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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신작시/이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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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33회 작성일 08-02-26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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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영


피아노 조율


귀를 잃은 몇 개의 음들, 머리 위의 자질구레한 살림을 치우고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어. 끊어진 줄과 갈라진 공명판, 오래된 가구의 음계를 밟아 내려가면 풀썩이는 먼지가 서걱거리는 잠을 털어내고 있어.

갑자기 곡명을 대라는 요청, 나는 뒤집혀진 한 마리 벌레가 되어 발버둥치고 있어. 갑각의 뚜껑 속에서 물결치는 금속성 불협화음들, 바다 속 조명이 켜진 무대에 올라 녹슬지 않은 나의 음색을 찾는 중이야. 곤충의 눈을 버렸더니 올라오지 않던 건반 위로 해조음을 반짝이며 숭어들이 마구 튀어올라.

칠수록 맑아지는 음색으로 오늘은 꼭 미완성곡을 완성할 거야. 눈높이를 맞추고 누구든 반주하려고 해. 또 하루가 명랑해지도록 후렴은 스타카토로,  도돌이표는 무시하면서. 지루하다고 입 다물어버리면 나무관이 될 뿐이야. 차디찬 진혼곡이 뼈에 사무쳐오는.



엽총을 어디에 두었더라?


노을빛 바다 위를 걸어가는 노인을 만났다. 물고기의 뼈 속으로 들어간 헤밍웨이가 내게 총을 겨눈다. 탕, 그의 총구가 뿜어낸 실탄이 박힌다. 까맣게 타버린 청춘의 가슴에

뼈만 남은 나, 낚시 바늘에 내 시를 끼워 낚싯줄을 드리운다. 끼니도 거른 채 작살을 날린다. 상어가 놓아버린 물고기를 찾아서

상어와의 결투에서 이긴 나, 상어의 이빨을 훈장처럼 내 잇몸에 끼운다. 나를 게걸스레 물어뜯는 상어들, 나는 어디 갔어? 엽총을 어디에 두었더라?

빈 바다에 바람이 바뀌고 나는 다시 배를 띄운다. 아직도 작살을 손에 쥔 채 하루 종일 꿈을 쫒고 있다. 작살에 찍혀 언뜻언뜻 허연 아랫배를 드러내는 낯선 나와 사투를 벌이는 핏빛 시!


이채영(본명 이정란)
․2001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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