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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시/황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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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순
뱀딸기 전설
뱀이 침 뱉어 놓는다는 뱀딸기, 먹으면 한밤중 뱀이 기어들어 뱀 새끼 밴다 했다. 징그러운 뱀이 된다 했다. 할머니 말 믿기지 않아 빨갛게 익은 뱀딸기 따먹고 말았다. 맛대가리 없는 그것을 몰래 꿀떡 삼켜버렸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느물느물, 뱀이 되어갔다. 똬리 틀고 앉아 주변 사람을 날름날름 약 올렸다. 이 땅을 내 땅이라고 우기며 독을 품어댔다. 새끼까지 잡아먹고 어둔 골방에 숨어 혼자 잠들곤 했다. 흐린 날이면 먹잇감을 찾아 시장바닥을 어슬렁거렸다. 사람으로 둔갑한 나를 아직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열려 있는 문은 불안하다
그가 방문을 쿵 닫고 들어간다. 서늘한 어둠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무슨 말을 하려 했던가. 말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 왜 입에서만 뱅뱅 도나. 더 늙기 전에 그를 다시 한번 불러볼까? 이봐요!
방 한 칸에서 질리도록 마주보며 살던 적 있다. 가난하던 그 집 문은 하나밖에 없었다. 가끔 닫히기도 했던 문은 자다가 옆구리를 슬쩍 찌르기만 해도 열렸다. 그때 소원은 방이 두 개 있는 집에 사는 거였다. 방이 두 개인 이 집은 문이 늘 닫혀 있다. 깊은 주름이 문패처럼 걸린, 햇볕 들지 않는, 죽어도 들여다볼 수 없는, 열려 있으면 불안한 문.
키를 잃어버렸다. 이봐요! 저 방에 아직도 그가 있긴 있는 걸까? 나는 문 밖에 갇혔다.
황희순․
1993년 ≪오늘의문학≫,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나를 가둔 그리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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