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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신작시/한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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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숙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교동 낙지골목 지나가다가
수족관 유리벽에 웅크리고 있는 망부석들을 보았다
「망부석」의 사전적 의미는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가 죽어서 된 돌’이지만
단단하게 웅크린 낙지들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한글 2002 詩 파일을 클릭했다
몇날 며칠째 들여다본 컴퓨터 화면이 온통 새하얗다
100년 만에 내린 폭설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 눈[雪]들을 어찌 치우나 골똘한 생각에 잠겼는데
아, 글쎄
겨울 햇살이 축지법을 쓰고 나의 뇌를 관통하는 것이 아닌가
느닷없이 노곤노곤한 낮잠 속에서 제 몸만 황급하게 빠져나가는 햇살들
눈앞에 두고도 적절히 조합하지 못하는 자음과 모음 24자들
그 시구를 연결할 흡반들은
무교동 낙지골목 세발낙지 발가락 사이사이에다
긴장감 칭칭 감은 채
망부석처럼 꼼짝도 않고 웅크리고 있다
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까?
부부
적요가 흐르는 방과 방 사이는
총부리 마주 겨누고 있는 비무장지대다
화약내 자욱하다
저들도,
때론 갈림길에 선 푯말들이다
한영숙․
경북 예천 출생
․2002년 ≪시현실≫, 2004년 ≪문학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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