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19호 신작시/최종천
페이지 정보

본문
최종천
지상의 새들
옛날 거지들을 보면
그냥 마음이 편하고 그를 감싸고 있는
풍경이 평화로워 보였다
부유한 자들이 흘린 것을 주워 먹고
나무 그늘 밑에서 끄벅거리며
졸음도 양식으로 쪼아 먹던 그 새들
왜 없을까?
하품과 눈곱으로
바쁜 사람들의 마음의 공터였던
먹여 살리지 않아도 건강하던
그 새들, 이따금 새장을 물어뜯으며 소리치던
도무지 울타리도 집도 유치장도 필요 없는
그 새들은 어디에 있나
그들이 덮고 자던 이불인 이슬
그들의 지붕이던 하늘에서
가끔 낙엽처럼 떨어지는 새가
그 새들일까?
작업복 입은 채로 전철 타고 출장 가다가
나를 거지인 줄 알고 피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이 쥔 손을 벌써 알고 모여드는
스산한 비둘기 떼 같아
지상의 진짜 새들인
거지들이 그리워진다
장갑
내가 끼는 용접장갑은 가짜 가죽으로 만든다
번번이 남의 것을 끼게 된다
어쩌다 새것을 끼면 한 사날
손목이 뻣뻣하다
헌 것을 끼는 부드러움이여
손가락 이음매의 실에 본드를 발라주면
불똥이 실을 태우지 못해
오랫동안 낄 수가 있다
열흘쯤 끼다보면 장갑도
주인 손을 알아보는지
남이 끼면 꼭 벗어 준다
일주일 전 아내가
나를 벗어버리고 무단가출을 했다
나는 벗어 걸어놓은 장갑처럼
출출하다
최종천․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눈물은 푸르다
추천11
- 이전글19호 신작시/고진하 08.02.26
- 다음글19호 신작시/문인수 08.02.2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