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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문화산책/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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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연재】원작이 있는 영화 ⑥
드라큘라:
브람 스토커와 프란시스 코폴라와의 만남
이주연(영화평론가)
1. 들어가는 말
영화 역사상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드라큘라(Dracula)」만큼 자주 만들어지는 영화도 흔치 않을 것이다. 물론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작품도 자주 영화화되는 것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단일 작품으로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만들어지고 존속해 오는 것은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례로 해외영화정보 싸이트에서 ‘드라큘라’라는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면 무려 639개의 결과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작품 수를 자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영화 역사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시기부터 이미 영화와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1922년에 발표된 무르나우(F.W. Murnau) 감독의 <노스페라투Nosferatu>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관객들에게 독특한 소재의 영화를 경험토록 하고, 이 후 등장하는 드라큘라를 소재로 한 영화에 많은 영향을 준다. 흡혈을 하는 뱀파이어(Vampire)라는 소재는 장르 영화 중 공포영화의 영원한 소재로 남게 되는 데 크나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노스페라투>에 등장하는 뱀파이어의 창백한 낯빛, 검은 옷, 길게 기른 손톱, 그리고 새벽닭이 울면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원형들은 이후 등장하는 드라큘라를 소재로 한 영화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아이콘(icon)과 내러티브의 관습(convention)으로 자리 잡게 된다.
사실, 대중들에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처음으로 영화에서 다룬 <노스페라투>보다는 1931년에 등장한 벨라 루고시 주연의 <드라큘라>가 원작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그들에게 드라큘라의 원형으로 깊게 인식되어 왔다. 그 결과, 벨라 루고시적인 드라큘라가 영화에 계속적으로 등장하면서 원작에서 그려지는 드라큘라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원작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게 된다. 이로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변형되고 더 나아가서는 변질되기까지 이르는 지경에 도달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감독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는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다시 영화화하고자 마음먹는데, 그의 주된 목적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감독 나름대로의 현대적 재해석을 가하는 그런 영화를 재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등장하게된 영화가 바로 1992년에 선보인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Bram Stoker's Dracula)>이다.
게리 올드만, 위노나 라이더, 앤소니 홉킨스,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에 이르는 당시의 초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코폴라의 <드라큘라>가 등장했을 때 영화계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유는 기존 드라큘라 영화와 다르게 너무 많은 장면에서 여배우의 가슴과 피의 흥건함을 자극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으로 인해 ‘피와 젖가슴(blood and boobs)’ 영화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물론, 등급 판정을 받는 과정에서도 역시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이러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던 코폴라의 <드라큘라>이지만,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코폴라가 작품을 만들려고 했던 애초의 목적인 원작에 충실하고자 했다는 점을 원작과 영화를 모두 접한 사람이라면 쉽게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감독의 재해석의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 글에서는 원작을 살리려 노력한 코폴라의 흔적을 원작에 충실히 근거하여 추적해 보고자 한다.
2. 브람 스토커의 부활
코폴라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이미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드라큘라가 원작에서 묘사하고 있는 모습과는 너무 다른 드라큘라를 계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최초로 영화화했던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마저도 사실은 원작과 다소 다른 내러티브로 영화화되었다는 점이 코폴라에게 영화화하도록 부추기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는 원작에서 사용하고 있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변경하였으며, 배경도 영국 런던이 아닌 독일 비스보르그이고 시대적 배경도 원작보다 50년이나 앞선 1838년으로 바꿔놓고 있다. 이뿐 아니라 내러티브 전개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주었는데, 특히 드라큘라 백작이 새벽닭이 울기 전 그의 몸을 숨길 수 있는 관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는 설정은 원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이러한 약간의 각색을 거친 <노스페라투>는 마치 원작을 그대로 반영한 영화의 원전인 것으로 오인되어 그 이후 등장하는 여러 드라큘라를 다룬 영화에 내러티브나 인물들을 표현하는 아이콘의 측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의 정도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인데, 한 예로 독일의 유명한 감독인 베르너 헤어조크는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를 토대로 하여 1978년에 <노스페라투:뱀파이어(Nosferatu, Vampyre)>라는 영화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다. 감독의 의도대로 재해석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무르나우의 영화처럼 헤어조크의 <노스페라투:뱀파이어>에서도 드라큘라 백작이 새벽닭이 울기 전에 몸을 숨기지 못해 결국 태양이 밝게 비치는 햇빛 속으로 연기로 변하여 홀연히 사라진다. 이러한 엔딩까지 헤어조그는 무르나우의 것을 그대로 따른다. 이와 같이 원작과 자꾸 멀어지고 있는 드라큘라 영화에 대해 코폴라는 새로운 도전 의식을 가지고 영화화하기로 결심한다. 간단히 말해서, 초창기 드라큘라 영화의 효시인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에서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에 원작자인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묘사된 드라큘라 백작의 형상, 그리고 할리우드 상업 영화를 위한 코폴라 자신만의 재해석의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질 수 있다. 코폴라는 이러한 표현 방법을 통해서 기존 드라큘라 영화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들을 원작에 충실하게 표현하여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부활시키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2-1.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부활시키기 위한 코폴라의 전략
코폴라는 원작 그대로를 영화화하기 위한 ‘상연(presentation)’을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기존 드라큘라 영화에서 잘못된 이미지로 전달되고 있는 드라큘라 백작의 모습과 성격을 원작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이야기 구조상 왜곡되고 있는 부분들을 원작에 아주 가깝게 그리는데 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영화의 제목 즉,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라는 제목만 살펴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코폴라도 지금껏 드라큘라 영화를 만들어왔던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그 만의 독특한 재해석을 가미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기존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원작에 충실한 부분은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영화는 원작의 흐름과 동일하게 전개시키기 위해 일기를 쓴 날짜대로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가고 있다. 원작에선 일기를 쓴 주체 즉, 등장인물들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을 하고 있는 것을 영화적 표현으로 전환하기 위해 각 인물들의 내레이션으로 사건의 흐름을 전달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야기는 기존 영화들과 다름없이 원작의 커다란 줄거리를 따른다. 사랑하는 연인인 미나 머레이와 조나단 하커는 사랑하지만 가난해서 당장은 결혼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이이다. 하지만, 조나단이 부동산업자의 대리인으로 먼 길을 다녀와 여유 자금을 마련한 뒤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그는 일정대로 기나긴 여정에 오르게 된다. 이때 영화의 장면으로 표현되고 있는 조나단의 여행길은 원작의 방대한 분량과 자세한 묘사를 얼마 되지 않는 장면 분량으로 축약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영화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으로 자세한 배경 서술을 위해 색채, 분위기 묘사 등을 많은 페이지에 할애하고 있는 문자 서술과는 달리 시각적 서술을 위해 걸맞은 장소 선택을 전제로 하여 단 몇 장면으로 문학 작품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이는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 모든 영화들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코폴라의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원작의 분위기 전달뿐 아니라 조나단 하커의 앞날에 드라큘라라는 존재가 미치는 영향을 암시라도 하듯이 기차를 타고 가며 편지를 쓰는 조나단이 드라큘라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코폴라 그만의 해석이 돋보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데, 조나단의 위쪽으로 드라큘라의 모습이 화면 위를 마치 구름이 뒤덮고 있듯이 화면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원작에서의 개들과 이리떼들의 울부짖음에 관한 생생한 청각적 요소도 감독은 놓치지 않고 잘 살려주고 있다.
이 부분까지는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나 헤어조크의 <노스페라투:뱀파이어>에서도 원작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조나단이 드라큘라 성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는 장면에서 드라큘라 백작의 모습은 위의 두 작품과 더불어 다른 여타의 드라큘라 등장 영화에서 그리는 모습과 다르다. 코폴라의 영화에 등장한 드라큘라(겔리 올드만 분)는 흰머리처럼 보이는 금발로 가르마를 탄 머리를 기괴하게 빗어 뒤로 넘긴 머리를 길게 땋아 늘어뜨렸고 붉은 비단 가운을 길게 끌고 다니는 모습이다. 이 형상을 하고 있는 영화 속 드라큘라 백작은 코폴라의 재해석으로 인해 새롭게 탄생한 모습이다. 원작에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고 상당한 체구를 지닌 인물로 걸을 때의 느낌도 둔중한 발걸음을 옮기는 것 같다고 묘사하고 있으나, 영화에선 자그마한 체구의 백작으로 걸음걸이 또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처럼 물위를 걷는 듯한 걸음걸이로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다. 이 장면을 접하게 된 많은 사람들은 기존 영화와 원작의 드라큘라의 모습과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놀라움은 백작이 바깥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성벽을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는 모습은 어느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드라큘라에 대한 기괴한 모습이다. 이는 기존 영화들이 간과했던 원작의 부분을 코폴라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백작의 몸뚱이가 전부 창밖으로 나오는가 싶더니 어두컴컴한 바닥을 향해서 벽을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외투가 커다란 날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흡사 도마뱀이 벽을 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백작이 도마뱀 같은 모습으로 나가는 것을 한번 더 보았다.”라고 적혀있는 원작을 살펴보면 코폴라의 백작에 대한 설정은 전적으로 원작 그대로를 반영하고자 했던 부분이다.
백작의 모습을 도마뱀처럼 표현한 장면만큼이나 충격적인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조나단은 백작이 성에 없는 틈을 타서 구석구석을 살펴보다 지하의 어느 방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실 그는 방안에서 절대 나가 돌아다니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어기고, 성안을 돌아다니다 자신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한 방안으로 들어간다. 이때 음산하지만 묘한 분위기의 방안에 그를 부르는 미나의 목소리가 들리며 넓은 침대에 앉도록 유도한다. 침대에 앉은 조나단 앞에 그를 유혹하려는 여인들이 등장하며 상당히 관능적이고 요염한 자태로 그를 유혹한다. 조나단이 유혹에 넘어갔다고 확신이 섰을 때 영화의 장면에 보이는 여인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때 카메라는 익스림 하이앵글을 구사하면서 침대 위의 장면을 굽어 보여주는데, 놀라운 것은 조나단을 유혹하고 있는 뱀파이어의 무리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바로 드라큘라의 추종자들이며 인간의 피를 갈구하던 뱀파이어들이었다. 영화에 표현되고 있는 이 장면은 매우 선정성이 지나치다 못해 포르노그래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따라서 개봉 전 등급 논란에 휩싸였고 더 나아가서는 ‘피와 가슴영화(blood and boobs)’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폄하시켰다.
그러나 이미 원작을 접해본 독자가 코폴라의 영화를 봤다면 선정적인 면이 없진 않지만 그와 같은 평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기존영화들이 원작에 존재하는 이 장면을 삭제한 채 만들게 되면서 계속적으로 제작되는 드라큘라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뱀파이어영화의 효시인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에서부터 앞서 언급한 장면을 생생하게 살려두고 있다면, 그리고 그 이후 영향을 받은 영화들이 제작될 때 삭제 없이 받아들였다면 이와 같은 오해는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오해의 발단은 영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일반관객 모두 드라큘라 영화의 원작인 스토커의 작품을 생각지 않은 채 무르나우의 것을 그 원전으로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을 때 마침 드라큘라 백작이 목격을 하게 되고 여성 뱀파이어들이 조나단의 피를 빠는 것을 저지하고 분노한다. 이에 놀란 뱀파이어들은 “당신은 우리를 사랑해주지 않아.”라는 대사를 내뱉으며 저항하면서 배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며 보챈다. 이에 백작은 손에 들고 있던 어린아이를 던져주며 뱀파이어의 허기를 달래도록 해준다. 이 장면도 기존영화와는 다르게 코폴라의 것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장면으로 이 역시 원작의 묘사를 충실히 반영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뱀파이어들도 드라큘라 백작과 마찬가지로 그림자도 없고 창백한 얼굴을 가진 인물들로 원작에 묘사되고 있는데, 이를 영화에서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물만이 아니라 상황 설정에 있어서도 원작을 답습하고 있는 대표적인 부분이 있는데, 거울에 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조나단이 백작에 성에 머무르는 장면 중 거울을 보고 면도하고 있는데 “잘 주무셨소?”라는 말소리는 들리지만 백작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백작은 거울이란 것은 인간의 허영심이 만들어 낸 하찮은 허섭스레기라면서 창문으로 내던져 버린다. 영화에선 단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거울이 저절로 깨지는 것으로 설정되어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조나단과 밤새 얘기를 나누다가도 새벽닭이 울 때쯤이면 할 일이 있다고 하며 일어나 사라진다. 이 부분은 무르나우가 좀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드라큘라가 몸을 숨기지 않으면 연기로 사라진다는 그만의 해석을 가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과도한 해석은 마치 원작의 설정처럼 받아들여지게 되는 오해 아닌 오해를 낳게 된다.
2-2. 브람 스토커의 부활을 위한 무르나우의 흔적
이와 같이 코폴라는 원작에 충실한 드라큘라영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영화들이 간과했었던 장면들을 영화에 부활시켜 놓고 있다.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코폴라는 무르나우의 방법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림자 효과로서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조명의 콘트라스트를 이용하는 독특한 표현 방식이다. 1920년대 독일의 표현주의 감독들이 자주 사용하던 방법으로 그림자를 이용하여 사건의 암시를 위해 혹은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의 암시로 자주 사용되곤 했다.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에서도 역시 그림자를 통해 영화 진행의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는데, 오르록 백작의 움직임과는 달리 그림자 스스로 움직이며 극의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특히, 이를 보는 관객들은 두려움과 함께 특정 사건의 전조인양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오르록 백작의 그림자만이 방안으로 스르르 들어오는 장면이라든지 조나단의 목을 겨냥한 백작의 팔 그림자만이 움직인다. 이와 같은 장면 연출을 코폴라도 잊지 않고 따르고 있는데 그림자의 움직임을 좀더 명확하게 표현하고자 조명의 콘트라스트가 아닌 에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미장센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만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또 다른 대표 장면은 조나단이 백작의 성에 당도하여 부동산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벽에는 런던 일대를 묘사하고 있는 지도가 벽에 붙어있다. 그 지도 위로 드라큘라 백작의 그리자가 천천히 드리워지면서 조나단의 목을 조이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 장면만이 아니라 백작의 그림자는 그의 존재가 곧 미나와 루시에게도 다가갈 것임을 알리는 장면에서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루시가 곧 드라큘라에게 흡혈을 당할 것임을 암시하기 위해 그녀의 방 천장 위로 백작의 검은 그림자가 뒤덮는 화면 구성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뿐 아니라 미나(위노나 라이더 분)가 백작과 만나게 될 것임을 예시하기 위해 파티 장면에서 그의 그림자가 미나만을 향해 그녀의 앞에 서서히 다가와 잠시 멈췄다 사라진다. 이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으로 미나가 백작과 곧 만나게 되며 조나단의 약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드라큘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의미로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그림자 효과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독일 표현주의에서 자주 사용했던 표현 방법이지만, 코폴라는 그것을 배제하지 않고 자신만의 해석을 위한 방법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드라큘라 백작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며, 그의 영향력 아래에서 인간의 피를 빨아야 하는 뱀파이어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코폴라는, 표현주의적인 방법을 철저히 따르는 무르나우의 그림자 효과와 함께 1920년대 당시 자주 사용되었던 아이리스(iris) 편집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 편집 방법은 무성영화가 주로 만들어지던 당시 장면의 연결을 위한 방법으로 빈번히 사용되던 것이었다. 코폴라는 이를 간과하지 않고 뱀파이어의 효시 <노스페라투>에서 사용되었던 편집 기법인 아이리스를 1992년도 영화에서 당시 사용되었고 그의 작품에서도 역시 아이리스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코폴라는 그것을 추억하기 위해서도 세심하게 작품 속에 녹여놓았다.
2-3. 코폴라의 재해석
원작에서도 기존 영화에서도 미나와 드라큘라 백작과의 로맨스는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코폴라만의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로맨스를 좀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루마니아의 왕자였던 드라큘라 백작의 신부 엘리자베스였고, 그녀는 왕자가 전쟁에서 전사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받게 된다. 이에 너무 슬퍼한 엘리자베스는 자살하게 되고, 그 후 당도한 왕자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신에 대한 증오가 불덩이같이 타오르고 결국 신을 부정하고 대항하는 악의 화신으로 변한다. 그 후 백작은 불멸의 삶을 살게 되고 신을 거역하는 행위를 일삼으며 언젠가 만나게 될 그의 신부 엘리자베스를 찾게 되길 기다리며 뱀파이어의 길을 걷게 된다.
세월이 흐른 4세기 후인 1897년, 업무를 위해 성을 찾은 조나단의 약혼녀가 드라큘라 백작이 애타게 찾고 있는 엘리자베스라는 여인과 너무 닮아있다. 조나단이 여행길에 가져온 미나의 사진첩을 보고 슬퍼하는 장면은 바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렇게 백작과 미나의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불멸의 사랑으로 인한 로맨스를 엮어놓음으로 인해 기존 드라큘라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를 접하게 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매우 많은 비난을 받게 되는데, 생각 없이 할리우드적인 멜로드라마를 만들려 하다가 생겨난 오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어찌됐건 코폴라는 현세에서 미나와 드라큘라 백작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씨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 영화를 그 매개로 삼고 있다. 영화의 배경도 1897년으로 설정하여 영국에 도입된 영화 매체에 대한 당시 관객들의 반응과 상영 시스템 등을 코폴라 자신의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영화 역사를 고증하여 보여주고 있다. 마치 초창기 영화에 대해 오마주를 바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를 핑계로 만나게 된 미나와 백작은 겉잡을 없이 빠른 속도록 가깝게 되고 영화의 엔딩에서 보여주는 백작의 죽음 뒤의 미나의 슬퍼하는 모습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원작에 없는 백작과의 로맨스는 관객들을 매우 당황케 하는 요소로 작용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기존 영화와는 다른 결론을 짓게 되는 특징을 갖게 된다.
그리고 미나의 절친한 친구인 루시가 흡혈을 당하고 뱀파이어가 된 후 그녀 역시도 철저히 백작의 추종자가 되었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작과는 사뭇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루시는 평상시와 다르게 계속 열이 오르고 아파하게 되면서 뱀파이어가 되어가고, 이를 살펴보기 위해 반 헬싱 박사가 도착한다. 결국 그녀가 죽게 되어 관에 시체를 보관하게 되는데, 그녀를 영원히 편안하게 쉬도록 하기 위해 반 헬싱 박사와 세 남자는 보관 장소를 찾는다. 관 뚜껑을 열었지만 그 안에 평안히 잠들어 있어야 할 루시는 온데간데없다. 당황한 박사 일행이 주춤하는 동안 밖에 나갔다 천연스럽게 들어오는 루시를 목격하게 된다. 이때 루시의 의상은 마치 백작이 성에서 입고 있었던 즉, 도마뱀에 더욱 가깝게 보이도록 입고 있는 그 의상과 색깔만 다를 뿐이지 매우 닮은 형상이다. 이는 루시마저도 백작의 추종자로서 이미 철저한 뱀파이어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 생각한다. 그를 뒷받침해 주는 다른 근거는 백작이 아이를 뱀파이어의 흡혈을 위해 던져주던 장면과 비슷하게 루시도 어디선가 구해온 아기를 안고 있다. 이는 백작의 추종자 중 하나가 되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설정이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루시가 입고 있는 의상은 그녀의 결혼을 위해 입을 예정이었던 예복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옷의 디자인은 마치 도마뱀의 의상처럼 보이듯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코폴라는 드라큘라 백작을 우여곡절 끝에 없애버리는 것으로 그리고, 예전 왕자의 모습으로 변하여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도록 결말을 매듭짓고 있다. 그러나 원작에서는 그 후기가 실려 있는데, 7년 뒤 미나와 조나단 일행은 백작의 성이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3. 나가는 말
1897년에 등장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드라큘라 백작처럼 음지에서 조용히 각광받아 왔다. 그러나 이 작품에도 서광이 비추게 되는데 그것은 영화와의 만남이었다. 이 만남은 영원한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는 그 계기가 되고 많은 관객들에게 드라큘라라는 작품의 존재를 알리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미 초창기 무성영화시대부터 존재하는 드라큘라 영화로서 많은 영화로 재탄생되기에 이르며 잊을 만하면 다시 한번 등장하는 영원한 영화의 소재로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 많은 영화들은 원작의 것을 많이 훼손하면서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닌 영화로 존재하여 왔다. 이러한 영화들이 범람하는 시점에 코폴라는 원작에 근거하여 다시 한번 충실히 만들려고 시도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탄생된 작품이 바로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이다. 그는 기존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부분 중 그의 판단에 의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 예를 들어, 백작의 도마뱀 형상, 그를 추종하는 뱀파이어들이 존재를 원작으로부터 새로이 도입하여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뱀파이어 영화의 효시인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와 무성영화의 특징이자 표현주의의 특징으로 남겨져 있는 그림자 효과를 통해 드라큘라의 힘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밖에도 논란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미나와 백작의 로맨스를 통한 멜로 드라마적 요소의 가미는 그만의 독특한 해석을 가한 것이라 생각된다. 더불어 씨네마토그라프라는 영화역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장면을 삽입함으로 인해 영화인으로서 뤼미에르 형제에 대해 헌사를 보내는 것까지 잊지 않고 있다. 그뿐 아니라 1920년대 자주 사용하였던 편집기법의 사용을 현대적으로 영화에 녹여주고 있는 코폴라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개봉 당시 코폴라의 역량을 의심하는 평론들도 많이 쏟아져 나왔지만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바탕으로 각각의 인물들의 특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 다만, 미나와 백작의 로맨스라는 설정은 다소 억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엔딩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연기로 사라지지만 조나단이 그의 뒤를 이를 또 다른 뱀파이어일 것이라고 보여주고 있는 헤어조그의 해석도 존재하듯 코폴라의 해석 또한 존재 가능한 것이다.
이주연
․현 건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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