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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제 18호를 내면서/강성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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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환상성을 생각한다
이제 여름이 왔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올 여름은 예년보다 15일 정도 일찍 찾아왔고, 더위 강도는 100년 만에 가장 심할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질 전망이다. 그것이 언론의 과장 보도인지 사실일지는 견뎌봐야 알겠지만, 점점 여름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에 가난한 사람들은 겨울을 두려워했다. 먹을 것도 없거니와 무엇보다도 얼어 죽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무슨 말인지를, 칼바람이 몰아치는 추위에서 견뎌본 사람들은 그 고통을 안다. 밥을 짓고 개울물을 긷고 빨래를 하며 생활하는 것이 겨울에는 고통스럽다. 언젠가 무척 추웠던 설날, 서울역 앞 지하에서 노숙객 몇이 비명횡사했다. 이처럼 사회의 극빈층에게는 아직도 겨울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에게 겨울 추위는 언제나 군대의 추위이다. 강원도 오지 산골의 겨울 추위는 가히 살인적이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는 정상적인 활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무서운 기세의 동장군(冬將軍)을 보면서 무력한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었다. 그런 날씨에 얼음을 깨고 밀린 빨래를 하고 있노라면 몸이 언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의 많은 서민층에게 겨울은 그렇게 두렵지 않은 계절이다. 단순히 말해, 외출 안 하고 이불 덮어 쓰고 있으면 되는 계절 아닌가. 그런데 그들에게 정말로 두려운 계절이 등장했다. 바로 여름이다. 지구는 점점 온난화되어 가는데, 날은 덥고 에어컨은 없고, 잠은 자야 하는데, 잠은 오지는 않고 짜증만 나고……. 정말로 길거리의 노숙자들이 부러울 정도이다.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사람들은 에어컨을 사려고 할 것이고, 그들이 내뿜는 열기 때문에 거리는 더욱 더워질 것이다. 그 더위만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소외감도 심해질 것이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에게 여름은 점점 더 보내기 어려운 계절이 되고 있다. 올 여름, 어떻게 지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런 여름에, 피서를 갈 수도 있고 시원한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수박을 먹으며 공포 소설을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약간 고전적이긴 하지만, 여름은 역시 공포물을 보면 더위를 식히게 된다. 호러물이든지 스릴러물이든지 미스터리물이든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끈적끈적한 그 무엇을 접한다면 더위는 어느새 사라지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환상성(fantastic)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해리포터 시리즈도 그렇고, 그것을 영화화해서 엄청나 흥행을 기록한 사실도 그렇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예술은 환상성을 지니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산물이 바로 예술품이라면, 그것은 매체간의 특징이나 장르의 특성을 떠나 환상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비약이 될 수 있다. 작품이란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작가가 만들어낸 상상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고로 환상성은 현실성(realistic)과의 관계 속에서 조망되어야 한다.
≪리토피아≫ 18호는 1년 동안 진행해 왔던 세기말 한국문학의 비판적 반성의 마지막 화두를 다루었다. 그간 ‘디지털 담론의 허와 실, 남겨진 문제점들’, ‘페미니즘의 반성적 성찰’, ‘생태(환경) 문학을 점검한다’ 등을 다루었는데, 이제 그 마지막 순서로 지난 세기말 횡행했던 환상문학 담론에 대한 메타적 접근을 하고자 한다. 지난 세기말 환상문학에 대한 많은 담론들이 있었지만, 지금도 역시 환상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소설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이번 호는 지금 환상문학에 대해 성찰해 보았다. 「환상성, 현실의 깨진 조각거울」(김남석), 「변신하는 마녀들의 잔혹 이야기-천운영 소설의 환상성 양상」(오윤호), 「불안과 매혹-시에 있어서 환상성의 문제」(백인덕), 「삶의 이원성과 화려한 환상의 유희-독일낭만주의 작가 에. 테. 아. 호프만의 환상문학」(곽정연) 등의 글을 통해 비평․소설․시․비교문학의 환상성을 집중적으로 조망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젊은 시인 조명’에 집중했다. 다른 호와 달리 세 분의 시인을 조명했다. 이것은 젊은 시인에 대한 ≪리토피아≫의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영산, 우대식, 김사이 시인은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젊은 시인이다. 그들의 시 세계를 부드러우면서도 매끈하게 짚은 조하혜, 하상일, 고명철, 세 필자의 글을 통해 새로운 시인들의 시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이번 호부터 ‘서평’을 다시 게재하게 되었다. ‘지난계절 작품읽기’가 지난 계절 문예지의 작품을 비평적으로 조망하는 것이라면, ‘서평’은 단행본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숱한 단행본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다루지 못했는데 이제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글을 보내주신 필자들께 감사드린다.
―강성률(영화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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