뻐서 나는 계속 울었다. 윤수에게 나는 냉혈동물이 아니야, 다시 한번 슬픈 영화를 본다면 눈이 빨개지도록 울 수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를 만난다고 해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더욱 슬프게 울면서 모두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내 음성을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엄마도 윤수도, 그리고 요시다도.

간신히 꿈에서 깨어나 눈을 만져보았으나 내 눈가는 뽀송뽀송했다. 아, 하고 소리를 지르자 째랑째랑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기원 전 중국의 삼황 중 하나였던 후앙 티는 꿈속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을 얻었고 마음 다스리는 법도 터득했다고 한다.
방금 전의 꿈은 현실처럼 생생해 도무지 꿈을 꾼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희주가 말한 나의 쌍둥이가 지구 저쪽에 실재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베란다로 나가 창을 열고 새벽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강가에는 키가 큰 남자가 조깅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의 근육은 탄탄해 보였다. 남자가 아주 조그맣게 보일 때까지 나는 그의 움직임을 계속 따라갔다. 문득 그 남자처럼 달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반바지를 꿰어입고 한 시간인가를 달려 엄마 집으로 갔다. 엄마는 아직 자고 있는 중이었다. 현관문을 열어주면서 길게 하품을 했다.
“새벽부터 웬일이야? 엄마 젖이 만지고 싶어서 왔니? 베이비!”
오랜만에 들어보는 베이비라는 단어가 콧등을 쨍하게 해 덥석 엄마 품에 안겼다. 엄마는 다시 침대로 들어갔고 나는 엄마의 등 뒤에 착 달라붙었다. 엄마에게서는 연한 비누향이 풍겼다. 내가 코를 킁킁거리며 엄마의 냄새를 맡자 엄마가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윤수와 싸웠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코로롱 코로롱 하는 엄마의 코고는 소리는 뉴욕에 살 때 우리 집 계단 밑에 숨어살던 도둑고양이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엄마.”
엄마는 코를 골다가도 내가 부르면 마치 깨어 있는 사람처럼 대답했다.
“응.”
“엄마, 자고 있었던 것 아니야?”
“말해 봐, 엄마 듣고 있어.”
나는 조그맣게 물었다.
“엄마, 진실만을 대답해 줄 거지?”
“무슨 말인데 그래? 너 홀트에서 입양한 아이냐고? 또 그 얘기야? 니가 새벽에 내 침대로 건너올 때면 난 지겨워. 그 질문에는 충분히 대답했어, 나는.”
엄마는 천장을 향해 똑바로 몸을 펴고 누웠다. 나는 숨을 죽이고 다시 물었다.
“엄마, 나, 쌍둥이야?”
엄마가 갑자기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잠이 다 깬 목소리였다.
“니가 어떻게 쌍둥이야? 난 너 하나밖에 낳지 않았어. 너 아직 꿈속에 있는 거야? 열병에라도 걸렸어? 응?”
엄마가 내 쪽으로 돌아누우며 이마를 손으로 짚어 주었다.
“감기 걸리지 않았어, 그런데 엄마, 희주가 로마에서 나랑 똑같이 생긴 애를 봤대. 쌍둥이 같았대.”
엄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엄마가 갑자기 내게 등을 돌리고 홱 돌아누웠다. 엄마가 숨을 고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는 곧 냉정함을 되찾았고 차분하게 말했다.
“너는 절대 쌍둥이가 아니야, 절대로. 너를 낳은 산부인과에 분명한 기록이 남아 있어.”
엄마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방어적이었다. 입양한 아이라는 말에 엄마는 언제나 웃으며 대답했다. 노우! 나는 아버지가 누구이건 간에 단 한번도 내가 엄마의 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세상에 비슷한 사람도 있을 수 있어. 희주는 여전히 호들갑스럽구나.”
엄마는 무릎을 구부려 가슴 쪽에 붙이고 달팽이처럼 제 굴속을 파고 들어갔다. 내가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서 가장 비참한 엄마였다. 엄마는 한번도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면 굉장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물이라는 것이 외계인이 흘리는 초록색 피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와인을 마시고 외할머니 세대가 불렀을 트로트를 흥얼거리고는 했다. 어려서 미국으로 간 엄마는 엄마 세대의 한국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다. 엄마가 가장 잘 부르는 노래는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노래였다. 그 노래는 외할머니의 18번이기도 했다. 나는 두 여자가 술을 마시고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어쩌구 하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성장해온 것이다.

희주가 다시 찾아온 것은 토요일 저녁이었다. 그녀는 요시다에게 고용된 사립 탐정처럼 기어이 내 출생의 비밀을 캐어낼 작정인 것 같았다. 그녀는 새로 생긴 스파게티 전문점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녀는 미처 주문한 스파게티가 나오기도 전 내게 물었다.
“엄마한테 물어봤어?”
“응, 나, 시험관 베이비래.”
그때 종업원이 해물 스파게티를 가져왔다. 나는 스파게티를 포크로 돌돌 말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정자은행에서 질 좋은 정자를 받아 나를 낳았대. 네가 바티칸에서 보았다는 그 애는 내 쌍둥이라는 게 맞을 거야. 정자 제공자는 하버드 유학생인데 학비를 벌기 위해 정자를 팔았다는 거야.”
나는 스파게티를 씹으면서 계속 말했다. 엄마가 사랑하던 남자가 번지점프를 하다가 로프에 엉켜 죽었다, 엄마는 생명을 다 바쳐서 그 남자를 죽도록 사랑했다, 그래서 절대 결혼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외로움 때문에 나를 낳기로 했다, 미노타우로스에게 잡아먹히려는 테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했던 것처럼 엄마는 이 삶과 투쟁하기 위해 어떤 모르는 남자의 정자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단숨에 얘기해주었다.
희주는 발끈해서 조그맣게 외쳤다.
“너, 지금 장난치는 거야? 그럼 그 애는 뭐야?”
“그 애의 부모는 아이를 잃었대, 교통사고로. 그 애 아버지는 사고로 불임이 되어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정자은행에서 가장 우수한 정자를 사서는 그 애 엄마의 자궁에서 길러냈지, 우리 엄마처럼. 요시다와 나는 같은 정자 제공자에게서 태어난 거야.”
“요시다? 요시다가 누구야?”
“그 애 이름이야.”
“그런데 왜 쌍둥이처럼 닮았지? 그 애 엄마와 네 엄마는 다른데?”
나는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맹세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얻은 테세우스처럼 씩씩하게 미궁을 헤쳐 나갔다.
“뭐, 그럴 수도 있지. Y염색체가 X염색체보다 더 우수했는가 봐.”
“정말 그게 사실이니?”
나는 희주의 떨떠름한 얼굴을 보며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
“남자의 정자 없이 여자의 난자만으로도 아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고 네가 그랬잖아. 시험관 베이비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국장님도 딸 둘을 낳고서는 시험관 베이비로 아들을 낳았어. 곧 복제 양 돌리처럼 복제인간이 태어나게 될 텐데 뭐.”
희주는 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복제인간일지도 몰라. 너만 해도 김희선하고 똑같이 쌍꺼풀 수술했잖아.”
그 말만은 너무 심했는지도 모른다. 희주는 쌩하고 토라져서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모범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희주와 헤어지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스파게티 속에 들어 있던 해물 냄새가 목구멍으로 자꾸 올라왔다. 배가 싸르륵 아파왔다. 화장실로 들어가 먹은 것을 모두 배설하고 나니 속이 편해졌다. 그러느라 막차를 놓쳐버렸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려고 지하철역 밖으로 나왔다. 택시가 앞에 와서 서는 순간 나는 손이 허전한 것을 느꼈다.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휴지조각과 토사물들이 어지럽혀져 있을 뿐 엄마가 물려준 구찌의 핸드백은 어디에도 없었다.
터덜터덜 밖으로 나오니 거리에는 취객들이 택시를 잡기에 바빴다. 비라도 오려는지 하늘은 캄캄하기만 했다. 나는 그 캄캄함 속에서 어떻게든 하나의 별이라도 찾아내려고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주몽이 아버지 유리왕을 찾아가는 이야기, 파에톤이 아버지 포이보스를 찾아가는 이야기, 예수가 성전을 찾아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내가 찾아낸 것은 희망이라는 이름이었다. 나는 언젠가 아버지를 찾아가리라는 기대감 속에서 오랜 고독을 견디어냈다.
영화 ‘중앙역’과 ‘안개 속의 풍경’의 아이들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오른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영화 속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아이들은 끝내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버지 찾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이십칠 년의 짧은 생에서 끊임없이 내가 찾은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라는 사람을 단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벌레 씹은 느낌이었다. 내 존재 자체의 의미가 아무 가치도 없는 것 같았다.
무작정 걷다보니 어느새 한강 다리에 도착했다. 눈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그 와중에도 나는 눈물이 나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빗물이었다. 어느새 가는 빗방울이 긋고 있었다.
내게 눈물이 없는 것은 나는 남녀의 사랑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가난한 남자가 야한 포르노 테이프를 보면서 자위를 통해 이 세상에 쏟은 배설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게 죽음의 유혹을 불러왔다. 빗물이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나는 그것을 눈물이라고 생각하며 자꾸만 걸었다.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나인 요시다를 떠올리며.
한강 다리 위에 서서 푸른 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직 창창한 아가씨가 이러면 되겠습니까?”
중년의 사내였다. 아마 그는 내가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이라고 하려는 줄로 오해한 것 같다. 그는 내가 아버지라고 상상한 남자의 연배쯤으로 보였다. 비가 줄줄 내리는 날 밤에 그는 무슨 연유로 나처럼 우산도 쓰지 않고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일까, 가출한 딸이라도 찾아 나선 것일까. 나는 그의 쓸쓸한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아버지, 하고 불러보았다.



윤지강․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1995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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