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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연재|하이쿠 에세이④/김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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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032회 작성일 08-02-2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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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긴 울림

김영식





1.

蟻の道雲の峰よりつづきけん (一茶*)
ありのみち くものみねより つづきけん
ari-no-michi kumo-no-mine-yori tudukiken

개미의 행렬
비구름 봉우리에서
이어져 왔나

뜨거운 여름날, 땅을 쳐다보니 까만 개미가 길게 줄을 지어 가고 있다. 산 위로 소나기구름(積亂雲)이 떠있다. 비를 머금은 소나기구름의 꼭대기에서부터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내려온 듯한 개미가, 이곳 땅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 같다. 구름의 흰색과 개미의 검은 색이 대비를 이룬다. 혹은, 원래 하얗게 태어난 몸이 햇빛(世波)에 타서 점점 검게 된 것이라면, 흑의 극한을 지나 개미는 다시 흰색으로 돌아가리라.
소나기구름은 일본어로 入道雲(にゅうどうぐもnyudokumo)이라고 한다. 입도(入道)는 출가하여 불문에 들어가는 것이나 그 사람을 말하고, 중(僧)머리 모양의 괴물도 의미하는데, 그 괴물같이 생긴 구름을 입도운(入道雲)이라 한다. 개미의 길(蟻の道)에서, 길(道)이 바로 뒤의 구름(雲)과 붙어 (入)道雲(소나기구름)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니, 개미의 길은 바로 불문의 길이라는 의미를 중첩한다.
뜨거운 여름날, 개미들의 행진과 같은 우리의 삶은 저 산꼭대기의 구름에서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끊임없이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지만, 결국 우리들은,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고 다시 땅의 비가 하늘로 올라가는, 윤회(輪廻)의 굴레 안에서 하염없이 돌고 또 도는 것이 아닐까. 그 옛날의 개미는 하늘에서 내려와 계속 아래로 가고 있었지만, 지난 주말 북한산에 가니 개미같이 까만 사람들이 줄지어 산꼭대기로 오르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 하늘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파 산을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인가.

人の道登り続ける山の雲
사람의 길/ 끊임없이 오르는/ 산 위의 구름

*一茶(小林一茶 Kobayashi Issa, 1763~1827)
나가노켄의 농가에서 출생. 3세 때 모친을 여의고, 8세 때 들어온 계모와 사이가 좋지 않아 15세 때 에도(도쿄)로 가서 돈벌이를 시작하고, 20세 이후에 하이쿠에 접했다. 그의 하이쿠에는 모정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나타나 있다.


2.

市中は物のにほひや夏の月 (凡兆*)

いちなかは もののにほひや なつのつき(ぼんちょう)
ichinakwa monono-nioiya natuno-tuki(boncho)

장터 안에
물건 냄새 가득한
여름밤의 달

장터의 밤, 하늘을 쳐다보니 달이 아름답게 떠있다. 지상의 장터에는 소음과 열기가 가득 차 있는데, 하늘의 달은 고고하게 조용히 떠있다.
여행을 가서 자주 찾아가게 되는 곳은 쇼핑센터이고 시장이다. 이 세상에 나오는 온갖 생물과 공산품을 볼 수 있고 살 수 있는 곳인 시장은, 또한 다양한 인간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옛날의 장터에는,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 외로도, 국밥집, 선술집, 점쟁이, 박보장기, 야바위꾼, 소매치기, 혁필화가, 약장수 등 다양한 사람과 삶의 모습이 있었다. 속고 속이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악의 모습과 더불어, 사 줘서 고맙고 팔아줘 고마우며, 사고팔다 정든 얼굴 한번 더 봐서 좋은, 선의 모습이 공존한다. 그래서 장터에는 여러 가지 물건과 사람이 어우러져 시끌벅적한 소리와 냄새를 만들어낸다.
10원 동전의 앞면에는 다보탑이, 뒷면에는 10이라는 숫자가 있다. 다보탑이 예술이나 이상의 상징이라면, 10이라는 숫자는 다보탑을 뒷받침하는 시장(자본)이다. 팔기 위해 만든 도자기가 훗날 예술품이 되기도 하는 것이 인간 세상으로, 다보탑은 예술 그 자체를 위해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서는 뒷면의 10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앞면에 다보탑을 내세운다.
서머셋모옴은 둥근 두 물체인, 달과 6펜스짜리 동전으로 의미를 대비시켰다. 지상의 동전과 하늘의 달이, 각기 현실/생활과 이상/예술로 흔히 해석되지만, 나는 동전의 양면을 들어 그 둘의 관계가 결코 배타적이지 않고 배와 등처럼 서로 달라붙어 있음을 말한다.
시장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시장은 활동하는 사람의 현실이요 생활의 터전이다. 시장이 없는 곳은 자유가 없는 곳이요 예술도 태어나지 못하는 곳이다. 그 시장에서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때로 하늘의 달을 쳐다본다. 시장에서 고생하면서 살고 있지만, 하늘의 달을 보고 고향의 그 달을 생각하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한다. 달을 바라보는 마음은 선(善)의 마음이요, 다보탑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시장과 달은 동전의 양면이다.
여름밤, 시장의 냄새와 열기에 들뜬 사람들은 하늘의 달을 쳐다보며 서늘함을 되찾고, 밤하늘의 달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웃는 얼굴로 세상을 내려본다.

月と市離れられない銭の表裏
달과 시장은 / 떨어지지 못하는 / 동전의 표리

*凡兆(野澤凡兆 Nozawa Boncho, 1640?~1714)
가나자와켄 출생. 쿄토에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처와 함께 바쇼의 제자가 됨. 격조 높은 사생파 시인으로 재능이 뛰어났으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아 죄를 짓고 옥중 생활도 하였고 말년에도 극빈하였다.


3.

靜かさや岩にしみいる蟬の聲 (芭蕉*)
しずかさや いわにしみいる せみのこえ
shizukasaya iwani-simiiru semino-koe

조용하다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울음 소리

시인이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매미 소리를 들으며 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생각난다. 그는 매미 울음 소리가 마치 바위에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분명 소음계로 측정하면 시끄럽다고 할 만큼의 수치가 나올 것이나, 이상하게도 적막한 풍경 속에서 흘러나오는 매미 울음 소리는 그 풍경과 어우러져 조용한 울음으로 들려온다. 소리는 풍경을 돋보이게 하는,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배경과도 같다. 풍경을 배경으로 소리가 나는 것이며, 소리를 배경으로 풍경이 드러난다. 배우의 연기는 배경이 되는 화면이 받쳐주며, 화면은 배우의 연기로 인해 더욱더 인상 깊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듯 소리가 꺼진 화면보다는, 매미 울음 소리가 들리는 화면은 더 아름답게 조용하다. 자연스럽다.
위의 글은 매우 피상적인 시각에서의 감상문이다. 이제 매미 울음 소리의 본질을 캐보자.
옛사람들은 자연 속의 매미를 관상(觀賞)하며 생각했다. 저렇게 찬란하게 우는 매미의 일생이 한 달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에, 자신의 짧은 삶을 비유하였다. 매미가 애벌레의 상태로 지내는 것이 대개 4~6년이나, 가장 긴 종(種)은 17년이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오랜 세월 애벌레인 굼벵이로 지내다가 마침내 껍질을 벗고 세상에 나온 매미의 짧은 한 달 정도의 삶을 불쌍히 여긴다. 화려한 한순간을 위해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굼벵이의 삶은 한순간 매미가 되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치부한다. 굼벵이의 오랜 삶이 기껏 한달을 사는 매미를 위한 준비체조 정도로 말하여지다니, 참으로 기어가던 굼벵이가 멈춰서 몸을 비틀며 꺼꺼꺼 굼벵스럽게 웃을 일이지만, 그러나 미안하지만 모든 생물에게 있어서 삶의 가장 화려한 순간은 번식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있음을 부정하지 못하기에, 굼벵이가 무시당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매미가 맴맴 계속 울어대는 것은, 바깥 세상에 나온 것이 즐거워 삶의 찬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종족 번식을 위해 암매미를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그것도 집단이 함께 줄기차고 힘차게 울어야 암매미가 날아올 가능성이 크고, 도시의 소음 속에서 매미들은 더 크게 운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생물에게 번식은 생애 최대의 과제이다. 하늘에서 여왕벌과 용케 교섭에 성공한 수벌은 기운을 다해 떨어져 죽는다. 사마귀는 생식을 마치고 암놈에게 먹혀 죽는다. 살모사는 자기 몸을 자식에게 영양분으로 제공한다. 살충제를 맞아 죽은 바퀴벌레는 그 죽은 몸에서 알을 깐다고 한다. 소름이 끼칠 정도이나, 죽어서도 해결해야 하는 것, 죽음을 걸고 수행해야 하는 것이 번식이다. 매미는 번식을 하기 위해 껍질을 벗고 나왔다. 그것은 매미가 죽기 전에 완수해야 할 마지막 과업이다. 이제 다시 한번 읽어보자.

조용하다/바위에 스며드는/매미 울음 소리

그저 적막하기만 하던 풍경에 삶의 처절함이 드러난다. 매미의 울음 소리로 인해 시인이 바라본 풍경에는 강한 생명이 느껴진다. 바라보이는 조용한 숲에서도 만물은 끊임없이 생기고 사라진다. 자연은, 바라보는 자에게 그저 조용히 그 자리에 풍경화처럼 존재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 속의 만물은 울고 있다. 자연은 끝없이 태어나고 번식하고 죽기를 반복하고 있다. 한여름의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바라보는 자연이 조용하고 한가로운 경치가 아니라, 슬프도록 처절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 매미가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やがて死ぬけしきは見えず蟬の聲(芭蕉)
여전히 죽는/모습 보이지 않는/매미 울음 소리


*芭蕉(松尾芭蕉, Matsuo Basho, 1644~1694)
하이쿠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일본의 대표적 하이쿠 시인(俳人)  



김영식․
1962년 부산 출생
․2002년 ≪리토피아≫ 수필 등단
․‘일본문학취미’ 사이트 운영자(http://hobbian.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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