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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시/고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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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49회 작성일 08-02-2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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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슬픔이 지축을 기울여


꿈길에 어딜 가다가
바닷가 돌로 지은 민박집에 세 들어 잠을 청하는데
베개 밑으로 태곳적 파도가 철썩거려 잠 못 이루네.
그렇게 불면으로 뒤척이면서 몇 채의 집을 지었던가.
뉘 살 집인지도 모르면서
지었다 허물고 지었다 허물고
덧없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또 지었다 허물고.
그 순간, 하늘에서 끼룩대며 날아다니는
눈알이 화등잔만한 이상한 바닷새들
―쥐라기 때 있었다는 익룡 같기도 했다―
빙빙 선회하며 그런 나를 비웃고 깔보는 듯싶어
너무 속상해 훌쩍거리다 잠이 깼는데

실제로 베갯잇 위에 눈물자국이 축축이 배어 있네.
내 슬픔이 地軸을 기울여
바닷물을 스며들게 했는지도……



봄의 힘


고라니 산토끼 멧돼지들의 길이던
심산유곡까지 널찍한 자동차 길이 뚫리고 있었네
거추장스런 잡목들과 돌무더기가
포크레인의 주걱손에 사정없이 찍히고 있었네

양지녘에나 뾰족뾰족 풀이 돋는
아직은 이른 봄,
와르르 허물어진 돌무더기에서
冬眠에서 덜 깬 듯싶은 구렁이 한 마리가
불쑥 대가리를 쳐들었네

주걱손 뒤의
휘둥그레진 눈망울들,
대가리를 높이 쳐든 구렁이가
온몸을 한 번 꿈틀
거친 돌들을 풀잎인 양 부드럽게 애무하며
스르르르 돌무더기를 빠져나가는 것을
넋 놓고 보고 있었네

구불텅구불텅 용솟는
봄의 근육,

비단꼬리를 가시덤불 속으로 감춘 뒤
벼르고 별러 찾아 나선
隱修者의 오두막을 향해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네
잡목 가시덤불 돌무더기로 덮여
길 없는, 짐승들의 길을 따라……



고진하․
강원 영월 생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프란체스코의 새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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