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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신작시/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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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47회 작성일 08-02-2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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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만나면서 못 만나는


꽃은 소리 없이 피고
바람은 모습 없이 불어도 당연하게 여기면서
소리 안에 갇힐 수 없는 음성이
소리로 안 들린다고
모습 안에 갇힐 수 없는 모습이
모습으로 안 보인다고
없다고 한다

별이기도 눈물이기도 한잔의 생수이기도 하는 온갖 모습인 줄 몰라, 언제 어디서나 마주치면서도 알아보지 못한다

풀벌레 소리이기도 아기 옹아리 소리이기도 하는 온갖 소리인 줄 몰라, 언제 어디서나 들려오는데도 알아듣지 못한다

하루살이가 내일을 모르고, 메뚜기가 내년을 몰라도, 내일과 내년이 있는 줄은 알면서

모습은 귀로 들으려 하고
소리는 눈으로 만나려다가
늘 어긋나고 만다






아무리 마주쳐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神을 닮았어도 모품(模品)은 이렇다.





겨울산에는 6․25가 있었다


휴전선 가는 길
졸다가 내다본 겨울산에는
십자가뿐이었다
우거져도 앙상한 겨울숲은
앙상한 십자가들이 헝클러진 거대한 묘지(墓地)였다

6․25가 묻혔으리
얼키설키 우거진 십자가 밑에
얼키설키 몸들이 묻혔으리
반세기 넘어도 못 떠나는 넋이 짚여
나무십자가들 부르르 떨곤 했다
몸 묻힌 자리에서 제 십자가를 흔들어댔다
못다 살은 세월만큼 살아내는
십자가들 무성한 공동묘지였다 겨울산은

이 나라의 산은 모두 공동묘지인가
삭아버린 제 몸자리 제가 지켜내며
못다 자란 제 키를 키우는
어린 나무십자가들도 까치발을 돋우고 있었다



눈발이 되다만 빗발이 머뭇대다 지나갔다
성모경(聖母經) 몇 구절이었다.


유안진․
경북 안동 출생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달하󰡕 󰡔다보탑을 줍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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