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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신작시/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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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단서
―주름조개풀
스웨터 겨드랑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까끄라기 유독 풀풀 날리는 이삭꽃차례, 그녀의 소식 전해줄 유일한 단서인데……
음지나 나무 그늘에서 군락으로 자라나는 잎마저 쭈글쭈글해진 상강 무렵 그리 와서 툭 꺾인 꽃대를 안고 쓰러졌을 추측뿐
내 오랜 예감으로 그 흔적 찾아가지만 무관심에 싹둑 잘린 미미한 소문 사이 조개풀, 집착도 벗고 행방마저 잃었다.
*주름조개풀:화성 여대생 실종사건을 조사하던 중 그녀가 입었던 옷에 주름조개풀이 붙어 있어 단서로 추정함.
구릿빛 환한 뜰
―옛집
시커먼 아궁이로 사라지는 일가(一家)의 터
촘촘히 엮어둔 끈 와르르 풀어지고
면경에 얼비치는 풍광, 잔망스런 꿈은 남아
손때 어린 문고리에 뽀얗게 앉은 더께
뒤틀어진 시렁 위에 줄줄이 얹힌 기억
문패 속 아른대던 형체, 시름없는 그림자뿐
떠들썩한 웃음소리 처마에 달아두고
금이 간 항아리에 거멀못 같은 얼굴
구겨진 사진첩 속에 옛이야기 아리하다
어머니 속 태웠을 그 많던 고지서 뭉치
구릿빛 환한 뜰에 햇살로 덧쌓이고
무너진 흙더미 뒤로 대숲만이 눈을 씻는,
박희정․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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