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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신작시/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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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43회 작성일 08-02-2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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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개기일식


산그늘에 들고 나서야
겹쳐질 때 내 몸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산그늘에 핀 꽃을 보고 나서야
겹쳐진 빛이 내 몸에 온전히 스며들어
어둠과 한몸이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산그늘에서 벗어난 후에야
빛과 어둠의 어쩔 수 없는 친화력을
우주의 엄청난 장력으로 갈라놓으려는
시간과 공간 사이에
사랑의 주기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한순간 산그늘에 들었다 벗어나는 일이
제 몸의 일부를 떼어
하늘과 땅에게 나누어주는 일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끝내는 제 몸에 아무런 약속도 남겨놓지 않고
또 다시 빛과 어둠으로 갈라서서
서로를 못내 그리워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늘에는 왜 매일같이
나와 상관없는 태양이 뜨고 지는지,





내 몸이 어둠일 때의 사랑이 왜 온전한 것이었는지

몰랐다, 나는 그때
내 몸이 대책 없이 캄캄한 감옥이었으므로




멍요일


오늘은 멍요일이다

어젯밤 말 안 듣는 아들을 심하게 때리고
내 가슴에도 멍이 들었다
오늘 아침 아들 종아리에 난 멍자국을 들고
파주 낙원공원묘지 아버지 산소를 찾아간다
그동안 나를 키우시며 멍들었을
아버지의 멍자국을 만져보러 간다

무덤 위에는 어느새 풀들이 무성하다
바람은 무덤위의 풀을 흔들고
자꾸 내 마음을 흔들어댄다

바람 속에 까칠한  멍자국이 보인다
세상에서 흔들리는 너무 많은 것들에게
더 이상 흔들리지 말라고 붙잡다가 생긴
멍자국을 가지고, 저 바람은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의 무덤은
당신의 멍을 하늘로 밀어 올리며





푸르게 푸르게 무성하다

나는 가지고 간 아들의 멍자국을
아버지 무덤에 가만히 대어본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푸른 멍이
반갑다고 반갑다고 서로 몸을 비비는지
감촉이 까실까실하다



박남희․
경기 고양 출생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폐차장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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