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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지난 계절 작품 읽기(시)/이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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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14회 작성일 08-02-2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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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계절작품읽기【시】

갓 태어나는 것의 위대함
―문인수의 「검용소」
(≪애지≫ 2004년 겨울)

이상숙(문학평론가)


하늘 아래 첫 땅이 강원도 태백에 있다.
한강의 발원지 검용소엔 지금도 갓 태어나는 물, 어린 물소리는 앞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한 줄 소풍처럼 맑은 노래처럼 계속 출발한다.

족적은 빠짐없이 깊이 쌓인다. 반복은 결국 의미심장한 것, 이토록 단단한 암반에도 구불텅구불텅 새겨져
이끼 뒤덮인 초록의 수로가 길게 파였는데 이걸 두고 사람들은 용틀임. 龍자국이라 하지만 역사는
여기서 아직 새파랗게 꼼지락거리는 이쁜 애벌레,
이 산 일대의 적막이 보드라운 햇잎 같다.
―문인수의 「검용소」

여행지라는 낯선 풍경은 곧잘 시심을 자극하고 인상적인 시는 그 풍경을 옮겨놓으려 묘사와 설명에 몰두한다. 나 이전에 이미 다녀간 수만 시간의 인연을 회상하고 떠나온 일상을 굳이 상기하여 대조한다. 그러다 보면 종종 여행시는 묘사와 영탄, 감회와 초탈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발견. 과거의 시간을 회억하며 시는 유장해지고 비장해진다. 유장과 비장, 묘사와 영탄이 청신한 시어로 드러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문인수는 태백산 여행 중 만난 검용소의 시 「검용소」에서 언어예술로서의 시와 인식의 정수로서의 시의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입말로 구현될 시의 음상(音相)에 대한 고려와 시원에 대한 도도한 직관이 그것이다.
“첫 땅”의 ‘첫’, “어린 물소리”의 ‘소’, “소풍처럼”의 ‘처’, “노래처럼”의 ‘처’, “출발한다”의 ‘출’의 연결된 치음이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 ‘ㅅ’, ‘ㅊ’의 마찰음이 마치 소리내며 흐르는 얕은 물의 그것을 연상시키며 독자의 청각을 환기시킨다. 이에 “갓 태어나는 물”의 ‘갓’, “어린 물소리”의 ‘어린’, “소풍”, “노래”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어는 자연의 발원과 시원을 인간 아기의 생명으로 은유하는 이미지 계열을 형성한다. 음상으로 환기된 독자의 청각과 일련의 시어로 형성된 이미지 계열의 통일감은 시에 ‘생동’과 ‘안정’을 동시에 불어넣는다.
어린아이의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 같던 ‘시작은 어느새 “빠짐없이 깊이 쌓”이는 치밀함과 “의미심장”함으로 “단단한 암반”을 패어 “龍”을 새기는 웅장한 힘으로 시인에게 인식된다. 이때에 쓰인 “빠짐없이”, “결국”, “이토록”, “구불텅구불텅”의 부사어들은 자연의 발원과 시원의 도정에 압도된 화자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신비한 검룡이 살고 있고 국토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큰 물길의 발원지로서의 비의와 적막이 아직은 ‘어린것들’로만 보인다. 용틀임, 통자국이라고 부르는 “초록의 수로”도 아직은 “애벌레”, 성소를 품은 산의 적막도 그저 “햇잎” 같다고 한다. 아직은 그저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고 또 아무리 위대한 것이라도, 무릇 세상에 태어나는 것의 시작은 작고 약한 법이다. 태백산 중의 작은 연못[沼] 검용소(儉龍沼)에서 솟아난 “갓 태어나는 물, 어린 물”처럼.
“앞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물의 출발은 “소풍”이나 “노래”처럼 가볍고 경쾌한 “한 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어린 물은 태백의 험산과 정선 동강, 양수리, 한강을 지나 서해에 이르기까지 유장하고 도저한 물의 역사(役事)를 이룰 것이다. 그 힘은 “계속 출발”하는 데에 있다. 쉬지 않고 계속, 빠짐없이 두루 쌓고 다지는 반복은 종국에는 거대한 힘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므로 의심하지 않고 가리느라 머뭇거리지 않는 천진함이 “계속”과 반복을 가능케 한다. 위대함은 앞으로의 크고 길고 오랜 여정으로 드러날 것이지만, 미래의 창대함 때문인지, 시작의 순간은 이미 의미심장해져 있다. 샘솟은 물이 느리게 흘러나가 구불구불해진 물길은 龍틀임으로 호명된다. 폭, 넓이, 솟아나는 물의 양은 알아도 그 깊이는 측정할 수 없는 신비한 못, 그 못에는 검룡이 산다고도 하고, 국립지리원은 한강발원지라고 공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는 아직 “족적”, “깊이”, “암반”, “용자국”, “용틀임”, “발원지”처럼 무겁고 웅장하지 않다. “새파랗게 꼼지락거리는 이쁜 애벌레”이고 “햇잎” 같은 보드라움과 부드러움으로 이제 막 시작되는 것이다. 이 보드랍고 부드러운 것이 결국 시 첫 행의 “하늘 아래 첫 땅”으로서 역사의 시원(始原)이 될 것이다. 국토를 관통하여 바다에 이른 물은 어디로 갈 것인가, 또 계속 태어나는 물은 결국 어디서 온 것인가, 어린 것이 자라 위대해지고 위대한 것은 소멸하고 소멸한 것은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나는 법이다. 어린 것 속의 위대함, 그 속의 어린 것. 굳이 우주의 순환의 이법(理法)에 기대지 않더라도 물은 “하늘 아래 첫 땅”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용틀임의 몸짓으로 웅장한 여행을 마친 물은 용이 하늘로 오르듯 하늘에 오르고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땅으로 태어날 것인데 그곳이 곧 “첫 땅”일 것이다.


이상숙․
199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평론집 󰡔시인의 동경과 모국어󰡕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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