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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특집/오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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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961회 작성일 08-02-26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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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환상문학, 환상의 리얼리티?


변신하는 마녀들의 잔혹 이야기
―천운영 소설의 환상성 양상―

오윤호(문학평론가)



사실적 묘사가 만들어내는 환상성
90년대 이후 환상성 혹은 환상-문화라는 사회적 현상은 우리가 지각하는 범위 내에서는 상당히 폭넓게 확산되었음을 의심할 수 없다. 소설을 영화화한 <반지의 제왕>과 <헤리포터 시리즈>는 고도로 과학 문명화된 현대인들을 마법과 정령들이 숨쉬며 살아가는 어느 신비로운 세계로 초대했으며, 청소년들은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워 오브 월드크래프트’와 같은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중세의 신비주의와 과학적 산물들이 교묘하게 혼합된 환상적인 세계를 유영한다. 이들의 특징은 환상성이 철저하게 상업적 목적을 위해서 기획된 상품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비판적 문제의식 없이 현실과는 또 다른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영화 관객과 인터넷 사용자는 토도로프가 언급했던 ‘기이함’ 혹은 ‘낯섦’의 망설임을 느낄 사이도 없이 감각적 쾌락과 흥분에 빠져들게 한다.
마찬가지로 문학에 있어서도 환상성을 표현의 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단편화된 개인의 일탈적 감정과 환각적 경험에 치우치거나 소재 차원에 머무르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리고 80년대 중반 이후 무협소설과 판타지문학의 장르적 확산은 전통적인 순수소설과는 다른 맥락에서 환상문학이 이해되었고 소비되었다. 사실 소설이라는 것이 18세기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서 비판적 세계인식을 무기로 형성된 장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 문학적 재현에 있어서의 환상성을 언급하는 것은 소설의 태생과 미학적 조건에 걸맞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이 문제적 세계와 문제적 개인 사이의 아이러니한 관계를 비판적 시선으로 재현하려고 한다면, 그 사실 효과로서의 환상성은 소설의 미학적 조건에 적합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구의 이론 소개나 단편적인 비평적 언급을 넘어선 지점에서, 환상성에 관한 보다 명징한 개념화와 그것을 재현한 작품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비평적 과정이 필요하다 하겠다.
낯설고 기괴한 세계에 대한 흥분과 몰입과는 다른 현대소설 나름의 환상성을 어떻게 비평적으로 서술할 수 있을 것인가? 다음은 2000년 등단 이후 극사실주의적인 묘사와 환상적 결말 구조의 형식이 많은 평론가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천운영 소설의 한 장면이다.

골목을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콧속을 후벼 판다. 단백질 타는 노린내, 응고된 피 냄새, 웅취(雄臭), 젖은 소털 냄새, 비계 썩는 냄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냄새는 더욱 강렬해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 분만 지나면 그 냄새들은 폐부 깊숙이 들어와 내 것이 되고 만다. 내 몸에 냄새를 빨아들이는 강력한 필터가 숨겨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 냄새에 흡착되는지 모르겠다. 이곳을 다시 나갈 때 몸에 밴 피비린내를 털어내며 숨을 골라보지만 그 냄새는 그녀와 내가 사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어김없이 다시 풍기곤 한다.(󰡔바늘󰡕, 42면)

인물서술자의 예민한 감각은 시각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살기어린 골목길의 풍취를 세밀하게 느끼고 있다. 그저 평범한 동네의 골목에서 느낄 수 있는 평범한 냄새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살기와 비릿한 식욕 그리고 떨쳐낼 수 없는 동물성의 멍에를 느낄 수 있다. 사소한 부분까지 가차 없이 까발려진 그 대상은 개체성, 특수성, 선정성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냄새는 더 이상 생활의 발견이나 일상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에 행하는 폭력이며, 그에 대한 공포의식을 상징한다. 가장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허공 중에 떠돌아다니는 냄새를 그려내는 가운데, 하나의 폭력적 존재가 자신의 생명력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심리, 강자에 대한 공포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직설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언어가 정서적인 파토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너무나도 사실적이기 때문에 환상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이러한 표현법은 천운영 소설의 환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천운영 소설에 있어 익숙한 것을 섬세한 묘사로 더 낯설게 하면서 보여주는 상상력은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감각을 깨닫게 하고 그 대상에 대해 보다 집요한 시선을 소유하게 만든다. 특히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도 훨씬 예민하고 날카롭게 작동하는 감각기관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의 육체적 반응은 그 어떤 언어보다도 예민하게 삶의 비의를 꿰뚫는다.” 그리고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대립을 통해 극적 긴장을 놓치지 않는 과정에 그녀만의 환상성은 위치해 있다. 또한 황도경도 “그녀의 느리고 섬세한 서술은 객관적이고 엄밀한 사실성에 기여하기보다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낯선 환상성의 조성에 기여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환상성은 여성인물과의 관계에서 성장과 여성성의 징후로서 나타난다. 이렇게 본다면, 경계를 넘어서려는 여성의 일탈적 욕망이 천운영 소설의 환상성을 구체화하는 서사적 동력이면서, 극단적인 예민한 감각과 세세한 묘사는 그것을 지탱하는 마녀의 요술지팡이가 된다.

잔혹한 영혼 속에 그리는 푸르른 이상향
천운영의 󰡔바늘󰡕은 환상적 장면과 대상이 환상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 묘사와 재현 그 자체가 낯선 감정을 환기해낸다. 비유적 상징을 통해 대상을 모호하고 불명확하게 기술함으로써 ‘그럴듯하게’ 대상을 표현하는 문학적 양식과는 달리 보다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더욱 낯설고 생경하게 만든다. 이제 환상은 일종의 세밀한 묘사의 잉여적 산물이 된다.

이렇게 미연의 품속에서 고기냄새가 아니라 향긋한 바람 냄새를 느끼며 식물처럼 자랄 수는 없을까?
알몸이 된 그녀가 이번엔 내 옷을 모두 벗겨낸다.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휘감기더니 온몸이 간지러워진다. 여리고 부드러운 싹이 살갗을 밀고 올라오는 것 같다. 나는 팔과 다리를 활짝 펴고 그녀를 안는다. 가슴팍에서 가늘고 여린 이파리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그녀가 내 수풀을 한입 가득 베어 문다.(󰡔바늘󰡕, 58면)

아내는 야생의 초원을 가졌다. 아내의 몸속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맹수와 성난 발길질을 하는 암말과 살진 들소가 산다. 맹수의 시체를 향해 덤벼드는 검은머리독수리와 독수리에 쫓기는 연약한 새도 있다. 나는 수많은 동물들의 발굽소리를 들으며 초원 위를 서성일 수밖에 없다.(󰡔바늘󰡕, 164면)

첫 번째 인용문은 「숨」에서 ‘푸른 숲’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미연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기술한 것이다. 소골을 탐식하는 노파의 육식성은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그러한 노파의 식욕을 닮아가는 ‘나’는 ‘목신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미연의 눈을 보면서 탐욕스러운 육식을 느꼈었다. ‘무서운 식욕’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은폐된 신체 훼손 혹은 성적 폭력에 대한 환각이 혼재되어 있는 시선이다. 그러한 환각 속에서 일탈적인 성욕을 드러내고 반사회적인 살해의 욕구마저 느낀다. 동물성과 식물성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나’는 극의 마지막에 대자연의 일부인 식물이 되어 미연에게 먹히는 환각에 빠지게 된다. ‘먹는다/먹힌다’의 폭력적․성적 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두 번째 인용문은 임신을 하지 못하는 아내로부터 이유 없이 구타를 당하는 고물상 주인이 자신의 아내를 묘사한 장면이다. 인공수정을 통해 아내가 임신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을 때, 아내의 폭력은 사라졌지만 사내는 예전의 그 폭력적 상황을 그리워한다. 사내는 폭력적 삶이 강요한 습관 혹은 내성의 무서운 가속력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사내는 그녀의 폭력성 속에서 철저하게 자연의 힘에 순응하는 ‘야생의 초원’을 상상한다. 그래서 아내의 폭력성 속에서도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행복할 수 있다는 피학적 즐거움을 느낀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사건과 ‘무언가를 꿈꾼다’는 사건 사이의 서사적 긴장이 천운영 첫 번째 소설집에서 찾을 수 있는 환상성의 내적 구조를 이루게 된다.
두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천운영 소설의 환상성은 남성 서술자의 내면 속에서 여성의 이미지와 대자연의 푸른 숲 이미지가 결합되면서 발생한다. 이들의 숲에 대한 환각적인 경험은 그들의 일상이 가지고 있는 비열한 동물성을 강조하면서 암컷과 수컷의 구별을 정당화하는 동물성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욕망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환상을 가능하게 하는 서사적 원인은 탐식과 폭력이다.
천운영 소설에서 탐식과 폭력은 긴밀하게 연결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권력적 관계를 탐색하는 동물적 본능으로 그려진다. 가해자는 ‘날고기를 즐길 줄 아는 식성’, ‘소골을 손질해서 먹을 만큼의 집요함’, ‘잔인하게 곰장어의 껍질을 벗기기’ 등 보다 능동적인 탐식을 강조하며, 어쩌면 자신의 살이 씹히는 느낌마저 유희하려든다. 수동적 인물들은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어 잡혀먹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일상을 유지하며 행복하다고 자위하려 한다. 이렇듯 탐식과 폭력은 인물들 간의 권력적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기 위한 유일한 사건이라 말할 수 있다.
바로 그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푸르른 초원을 꿈꾸게 만든다. 공포와 두려움은 인물로 하여금 환상 속에 빠지는 동기를 제공한다. 관념적 육체의 탈을 찢고 자신의 신체 위에 푸른 생명의 상징을 새겨 넣는 행위는 감각 속에서 육체를 욕망할 줄 아는 여유이면서 핏물 배인 사투인 것이다. 인물들은 환상을 환상으로 이해할 만큼, 자신들이 경험하는 환상적 현실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최소한의 행동으로 최소한의 공포를 느끼기 위해서 자신의 인식과 행동을 반성적으로 사유한다. 즉, 자신이 경험하는 현실이 환각의 세계가 잘못되었음을 알지만 그 경험의 감각적 확신 때문에 행복을 느꼈던 것이다.

변신을 꿈꾸는 자들의 슬픔
천운영의 첫 번째 작품집 󰡔바늘󰡕이 폭력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푸른 숲에 대한 환상을 창조해 냈다면 두 번째 작품집 󰡔명랑󰡕의 경우는 파괴된 가족관계 속에서 유일한 자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자기 살해의 욕망을 실현하는 환상을 창조한다. 이때 신화나 동화의 이야기가 중요한 환상적 소재로 차용되는데, 여성에 대한 남성적 환상을 강화하는 ‘늑대’, ‘세 번째 유방’과 같은 신화 속 상징들이 바로 그것이다.

소녀는 코끝에서부터 꼬리까지 손끝으로 세심하게 쓰다듬는다. 늑대야, 이제 나 좀 데려가렴. 소녀의 훈훈한 입김이 퍼즐에 가 닿았다. 소녀의 눈에 늑대가 어린다. 그림 속 늑대가 서서히 몸을 부풀린다. 두 발을 쭉 뻗어 기지개를 펴고 몸을 흔들어 턴다. 흰 털이 부스스 일어난다. 늑대가 소녀의 코에 코끝을 비비고는 가마를 뛰쳐나간다.
소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늑대를 쫓아나간다.(󰡔명랑󰡕, 67-68면)

내 손에 들린 칼이 네 가슴에 꽂힌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어. 칼은 네가 장미꽃이라고 말하던 핏줄 위에 꽂혔어. 칼을 빼자 피가 솟구쳐 내 얼굴에 튀었지. 비틀거리는 너를 팔에 안고 다시 한번 칼을 찔러 넣었어. 칼을 든 손을 나도 제어할 수 없었어. 너의 배꼽을 찌르고 너의 허벅지를 너의 갈비뼈를 너의 심장을…… 꼭 마법에 걸린 사람 같았어. 내가 마지막으로 칼을 찔러 넣은 곳은 너의 세 번째 유방이야. 비너스의 세 번째 유방.(󰡔명랑󰡕, 158-159면)

첫 번째 인용은 「늑대가 왔다」라는 작품에서 야성적인 ‘늑대’를 환각적으로 경험하던 소녀가 그림 맞추기 속에 있는 늑대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장면이다. 일순간 그림 맞추기 속 늑대가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살아있는 늑대로 변한다. 소녀는 그 환상적 상황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며 늑대를 따라가다가 죽고 만다. 살았으나 죽고, 죽었으나 산 존재라는 모호함은 독자로 하여금 소녀가 늑대여인이 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한다. 두 번째 인용은 비극적인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사내가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자신을 떠나려 하자 그녀를 칼로 죽이는 장면이다. 그는 이 잔인한 살해의 상황이 마녀의 저주에 걸린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본 환각을 광기의 산물로 간주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녀에 대한 가장 명확한 사랑이거나 구원으로 믿는다. 그러나 낭만적 동화로 형상화하려 했지만, 실제로 그는 동거녀를 살해한 범죄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죽어버린 그녀의 몸 위에 그려내는 ‘비너스의 세 번째 유방’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진부한 상상력을 강화한 것으로 작품의 초반에는 상실한 모성에 대한 비유적인 대상으로 제시되다가 ‘살해’라는 극단적 사건으로 전환된 것이다.
어쨌거나 두 인용문은 불완전한 성장과 그 균열을 메우고자 하는 환상적 경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늑대가 왔다」의 경우 여성의 성적 환상을 의도적으로 늑대 이야기와 결부시켜 하나의 비극적 여성 성장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세 번째 유방」의 경우에도 이미 신화적으로든 자연적으로든 퇴화해버린 ‘비너스의 젖가슴’에 대한 강박적 인식을 기술하며 소유하지 못했던 모성에 대한 파멸의 욕망을 표현한다. 이때 환상은 그들의 성장통을 훌륭하게 중계하며 보다 강한 존재로 만들어주고, 좌절하지 않을 힘을 부여해 준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모든 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이때 인물서술자는 사건을 정확하게 기술하면서도 환상 속에서 그 사건을 반성적으로 사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식은 ‘마녀’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를 재현하면서 보다 구체화된다. 천운영 소설에 나오는 마녀는 인간의 이성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화할 수 없는 혹은 비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신비화 전략의 대상이다. 천운영 소설에서 ‘마녀’의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숨」에서는 육식을 즐겨하며 초식동물을 향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할머니가 ‘마녀’에 비유되었고, 「늑대가 왔다」에는 사냥당한 후 뼈가 발려진 순록에게 늑대여인이 다가와 “뼈를 맞추고 숨을 불어 넣”는 주술을 행하기도 하고, 「세 번째 유방」에서는 ‘너’를 “세 번째 유방을 가진, 저주의 마법을 부리는, 밤 외출을 하고 악마와 교합하는 네 몸뚱이를 빌려 살고 있던 마녀”라고 칭하면서 인간 내면에 기생하는 악마적 존재로 형상화한다.
주술과 제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 마녀는 ‘변신’ 그 자체를 의미한다. 「바늘」에서도 신체 위에 문신을 새김으로써 나약했던 한 존재가 강하고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숨」에서는 스스로가 푸르른 초원의 풀이 되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물들의 변신은 찰나의 순간만 만족할 수 있는 환상이며 죽음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불가능성을 깨닫는 순간에 인물 서술자들은 슬픔을 은폐하기 위해 상징적 죽음이라는 신화적 환상을 차용하게 된다. 이때의 슬픔은 존재 없음에 대한 슬픔이다.
이에 그들의 환상은 푸른 숲을 꿈꿀 때의 즐거움을 동반하지 않고, 자기 살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행하게 된다. 「늑대가 왔다」에서는 생명을 부여할 힘을 가지게 되는 순간 죽게 되고, 「세 번째 유방」에서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녀의 여성다움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녀를 죽이게 된다. 타살이든 자살이든 인간의 폭력적 행위가 극단에 이르면서 자연의 시간이 아닌 주관적인 환각의 시간을 인물들 스스로에게 부여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더 이상 부활할 수 없다. 이전의 푸르른 초원에 대한 환상은 비극적 결말을 은폐하고 자신의 도덕적 의식으로부터 탐욕스러운 욕망을 망각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변신에의 욕망은 현재의 시간 속에 멈추어 버린 생명력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무위의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환상, 마녀의 주술을 넘어서
이상에서 천운영 소설에 나타난 환상성 논의를 현상적 차원에서만 찾지 않고, 서사 구조와 감성 차원에서 살펴보려고 했다. 환상성 그 자체가 소재 차원의 기이함으로 남지 않고, 텍스트 담론차원에서 효과적인 환상효과로 발현될 것인지를 판별하는 작업을 수행하려고 했다. 소설 속에 창조된 세계 자체가 아무리 현실 사회를 적절히 모방한다 하더라도 허구라는 비현실성 그 자체가 새로운 감각과 이성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독자는 더 이상 소설을 통해 사유하고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환상성의 가치는 현실비판에 있다.’라는 상투적인 정의를 소설 작품 속에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환상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이함과 신비로움은 다른 어떠한 소설적 장치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독자에게 남기기에 충분하다.
천운영 소설의 환상문학적 특성은, 애인의 신체를 왜곡하여 경험할 정도의 성도착과 파괴된 가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변질된 인간관계를 주로 다루고, 잔인한 살인과 부도덕한 방관을 주요한 소재로 다룬다는 데 있다. 또한 야생의 푸른 초원의 이미지와 죽음의 순간이 만들어내는 구분할 수 없는 생과 사의 혼성성이 환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천운영 소설의 환상은 매우 지적이라는데 특징이 있다. 삶의 맥락에서 갑작스럽게 침입한 기이함이 아니라 철저한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 생산된 환상인 것이다. 이미 살해 이전부터 세 번째 유방에 대한 살해자의 상상은 계속되었다. 「그림자 상자」에서도 자신의 죽음 순간을 경험하기 위한 치밀한 조사와 예행연습을 한다. 그러고 나서 끝내 ‘그림자 상자’를 따라 걷는 환상에 젖는다. 이때, 인물과 서술자가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그와 같은 육체적, 윤리적, 초현실적인 경험들은 독자에게는 불안과 모호함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모호함은 지성의 빈 틈새를 의미하고, 새로운 독서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소설에 걸려있는 사실성이라는 주술을 풀어낼 만하다. ‘공포’와 ‘슬픔’이라는 감성을 2차적인 기의로 환기해내는 천운영 소설의 환상성은 이성적 사유의 그늘에 감추어져 있는 인간의 내면의식에 맞닿아 있다.



오윤호․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평론 「즐김과 존재함의 사이-성석제론」 등
․현재 서강대, 청주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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