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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단편/이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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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단편|
동강동 만세사건
이상섭
동강동 사람들이 처음부터 모가 나고 휘어진 건 아니다. 원래 지명이 ‘어진포’였다시피 성품 자체가 바다를 닮아 어질기 짝이 없었다. 조상 대대로 착하디착한 배와 함께 살면서 파도소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 정도였다. 그런 사람들이, 진보가 덜된 주둥아리에 욕만 달고 사는 족속으로 매도된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한갓진 어진포가 도시로 편입된 것은 ‘어진포 일대 종합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부터다. 시장은 사업이 완료되면 말 그대로 ‘특별한 시’가 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 소식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개발계획이 발표되던 날, 텔레비전 화면이 심한 바람으로 지지직거렸던 것이다. 그나마 소식을 들은 사람들마저도 ‘허허 그참’ 하는 식의 반응이었다. 물론 몇몇은, 도시로 거듭난다는 소식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가난을 씻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기도 했다. 그런 기대감도 신문활자마저 입을 닫아걸면서 시르죽고 말았다. 그렇다고 전혀 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바로 어진포라는 이름이 동강동으로 바뀐 것이다.
이름이 바뀐다는 건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거였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으면 볼멘소리를 했다. 마을을 왕창 ‘동강낼’ 일이 있나, 어진동도 아니고 진포동도 아니고 누구 맘대로 이름을 바꾼대? 그러나 사람들은 동명이 왜 하필 동강동이냐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그 정도로 어진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최소한 연유만은 알고 넘어가야 한다며 마을 장로인 구이장 영감을 찾았다. 영감은 이장을 아홉 번이나 역임한 관록답게 몰려온 사람들을 타일렀다. 우리가 관에서 하는 일에 무턱대고 토 달 일이 아이라. 모르긴 몰라도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걸세. 구이장 영감을 위시하여 몇 사람이 시청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러나 마을 대표단은 시장실 문고리도 잡기 전에 쫓겨났다.
그렇다고 전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민생고를 해결하러 들른 시청 앞 밥집에서 굴러다니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사연치고는 어이없었다. 시장은 연임을 위해 부지런히 중앙을 들락거리는 중이었다. 짬나면 줄을 대느라 전화기 놓을 새가 없었다. 얼마나 쥐고 살았으면 손에 땀띠까지 날 정도였다. 물심양면의 공을 들였지만 공천 내정자가 바뀔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시장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그때 눈치 없는 담당자가 서류를 디밀었다. 내 모가지가 뎅강 날아갈 판국에 이딴 게 눈에 봬? 화가 난 시장은 사정없이 결재철을 내던졌다. 공교롭게도 날아가던 결재철이 담당자 앞에서 급커브를 꺾어 얼굴을 명중시키고 말았다. 담당자는 다섯 바늘을 꿰매야 하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중상을 입어 그랬는지 억울해 그랬는지 수술대 위에서 ‘뎅강’이라는 말만 읊조렸다고 한다.
어쨌든 ‘뎅강동’이 ‘동강동’으로 확정되자 마을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마을 위의 언덕바지가 반듯하게 정지되더니 관공서 건물들이 들어섰다. 동사무소, 파출소, 우체국이 들어서고 이어 새마을금고 건물까지 모습을 갖췄다. 얼마 뒤 동장, 파출소장, 우체국장 심지어 새마을금고 이사장까지 부임해 왔다. 그러나 관장들은 번듯한 새 건물에 부임하고서도 주민들을 위해 봉사할 생각이 없었다. 한갓지고 문화적으로 퇴보한 족속들이 사는 동네에 부임한 자체를 수치로 여길 정도였다. 관장들이 주민들을 벌레 보듯 눈매를 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주민들도 그런 그들의 태도가 맘에 들 리 없었다. 그런 반감에는 관청의 위치도 한몫 했다. 마을의 제일 높은 지대에서 마을을 감시하듯 내려다보았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 태풍이 불어닥쳤다. 기상청에서도 진로를 파악하지 못한 대형 태풍이었다. 드러누워 오수에 빠져 있던 방파제가 놀라 잠수를 했고, 배가 길에서 배영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워낙 강한 태풍이라 성한 곳이 없었다. 나무는 중동이 부러지고 집은 기울어가는 기둥을 잡고 겨우 서있을 지경이었다. 관청으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문제는 어느 것이 더 중차대하고 화급을 요하는 복구사업인가 하는 거였다. 응당 주민들은 생업을 위해 무너진 방파제며, 집과 마을 골목이 먼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관청축대공사부터 대대적으로 벌어지는 게 아닌가. 관청에서는 한술 더 떠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이제야 해결하게 됐다며 이번 참에 아예 널찍한 관청로를 뚫는다는 소문까지 퍼뜨렸다. 사람들은 혀끝을 차기 바빴다. 이것들이 돌았나. 일에는 일리, 즉 원투라는 게 있어야지. 그게 말이 돼, 소가 돼? 이번에는 정말 그냥 있어선 될 일이 아니구먼! 사람들이 항의 차 관청을 방문했다. 하지만 부아만 끓이다가 돌아와야 했다.
공사는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성대한 준공식이 치러질 거라 했다. 사람들은 공사장 근처를 흘낏거렸다. 문제는 약속한 관청로가 계단으로 둔갑해버렸다는 거였다. 공사비를 제 맘대로 얼마나 주물렀는지 계단 수마저 줄어 계단 하나의 높이가 어른 걸음으로도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였다. 마을청년회 회원인 이발소 주인 이씨, 선창횟집 김씨, 어구철물점 천씨, 동강동 괴짜시인 정두칠도 마시던 막걸리 잔을 쥔 채 우르르 몰려가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정말 관청 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만들어진 계단 수가 딱 사십 개. 동장도 개수에 맞춰 ‘사십계단’으로 명명할 거라 했다. 그러자 주민들은 ‘네씹계단’ 혹은 ‘네미씹계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고약한 이름이 나돌자 동장은 올바른 명칭 사용을 요청하는 특별담화문을 돌렸다. 그런 와중에 준공식 날짜는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하수건 동장이 동강동으로 발령받자 주머니 깊숙이 사직서를 넣고 임지로 향했다. 그러나 삼십 년 가까이 놀고먹는 직장일에 이력이 붙을 대로 붙은 나이였고, 아이들마저 줄줄이 책가방을 매고 있는 터라 씀씀이도 헤펐다. 일단 옷을 벗는 것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동네를 감싸고 떠도는 갯내 탓인지 동네 전체가 축축하고 습했다. 출근을 할 때마다 짜증이 솟구쳤다. 그는 구두 하나만은 최고급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구두야말로 곧 그 사람의 지위였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사람들이 허리를 굽실거리고 고개를 조아리기 때문에 발에 시선이 머문다는 걸 다년간의 공직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삶은 상사의 구두코만을 보며 살아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연 구두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출근해서도 구두의 소금기를 지우고야 업무를 볼 수 있었고, 퇴근도 구두를 닦지 않으면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구두에서 시작된 불쾌감은 다른 곳으로까지 미쳤다.
하수건의 맘에 안 드는 건 문화라는 게 눈을 씻고 봐도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하수건이 생각하는 문화란 당연히 기초 음식문화였다. 매운탕으로 점심을 해결하려 들렀던 선창횟집에서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청소랍시고 물걸레질을 하긴 한 모양인데 반이 모래였고, 구석구석 기어다니는 갯강구가 주인보다 먼저 그를 맞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다른 곳에 가서 점심을 해결하는 게 습관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동네 전경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살아가는 인생들이며,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거리에 활기찬 것이라곤 바람밖에 없었다. 창가에 섰다 하면 혓바닥부터 터는 게 일이었다. 사무경비를 전용해 버티컬까지 친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었다.
직원들도 마음에 들지 않긴 매한가지였다. 서류 작성 하나 제대로 하는 종자가 없었다. 그 이유를 인사카드를 보고서야 알았다. 거개가 고졸 아니면 그렇고 그런 인간들이었다. 이후 동장은 결재서류만 가져오면 트집부터 잡았다. 이 지역문화가 퇴화된 원인 중의 하나가 국가중책을 맡고 있는 자네들 책임이 크다, 고유한 문자문화의 우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제 맘대로 쓰기 때문에 세종대왕 형님이 알면 노발대발할 것이다. 동장의 입이 한번 열리면 터진 지퍼나 다름없었다. 직원들이 ‘또 물걸레에 불붙었군.’ 하고 비웃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마치 자신이 탁월한 지도력과 통솔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동장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사십계단 준공식 같은 행사는 꿈도 못 꿀 일이라고. 이 동네 생기고 일생일대의 기념비적 건축물이 들어선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빌미삼아 시장이 아니라 구청장만 불러와도 이곳을 벗어날 탈출구를 마련하는 셈이었다. 문제는 행사비용이었다. 생각대로 하자니 가난구멍은 보이는데 당최 돈구멍이 보이질 않는다는 거였다. 그 바람에 이래저래 고민만 쌓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남자 직원 하나가 외쳤다. 동장님, 누가 불법현수막을 걸어놨는데요! 하수건보다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직장동료였다. 우르르 몰려와 창밖을 기웃대던 직원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키득거렸다. 순간 동장은 얼떨떨했다. 혹시 그의 행정에 대한 항의성 문구라도 쓰였나 싶어서였다. 창가로 다가와 두 눈을 부릅뜨고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현수막의 문구는 의외였다. ‘축 정동월․이만금 부부시인 탄생’이란 글자가 박혀 있는 게 아닌가. 하동장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사십계단 준공식을 앞두고 환경정비를 모토를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청 앞에 버젓이 불법게시물이 걸어놓은 게 아닌가. 현수막을 보자니 눈허리가 시었다. 당장 제거하라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한갓지고 허우룩한 동네에서 문인이, 그것도 부부가 세트로 탄생한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었다. 시인이라면 그가 학창시절을 통해서 익혀 알고 있던 시대의 예언자요 등불이며 지식인 중의 지식인이 아니던가. 하수건은 그때부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직원들은 빨리 나가 훼손당한 하늘을 원상 복구해야 한다며 아우성이었다. 누구는, 이번 사안은 관청에 대한 도전장이므로 동장님이 직접 나서서 하늘에 물걸레질이라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직원들은 제 입을 가려가며 키득거렸다. 물걸레가 자신의 별명인 것도 모르고 하수건은 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잘만 이용하면 동강동을 문화적으로 진화시킬 수 있고, 그의 지식 레벨을 업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누가 아는가, 시인과 교류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하다못해 그런 문인들이야말로 예전 시장마저 문화도시를 표명하면서 가장 칙사 대접을 하며 자문을 구하는 식자층이 아니던가. 사십계단 주변을 문화의 거리로 명명해 시비까지 세운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하수건은 속으로 무릎을 쳤다. 혹시 시인부부를 아는 사람이 없어?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모른다는 소리만 했다. 호적담당 직원에게 서둘러 주소 파악을 지시했다. 동장으로서 축전쪼가리나 흔한 양란 분 하나라도 보낼까 싶어서였다. 뿐인가. 앞으로의 교제의 폭과 미래도 대비해 두어야 했던 것이다.
금세 찾아낼 것 같은 주소는 구두를 몇 번이나 어루만진 뒤에도 찾지 못했다. 그런 직원의 비효율적인 업무처리에 화가 나, 다른 직원 몇 명을 돕도록 했다. 그런데도 뒤졌던 호적부를 또 뒤지고 전산망만 눈 빠지게 훑고 있을 뿐 보고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제 스스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하수건은 책상 위의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그 시각, 파출소장 왕이마는 이발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사십계단 주위만 한 바퀴 도는 게 유일한 일과였다. 물론 멀리까지 갈 필요없이 순찰을 핑계로 이곳저곳 기웃대다가 콩고물이라도 묻겠다 싶으면 지체없이 문턱을 밟으면 그뿐이었다. 그 정도로 왕이마는 이익에 충실한 동물적 감각의 소지자였다. 그런 왕이마였지만 오늘은 순찰은커녕 자리에 앉아 본 신문만 훑고 또 훑었다. 비리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던 서장이 창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하자 그야말로 제 세상이었다. 순찰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었다. 공직기강확립을 당부하는 공문이 꾸준히 하달되어도 안중에 없었다. 어차피 불시방문을 하든 암행시찰을 하든 그가 근무하는 동네하고는 거리가 먼 해외토픽이었다. 난로 곁에, 여분의 의자를 끌어당겨 다리까지 올리자 대책 없이 하품만 터졌다. 눈을 감았지만 편하던 잠자리가 오늘따라 불편했다. 어디 푹 쉴 만한 편안한 잠자리는 없나? 그러다가 마침내 이발소를 떠올렸던 것이다.
사실, 왕이마는 대머리였다. 주변머리 몇 가닥만 남아 있어, 이게 한때 두상이었습니다, 하는 경계의 표시일 뿐이었다. 그런 핸디캡을 알기에 파출소장은 경찰모를 가장 아꼈다. 파출소 밖 한 걸음을 나서도 모자 없이는 나서지 않았다. 왕 소장은 경찰의 권위야말로 완벽한 제복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특히 모자는 그런 제복의 위엄을 살리는 꽃이요 장식품이었다. 휴일에도 제복을 고집했다. 사람들이 왜 휴일에도 제복을 입느냐고 묻기도 했다. 물론 대답이야 그럴싸했다. 경찰이 제복을 입는 건 범죄 예방을 위해서다, 범인을 잡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제복이 아닌 사복을 입는다, 사복경찰이 왜 있는가, 게다가 휴일이라도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러므로 이 왕 소장은 국가 안위를 위해 유비무환의 차원에서 입는 것이다. 왕 소장이 말해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왕 소장이 이발소에 나타나자 이발소 주인 이씨는 인상부터 구겼다. 올 때마다 사업에 불편한 점은 없느냐, 영업을 방해하는 작자가 있으면 지체 말고 신고하라는 말은 입에 발린 고정 멘트였고, 정작 사업에 불편을 끼치고 영업 방해를 하는 작자가 바로 왕이마였던 것이다. 왕이마는 요금을 건넨 적도 없었다. 둘러대는 말로야 다른 사람보다 머리털이 없으니 수고롭지 않을 것이며, 그냥 주변정리만 살짝 하는 것이니 국가적 차원으로다가 봉사를 하는 셈 치면 마음도 뿌듯하단다. 물론 지갑을 깜빡하고 두고 왔으니 파출소에 들르라는 말도 양념처럼 내뱉긴 했다. 하지만 그게 고맙다는 말보다 더 듣기 싫고 미운 말이란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머리를 다 깎으면 일어서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건 제복바지 구김살 간다고 양다리 척 걸치고 누워, 순찰을 돌았더니 피곤하다며 몇 시간을 자야 나가니 밉상덩어리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심한 코골이에, 꼴에 실내가 추우니 어쩌니 해대니 제 낮잠을 위해 히터까지 틀어주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왕이마가 들어서는 순간 이씨는 오늘 영업은 종쳤구나 싶었다.
이씨가 옥수수 낟알 빠지듯 빠진 왕이마의 머리카락 수를 헤아리며 머리를 깎고 있을 때였다. ‘와이리 좋노 와이리 좋노’ 하는 구닥다리 휴대폰이 울렸다. 왕이마가 실눈을 뜨더니 플립을 열었다. 전화를 건 이는 동장 하수건이었다. 순간 왕이마는 혹시 준공식 후원 건 때문인가 싶어 넓은 이마를 잔뜩 구겼다. 아니, 공사다망하신 하 동장이 웬일로 이 왕 소장을 다 찾수? 왕이마가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소장의 말에 대뜸 동장이 말문을 텄다. 꼴에 통화음을 최대로 해놓아 곁에 선 이씨의 귀에까지 오롯이 들렸다. 왕 소장, 혹시 관공서 거리에 걸린 현수막 봤소? 현수막이라? 못 봤는데. 아니, 눈앞에 오 밀리짜리 철판이라도 깔았나, 앞에 바짝 붙은 걸 왜 못 본단 말이오? 순간 왕이마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이 왕 소장이 순찰 나올 때까지도 분명히 없었는데. 뭐 문구라도 수상합디까? 그렇지 않다면야 환경 정비야 당연히 동사무소 고유 업문데 뭔 일로 신고를 다하고 그러우. 소장이 관심 없다는 식으로 나오자 동장이 시부저기 말방석을 깔고 나왔다. 혹시 정동월이란 사람, 확인해볼 수 있소? 소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정동월이라? 그런 사람이 요런 동네에 있었나? 우리야 원래 법적으로 불온서적을 내거나 요시찰 인물이 아닌 이상 모를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요즘은 워낙 전산화가 잘돼 웬만하면 알아볼 순 있고. 몇 마디 형식적인 말들이 오간 뒤 통화는 끊겼다.
왕 소장은 전화를 끊은 다음 심심한 동네라고 믿었던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기관의 장으로서 용량이 턱없이 모자란 사람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이 일을 그냥 좌시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지식인 한 사람이라도 잘 사귀어야 출세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게 사람관계가 아닌가. 특히 시인을 사귀어 해로울 건 없었다. 잘만 이용하면 다시 한번 줄타기가 가능할지 몰랐다. 이런 고급정보를 왕이마가 놓칠 리 만무했다. 왕이마가 이씨에게 물었다. 혹시 말이요. 이 마을에 정동월이라는 양반이 있소? 이씨는 속이 뜨끔했다. 그러나 짖어라 한다고 짖을 개가 아니었다. 글쎄, 안면이 없는 이름인데요? 모르쇠를 떼며 입을 닫아걸었다. 그러자 왕이마는 파출소에 전화를 걸더니 정동월에 대해 신원파악을 지시했다. 그리곤 서둘러 이발소를 빠져나갔다. 뒤에서 이씨가 보폭을 맞춰 ‘한둘, 한둘’ 구령까지 붙여주며 낄낄거렸다.
왕이마가 파출소로 돌아가고 있을 때, 새마을금고 허풍만 이사장은 금고열쇠를 만지작거리면서 한숨만 내쉬었다. 부임한 지 겨우 보름도 안 되어 된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심한 ‘불경기전염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동네가 이런 마을일 줄은 몰랐다. 폭삭 늙어버린 듯한 골목에는 찬바람이 불고 금고 문턱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닿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금고까지 병이라도 걸렸나 싶어 요모조모 살피기까지 했다. ‘동맥경화’가 아닌 ‘돈맥경화’에 걸릴 줄 알았더라면 주식에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 괜히 부실 금고 키워보겠다고 나선 게 후회스러웠다. 더군다나 자본금마저 한 달 만에 날려버린 것을 안다면 고객들이 가만있지 않을 터였다. 누구보다 어구철물점 천씨가 마음에 걸렸다. 예치금 현황을 살펴본 바로는 천씨야말로 그의 금고에서 제일 큰손이었다. 사는 건 저렇게 살아도 생기는 족족 은행에 맡기는 바람에 그 돈이 엄청났던 것이다. 그런 그가 어구철물점을 늘이고 싶다고 했다. 만약 일이 꼬여 소문이라도 난다면 끝장이었다. 그 바람에 행원들을 거리로 내몰았지만 실적이 없었다. 일일적금까지 해지하는 상태였다.
한때 허풍만은 말을 정반대로 하는 걸 무슨 취미로 알았다. 대출을 요청하면 대출해줄 돈이 없다고 잡아떼고, 돈 많다고 기부를 요구하면 현금 한푼 없는 거지라고 우겼다. 그러다가 주식으로 손해를 본 후 적극적인 투자유치작업의 일환으로 말을 바꾸었다. 돈이 많다고 하면 겨우 몇십억밖에 안 된다고 뻥을 쳤고, 적금 이자율을 문제삼으면 많이 주겠다고 허풍을 쳤다. 그래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졸지에 부임한 지 며칠 되었다고 주민들로부터 ‘인간확성기’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자 허풍만은 고민 아닌 고민에 빠졌다. 대민적으로 우애를 돈독히 다져야 했고, 적금유치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그나마 알부자라도 하나 걸리면 유치문제는 걱정을 않겠는데 이 바닥에서는 큰손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씀씀이를 줄일 순 없었다. 골프는 응당 쳐야 했고, 사우나는 가야 몸이 개운하니 어쩔 수 없고, 강아지 사료값이며 아이들 고액과외도 끊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랬다간 어떻게 체면을 유지하며 큰소리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유유상종이라 했듯이 끼리끼리 어울려야 삶의 온도며 문화수준도 업될 것 아닌가. 최소한 자기선전, ‘프로판가스’는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허풍만은 프로파간다를 그렇게 알고 있었다.
어쨌든 오늘따라 허풍이라도 들어줄 손님 하나 없자 무료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문에서 드르륵 재봉틀 소리가 났다. 욕심만큼 계산이 안 나오는 허풍만은 옳거니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한복을 입긴 입었는데 입성으로 보아 지갑이 왕창 다이어트를 해버려 보탬이 안 될 위인이었던 것이다. 허풍만은 있는 털이라도 뽑힐까 싶어 시큰둥하게 말했다. 뭔 일로 우리 본사를 방문하셨소? 사내는 접대용 소파에 앉더니 명함을 디밀었다. 명함을 보니 ‘투사시인 정동월’이라 적혀 있었다. 투사시인이라는 말에 상대를 요모조모 뜯어보니 투사는커녕 꼴에 시위 현장 근처에도 안 가본 듯했다. 원래 시인이라는 양반들은 김관식처럼 괴짜며, 병색이 완연하거나 날카롭게 생겨 툽툽하게 생긴 범인들과 다르다는 걸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익혀 알고 있었다. 시인이야말로 마음이 너무 투명해 그럴 수 있다고 나름대로 그 이유까지 갖다대기도 했다. 해서 ‘하루에 한 시간은 나의 시를 위해 바친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양심에 물기 하나 없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어이쿠, 시인 양반을 몰라봐 송구하구려. 그러자 사내는 부끄러운 듯 대답도 없이 초대장만 건네고 돌아섰다. 사내의 뒷모습과 초대장을 번갈아보다가 허풍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면이 있는 것도 같았고 없는 것도 같았다.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정작 고민은 다른 데서 엄습해 왔다. 내일 있을 사십계단 준공식에 들어갈 후원금 액수까지 고민인 처지에 초청장에 응하자니 한푼이라도 더 나가는 게 아까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안 가자니 부임하자마자 처음 맞는 대민 홍보며 유치 전략의 기회를 잃을 것 같았다.
허풍만이 고민하고 있을 때, 우체국장은 하릴없이 제 콧구멍만 후벼파고 있었다. 워낙 체신업무가 사양산업이라 종일 근무해도 일거리가 없었다. 우편물 선별작업은 삼십분도 안 걸렸고, 적금에 보험업무며 택배까지 취급했지만 적금은 새마을금고 탓에 빈 통장만 박스에 잠겨 몇 달째 잠자고 있었다. 보험은 아예 창구를 비워둔 상태였으며, 택배거리도 하루에 한두 건이면 많은 거였다. 그 바람에 책상에 앉아 무료함을 죽이려고 제 콧구멍만 후비다보니 한쪽 평수만 넓어져 짝코가 되고 말았다.
짝코국장은 무슨 행사니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출판기념회 초대장을 받았지만 갈 생각이 없었다. 가더라도 대우받지 못할 건 뻔했다. 정말이지 그가 생각해도 우체국장이야말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리였다. 그렇다고 주요 업무를 맡고 있는 것도 아니니 청탁이 있을 리 만무했다. 얼마나 대접받지 못했으면 ‘우체국장 자네도 한잔하게.’ 하는 말이 나왔을까.
그런 말이 나온 유래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한번은 그가 동강동 기관장들 모임이 있어 나갔다. 행사가 끝나고 회식자리에서 파출소 왕 소장이며 하수건 동장, 새마을금고 허풍만 이사장끼리만 권커니 잣거니 하는 게 아닌가. 건배를 하자면서도 우체국장인 그에게는 바로 옆 사람마저 술잔을 권하지 않았다. 건배는 해야겠지, 기관장으로서 벌쭘하게 가만있을 수는 없어, 제 손으로 제 잔에 술을 따르면서 ‘우체국장 자네도 한잔하게.’ 하고 말았다. 그 말이 어떤 경로를 탔는지 동네방네 짜하게 퍼졌던 것이다. 물론 감은 잡고 있었다. 다만 끗발상 소장을 당할 재간이 없어 참아오던 터였다.
우체국장이야말로 시골에 가야 기관장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직책이었다. 시골에서라면 초등학교 졸업식에라도 참여해 ‘저축상’이라도 건넬 게 아닌가. 동강동처럼 도시 외곽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전국의 주요 조간이며 석간을 다 훑어야 퇴근할 수 있겠는가. 종일 앉았어도 찾는 전화도 없었다. 겨우 전화가 울려 받았다 하면 잘못 걸려오는 게 태반이었다. 그 바람에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렸을 때만 해도 잘못 걸려온 전화는 아닌가 했다. 받고 보니 뜻하지 않게 기관장 중 가장 미운털이 박힌 파출소장 왕이마였다. 그는 왕 소장이 보고 있기라도 한 듯 날름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니, 바쁜 업무 중에 무슨 일로 전화를 다했소? 그러자 예전답지 않게 왕 소장이 목소리를 비굴하게 굴렸다. 아이구, 과중한 업무에 수고 많소. 다른 게 아니고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어 전화했소. 얘기해 보시구려. 업무 자체가 우편물이니 시집출판기념회 같은 초청장도 보고 시인도 더러 만나지 않습니까? 짝코국장은 옳다구나 싶어 목에 힘을 실었다. 맨날 보는 게 문자니 당연한 거 아니우. 근데 뭘 알고 싶소? 왕 소장은, 자신이 시인출판기념회 초청을 받았는데 축의금을 들고 가야 하는지, 들고 가야 한다면 얼마나 마련해야 하는지 물어왔다. 사실 그도 출판기념회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건 망년회나 신년회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모른다고 했다간 또 뜻하지 않은 전파를 탈까 걱정이었다. 부러 큰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거야 사람마다 다른데 말이우. 보통 관공서장의 경우 기십만 원은 봉투에 넣어 축하를 하는 게 관례라우. 그러자 소장은 알겠다며 좀 있다가 출판기념회에서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출판기념회 얘기가 나오자 짝코국장은 또 꾸어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고민이었다. 그 바람에 일없이 초대장만 만지작거렸다.
짝코국장이 초대장을 만지작거릴 때, 이발소 주인 이씨는 어구철물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철물점 주인 천씨가 다리에 깁스를 한 상태라 ‘동백분식’까지 가려면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이씨가 철물점에 들어서자 천씨는 다친 다리를 잡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허구한 날 공사장에서 삐고 긁히고 꺾여 병원 신세질 때만 해도 하루 일당 날아간다고 질질 짜던 사람이었다. 그런 천씨가 마구 웃어대자 제2의 두칠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사소한 정신적 충격 하나가 두칠이의 인생을 바꾸었던 것이다.
동강도 괴짜시인 정두칠이야말로 해맑고 건실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뱃놈은 싫다며 시내 중심가로 나가 만두점을 열었다. 코딱지만한 가게였지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아내도 얻고 제법 삶도 안정을 얻을 때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독재타도를 외치는 6․10시위대가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경찰의 무지막지한 진압작전이 시작되었다. 여학생 한 명이 쫓겨 그의 가게로 들어왔다. 곤봉에 맞았는지 여학생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그녀는 채 뿌리지도 못한 피 묻은 유인물을 그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유인물을 받아든 두칠이는 그것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말았다. 경찰을 향해 버얼건 연탄을 집어던졌다. 그 일로 경찰서로 끌려가 며칠 뒤에 돌아왔다. 한동안 쓰러져 있던 그가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또 유인물을 찾았다. 유인물이 없자 활자만 보이면 눈에 갖다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나면 긁적거리기까지 했다. 처음엔 그런 남편이 대견해 아내 또한 시집을 구해 주었다. 그게 윤동주와 김소월의 시집이었다. 남편은 시인이 되기로 작정했는지 이름마저 두 사람의 이름을 따 ‘동월’로 짓고 말았다.
두칠이가 만두 빚을 생각을 않자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문제는 두칠이의 술버릇이었다. 고향에 돌아온 후 사흘에 한 번쯤 꼭지가 돌던 그가 마을 꼴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술병만 끌어안고 살았다. 열심히 빚던 만두도 손을 놓고 말았다. 술이 취하면 관청을 향해 고래고함을 지르고 파출소 앞에서는 오줌까지 갈기는 것도 예사였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후련해하면서도 저러다 남은 정신마저 휘발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었다.
천씨는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이씨는 아무래도 천씨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그리 웃고 지랄이고? 천씨가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다리를 볼 때마다 자꾸 웃음이 터지는 걸 우야노. 자네도 생각해 봐래이. 이번에 모처럼 짬 내가이꼬 가족들과 놀로 안 갔더나? 이씨가 그래서?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여태 내는 일하다가 다칬으몬 다쳤지 놀다가 다친 적은 한 본도 없잖애. 거기까지는 이씨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근데 놀다가 다쳤으니 이게 살만해서 다친 긴께 얼마나 좋은 일이라? 안 그래? 듣고 보니 그렇기도 했다. 그 바람에 이씨도 천씨를 따라 웃음꽃을 터뜨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 웃고 있을 때 선창횟집 주인 김씨가 들어섰다. 김씨는 일을 꾸몄으면 끝까지 책임질 생각은 않고 웃고 난리를 피우자 뭔 일인가 싶었다. 공짜 대가리만 깎다가 시간 다 보냈다고 왕이마를 따따불로 욕할 때는 언제고 뭔 일고 둘이 세트로 웃어제껴? 이발소 이씨가 퉁박을 주었다. 그렇게 말하는 자네는, 동네 더럽다며 시내에 나가 점심 시켜먹는 물걸레는 와 맨날 욕하고 다니노, 큰스님 주제에? 그 바람에 이씨와 천씨는 더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큰스님으로 부른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선창횟집 김씨가 하루는 횟감을 장만하다 말고 배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여태 ‘건강이 이상무’였던 사람이 ‘생쑈’하듯 바닥을 뒹굴자 처음엔 재밌다고 웃었다. 알고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부랴사랴 119를 불렀다. 그렇게 위독한 몸으로 구급차에 실려 간 양반이 돌아올 때는 걸어서 돌아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콩팥에 돌이 들어 그랬단다. 그 말에 이씨가 ‘그렇다면 몸에 사리가 들었다는 얘긴데, 이제부턴 큰스님이라 불러야겠구먼.’ 하며 흰소리를 쳤던 것이다.
깁스를 한 천씨를 이씨와 김씨가 부축해 거리로 나섰다. 사십계단 위로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천씨가 그걸 보며 입을 열었다. 내려다보고 감시하는 것 같은 동사무소를 볼 때마다 문에 못질이라도 해버리고 싶었는데 현수막이 가리고 있으니깐 그나마 속이 후련하구먼! 천씨야말로 동사무소 허드렛일을 도맡아 수리하다시피 했는데 물걸레가 오면서 일감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부축하고 있던 김씨가 되받았다. 그건 그렇고 자네 헐렁거리는 다리나사못이나 빨리 조여! 덕분에 세 사람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구이장 영감은 어긋나버린 뼈마디를 끌며 바지런을 떨었다. 두칠이는 주인공 아니랄까봐 개량한복까지 차려입고 있었다. 구이장 영감은 다시 한번 두칠이에게 다짐을 주었다. 자네, 오늘은 두칠이가 아인 동강동 진짜시인 정동월로 거듭나는 기라. 말하자몬 인간말종 정두칠이 마흔을 기점으로 해서 시인 정동월로 새로 태어난다 이 말이라. 옛말에 마흔이면 ‘부록’을 달아야 할 나이라 했으니 내 말 명심해. 오늘만은 술을 작작 마시고, 알아들었는감? 두칠이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사람들이 흰소리를 쳤다. 세상 살면서 이래저래 속 터지는 걸 마이 보더이 결국 시인이 됐구먼! 사람들의 입에서 후렴처럼 웃음이 터졌다.
식탁이 놓인 홀은 그런 대로 푸짐했다. 맛이 걱정이긴 했지만 식탁 위에 각종 노랗고 하얀 몸매의 튀김 종류에 만두며 호빵, 도너츠, 오뎅탕까지 놓였다. 가게에 딸린 살림방 벽에는 대서소를 하는 구이장 영감의 솜씨인 듯 ‘부부시인탄생 축하잔치 겸 출판기념회’라는 문구도 붙었다. 방 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는 시집 동백꽃도 수북하게 쌓였다. 제목에 걸맞게 장정 또한 붉었다.
사십계단 인근의 주민들이 몰려오면서 어느새 홀은 비비고 앉을 틈이 없었다. 다리가 아픈 천씨를 뺀 김씨와 이씨는 실내를 정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을 꾸몄으니 당연히 그들의 몫이었다. 덕분에 경황없이 돌아가도 기분 하나는 짱이었다. 자리가 없는 탓에 몇 사람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문 앞 평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제법 쌀쌀한 기운 탓에 아랫도리가 얼얼할 터인 데도 술잔만은 잘도 꺾었다. 평소에 고장난 기계처럼 웃다가 울다가 잘하는 이만금 여사도 오늘만은 환한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두칠이야 시구께나 긁적거린다는 걸 알았지만 아내까지 그런 줄을 몰랐다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부부시인 탄생을 트집 잡을 사람도 없었다. 이만금 여사는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소리를 가슴이 짓물리도록 듣고 또 듣는 중이었다. 구이장 영감은 손목시계를 흘낏거리며 골목길만 후벼팠다. 요것들이 꼴에 관리랍시고 걸어오지 않을 모양이구먼. 이 사람들아, 하늘 좀 봐. 헬기 대절해 공중으로 날아오는지!
그 시각에 동장 하수건은 자리에 앉아 시계불알만 흘낏거리고 있었다. 시각에 맞춰 기념식장에 들어서는 게 권위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해 출발을 미루는 중이었다. 구이장 영감의 말에 의하면 십 분이면 박 터진다 했으니 조금 여유가 있었다. 다만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디 그럴싸한 곳이나 뷔페 정도려니 했더니 동백분식이란다. 그래도 문인들이란 격식 차리기를 개떡같이 아는 양반이니 당연하겠거니 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구두를 닦았다.
동장이 구두를 닦고 있을 때, 파출소 왕 소장은 어둑살이 내리는 창밖을 보며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맘에 안 들었다. 이발을 해서 그런지 모자를 푹 눌러쓴 느낌마저 들었다. 시간이 임박했기에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앞뒤, 옆까지 점검한 뒤 밖으로 나섰다. 마침 훔쳐 걸어놓은 것처럼 낮달이 파출소 위에 걸려 있었다.
같은 시각, 새마을금고 이사장 허풍만 씨는 안주머니의 돈봉투만 만지작거렸다. 오십만 원이란 돈이 아까웠다. 그러나 너무 적게 넣어 짠돌이 소리나 듣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었다. 그는 동장이나 파출소 소장에게 연락을 취해 볼까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명색이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그깟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출판기념회에 가고 싶진 않아서였다. 금고문을 다시 한번 확인한 다음 기념식장으로 향했다.
짝코국장은 자리에 앉아 망설이는 중이었다. 가서 또 ‘우체국장 한잔하게.’ 하는 꼴을 당할까 싶어서였다. 그렇다고 굳이 피할 자리는 아니지 싶었다. 기관장끼리 모이는 것도 아니고 주민 하객으로 가는 것이니 결혼식 하객과 뭐가 다르겠는가. 하지만 막상 참례하려니 축의금이 걱정이었다. 명색이 기관장이면 축하 금일봉이라도 전달해야 하는데 박봉에, 비자금도 만들 수 없는 자리라 지갑 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돈도 아낄 겸 서양란 화분이나 하나 가져갈까 했지만 알고 보니 그 돈도 만만찮았다.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설마 그 자리에서 봉투를 개봉이야 하겠냐 싶어 천 원짜리 지폐 다섯 장을 밥값으로 넣고 말았다.
하수건 동장과 파출소 왕 소장, 새마을금고 허풍만 이사장이 동백분식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있었다. 기념식장이라 엄숙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명색이 동강동을 대표하는 기관장을 초대하고 총동원령을 내렸으면 예의를 갖춰 맞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 바람에 세 사람은 문 앞에서 멈칫하고 말았다. 어이구, 공사가 다아-망하신 기관장들께서 오셨구랴! 역시 구이장 영감은 노회했다. 구이장이란 아호가 그냥 붙은 것이 아니었다.
구이장 영감의 손에 끌려 들어서자 실내는 막걸리를 한 말씩은 마셨는지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서려다가 먼저 자리를 차지한 개량한복이 눈에 띄었다. 동장과 왕 소장은 눈동자가 커지고 말았다.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동강동 물건 정두칠이 한복을 차려입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곁에 섰던 구이장 영감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놀랄 것 없소. 오늘의 주인공이니께! 그 말을 들은 동장은 그제야 뭔가 일이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음을 알아챘다. 동장은 모든 책임이 파출소장에 있다는 듯 왕이마를 향해 귓속말을 했다. 알아봤다면서요? 왕소장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햐, 정동월이란 사람이 왜 없나 했더니 필명과 본명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허풍만은 두 사람이 나누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씀벅였다. 자리에 앉았을 때 뒤늦게 엉거주춤 짝코국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구이장 영감은 이발소 주인 이씨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씨가 막걸리로 목을 가다듬었다. 자자. 주인공 정두칠, 아니 정동월 시인과 이만금 여사는 식을 시작하게 일루 와가 후딱 앉으쇼! 이씨의 말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만금 여사는 한사코 앉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사람들이 등을 떠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남편 옆에 앉았다. 에흠, 그라몬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부부시인 정동월 시인과 이만금 시인의 등단 축하잔치와 공동시집 출판기념회를 갖도록 하겄십니다아!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어 축사가 있다는 멘트가 있자 기관장들은 서로 목청을 고르느라 헛기침을 해댔다. 우체국장은 늦게 도착해 구석 자리에 앉은데다가 끗발상 자기에게 축사 요청이 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런데 자리가 자리인 만큼 책과 가장 관련이 많은 우체국장이 대표로 축사를 하라는 게 아닌가. 낭패가 따로 없었다. 짝코국장이야말로 축사할 기회는커녕 말발 또한 없어 직원에게까지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찾아온 기회를 고사했다간 또 무슨 소문이 만들어질지 몰랐다. 어쩌면 그에게 축사를 제의한 것은 기관장 중에 가장 썩지 않고 덕망 있다는 징표일 수 있지 않은가. 짝코국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수가 터졌고 그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뼈대 있는 가문에 태어난 관계로 어린 시절부터 문필가를 존경해 왔으며, 그런 존경하는 시인을 두 분이나 뵙게 되어 개인적으로 영광이며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었다. 우체국장의 축사를 들으며 얼굴을 붉힌 것은 동장과 파출소장, 허풍만 이사장이었다. 그들은 식전에 술이라도 걸친 듯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고개만 꺾기 바빴다. 망할 놈의 배뇨욕구마저 일지 않는 게 통탄할 정도였다. 축사가 끝나자 이씨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주인공 부부시인을 모시고 인사말씀과 시인의 육성으로다가 시 한 편을 듣도록 하는 기 어떻겄습니꺼?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기관장들을 힐끔거렸다. 덩달아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왕 소장은 귀를 막고 싶었다. 술에 취해 사십계단 앞에 오줌발이나 갈겨대고 관청을 향해 욕이나 해대는 작자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빠져나가려니 핑계거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동장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씩 찾아와, 우리를 위해 너희들이 있지 누구를 위해 있냐며 술주정을 하던 정두칠의 말을 겸손하게 앉아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만금이란 이름만 확인했더라도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터였다. 정동월의 인사는 짧았다. 와줘서 고맙다는 말이 전부였다. 이어 이만금 여사의 인사. 지는 남편 덕에 뭐도 모르고 얼떨결에 시인이 됐십니더. 그래도 마 이왕 이리 된 거, 시는 몬 씨더라도 시방부터 시인처럼 멋지게는 살랍니더!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우체국장을 제외한 기관장들은 울상이 되어버렸다. 누가 들어도 뻔한 사기극을 사람들은 오히려 한술 더 떠서 겸손해 보기 좋다며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무르익은 분위기상 말도 못하고, 식이여 제발 빨리 끝나라 속으로 빌기만 했다. 다음으로 시인의 육성으로 듣는 시낭송. 두칠이가 시낭송에 앞서 멘트를 했다. 시란 별 기 아이라고 생각합니더. 지가 사는 기 바로 시니까 말입니더. 사람들이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동장은 속으로 반전의 기회가 왔다 싶었다. 파출소장과 허풍만도 시란 감동이 없으면 시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잘됐다 싶었다. 떠들썩하던 실내가 일순 침묵에 싸였다. 기관장들도 눈을 부릅떴다. 두칠이 네 이놈! 칠월칠석에 태어난 놈답게 얼마나 사람을 감동시키나 한번 보자 내가 똑똑히 들어줄 테니 하는 각오로 귀를 기울였다. 두칠이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시낭송을 시작했다.
우리 보기 아니 고와서
가신다면은
말없이 고이 보내주겠소이다.
어진포(御眞浦)에 명물(名物)
동백꽃도
이냥 한그슥 따다 안겨주겠소이다.
가시는 걸음 걸음
핏빛 그 꽃을
휑허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우리 보기 아니 고와서
가신다면은
죽어도 콧물 한 줄 아니 흘리겠소이다.
잠시 멍해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고 난리였다. 두칠이가 쓴 게 아니라며 시시비비를 가렸다간 싸움이 날 게 분명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는 부부문인의 문운과 장수를 비는 의미로 ‘만세삼창’이 있겠다는 게 아닌가. 구이장 영감이 선창을 했다. 영감이 ‘정동월․이만금 부부 만세!’ 하고 외치자 무슨 3․1운동 재현하는 것도 아니고 술 취한 사람들은 일제히 목청이 터져라 만세를 외쳤다. 졸지에 기관장들도 엉거주춤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동장은 왕 소장의 눈치를 보았고, 왕 소장은 허풍만 씨의 눈치를 보았다. 짝코국장만 그런 것도 모르고 동네사람과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동장과 왕 소장, 그리고 허풍만 씨가 서로 눈치를 봐가며 손을 움직이는 것을 동작일치를 위해 저러는 것이겠거니 착각할 정도였다. 만세삼창이 끝난다 싶은 순간 어디선가 ‘사십계단 만세!’ 소리가 터졌다. 그러자 사십계단 만세는 ‘네씹계단 만세’로, 네씹계단 만세는 다시 ‘네미씹계단 만세’로 바뀌면서 멈출 줄을 몰랐다. 관장들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그 와중에 애지중지하던 동장의 구두는 엉망이었고, 소장이 아끼던 모자도 부러 짓뭉갰는지 아니면 걸레질을 했는지 양념이 묻어 말이 아니었다.
이상섭․
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02년 창비신인소설상, 2004년 부산소설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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