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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지난계절 작품읽기(시)/이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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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계절 작품읽기【시】
이영광 「백운동」(≪애지≫ 2005, 봄)
자연의 보폭, 인간의 고도
이상숙(문학평론가)
나는 생태주의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생태주의 시에는 감동받지 않는다. 물론, 21세기 전 세계적 화두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는 깨우침이나, 자연의 파괴는 곧 인간의 종말이므로 인간이 좀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꾸짖음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위협이나 자동차나 컴퓨터를 외면해야 한다는 호소는 여전히 과격해 보인다. 더구나 시를 읽으면서까지 위협당하거나 설득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직설적 훈계는 시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의 신비로 피어나는 풀 한포기, 꽃 한 송이가 생명의 연대로서 소중하다는 것은 진실이다. 우주의 이법을 체현하는 벌레 한 마리의 정밀(靜謐)한 순간(瞬間)은 엄숙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자주 반복해 온 비유처럼 울림이 없으며 독자를 긴장시키지 못한다. 상호연관성과 전일성을 인식적 기반으로 인간과 자연, 인간과 다른 생명과의 유대를 갈파하는 것이 생태주의라면 그를 시화(詩化)하는 생태주의 시는 상호연관성과 전일성에 전적으로 기대는 방식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이영광의 시 「백운동」은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시가 아니다. 그러나 매우 자연스러운 생태주의를 체득하고 있는 듯하다.
붉은 산이 걸어간다
흰 두루미 한 마리
오늘은 진홍 불길에
깃 적시고 지나간 자리
물은 올해도
깊고 맑으니
丹楓帶가 건너가신다
하느님의 연애에는 포장도로도
철제가교도 없다 막을
길이 없다
명백한 두절들의
뼈가 녹는다
물 속의 공중을 건너는 붉은 빛 또 붉은 빛
―이영광 「백운동」*
*충북 제천의 지명
이 시는 단풍대가 지나가는 계절의 변화를 “붉은 산이 걸어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온도에 따라 단풍 드는 시기가 달라 순차적으로 달라지는 나뭇잎의 색깔이 마치 띠 모양을 이루어 움직이는 듯한 단풍대(丹楓帶). 같은 산이라도 높은 산은 표고에 따라 온도차가 커서 단풍대가 나타난다. 움직이는 단풍대를 ‘붉은 산이 걸어가’는 것으로 감지하려면 시간적, 공간적 넓이와 높이가 필요하다. 붉게 물드는 나뭇잎 색깔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산과 산, 마을과 마을을 건너뛰는 단풍대의 보폭을 굽어 볼만한 충분한 시야(視野)와 고도(高度)가 확보되어야 한다. “올해의 물”이 다른 해의 물과 다름을 알 만한 관찰의 시간과 통찰의 공간, “포장도로”와 “철제가교”로 “명백히 두절 되는” 인간의 “길”들을 굽어보는 고도, ‘보이지 않는 공간’인 “물 속의 공중”을 들여다보는 심화된 시공.
이 시의 화자가 확보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매우 활원(豁遠)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매우 정밀(精密)하다. 화자는 “흰 두루미 한 마리” “깃 적시”는 찰나의 시간을 포착하고 있으며, “깃 적시고/지나간 자리”와 물의 농담을 꿰뚫어 “깊고 맑은”은 물 속을 보는 근접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활원과 정밀은 전혀 다른 경지에 속한 것 같지만, 활원관통의 호방함과 세세정밀한 혜안이 우열을 가를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상승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과 찰나, 고도와 근접의 긴장과 균형은 이 시가 마련한 시적 성취의 진폭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붉은 산”, “진홍”, “丹楓帶”, “붉은 빛”과 “흰 두루미”, “깃”, “물”, “뼈”, “물 속의 공중”의 색채 대조와 함께 활원과 정밀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이 시의 수려(秀麗)하고 담박(淡泊)한 의경(意境)*을 구현하고 있다. 활원과 정밀의 대조와 균형은 이 시의 형식에도 적용되어 있다. 의인화된 산들이 거대한 발걸음을 성큼 성큼 내디디듯 한 행이 한 연의 간격으로 구성되어 있고, 절제된 시행의 격절은 “뼈가 녹는다”의 의미적 격절과도 부합하고 있다.
“포장도로, 철제가교”는 인공의 길이지만 “하느님의 연애”를 막지 못하는 “길”이다. 인간을 잇고자 만든 인간의 길은 ‘자연을 보폭을 막을 방도, 도리가 없는’ 무기력한 길이지만 우열의 대결구도에 있지 않다. 자연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인공의 파괴적인 힘이나, 착취 대상으로서 그 아래에서 신음하는 자연의 대립이 없다. 하느님의 연애는 원래 인간의 길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었고 단풍대의 의전(儀典) 행차처럼 도저한 것이다. 허연 뼈처럼 드러난 인간의 길들은 녹아내리듯 무화되고 세상을 부드럽게 유영하듯 자연의 보폭, 단풍대의 남하와 북상하는 꽃 소식은 거칠 것이 없이 도도하다. 탐욕스럽고 비루한 인간, 무기력하게 착취당하는 자연의 대립구도는 없다. 자연의 도저함과 자연을 통찰하고 목격하는 인간의 활원함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웅변은 없지만 스스로 그러하게 스며들 듯 인정되는 것이다. 이 시가 우리 생태주의 시의 대안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이영광 시인이 생태주의 시를 제작한다는 장르의식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별도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노래해 온 시는 그 태생이 생태적이기 때문이다. 또, 이 시는 생태주의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독특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경(境)이란 지위․경지를 지칭하는 것인데, 장파는 경(境)은 현실의 경(景)과는 구분되는 미적인 것으로 예술형상이 하나의 범주로 정확하게 표현해내려는 것으로 정의한다. 의경의 경우 인물 품평에서 시작되었다는데서 알 수 있듯 격조와 경지에 대한 평가이다. 종영의 詩品에 나오는 평가를 통해 의경을 예를 들어 볼 수 있다. 높이 평가한 의는 ‘심오하다’, ‘깊다’, ‘멀다’, ‘높다’, ‘자유롭다’ 등이고, 언(言), 사(辭)의 차원에서 높이 평가한 경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풍부하다’, ‘곱게 꾸몄다’ 등이다. 다소 자의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드러나지만 중국시학에서 시론의 완성으로 일컫는 시격, 시품을 표현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시론이다.(원행패, 중국시가예술연구 上, 박종혁 외 역, 아세아문화사, 1990.pp.47-85. 장파,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유중하 외 역, 푸른 숲, 1999.pp.321-344. 이상숙, 「이육사 시의 동양시학적 분석을 위한 시론」, 한국시학연구 제12호, 2005.4.pp.123-125. 참조.)
이상숙․
199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평론집 시인의 동경과 모국어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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