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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신작시/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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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알 수 없어요
―어떤 자존심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 한다. 무려 120년 동안이나 지었단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이며 갖은 조각상들,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른 돔을 목이 아프도록 쳐다보면서 도저히 인간의 役事라고는 믿어지지 않아 나는 다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뿐이었다. 그것도 장비가 열악했던 수백 년 전에 지은 것이라니 갈수록 태산 같은 어마어마한 실체 앞에서 나는 인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아니 하늘에 이르기 위한 인간의 소망이란 얼마나 간절한 것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것에 비길 만한 우리 것을 찾아보았지만 얼른 떠오르지가 않아 은근히 속이 상했다. 바로 그때였다, 의문의 불빛 한 줄기가 내 머릿속을 파고든 것은. 저 장대한 役事를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필요했을까? 그 피와 땀을 그 분은 오직 기쁨으로만 수납했을까? 아무한테나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이 외로운 질문 하나 붙들고 나는 성당 앞 광장을 한참 거닐었다.
불효일기
―四五停 시대
지난봄에 안식년을 받고 난생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갔다. 괜한 걱정을 할까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갔는데 때마침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서 연락할 일이 생겨 전화를 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계속 전화를 받지 않으니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무슨 일이냐고 수소문을 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멀리 여행을 왔노라고 하였더니 이말 저말 끝에 학교는 그렇게 오래 비워도 되느냐고 물으셨다. 안식년이라 안 나가도 된다고 했더니 그러냐고 하시었다. 그럭저럭 여행이 끝나고 어머니께 잘 다녀왔노라고 전화를 드렸더니 전화를 끊을 무렵에 어떻게 해서 학교엘 안 나가도 되느냐고 다시 물으셨다. 안식년엔 학교에 안 나가도 된다고 자세히 설명을 드렸더니 알아들으시는 듯 전화를 끊으셨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내가 없는 사이에 어머니께서 아내에게 전화를 하셨더란다. 정말 아범은 학교에 안 나가도 되느냐고!
이상호․
1982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금환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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