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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신작시/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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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영
돼지의 무기
꿈에서는 보지 못한 돼지를
춘천 가는 도로 위에서 보았다
달리는 돈사(豚舍),
돼지를 실은 트럭을 추월하려다
문득 지갑에 든 복권 두 장이 마음에 걸려
속도에 제동을 건다
평생 체중에 끌려다니다
마침내 몸집을 버리러 가는 돼지들
과속에 익숙해진 도로 위에서
오줌을 갈기고 있다
말라붙은 꼬랑지를 흔들며
곧 서늘해질 목을 흔들며
웃는 연습을 하고 있는 돼지여
너의 웃음으로 누군가 위안을 삼더라도
행여 대박을 꿈꾸더라도
마지막에 웃는 돼지여
너의 얼굴이
너의 유일한 무기였으니
너는 영원히 미소로 남게 됐으니
못
고개를 쳐들고
들어가야 하는 집 앞에서
자꾸 목이 꺾인다.
무슨 낯짝으로,
무슨 염치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내가 들어가
폐만 끼치는 집
상처만 되는 집
차라리 대가리를 버린다.
뱀처럼 휘어져
흘러든다.
고 영․
1966년 경기 안양 출생
2003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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