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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외국문화 순례/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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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23회 작성일 08-02-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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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문학순례|


자연주의=‘시민적’ 반대운동
―메링의 자연주의 비판―

박찬일(시인)


1. 들어가며
19세기 말 독일의 자연주의는 내용적 차원, 문체적 차원, 그리고 문학사적 차원에서 고찰할 수 있다.
내용적 차원:산업화시대의 문학으로서 산업사회의 현실이 반영되었다. 노동자(하우프트만의 「직조공들」, 졸라의 「제르미날」), 도시 빈민(홀츠와 슐라프의 「파파 햄릿」), 알콜중독자(하우프트만의 「해뜨기 전」, 졸라의 「목로주점」), 창부(졸라의 「나나」), 정신병자(입센의 「유령들」)들이 등장하였다. 톨스토이는 「어둠의 힘」에서 변혁기의 농부들을 등장시켰다.
문체적 차원:사실주의 문체가 극단화된 것으로서 극(極)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졸라는 “예술은 기질을 통해 보는 한 조각의 자연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프랑스에 자연주의 이론가로서 졸라가 있다면 독일에는 홀츠가 있다. “생산조건과 주관성의 정도에 따라 예술은 자연이 된다.” 홀츠의 이 명제는 ‘예술=자연-X’로서 공식화(公式化)되었다. X는 특히 자의적 주관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홀츠는 이것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홀츠의 이 ‘명제’에 따라 자연주의 문체를 순간문체, 혹은 시간확대경 기술로 명명하기도 한다. 서술된 시간과 서술하는 시간의 일치로 설명하기도 한다.
문학사적 차원:‘추하고 역겨운 것’의 문학으로서 '추의 미학'이 확립되었다. 노동자, 알콜중독자, 정신병자들의 등장으로 '신분제한조항'은 완전히 무너졌다. 자연주의 문학에서 본격적 현대문학이 시작되었다. 자연주의문학은 재현의 문학이었지만 새로운 문학이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신낭만주의, 인상주의, 청춘양식, 유미주의, 향토예술, 표현주의들처럼 새로운 문학이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가 새로운 문학의 시대였던 것은 자연주의를 비롯한 신낭만주의, 인상주의, 청춘양식, 유미주의, 향토예술, 표현주의들이 공존, 병존, 혼존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하나의 양식으로 대변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산업화시대로서 대도시 시대였기 때문이다. 대도시는 복잡한 대도시로서 분열의 대도시였기 때문이다.
자연주의에 접근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사회민주당의 자연주의 비판’에 대한 고찰이다. 당시의 사회민주당의 자연주의 비판은 흔히 ‘문학사의 비어있는 공간’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사회민주당의 자연주의 비판으로 자연주의의 역사적 성격은 더욱 분명해졌다. 메링(F. Mehring, 1845-1917)의 자연주의 비판은 사회민주당의 자연주의 비판의 한 갈래이다.
1896년 고타에서 열린 사회민주당 정기 전당대회장에서 자연주의 문학에 대한 사회민주당의 반응이 있었다. 정치 경제적 의제가 대종을 이루어야 할 전당대회장에서 이례적으로 자연주의 문학을 둘러싼 격렬한 논전이 하루 반 동안이나 펼쳐졌다. 고타 전당 대회가 끝난 뒤에도 메링의 자연주의에 대해 언급한 가장 중요한 문건 중의 하나인 󰡔예술과 프롤레타리아󰡕가 발표되는 등 자연주의에 대한 사회민주당 측의 관심은 그때까지의 어느 예술운동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자연주의 문학은 전통적 관점에서 볼 때 ‘추하고 역겨운 것’을 다룸으로써 당시의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반역일 수 있었다. 부르주아들은 자연주의 문학을 “공산주의자들의 문학적 선언”, 혹은 “사회주의자들의 문학적 동반자”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사회민주당 사람들이 보기에도 자연주의는 ‘추하고 역겨운 것’의 묘사일 뿐이었다. 사회민주당의 많은 사람들이 추하고 역겨운 자연주의 문학을 비판하였다. 사실 이러한 역설적 상황, 즉 하나의 문학현상을 두고 좌파, 우파가 함께 비판적이었으며, 심지어 일정 부분에서는 비판의 척도까지 똑같았다는 것이 19세기 말 자연주의 수용의 특징적 양상이었다.
메링의 자연주의 비판의 초점은 그러나 자연주의의 ‘추하고 역겨운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의 ‘비관주의’였다. 사회주의적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메링의 자연주의 비판은 자연주의의 이데올로기 비판이었다.
당시의 사회민주당 내에서 문학예술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카우츠키와 메링 정도를 들 수 있을까. 특히 메링은 이 당시의 노동 운동 내에서 혁명적 노선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이론가 중의 하나였으며,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시대사, 독일사, 노동운동사, 마르크스 연구, 특히 문학사, 문학 비평, 문학이론의 영역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문학 분야의 관심은 첫째, 시민 문학에 있어서의 인문주의적이고 리얼리즘적인 문학 유산, 둘째, 동시대의 시민 문학(특히 자연주의 문학), 셋째, 노동계급의 문학 등 크게 세 부분이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레싱을 필두로 괴테, 쉴러, 클라이스트, 하이네, 헤르베크, 헤벨, 라베 등 시민 문학 내의 민주주의적 전통을 구명해내려는 그의 노력은 매우 비상한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문학 분야에 관한 그의 문건 중 자연주의에 관한 것들인 󰡔자본과 언론󰡕(1891), 󰡔자연주의에 관하여󰡕(1892/1893), 󰡔오늘날의 자연주의󰡕(1892/1893), 󰡔예술과 프롤레타리아󰡕(1896) 등을 주로 참조하여 논의를 전개하려고 한다.

2. 메링의 자연주의 비판
1) 메링의 ‘자연주의’ 이해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메링, 그의 문학에 대한 이해 또한 철저히 유물론적이었다. 상부구조로서의 문학은 하부구조의 물질적 상황에 의해 규정된다는 유물론적 문학관을 다음과 같이 적시(摘示)하였다.

종교적 표상들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사법적 정치적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민족들의 예술적, 문학적 행위도 궁극에 가서는 경제적 발전 투쟁에 의해 규정된다. 시인과 예술가는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이 아니다. 그들은 또 구름 위에서 소요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 민족과 그 시대에 나타나는 계급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개개의 인간들은 아주 상이한 방식으로 자극과 영향을 받게 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투쟁의 세력권을 벗어날 수는 없다.(ND, 126면)

메링은 독일 고전 문학 역시 독일 시민계급의 해방투쟁으로 파악한다. 클롭슈톡, 레싱, 괴테, 쉴러, 피히테 등은 “시민계급의 첨병들”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메링은 이 당시의 ‘문학을 통한 독일 시민계급의 해방투쟁’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독일의 비참함”이 정치․사회 영역에서의 투쟁을 배제시키고 흥기하는 시민계급 중 재능 있는 사람들을 문학의 영역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시인과 사상가의 민족”이라는 말을 듣게 한 18세기의 이러한 문학적 융성도 따지고 보면 시민계급의 경제적 발전이 충분치 못했고, 따라서 프랑스에서처럼 정치권력을 획득할 수 없었던 시민계급이 문학 속에 “시민사회의 이상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ND, 126-127면 참조)
메링의 자연주의 문학에 대한 이해 역시 유물론적이다. 메링은 우선 자연주의를 19세기 말에 한정된 운동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역사적인 조건이 갖추어지면 항상 발생할 수 있는 규범적 개념으로 파악한다. “흥기하는 계급”의 생각과 “쇠퇴하는 계급”의 생각이 부딪치게 될 때 흥기하는 계급이 사용하는 표어가 바로 “자연과 진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슬로건”이었다. 메링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왜냐하면 쇠퇴하는 계급은 내적 삶이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경직된 형식에 더욱 불안하게 매달리게 될 것이며, 이와 달리 흥기하는 계급은 삶의 억누를 길 없는 충동과 힘이 그들로부터 솟아나면 날수록 더욱 더 격렬하게 모든 벽을 허물어뜨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자연과 진실이다.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이 개념에 대신할 다른 척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ND. 127면)

그렇지만 메링은 문학의 자연주의는 자연과 진실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문학가들의 ‘계급 성격’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아주 상이한 내용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계몽주의 시대의 레싱은 그의 문학을 당시의 시민계급과의 밀접한 연관 하에서 전개시켰으나, 1780년대의 슈투름운트드랑 문학가들은 “자연과 진실”을 연모하면서도 중세의 기사들이나 스코틀란트의 고(古)시인 오시안 등에게 빠져드는데, 이유는 전제정치의 질곡 때문에 이들은 모든 정치적 행위에서 유리되어 있었고, 따라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그리고 과거 속에서의, 꿈같은 삶”이 그렇게 살기를 원했고, 또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슈트름운트드랑 문학가들의 자연주의는 유럽적 차원의 자연주의와 결코 같은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검을 든 외국의 정복자”(나폴레옹을 의미함)가 다른 의미에서의 ‘자연과 진실’을 독일 민족에게 가져다주었다.(ND, 127-128면 참조)
19세기 중반 50년대의 자연주의 혹은 사실주의 문학에서는-특히 프라이타크나 루드비히 등의 소설에 나타나는 것처럼-혁명의 와중에서도 오직 커피와 설탕자루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사치들, 고용주들의 횡포에 꼼짝 못 하는 노동자들, 특히 혁명이 실패한 후 사상이나 칼 대신 돈으로 “신분의 향상”을 꾀하려는 부르주아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요컨대 메링에게 자연주의는 루소의 ‘자연’에 대한 외침처럼 “세계사에 있어서의 폭풍의 전조”가 될 수도 있었고, 프라이타크나 루드비히들의 소설에서처럼 “상점의 커피자루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될 수도 있었다.(ND, 128면 참조)
사적(史的) 유물론자 메링은 다양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자연주의에 대해 결국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모든 개별적인 경우에서 판별해내어야 한다. 문학적 방향이 그 당시의 계급 투쟁에 있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ND, 128면)

예를 들어 혁명이 진행되고 있을 때 ‘칼을 든 사람들을 묘사하느냐’, 아니면 그 와중에서 ‘자기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묘사하느냐’이다.

2) 메링의 ‘자연주의 형식’ 비판
19세기 후반의 자연주의, 곧 ‘오늘의 자연주의’도 메링은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우선 메링은 지금의 자연주의가 “점점 강력하게 타오르는 노동운동이 예술 속에 투사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정작 메링에게 각인된 자연주의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선 그 형식에 대한 비판이다.

예술작품의 의미를 오로지 자연에 충실한지에 따라 평가하고 예술의 특장(特長)을 자연을 꼼꼼히 재현하는 것으로써 이해하며, 예술가의 상상에서 나오는 모든 내적인 첨가물들이나 모든 예술적 조작 및 구성을 배척해야만 한다는 요구를 함으로써 자연주의는 모든 예술의 본질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ND, 129면)

메링에게 ‘오늘의 자연주의’는 자연을 꼼꼼히 재현하는 예술, 그러니까 '주관적 느낌' <“내적인 첨가물”> 및 “예술적 조작 및 구성”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진(Fotographie)이 최고 단계의 예술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메링이 생각하는 자연과 예술의 관계는 다른 것이다. 메링은 화가 뒤러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자연은) 작업을 통해서, 즉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물의 형상으로 창조해낸 새로운 피조물을 통해 나타난다.(ND, 129-130면)

메링은 예술은 분명 자연이 되어야 하지만 그 자연은 ‘예술적 조작 및 구성’을 거친 “새로운 피조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단순한 모방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메링은 예술을 현실과 별개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이상주의 미학의 영향권에 있었다.
‘새로운 피조물’이 또한 “자연”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메링은 또한 칸트가 그랬던 것처럼 유기체적 문학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주의적 평면적 복사에 의한 피상적 현실이 아닌, ‘예술적 조작 및 구성’에 의한 유기적 현실이 됨으로써 문학은 거꾸로 자연과 ‘같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칸트의 말이다.

아름다운 예술은 우리가 그것을 예술로 의식하고 있을지라도 자연으로 간주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은 <……> 자연으로 간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예술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루카치도 리얼리스트들에게 “예술적으로 덮어 가리는 일”이라는 과제를 부여했었다. 예술작품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3) 메링의 ‘자연주의 내용’ 비판
메링에게 자연주의는 그 내용에 있어서 회화에서의 인상주의와 마찬가지로 몰락해가는 사회의 질식할 듯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하나의 예술적 모반”으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메링은 인상주의자들 및 자연주의자들을 가리켜 “자본주의 사회의 온갖 더러운 폐기물들”에서만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 같다고 꼬집는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더러운 폐기물들인 ‘추하고 역겨운 것’에 대한 묘사에서 한 걸음을 더 못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자연주의자들)은 그런 쓰레기더미 속에서 떠돌며 살고 있다.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그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겨냥하는 고통스러운 저항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ND, 130면)

이 지점이 메링의 유기체 문학과 이상주의의 유기체 문학이 갈라서는 부분이다. 메링의 유기체 문학과 칸트의 유기체 문학이 갈라서는 부분이다. 이상주의의 문학이 자족적, 자율적 문학이었다면. 메링의 문학은 “저항”의 문학, 도구적 문학이었다. 칸트의 문학이 “모든 이해관계에서 벗어난(ohne alles Interesse)” ‘무관심’의 영역, “미적 취미 판단(Geschmacksurtei)l”의 영역이었다면 메링의 문학은 관심의 영역, 목적적 영역이었다. 현실의 변화가 관심이고 목적이었다.
메링은 자연주의 문학의 “진실에 대한 사랑”(ND, 131면)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메링은 문학과 예술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그리고 작품의 의미를 오로지 ‘자연에 대한 모사’ 여부에 따라 판단하는 자연주의의 정신에 충실하려면, “소멸하는 것을 묘사한다는 점”에서의 진실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발생하는 것을 서술한다는 <……> 보다 높은 차원의 진실에 대한 사랑”(ND, 61)도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소멸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도 진실에 대한 사랑이고, 발생하는 것을 서술하는 것도 진실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회민주당의 자연주의 비판의 핵심 사항이 그 모습을 드러나게 되는데, 발생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점점 강력한 힘을 얻고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세계일 것이고, 메링은 문학 예술가들이 여기에 주목해서 ‘투쟁’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시인은 당의 지붕보다도 더 높은 망루 위에 서 있어야만 한다고 요구한다면 그는 오른쪽과 왼쪽을 볼 수 있어야만 한다. 그는 옛날 세계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포착할 수 있어야만 한다. 비참함이 주조를 이루고 있더라도 그 속에서 오늘의 비참함뿐만 아니라 내일의 희망을 찾아낼 수 있어야만 한다.(ND, 131면, 강조는 필자)

이것은 메링이 현실(혹은 자연)의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작품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사회경제적 토대가 문학적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견해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메링, 카우츠키, 코르쉬 등에 의하면 예술작품은 계급적 관심을 반영하는 단순한 2차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과 유토피아적 열망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었다.
메링은 쉴러와 레싱의 예를 들고 있다. 레싱은 그의 시민비극 󰡔에밀리아 갈로티󰡕에서, 쉴러는 그의 시민비극 󰡔간계와 사랑󰡕에서, 소공국의 전제주의, 그리고 지배층의 타락상을 펼쳐 보였다. 이들 작품에서 주목되는 것은 “부패의 담당자들”과 “치유의 담당자들”의 대비였다. 󰡔에밀리아 갈로티󰡕에서는 시종 마리넬리와 에밀리아의 아버지 오도아르도 갈로티가 대비되었고, 󰡔간계와 사랑󰡕에서는 시종 칼프와 악사 밀러가 대비되었다. 메링은 갈로티나 밀러 역시 ‘악한’으로 나타났다면 이 작품들이 고전으로 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ND, 131) 자연주의자들이 자연에 충실한다고 '몰락하는 것'만을 기술한다면 그것은 “예술의 진보”가 아니라 “예술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메링은 결국 자연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요청 섞인 기대를 한다.

자연주의가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그의 내적 본질 속에서 파악할 수 있을 때 자연주의는 혁명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때 그 자연주의는 새로운 예술의 서술형식이 될 것이다. 그 위대함과 힘에 있어서 그 이전의 어떤 것에도 뒤지지 않으며, 따라서 언젠가는 아름다움과 진리라는 차원에서도 그것들을 능가하게되는.(ND, 130면 참조)

“새로운 세계의 시작”은 다름 아닌 ‘사회주의적 세계의 시작’이었다.

3. 나가며
자연주의 문학은 산업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였다는 점에서 반자본주의적이며, 따라서 사회 참여적 문학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자연주의 문학이 메링이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주의적 대안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민적 문학’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자연주의 문학이 프롤레타리아의 문제들에 공감을 느끼고, 자본주의 사회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민적’ 테두리 내에서였다는 점에서 자연주의 문학은 이제 그에 걸맞은 이름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자연주의 문학은 ‘시민적 반대운동’, 거기에 참여한 자들은 ‘시민적 반대 입장의 문학가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연주의가 비록 제4계급과의 연대를 지속적으로 관철시키지는 못했다하더라도 이후의 작가의 사회적 역할 내지 문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이 당시의 자연주의 문학 내지 자연주의 문학을 둘러싼 담화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민주당의 자연주의 비판의 역사적 의의는 사회주의적 문학권 내에서 ‘굉장히 많이’ 찾을 수 있다. 사회민주당의(특히 메링의) 자연주의 비판은 유물론적 문학 개념과 사회주의적 문화정책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이후의 마르크스주의 미학 및 문화정책에 있어서의 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이미 제기되었다. 특히 자연주의자들의 비변증법적인 현실반영을 지적한 것으로서, 메링이 ‘오늘의 비참함’뿐만 아니라 ‘내일의 희망’도 아울러 그릴 것을 요구한 것은 이후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가장 중요한 정신을 선취한 것이었다.
자연주의 문학이 비록 노동자들을 등장시키고 있을지라도 진정한 노동자상은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노동문학에 대한 요청 또한 강한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다음은 고타 전당 대회가 끝난 이후 루돌피(R. Rudolpi)가 ≪신시대≫에 발표한 「예술과 프롤레타리아」의 부분이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예술은 오직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결실을 맺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꼭 노동자들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예술가는 프롤레타리아의 정신 속에서 성장하고, 그 정신으로 살아가는, 따라서 충실한 반영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가이어야만 한다.(ND, 276면)

자연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당문학 및 노동문학에 대한 요구 등 마르크스주의적 문예학의 영역이 더욱 확장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사회민주당에게 자연주의는 정말 유익한 적(敵)이었다.



박찬일
․춘천 출생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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