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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신작시/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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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93회 작성일 08-02-2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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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나무들의 입


봄이 되자
나무들이 입을 열었다
연노랑 부리를 가지마다 촘촘히 걸어놓고
바람의 소리를 모으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동그랗게 입을 벌리고
부리를 바짝 내밀고 있는 새순들
그때마다 나무는 몸을 흔들어 바람의 길을 열어준다
가진 것 다 내어주고 신음소리 베어 물었던
지난겨울의 침묵은 편안했는가
다시 또 출렁이는 신생의 바람 앞에
모질게 닫혀있던 물꼬 터진 듯
거침없이 흐르는 소리로
하늘을 밀어 올리고 있는
나무들의 잎, 입





고래가 사는 마을


고래가 사는 마을이 있다는군
고래로 만든 집에서
고래의 살과 뼈로 밥을 지으며
고래의 피로 담근 술을 마시고
고래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는군
고래 껍질로 만든 옷이나 구두를 신고
고래 지느러미로 모자를 만들어
거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고래들이 떼지어 다니고 있다는군
밤이 되면 허리에 작살을 찬 선원들
고래 뱃속처럼 어두운 광장에서
새로운 무용담을 쏟아놓고
사람들 고래의 소리로 환호한다는군
커다란 고래가 그려져 있는 걸개그림이
펄럭이는 포구에
고래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오래된 사원,
칠이 벗겨진 포경선 앞에서
고래심줄 같은 희망을 질겅거리며
바다를 떠난 고래의 복음을 되뇌고 있다는군
상징이 밥이 되는 시대
상징이 돈도 되고 땅이 되는 시대





고래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철없는 아이들도
빨갛고 노란 고래를 담벼락에 그려놓고
고래의 꿈을 팔고 있다는군
그 꿈 깊고 깊어 고래가 된 사람들
고래로 사는 마을이 있다는군


이정화
․200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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