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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대학생의 독서 일기/고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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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깽 처절한 정원(이인숙 옮김, 문학세계사, 2002)
우리의 처절한 정원에서/석류는 얼마나 애처로운가
고은형(제주교육대학)
다랑쉬오름
해발 382.4m, 높이 227m, 둘레 3,391m, 면적 80만 464㎡로, 구좌읍을 대표하는 오름이다. 비자림에서 남동쪽으로 1㎞ 떨어진 지점에 남서쪽의 높은 오름(405.3m)을 빼고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다. 도랑·달랑쉬로도 불리는데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대랑수악(大郞秀岳)·대랑봉(大郞峰)·월랑수산(月郞秀山)·월랑수(月郞岫) 등으로 표기되어 오다가 현재는 월랑봉(月朗峰)으로 쓰인다.
남북으로 긴 타원형으로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며 북쪽은 평평하고 정상에 봉우리가 있다. 산정부에는 깔때기 모양의 원형 분화구가 크고 깊게 패여 있다. 화구의 바깥둘레는 1,500m, 화구의 깊이는 115m이다. 지름이 30여m인 바닥에는 잡초가 무성하며 산정부 주변에는 나무가 드문드문 있고 오름기슭에는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다. 대부분이 초지로 형성되어 시호꽃·송장꽃·섬잔대·쑥부쟁이 등 초지식물이 자란다.
주변은 제주도4·3사건 때 유격대원들이 활동 요충지였으며, 20여 가구가 살다가 폐촌이 된 다랑쉬마을(월랑동)과 1992년 제주도4·3사건의 희생자 유골 11구가 발견된 다랑쉬굴이 있다.
눈을 감는다. 한 발을 내딛은 자리엔 뽀드득, 처벅처벅, 사각사각 공허하게 울리는 소리만이 남는다. 지금 한 발을 내디딘 내 앞에 펼쳐진 것은 소리마저 삼켜버릴 듯 새하얗게 눈이 내린 허허벌판이거나, 혹은 곳곳에 물웅덩이가 깊게 패여 신발이며 옷이며 진흙투성이가 된 채 나아감을 두려워하게 된 밀림이다.
어쩌면 그곳은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채 간간히 나뭇잎 사이로 빛줄기가 새어나와 여기저기 거미줄처럼 엮어 있는 숲의 한 가운데일지도 모르겠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문득 우리는 발견한다. 지금 같은 곳을 맴돌고 있지는 않은지. 나아가야 할 방향의 실종에 대해 의심을 하는 순간 우리는 되묻는다.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여태껏 내가 지나온 그곳은 어디인지, 아니 내가 지나온 그 길이 실재하긴 하는지.
문득 눈을 떴을 때, 어릿광대 삐에로가 시야에 들어왔다. 보르도 법정 앞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그의 엉터리 화장과 너덜너덜해진 광대옷을 보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휘청이는 나를 보는 그의 눈 속엔 익살과 장난기 대신, 마치 지금의 나처럼 휘청이는 사람들의 잔상만이 남겨져 있었다.
법정 안으로 들어서려는 어릿광대 삐에로와 경찰의 실랑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묻는다. 왜 하필 어릿광대인가?
이를 설명할 재간이 나에게 없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그래도 대답해야 한다면 그가 어릿광대를 증오했었고, 어릿광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절망과 수치심을 느꼈던 유년을 보냈음을 미리 이야기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가 원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교단에 서서 위엄을 갖추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정에서는 가족과 함께 일요일 오후를 보내는 평범한 공무원 가정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의 기억 속의 아버지란 존재는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여행가방을 챙기고 달려가는 삼류예술가, 어릿광대로서의 삶을 더 중요시했던 사람이었다.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것, 지향하는 것을 선으로 그어놓으면 그 선 밖으로 삐딱해지는 현실에 대해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자신이 그어놓은 선과는 다르게 삐딱해진 현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어린 ‘나’의 분노는 곧 ‘어릿광대’에 대한 증오와 환멸로 폭발하게 된다.
따라서 유년의 ‘나’에게 있어 어릿광대는 증오스럽고 비참하며 부끄러운 감정의 발로였으며, 가족의 희생을 강요하는 공공의 적이었다. 어린 ‘나’가 진실과 맞닥뜨리기 전까지 어린 소년의 머릿속엔 웃음의 전도사로서의 어릿광대가 아닌, 마치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자신을 저 깊은 강물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낼 것만 같은 위협적인 존재로써의 어릿광대만이 존재한 것이다.
어린 ‘나’가 진실과 마주하게 된 사건은 온 가족이 다함께 베르나르 비키의 영화 ‘다리’를 본 저녁에 일어났다.
가스똥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어린 ‘나’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접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들이 꽈리를 틀게 된다. 삼촌의 이야기 속에서 어린 ‘나’는 자신이 알고 싶어 했던 것들의 진실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며, 마치 조각난 퍼즐을 꿰어 맞추어가듯 진실에 접근하게 된다.
이야기 속의 아버지와 가스똥 삼촌은 실제 변압기 폭파범이면서 동시에 인질로써 독일군에 잡혔고 십여 평 남짓의 구덩이에 갇히게 된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추웠으며 허기진, 죽음과 맞닥뜨린 절망의 순간에 그들이 만난 사람이 바로 보초병 베른이다.
가스똥 삼촌의 이야기 속에서 보초병 베른의 등장은 어린 ‘나’가 어릿광대에 대한 유년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아버지를 향한 이해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정도로 중요하다.
보초병 베른, 그는 바로 어릿광대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 죽음의 문턱에서 갈팡질팡하던 네 사람이 처음 본 그의 모습은 바보처럼 입을 삐쭉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먹거리로 묘기를 부리다가 실수를 연발하기도 하고 총대를 입에 대고 마치 트럼펫을 부는 시늉을 내는 그가 어릿광대였음은 훗날 그가 밝히기 전에도 이미 짐작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베른의 등장이 중요하다고 밝힌 이유가 단지 그가 과거에 어릿광대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덩이 속은 절망의 기운으로 가득했고, 갇힌 네 명의 사람들은 그들의 호흡에서까지도 죽음의 냄새가 났을 것이다. 그 순간, 베른의 등장으로 4명은 잃어버릴 뻔했던 삶의 기운과 웃음을 찾게 된다. 베른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들은 맘껏 웃을 수 있었다. 맘껏 웃는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눈, 코, 입, 가슴엔 생기가 넘쳤으며 심지어 허기를 느끼기도 하였다.
전쟁 직후 평생을 다른 이들 앞에서 몸을 낮추고 그들의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기를 원했으며, 이를 위해 하얀 칠의 얼굴, 우스꽝스런 복장에 빨간 가발의 어릿광대로써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어릿광대로써의 삶은 어쩌면 비 내리던 구덩이 속에서 올려다본 베른의 우스꽝스런 몸짓에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삶이 아들을 어릿광대의 모습을 한 상태에서 보르도 법정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남겨진 이들과 그들의 진실을 위해서.
진짜 폭파범이면서 동시에 폭파범을 잡기 위한 인질로 잡힌 상황이나 자신들이 죽음으로 몰고 갔으나 결국 그의 죽음으로 인해 새 삶을 살게 된 아버지와 가스똥 삼촌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상황의 아이러니함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웃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와 가스똥 대신 죽어간 남자의 부인이 알고 보니 니꼴 숙모였다는 반전은 작가가 탐정소설을 주로 썼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반전을 통해 사람들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무릎을 탁 치거나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핑 도는 감동의 순간에 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전쟁과 같은 끔찍하고 절망적인 순간이 있지만, 그 순간에 이어진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이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던 실존 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건을 참작해서 쓰였기 때문인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남겨진 사람들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서 점차 견고한 벽과 같은 공감대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하나같이 외칠 것이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진실을 향한 남겨진 이들의 발걸음이 계속되는 한 그들은 더 이상 처절하게 정원을 헤매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과거를 알고 지금 내딛는 한 발에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눈 덮인 벌판이라 하더라도,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로 한 줄기 빛이 아쉬운 공간이라 하더라도, 당장 내딛는 한 걸음 때문에 진흙탕에 빠지게 되더라도, 방향을 알기에 더 이상 처절함을 숨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덜컹거리는 차창 밖으로 얼핏 다랑쉬오름이 비쳤다. 모진 섬 바람에 저 커다란 덩치의 오름조차 흔들리는지 위태로운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나의 내면조차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진실을 사산한 상처로 기울어가는 섬 한 자락에서 우리는 진정 짙푸른 녹음을 기대할 수 있을까? 찬 바람에 코끝이 시려진다. 유독 추운 겨울밤을 지내고 나면 내일은 더 짙은 녹음을 잉태할 봄을 꿈꾸게 되지 않겠는가.
풀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이 곳, 우리들의 처절한 정원에서 한 줄기 빛만으로도 진실은 어린 생명마냥 꿈틀대며 사산의 아픔을 지워낼 수 있으리라.
순간 불안한 나의 시선이 멈춘 곳엔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오름을 오르고 있는 붉은 코의 어릿광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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