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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특집/백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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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81회 작성일 08-02-2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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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환상문학, 환상의 리얼리티?


불안과 매혹-시에 있어서 환상성의 문제

백인덕(시인)



1. 첫 번째 난관-접근의 어려움
환상성(fantastic)은 언제나 현실성(realistic)과의 관련 아래서 탐구 되어야 한다. 이 첫머리가 글을 시작도 하기 전에 나를 곤혼스럽게 했다. 언제가 환상성에 대한 내용을 요약했던 적이 있었는데 꺼내보니 그 첫마디가 바로 그랬다. 뿐만 아니라 사실 나는 환상을 상상력(imagination)의 하위범주거나 상상력에서 쫓겨난 공상(fancy)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논자들과 중복될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우선적으로 환상성에 대한 이론적 정리를 하고 시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츠베탕 토도로프의 경우에는 ‘환상문학’을 문학의 한 변종, 장르를 가리킨다고 보았다. 󰡔환상문학서설󰡕에서 토도로프는 ‘환상’을 ‘괴기(현실의 법칙으로 해명 가능)’와 ‘경이(새로운 법칙이 요구됨)’의 경계선상에 놓인 장르로 보았다. 그리고 환상을 초자연과 구별하여, 독자가 초자연이 내재된 텍스트에 접하면서 갖게 되는 특정한 반응인 ‘망설임’에서 환상의 장르적 기능을 밝히고 있다.
반면 로즈마리 잭슨은 환상은 두 가지 방식으로 욕망을 표현한다고 본다. 욕망을 이야기하거나 표명하며, 문화질서의 교란을 통해서 그러한 욕망을 배출한다. 대부분의 경우 환상문학은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즉 욕망은 ‘이야기’됨으로써 ‘배출’된다. 그것은 작가와 독자가 대리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상문학은 지배적 가치체계의 바깥에 있는 무질서와 위법을 잠시 동안 개방한다. 그럼으로써 환상은 문화적 질서의 근본 토대를 제시한다. 또한 풍미하고 있으면서도 ‘부재’했던 문화를 추적한다. 󰡔환상: 전복의 문학󰡕에서 잭슨은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접근하였는데, 환상은 문화적 신화를 통해 부르주아 문화의 억압적인 모순들을 표출한다고 보았다, 즉 환상을 전복과 저항의 문화 양식으로 간주하였다.
끝으로 캐스린 흄의 경우, 환상과 미메시스를 문학 창작의 이면에서 작용하는 한 쌍의 충동으로 보고 있다. 이따금 그것들을 각기 분리해서 다루려고 했지만, 환상과 미메시스는 매우 밀접하게 상호 결합되어 있으며 쉽게 분리될 수 없다. 양자의 힘은 겹쳐지기는 하지만, 경쟁적이기보다는 종종 상호보완적이거나 상승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문학이 그 독자에게 의미감을 제공하는 한, 환상과 미메시스는 거의 항상 뒤얽히기 마련이다. 󰡔환상과 미메시스󰡕에서 흄은 미메시스가 문학과 현실을 등치적 관계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라면, 환상은 등치적 관계 너머에서 현실을 접근하는 방식으로 보고 있다. 문학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상과 미메시스의 상호작용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요약하자면 토도로프는 환상을 장르론적 시각에서 접근했고, 잭슨의 경우에는 사회적 기능을 강조했으며, 흄은 환상을 예술적 충동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우리 시에 있어서 환상성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잭슨에서 흄으로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보다 우선적으로 몇 가지 사회문화적 변화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2. 환상-통제 불가능한 상상력?
지난 세기말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지구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거대담론을 다시 끄집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90년대 중반 우리 시에 나타난 새로운 시 쓰기의 경향 하나를 거론하고자 한다. 김준오는 󰡔현대시의 환유성과 메타성󰡕이라는 저서에서 90년대의 시가 언어 선택의 원리가 우세한 은유에서 언어 배열의 원리가 우세한 환유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그는 환상성보다는 ‘환상’을 서사체의 중요한 기법으로 보고, 우리 시가 묘사 중심에서, 서술 중심으로 그리고 그러한 경향의 핵심에 ‘환상기법’이 사용되고 있다고 본다.
그가 지적한 서사체의 선호 배경은, 첫째로 현대시가 삶의 과정이나 조건을 시의 제재로 선택하는 현실지향적 경향이 강하며, 둘째로 특이하게 패러디의 부각이 서술시의 부각의 배경이거나 적어도 양자가 맞물려 있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며, 셋째로 이 패러디의 한 변형일 수도 있는 현상으로서 현대시가 영화, 텔레비전 연속극, 만화, 대중가요, 탐정추리소설, 공상과학소설, 외설물 등 대중예술 또는 대중예술형식들을 채용함으로써 현대시는 서사구조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서사물들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파급되어 있고 현대시의 서사체 선호는 이런 시대적 반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더불어 또 하나 지적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이른바 ‘키치 세대’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유하식으로 명명하자면 ‘세운상가 키드’들이 그 이전 세대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영상적 감수성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TV는 나의 눈

섹스, 거짓말 그리고
사회적 폭력 및 성적 불안을 조성하는 혐의로 체포된
통제 불가능한 상상력
내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나는 육십 년간의 여행을 떠난다
뒤엉킨 세상으로 나를 돌려주는 것은 암시장에서 사온 불법 비디오테이프
―하재봉 「비디오/TV는 나의 눈」 전문

하재봉의 경우 가장 일반화한 대중매체인 텔레비전은 그가 세상을 보는 창이다. 이 작품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이성에서 감성으로, 중심에서 주변으로, 문자에서 영상으로의 이행 등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창으로 비춰지는 세상은 ‘통제 불가능한 상상력’의 세계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상상력은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어져왔다. 공상과 상상력은 주로 이미지의 결합의 기능에서 구분된다. 공상은 우연한 일치에 의존하여 대상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며 정신적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기계론적이고 유물론적인 것이며, 대상에 구속을 받는 일정한 크기를 나타낸다. 반면에 상상력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며 단순한 물질적 유사성이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가치를 띠고 있고, 대상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한다. 나아가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상상력은 외계의 대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여, 그것을 스스로 궁극적인 것 즉 이상적인 것으로 삼고 있는 상태로 변화시켜 나가는데, 그 작용이 우리들의 외적인 삶이나 실용적인 목적이나 생리적인 욕망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기에 독자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하재봉의 시는 비록 ‘상상력’이라는 이름을 내걸고는 있지만, 그것이 ‘통제 불가능’하고, 그 내용물들이 ‘섹스, 거짓말, 사회적 폭력, 성적 불안’과 같은 금기시되어 왔던 것들이라는 점에서 ‘환상성’의 징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 여배우 이름이나 외우며 사춘기의 전부를 허비했지 저수지의 개, 같은 날들이라고 비웃지 말게 난 모든 종류의 진지함을 경멸했어, (중략) 이발소 그림, 화신극장의 쇼걸, 만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해적판 레코드 위에서 희미하게 광란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바기나에 난 점이 인상적이었던 배우……폐기물들의 환희……뭐 그딴 것들.
―유하 「드루 배리모어, 장미의 이름으로」 부분

하재봉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유하, 함민복, 함성호 등에게서 두드러져 보이는 점은 앞서 로즈마리 잭슨의 언급처럼, 환상이 지배적 가치체계의 바깥에 있는 무질서와 위법을 잠시 동안 개방해준다는 것을 잘 알고 그 개방상태에서 자유로운 놀이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난 모든 종류의 진지함을 경멸했어’라는 유하의 고백은 차라리 선언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통제 가능한, 어쩌면 억압적으로 느껴졌던 ‘상상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환상’(기법의 뜻인지, 개념을 의미하는지는 필자도 여전히 난처하다)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확대해나갔다고 할 수 있다.

3. 환상-등치적 관계 너머의 현실?
프로이트는 1908년 행한 〈문학창조와 백일몽>이라는 강연에서, 시적 활동의 흔적은 유년기에서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놀이’에 있다고 했다. 그는 작가와 어린이를 놀이와 상상이라는 두 행위로 비교하면서 둘 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진지하며 열의를 쏟고, 자신들의 행위를 현실과 구분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보았다. 아이는 성인으로 자라면서 곧 ‘놀이’를 그만두고, ‘놀이’에서 얻었던 즐거움 대신 ‘공상(백일몽)’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상의 경우는 어떠한가? 환상이 가지는 긍정적 가치를 가장 옹호한 논자로 우리는 캐스린 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흄은 환상을 ‘사실적이고 정상적인 것들이 갖는 제약에 대한 의도적 일탈’로 정의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녀는 문학을 끌어온 두 충동으로 미메시스(모방)와 환상을 들고 있는데, 미메시스가 현실을 말 그대로(전통 리얼리즘), 모사한다면 환상은 일탈을 통해 현실의 이면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시의 경우 이러한 측면, 다시 말해 환상성을 현실성과의 연관 아래서 논의할 수 있는 작품들이 생산되고 있다.  

주황색 플라스틱에 까만 글씨를 판 이름표를 달고 나는 매일매일 학교에 간다 비 맞은 구두가 아직 덜 말랐는데 나 오늘 학교 안 가면 안돼? 엄마는 송곳처럼 뾰족이 깎은 세 자루의 연필과 면도칼을 세워 내 호주머니 속에 넣어준다 가다가다 어김없이 가나안 정육점 앞에서 외팔이 소년을 만난다 외팔이 소년은 제 한 팔을 갈아먹은 고기 써는 기계에 내 한 다리를 쑤셔 넣고는 오늘도 영구 흉내를 내보인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바람이 외팔이 소년의 손 없는 팔에 퉁퉁 불린 소매를 달아준다 똑같지? 아니아니 하나도 안 똑같애 외팔이 소년은 불어난 소매 끝에 갈고리를 끼워 내 목둘레를 둘러 긋기 시작한다 똑같은 거야,
―김민정 「나는 안 닮고 나를 닮은 검은 나날들」 부분

멈추지 않는 지하철 안에 얼룩말들이 달리고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움직이는 선명한 색을 잡으려고 날뛰었다 잡힌 가죽은 흑과 백으로 잘려졌다 좀더 많은 가죽을 차지하려고 사람들이 다투는 동안 벌거벗은 아이들의 얼굴이 증발하고 있었다 가죽이 벗겨진 머리에 회색 시멘트가 부어지고 얼굴 없는 아이들은 알몸으로 자전거를 탔다 아이들의 살갗에 얼룩무늬가 새겨지고 있었다 자신의 손과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핥아먹던 사람이 자전거를 붙잡으며 결벽증에 걸린 비누에 칼과 유리가 박혀 있었다고 고함을 질렀다 아이들이 다른 칸으로 달리고 있었다.
―정재학 「얼룩말」 전문

인용한 두 편의 시는 그로테스크하다. 겨우 기괴함 정도로 번역되는 그로테스크는 지난날 환상적인 시들을 표현하는 데 주로 동원되곤 하였다. 현실, 또는 현실성의 붕괴나 재현의 위기 등의 담론은 ‘환상성’의 문제와 결부되어 제기된 것은 아니다. 그 문제는 오히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이 ‘가상현실’로 촉발된 ‘리얼리티’ 문제는 그것이 전복적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환상’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엄경희는 󰡔빙벽의 언어󰡕에서 다음과 같은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근 들어 실험되고 있는 일군의 환상시는 이러한 공포의 표상물을 통해 현대인의 허위적 삶을 폭로한다. 그것은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만그만한 풍광과 적당한 감상을 얼버무려 놓은 엷은 정취의 시들이 여러 지면들을 차지하고 있는 풍토 속에서 김민정과 정재학, 여정의 환상시는 새로운 시적 가능성을 타진해 보게 하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기존의 미메시스적 문법체계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하고자 한다는 면에서 비슷함을 지닌다.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기법들이 이들에 의해 처음 시도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환상문법은 현실에 대한 연대의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를 담보해낼 가능성을 지닌다.

말 그대로 전망이고, 환상이 ‘사실적이고 정상적인 것들이 갖는 제약에 대한 의도적 일탈’로서 현재의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면, 그 환상시들 또한 익숙해지고, 진부해지는 것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4. 두 번째 난관-글을 마치며
몇 분의 평론가에게 원고를 청해 보고, 주변에 탐문도 해보았지만 대부분 ‘서사’로서의 환상성이 아닌 서정적 환상성에는 고개를 저었다. 변명이지만 필자도 환상시라는 좁은 의미의 장르적 개념이 있는지, 아니며 환상이라는 기법만을 지칭해야 하는지, 아니면 상상력과 대등한 창조적 인자로 보아야 하는지, 글을 쓰는 내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필자의 역량 부족을 탓해야겠지만, 신화, 전설, 동화, 매일같이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일들, 익숙한 것에서 전혀 낯선 것까지, 소재는 무궁무진한데 환상적이라 부를 만한 시가 생각보다 많이 생산되지 않고 있는 현실도 안타깝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신세기에……



백인덕․
1964년 서울 출생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한밤의 못질󰡕 󰡔오래된 藥󰡕
․한양대, 한양여대 강사 ․본지 편집위원

추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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