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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신작시/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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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65회 작성일 08-02-2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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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


잠시 생을 내려놓고 싶을 때


쇼가 끝나고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지자
코끼리의 눈은 먼 곳을 향했다
서비스로 사람을 태우고 사뿐사뿐 스텝을 밟으며
사진 찍혀주는 직업에 종사하는 다국적기업 로즈가든 코끼리는
돌아서 오줌을 갈겼다 엉덩이 사이로
땅에 닿을 듯 말 듯 축 늘어진 성기가 보였다
남들이 놀 때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코끼리는
조련사의 손에 든 바나나와 갈코리 달린 꼬챙이
흘끔흘끔 보면서 박수소리 반대편으로 스텝을 밟았다
젊고 힘센 코끼리에게 밀려 조만간 퇴출될 임시직 코끼리는
꼬챙이에 찢겨나간 너덜거리는 귀를 흔들며
환호성으로부터 멀어졌다
멀어질수록 스텝도 가볍게




목각 기러기


한밤중 눈을 뜨면 날 노려보는 놈이 있다
단 한번의 눈맞춤에 영원을 저당 잡힌 기러기 한 쌍
지전보다 빨리 구겨지고 동전보다 먼저 쇠 냄새 풍기는
일상의 머리맡에 반복도 회귀도 용납치 않겠다는 듯
찰나에 멈춰버린 목각 기러기 두 놈
날더러 어쩌라고 노려보는 것이냐.
구겨져 가는 건 나만도 당신만도 아니라는 듯.
썩어 가는 건 향기라든가 떨림이라든가,
한겨울 고개 내미는 나뭇가지 여린 눈 같은
희망만도 아니라는 듯.
움직이지 않는 기러기여 그래서 너는……
문 닫고 나면 그만인 방 안에서 열고 있느냐
산 넘어 갔다는 사랑을, 물 건너 갔다는 혁명을,
가고 다시 오지 않는 세월을.
아무것도 아니었어, 속삭이는,
돌아앉으면 그만인 컴컴한 방 속에서
그래도, 숨죽여 죽이고 있는 것이냐
순간들의 죽음을 영원들의 무덤을
죽여 다시, 살리고 있는 것이냐.


김해자․
1961년 전남 목포 출생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무화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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