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7호 문화산책/조외숙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12회 작성일 08-02-23 17:38

본문

인터넷 소설과 영화의 조우, 전복과 순응의 협상


문․화․산․책조외숙(건국대 강사)


10대가 아닌 사람들에게 인터넷 소설을 읽어보았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어쩌면 그들 대부분이 읽어보지 않았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인터넷 소설을 읽지는 않았더라도, 귀여니, 이유리, 이햇님 등 작가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그들의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옥탑방 고양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엽기적 그녀󰡕, 󰡔내사랑 싸가지󰡕 등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소설들은 모두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에 연재되다 그 인기에 힘입어 책으로 출판된 소설들이고, 영화화되었거나 드라마화된 것들이다. 이제까지 대부분은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그 때문인지 지금도 영화화하기 위해 시나리오 작업 중인 다수의 인터넷 소설이 있다.
이제 다른 질문을 하고 싶다. 인터넷 소설, 혹은 인터넷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상물을 접해 본 사람이 있다면, 그들 중 이들과 정서적인 공감을 했다고, 적어도 재미는 있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쪽보다 많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이제까지 인터넷 소설과 약간은 거리가 멀었다. 인터넷 소설이 영화화되고 그것이 흥행하는 것을 보면서 인터넷 소설이 어떤 것일까라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니 인터넷을 통해 인터넷을 읽은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분명 그 영상물에서의 재밌는 에피소드 중심의 전개 방식, 등장인물의 무의미한 말장난, 특이한 캐릭터가 흥미로웠고 그러한 즐거움 때문에 영화의 원천인 인터넷 소설을 읽으려는 시도를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말해 그 소설들에 몰입하는 것은 생각만큼 수월하지는 않았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무척이나 낯설고 생경한 10대들이 쓰는 단어들의 나열과 나에게는 새로운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이모티콘의 남발, 내러티브와 상관없는 사건들의 난입은 몰입이라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여러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음에도 그저 새로웠을 뿐 10대들처럼 인터넷 소설에 열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소설들, 몰입과 동의, 나아가 동참을 요구하는 소설이 익숙하지 않으니 당연히 아직은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인터넷 소설과 그것을 영상화 한 영상물, 역시 현재 우리의 문화 현상의 일부분이고, 10대들이 중심이 되어 향유하는 문화 생산물이라 것이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가? 그러면서 왜 10대들은 이런 종류의 소설들에 리플을 달고, 주인공의 다른 인생을 요구하면서 작품의 생성에 참여하면서 열광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던 인터넷 소설을 지면으로, 다시 영상으로 끌어오는 것은 분명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상업적 전략의 일환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인터넷 소설이 왜 새로운 대안처럼, 유행처럼 영화화되는지 말하기에 앞서 왜 10대들이 인터넷 소설에 몰두하는 지를 살펴보아야할 것이다. 그와 아울러 인터넷 소설과 영화가 어떤 식으로 만나 변모해 가는지 살펴볼 것이다.

1. 새로운 문화 세대의 등장
인터넷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사이버 공간’을 공유하는 새로운 문화 세대가 등장했다. 인터넷 소설을 창작하고 그 창작에 동참하고 지지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바로 이러한 문화세대 즉 인터넷과 컴퓨터, 영상 매체들에 익숙한 10대 중심의 새로운 문화 세대인 것이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달리 자신들만 통하는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의견과 정보를 공유 하며 그들만의 사이버 문화를 창조해내고 있다. 물론 기성 세대는 언어 파괴 현상이라 개탄하고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러한 언어를 더 생산해 내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 인터넷 소설이다.
인터넷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이기에 자연스럽게 그 창작 공간의 이름을 따라 인터넷 소설이라 부르게 된 이 소설은 여러 면에서 기존의 글쓰기와 다르다. 여러 타인의 감시 없이, 일정한 규칙도 없이, 일정한 자격도 없이, 누구나, 어느 때나, 접근할 수 있다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창작법과는 다른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인터넷 소설은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작가에게는 창작의 자유를 부여했지만 동시에 리플 등을 통한 쌍방향성으로 인한 독자의 역할 증대는 저자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모순을 발생시켰다. 이러한 모순은 인터넷 소설을 더욱 역동적이게 만드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그래서 인터넷 소설은 전통적인 글쓰기를 가볍게 벗어났고, 쌍방향성 때문에 독자를 창작자로 참여하게 했고 이러한 점들은 네티즌을 포함한 독자들에게 새롭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새로움은 10대들의 문화적 특징인 엽기성, 발랄함, 과감함, 진솔함, 세련되지 못함, 비숙련, 유치함 등의 특징들을 내포하고 있었고 그것이 인터넷 소설의 특징이 되었다. 작가이자 동시에 독자가 될 수 있는 10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생생한 영상적 글쓰기는 영상 세대이기도 한 이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고 이는 영화와 문학이 보다 적극적으로 조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낳았다.

2. 인터넷 소설, 영화와 조우하다
이런 인터넷 소설이 그들의 탄생지인 사이버 공간을 떠나 스크린으로 오게 된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이미 기존의 독자가 있어 시장 개척이 쉬울 것이라는 상업적 판단에 있다. 특히 몇 몇의 인물에 의해 이끌어지는 영화에서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캐릭터의 구축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인기 있는 인터넷 소설들의 캐릭터들은 10대에게 어필할 수 있음은 온라인상에서 이미 검증을 받았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이 덜어진다. 나아가 어떤 인물에게 독자가 더 호응하고 감정이입하느냐를 살펴보는 이러한 검증을 할 수 있는 인터넷 소설은 트렌드를 읽어낼 수 있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즉 영화의 제작 방향의 지침이 되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소설은 대중적이긴 하지만 일반 소설보다 비교적 싼 가격에 판권을 살 수 있고 이미 완성된 소설을 시나리오화하면 그만큼 초기 시나리오 작업에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소설에 표현되는 소소한 생활에서 건진 에피소드들은 제작자에게 소재의 신선함을 준다. 이러한 작은 이야기들은 인터넷 소설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사장되었을지도 모를 만큼 기존에서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동시에 그것을 공유하는 10대는 친한 사람들끼리 사이에서 가깝게 주고받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 그 소재에서 친근감을 느낀다. 그러므로 새로운 소재를 찾고 있는 영화 기획자에게 인터넷 소설은 관객의 기호를 맞출 수 있는 소재의 백화점처럼 보일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 <엽기적인 그녀>(곽재용, 2001),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년 김경형), 2003년 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등의 성공은 인터넷 소설의 영상화가 가지는 시장성을 일깨워주었다. 이들 인터넷 소설을 영상화 한 일련의 영화, 드라마의 성공은 다른 인터넷 소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했다. 이 작품들의 흥행은 이후 ‘인터넷 소설이 상업적으로 유효하다’는 판단이 가져왔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와 필요로 인터넷 소설은 영화와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인터넷 소설은 거의가 경험담 중심-그것이 비록 과장되었다 하더라도-이므로 당연히 1인칭 화법을 구사한다. 작가는 결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과거에도 구속받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기 때문에 경험담 즉 에피소드를 기승전결에 상관없이 자신의 관심에 따라 나열한다. 기존의 시나리오와는 그 구성에서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소설은 등장인물의 감정을 그들만의 언어인 이모티콘으로 이미지화하고 있으므로 영화는 이 이모티콘을 다시 영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여러 대중 중 비교적 늦게 탄생한 영화 매체의 특성상, 시나리오는 희곡, 장․단편소설, 신문기사, 수기 등 여러 형태를 원작으로 활용해왔다. 일반적으로 원안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훨씬 쉬운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이고 희곡은 희곡이고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소설, 혹은 희곡을 시나리오를 각색할 때 한 형태를 다른 형태로 바꾸어, 즉 다른 형태에 근거해서 시나리오를 새로 쓰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행처럼 인터넷 소설이 영화의 원안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인터넷 소설과 영화는 협상의 과정을 거쳐 다시 태어나고 그 과정에서 수용과 배제가 발생한다.

3. 인터넷 소설, 영화로 다시 태어나다.
앞서 말했듯이 인터넷 소설은 주로 1인칭 시점을 취한다. 아마도 자신의 일상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 ‘나’ 가 화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1인칭 시점의 서술은 주변의 친구에게 자신의 숨겨진 가족사와 연애담을 이야기해 주는 듯한 데서 오는 친근감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서술하면 되기 때문에 특별한 소설적 기법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또 1인칭 시점의 자기 고백적 문체는 독자에게 타인의 일기를 보는 듯한 착각을 유발, 자연스럽게 믿게 만드는 구실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터넷 소설의 1인칭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관계에서의 새로움을 낳는다는 데 있다. ‘나’가 중심인 세상에서는 내가 보는 ‘너’가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게다가 내가 중심이 되기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진 사회적 지위나 배경에 무심할 수 있고 적어도 그 사람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좌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세상사에 휘둘리지도 않고 현실감각이 없어 보인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킬 만큼이나 그러한 관계에도 무심하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나’가 중심이 되는 인간형이 나타난다. 그래서 <옥탑방 고양이>의 정은(정다빈)은 자신보다 학벌도 좋고 경제적, 사회적 배경도 좋고 미모까지 갖춘 혜련(최정윤)에게 특별한 열등감을 느끼거나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평범하고 전문대 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그 사실을 비관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당당하기까지 하다. 요즘 말로 하면 그들은 쿨한 인간들인 것이다. 이는 인간의 위계적 질서나 관계에서 자유롭고 새로운 수평적인 인간형의 탄생을 알리는 듯하다.
영상세대의 언어, 이모티콘은 나에겐 아직도 생소하고 독해 불가능할 때도 있지만 10대들에게 이모티콘은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다. 여러 단어의 말로 표현할 감정은 단 하나의 이모티콘으로 설명 가능해진다. 이모티콘을 보면 다시 상형문자 시대로 회귀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감정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이렇게 이모티콘이 발달하게 된 것은 이들이 영상물과 함께 자란 영상세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그림문자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영상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소설에서의 이모티콘이 감정의 전달하기 위해 쓰인다고 해서 영화에서 감정의 표현 대신 빈번하게 화면 가득 이모티콘으로 채울 수는 없다. 또 대사로 이모티콘이 주는 감정을 전달하면 그 느낌이 변해버리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가능하다.
그래서 영화는 소설이라면 이모티콘을 사용할 시점에 인물의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을 이야기 하게 한다. <내 사랑 싸가지>(신동엽, 2004)의 하영(하지원)이나 <그놈은 멋있었다>(이환경, 2004)의 한혜원(정다빈), <늑대의 유혹>(김태균, 2004)의 한경(이청아) 등 그녀들의 풍부한 얼굴표정을 기억해 보라. 당황했다, 황당하다, 미안하다, 수줍다 등등,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얼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얼굴 표정과 몸짓 자체가 언어로 기능하여 관객에게 단적으로 감정을 설명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단순하게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모티콘의 느낌을 영화로 옮기면서 강화된 측면이라 보인다. 영상은 문자로 의성어로 표현하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한다. 놀라고 당황할 때 쓰는 뜨악!!이라는 글자는 글자 그대로 관객도 함께 뜨악하게 만든다. 만화의 말풍선을 이용해서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이제 일반화되었을 정도다.
인터넷 소설의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 할 말이 많은 사건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갑작스럽게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로 들어오기도 하는 등 이러한 전개 방식은 말 그대로 작가 마음에 달린 문제다. 게다가 계급 차이 등, 사회나  경제적 문제, 인간의 내면의 묘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이로 인한 복잡한 인간관계와 갈등도 사라져버리고 남는 것은 그 사람과 내가 티격태격하는 현재진행형의 에피소드만 남는다.
그래서인지 <엽기적인 그녀>, <내 사랑 싸가지>, <옥탑방 고양이> 등에서도 중심이 되는 것은 옥신각신하는 그 둘 사이의 애정문제를 다룬 에피소드다.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기승전결은 무너져 버린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결말을 요구하는 서사 구조에서 자유롭다. 기존의 소설이 가진 서사구조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파격성이 일반 사람들에게 인터넷 소설은 읽을 필요도 없는 것, 10대들이나 읽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읽고 즐기는 독자들은 MTV, 광고에 익숙한 이들이라 둘만의 티격태격하는 사랑싸움으로 얼룩진 에피소드도 남의 일기를 읽는 기분으로, 뮤직 비디오 보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고 내러티브의 급작스러운 점프 컷이나 난데없는 주변인물의 등장에도 놀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상영 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을 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인터넷 소설의 이야기 전개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이것을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전개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제거하거나 혹은 여러 인물을 한 인물 속에 녹여내거나 에피소드들을 가지치기해야 한다. 즉 어떤 스토리를 드라마로 만들려할 때 필연적으로 변경, 단순화, 압축, 제거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대신 영화는 인터넷 소설의 갑작스런 에피소드의 등장,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적절히 이용한다. 이는 자유로운 서사 구조가 주는 매력과 기존 관객에 대한 배려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한 결과다.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에 등장한 응삼은 원조 교제를 하려고 혜원을 납치하려 하고 이를 말리는 지은성에게 응삼은 나도 예전에는 얼굴로 먹고 살았다며 소리 지른다. 이런 에피소드는 응삼이 원조 얼짱이란 사실과 연결되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실제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 많은 만큼 인터넷 소설의 캐릭터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더구나 에피소드로 나열되는 만큼 캐릭터가 재미없다면 그 에피소드가 주는 힘도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 소설의 캐릭터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현실을 뛰어넘는 엽기적인 모습도 종종 보인다. <엽기적인 그녀>나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여주인공들은 나름의 세계관에 충실하고 당당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성관에서는 조금 벗어난, 엽기적인 여성이다.
이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비록 십대라도 어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그들이 실제로 나이트나 술집에서 주로 생활할 수는 없겠지만 소설 속의 인물은 이러한 어른들의 문화에 익숙하다. 게다가 동거나, 근친상간 등 기존의 윤리와는 다소 괴리를 보이는 태도를 보인다. 동거가 과연 옳은가란 논쟁을 이끌어 냈을 만큼 기성세대들에게는 파격적인 라이프스타일이 그들에게는 논쟁거리가 되질 않는다. 그들의 생황 방식은 발칙하기까지 하다.
영상화한 인터넷 소설은 주류의 도덕관에 충격을 주지 않을 정도의 범위에서 그들의 발칙한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한다. 예를 들어 <옥탑방 고양이>의 정은과 경민은 동거를 하긴 하지만 그 둘 사이에서 섹슈얼리티를 제거해 버린다. 둘의 섹슈얼리티가 부각된다면 동거가 결혼의 한 형태로 보여, 그것은 현 결혼제도에 대한 반발로 인한 대안적 행동이라는 위험한 해석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4. 인터넷 영화의 한계
형식적인 면에서 인터넷 소설은 기존의 소설에 비해 파격적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도 전복적이라 할 수 있을까?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 <내 사랑 싸가지> 등 인터넷 소설의 남자주인공들은 얼굴이 잘 생기고 싸움도 잘하는 고등학생 또래집단의 우상인 ‘짱’이거나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거나 학벌이 좋은 남성임에도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순정파 남성들이다. 기존의 순정만화나 로맨스 물에서 흔히 보던 겉보기엔 냉정하지만 한 여자에게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쏟아 붓는 남성에게 투사되던 여성의 욕망, 그 사랑에 대한 판타지에서 인터넷 소설도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다.
당당하고 엽기적인 여성이 등장하거나 혹은 순진하고 철모르는 여고생이 등장하거나 그들의 상대남은 한결같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다. 백마 탄 왕자님을 현실에서 만나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남자를 만난다면 자신의 상황이 조금은 바뀔지도 모른다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바탕으로 한 사랑이야기는 여전히 인터넷 소설을 움직이는 중요한 질서다. 전복적인 열린 서사구조와는 다르게 여전히 이 소설들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유독한 사랑 이데올로기가 깔려있고 작동하고 있다.
영화도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버리지 않는다. 인터넷 소설에 비해 주류 이데올로기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탓인지 영화에서는 낭만적 사랑을 더 강렬하게 주장한다. 순진한 여성은 소설에 비해 더 순진하고 심지어 어리숙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은 평범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낭만적 사랑의 힘을 더 크게 각인한다.
남성에게도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이러한 태도가 그대로 적용된다. 극 초반, 주인공은 현실에서 가족이나 학교라는 기존의 체계와 융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학생이지만 학교나 집보다는 밤거리를 헤매고 술집과 나이트를 집 삼아 산다. 그러나 이들도 어느 순간 기존의 체제 안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거칠게 굴던 <늑대의 유혹>의 해원(조한성) 역시 영화의 끝으로 가면 밝은 방안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한선이 사회적 경계선 안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인 한경을 통해서였다. 결국 여성은 남성을 사회적 질서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다.
인터넷 소설은 그 전개방식이나 독자와의 관계에서 기존의 체계를 파괴하는 진취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이에 비해 내용은 이상할 정도로 현실 순응적이다.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수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는 그나마 인터넷 소설이 가진 불순함과 아찔한 세계,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세상을 그보다 참하게 순화된 어른들이 생각하는 10대들의 세상으로 만들어낸다. 그들이 사용하는 비속어는 순화되어졌고 그들이 향유하는 음주 문화 역시 어른들이 상상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어졌다. 향유하는 매체는 최신의 것이고 형식적 파괴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그들을 움직이는 밑바닥에는 이데올로기는 기존의 근대성 속에 전근대적 속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모순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체계에 충실한 대중문화로써의 영화적 특성일지도 모르지만 그 원천이 길들여지지 않아서 매력적인 10대 중심의 인터넷 소설임을 감안하면 아쉽기만 하다.
요즘의 한국 영화의 트랜드라 할 만큼 많은 인터넷 소설이 영화화되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성공한 영화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영화도 있어 이제는 무조건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흥행에 성공한다는 믿음도 조금은 재고할 필요를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 소설을 만들어내고 영화화된 이것을 즐기는 이가 곧 인터넷 문화와 함께 나타난 세대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다. 그러한 그들을 정확하게 읽어내야 인터넷 소설이 보다 행복하게 영화와 조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상업적인 목적에 부합하여 인터넷 소설을 영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10대 문화를 반영하는 소재로서 인터넷 소설을 가공하려는 노력들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조외숙․
1972년 생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건국대 강사

추천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