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8호 지난계절 작품읽기(시)/정우영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39회 작성일 08-02-26 22:42

본문

■지난계절 작품읽기【시】


이은봉 「우울」(≪시와사상≫ 2005, 봄)

말간 우울

정우영(시인)



우울은 지금 제 가슴 쫘악, 찢어대고 있다
책상 위엔 복잡한 서류들 마구 흩어져 있거니, 그것들 무어라 자꾸 지껄여대고 있거니,
거기 엇갈려 포개진 두 손 위, 우울은 제 머리 칵, 처박고 있다

21층 드높은 사무실, 어쩌다 보니
저 혼자 내팽개쳐져 있는 우울은 시방 이빨 앙다물고 아그그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얼굴 찡그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참을성 없는 놈이라니!
우울은 지금 잔주접이나 떨고 있는 저 자신이 너무도 싫다 까짓것 청명과 한식 사이거니, 도갑사 산벚꽃처럼 타오르면 그만이거니,
파르르 흩날리면 그만이거니……,

우울은 지금 제 팔다리 쫘악, 찢어대고 있다
책상 위엔 터질 듯한 은행통장들 함부로 흩어져 있거니, 그것들 뭐라고 거듭 지껄여대고 있거니,
거기 엇갈려 포개진 두 손 위, 우울은 제 얼굴 칵, 처박고 있다

앙다문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
우울은 너무도 싫다 그만 세상 하직하고 싶다 산벚꽃처럼 화르르 몸 흩날려버리고 싶다
바람은 그걸 알고 숨소리조차 크게 내질 않는데.
―이은봉 「우울」

우울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우울은 이미 우리의 팔다리와 얼굴, 심지어는 머리와 가슴까지 다 점령해 버렸다. 현대인은 그가 누구든 간에 우울 한 자락씩은 다 휘감고 산다.
한때 우울은 우리 것이 아니었다. 흥과 추임새로 더불어 살던 우리에게 우울이란 것은 발붙일 틈이 없었다. 한데 천민자본주의가 횡행하고 ‘더불어 삶’이 아니라, ‘나 홀로 잘 삶’을 우리가 선택하는 순간, 우울은 우리 몸에 독버섯처럼 포자를 날려대었다. 심약한 어떤 이는 끈만 보면 목을 들이밀고, 21층 드높은 사무실 같은 곳에서 어떤 이는 떨어질 궁리를 일삼는다.
매스컴은 이제 우울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지 스스로 목숨 거두는 자만 나타나면 우울로 진단한다. 물론 처방은 없다. 우울이 무서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별다른 처방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밀려오는 갖가지 괴로움을 홀로 견뎌야 한다. 맞설 수도 없다. 그저 견뎌내는 것밖에는 방책이 없다. 간혹 용기 있게 신경정신과를 찾는 이가 있긴 하지만 그도 병원에서 뭘 기대하는 건 아니다. 조금이라도 현실에서 도망쳐 있고 싶을 뿐이다. 이 시인도 마찬가지다. 우울을 견디기 위해 시 속으로 도망쳤으나 우울은 시와 현실이라는 경계마저도 넘어버렸다.
괴기영화를 보면 사람 탈을 쓴 외계생물을 가끔 만나는데, 이 시에서는 우울이 시인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 가슴 쫘악, 찢어대고 있”거나 “얼굴 찡그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시인은 우울에 완전 점령당해 있다. 시인은 도망칠 곳도 없다. “21층 드높은 사무실, 어쩌다 보니/저 혼자 내팽개쳐져 있는” 시인은 “시방 이빨 앙다물고 아그그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도갑사 산벚꽃은 타오르는데, 시인은 “복잡한 서류들”과 “터질 듯한 은행통장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무어라 자꾸 거듭 거듭 지껄여대는 그것들에 둘러싸인 시인의 우울은 이제 절규에 가깝다. 마치 뭉크의 그림에 등장하는 그이처럼 시인의 단말마가 깊다. 그가 “그만 세상 하직하고 싶다”고 토설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참 묘하다. 도무지 시인이 안쓰럽지가 않은 것이다. 어쩐지 엄살 같은 것이다. 이 정도 우울 증세라면 시 속으로 전화 걸어 시인을 위무해야 마땅할 텐데 생뚱맞게 살그머니 미소가 돈다. 왜 그럴까.
나는 이 부분이 이 시의 매혹이라 여기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러니 때문이다. 우울 속에서 우울을 쳐내는 아이러니가 생생해서 이 시의 우울이 내게 전염되지 않는다.
의미망을 쫓아가면 시인의 우울은 잿빛이다. 하지만 정조 혹은 톤으로 시를 읽어보자. ‘쫘악. 칵, 아그그, 파르르, 화르르’ 같은 부사어들이 환기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우울이 호르르 사라진다. 나는 이걸 말이 되든 안 되든 ‘말간 우울’이라 불러보고 싶다. 말간 우울, 우울이 호르르 날아가고 남은 자리에 고이는 얇은 막 같은, 혹은 안개 같은 우울. 이럴 때면 누구라도 “산벚꽃처럼 화르르 몸 흩날려버”린대도 전혀 아쉽지 않을 것이다.
정서를 가꾸는 게 아니라, 정서를 해치는 삶 속에 놓인 우리에게 우울은 필연이다. 비켜갈 수 없다. 그러니 가슴이거나 살이거나 뼈거나 하여튼 우리 몸 어딘가에 우울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독거리며 공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깨달은 이은봉은 제 몸 헌신하듯 우울에게 내맡기며 이 시를 쓴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울의 정조가 이렇듯 말갈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우울은 병이 되고 죽음도 되지만, 또 누군가에게 우울은 이렇듯 새로운 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그것이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말간 우울을 얻기 위해서 이은봉은 정말 숱한 곡절을 견뎌냈을 게 틀림없다.
“숨소리조차 크게 내질 않는” 바람처럼 나도 말간 우울 앞에서 문득 경건하다.



정우영․
1960년 전북 임실 출생
․1989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추천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