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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시/이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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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거의 아무것도 아닌 아버지
갈비뼈 하나를 잃어버린 아버지
개복숭아나무 아래 주무신다
온 전신이 가려운 그날은
첫 날이었다 신의 그림자를 찾아
개복숭아나무의 비밀을 풀자 이미 늙어버린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이 세계에 매우 늦게 도착하는 아버지의
먼 곳으로부터 아버지가 지나간다
아버지의 아버지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엄마가 말할 차례다
누가 그대를 만들었는가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언제나 숨어있기 마련인
그것은 나다 나는 닫힌 창구에서 일한다
잠을 잘 때는 누군가 문을 연다
내가 소식을 다리에 묶고 날기까지
책들은 과거를 추억했다
수평선 위로 붉은 빵 하나를 올려놓는
너무 오래 전의 빗소리
나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실내에 앉아
내 복숭뼈를 파내고 있다
사적인 시
내 시는 구멍 속의 구멍과 같은 독백이어서
그냥 버리기로 하였다
내 시는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와 같아서
그냥 버리기로 하였다
내 시는 내 머리 속에서 계속 확장하는 구멍이어서
그냥 버리기로 하였다
내 방에는 시가 없다
내 몸을 떠난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 나를 경건하게 한다
나를 덮고 덮어 집개미들이 기어 나오게 한다
내 시는 너무 오래 방치되어서
나는 조용하게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책장 뒤 시작되기 전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영수․
1996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1998년 ≪문학동네≫ 로 등단
․시집 나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한다
추천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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