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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신작시/박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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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웅
밤바다에서
파도가 온다
파,파도가 온다
파,파 파도가 온다
맨발로 먼 길을 달려온다
그는 결승점을 지나서야 쓰러지는
마라톤 선수인가?
이름도 없이 태어나서
이름도 남기지 않고 쓰러진다
세상의 어둠을 삼키고
절벽에 부딪혀 시퍼런 얼굴로
모래펄에 흰 거품을 게워낸다
파도는
쓰러지기 위해 다시 일어서고
일어서기 위해 다시 쓰러진다
저 혼자서
파도가 간다 내 발을 적시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청계산을 오르며
하루 만 보 걷기로 청계산을 오른다
눈, 비 가릴 것 없이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여기
허리에 찬 만보기가
오늘의 숫자는 읽어주지만
내가 걸음마를 배우면서부터 그동안
몇억 걸음을 걸었을까?
또 얼마를 더 걸어야 하는가?
산이 좋아서가 아니다
숲이 뿜어내는 향기도 꽃의 아름다움도 아니다
내 숨 차는 심장소리 들으며
하루를 쪼갠다
산꼭대기에 오천 걸음을 풀어놓는다
산은 이제 없고 길만 있다
내게 언제부터 길이 있었는가
문득 고개를 들어
지나온 길을 돌아다본다
툭툭 끊겨있는 지나온 길들 위에
누구를 놓치고 왔길래 자꾸 고개를 돌리는가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발자국들
거기
내 젊 은날은?
내 사랑은?
만보기 속에서
혈당 초과 수치 150숫자가
눈을 뜨고 있다
박무웅․
1995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 소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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