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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문화산책/최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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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인디 씬 여성 음악인의 지형도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
1. 들어가며
1990년대 이래 S.E.S, 핑클, 베이비복스 같은 미소녀 그룹들이 주류 가요계의 한 핵심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유형은 다소 장르 편협적이고, ‘소녀’와 ‘여성’을 오가는 다소 획일적인 섹슈얼 메타포로 직조된 그물망에 포획되어 있다. 주류의 댄스나 발라드 그룹 혹은 솔로 가수들이 차이는 있지만 스타 시스템, 기획된 상품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반면, 자신의 음악에 대한 통제는 미진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장르/스타일의 여성 뮤지션의 음악은, 오래 전부터 설정되어 왔던 비창조적이고 수동적인 여성 음악인의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경향이 크다.
때문에 대중음악계의 여성 음악인의 지형을 그리는 이 글은 어느 정도 작사 작곡 능력이나 연주 능력을 겸비한 음악인을 중심축에 놓을 것이며,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여성 음악인에 한정지을 것이다. 그리고 주요 분석 도구는 보컬리스트의 목소리와 가사(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는 여성 음악인들 중 많은 이들이 보컬리스트라는 현실 때문만은 아니다. 목소리란 음악에 앞서 들리는 중요한 기록물로써, 그 자체로 전체 음악의 성격은 물론 뮤지션 자신의 음악적 취향과 지향을 상당 부분 드러내주는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내장되어 있다.
2. 제의적인 주술사 혹은 신비로운 여신:한영애와 이상은
우리는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에 대한 환상이 있다. 가령 우리는 이은미, 이소라 등을 두고 그런 평을 하곤 한다. 하나 더 추가하면 아예 부정적인 외모를 튀지 않는 수준에서 공론화시키고 가창력을 강조한 빅마마의 경우가 극단적인 사례일 것이다.(그러나 이는 외모와 가창력을 둘러싼 기존 가요계의 관습에 대한 역설적인 순응에 다름 아니다.) 조PD와의 협연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맡고 있는 인순이의 경우도 기록적 사례일 것이다.
여기서 높은 음고(音高)를 안정되게 부르는 능력만을 가창력의 범주에 넣는 것은 곤란하다.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통해 전체적인 음악 스타일과 조화시키는 노래야말로 훌륭한 노래일지 모른다. 이상은과 한영애가 그런 점에서 뛰어난 가수라는 점은 이견이 없을 듯하다. 뒤에 이야기할 장필순과 더불어 ‘3대 여성 보컬리스트’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한영애는 1970년대 후반 해바라기 및 1980년대 후반 신촌블루스 활동을 거쳤는데, 해바라기에서의 단아한 포크를 통해 대자연/대지모(大地母)의 상, 이로부터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중성성(혹은 무성성)을 보여준 반면, 신촌블루스에서의 거칠고 분방한 블루스를 통해 범접하기 어려운 제의적 주술사(혹은 마녀?)의 이미지로 업그레이드하였다. 뜨악하게 치켜뜬 눈과 노려보듯 이글거리는 눈빛, 때로는 도발적인, 때로는 제의적인, 때로는 자연스러운 복장들은 섹슈얼리티와 주술적인 면모, 모성과 관능성이 혼융된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독특한 공연은 물론 음악마저도 ‘퍼포먼스’ 같다. 한편으로 그녀의 독특한 여정은 최근 트로트로의 외유도 가능하게 했다. 세상의 비하와 자기 부정의 영역을 감싸안는 재창조의 영역으로 탈바꿈시켰다고나 할까.
뭐니뭐니해도 다소 낮은 음역의 허스키하고 힘 있는 탁성은 한영애만의 무기이다. 말하는 듯한 창법도 특징적인데, 3집 “조율”에서 동일 음고 위에서 내뱉는 것은 판소리 같고, 자신의 곡 “말도 안돼”에서 화답하는 듯한 모습은 뮤지컬적이다. 테크노/일렉트로니카로를 ‘비상구’삼아 음악적 지평을 확장한 5집(1999)의 “난․다(飛上口)”와 “감사의 마음” 등에서 여사제의 주문처럼 들리는 주술적 창법은 경건함과 이국성을 동시에 길어올린다.
그녀의 주변에서 음악을 가공했던 작곡자, 연주자, 프로듀서들이 대부분 남성이었지만(가령 이정선, 엄인호, 윤명운, 이승희 등은 블루지한 곡의 배후 인물이며, 송홍섭, 이병우, 신윤철 등은 록 어법의 곡을 입힌 장본인들이다) 이들과 동등한 혹은 우위의 관계를 창출하고 자신만의 힘과 아우라를 탑재할 줄 아는 여성이었다. 포크, 블루스, 록, 테크노, 국악, 트로트 등으로 종횡무진하는 음악 연대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고르거나, 혹은 역으로 주어진 곡에 맞게 노래할 줄 아는 가수인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도 갖추었음은 물론이다.
한영애보다는 후대의 가수인 이상은은 1988년 가요제에서 데뷔한 이래 최근까지 꾸준하고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성 아티스트이다. 강변가요제 대상곡 “담다디”라는 히트곡과 함께 당도한 쾌활하면서도 선머슴 같은 그녀의 이미지는 기존의 여성 가수의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변신은 기존의 주류 가요계와 일종의 이별을 선언함으로써 단행된다.
도일(渡日) 및 개명(改名)과 함께 당도한 셀프 타이틀 앨범 8집 (1997)와 9집
이런 느낌은 앞서 이야기한 한영애의 종교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한영애가 주술사이자 여제사장 같다면, 이상은은 선(禪)적 여백미를 강조하는 신비로운 뮤즈에 가깝다. 하지만 그녀가 신비적, 탈속적 작가주의만을 고집하지 않고, 이후에는 점진적으로 캐치한 훅이 있는 팝적 감수성이라는 또 다른 이상은의 매력과 재접속했는데, 10집 (2003)이 그런 앨범 일 것이다. 범접하기 어려운 듯한 고고한 향기를 휘감고 과거를 부정하는 듯한 긴장감으로 팽팽하던 그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재인정하는 과정은, 과장하면 여성 뮤지션으로서의 존재 증명의 과정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3. 탈성애화 혹은 무성성: 포크의 경우
이제 성적 정체성의 재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와 보자. 잘 알려진대로 주류 댄스 음악은 대개 관능적이고 뇌쇄적인 섹슈얼리티가 두드러진다. 반면 포크 계열 음악에서는, 나이가 좀 어리다면 소녀를, 나이가 좀 있다면 옆집 언니/누나 같은 스타일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일갈하면 성의 탈색화(혹은 또 다른 섹슈얼리티의 창조?) 경향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통상적으로 자연주의, 진정성을 이데올로기로 삼는 포크의 정치학 및 미학에서 비롯된다.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가사를 담담하고 투명하고 꾸밈없는 목소리에 담아내는데,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성기고 심플한 편곡과 연주가 이런 메시지와 목소리를 강조하게 된다. 이상의 특징들은 한국뿐 아니라 외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것이 개인적인 내면의 고백이든, 정치적인 참여이든 개인이나 집단의 진실을 반영하는 것을 그 이상(理想)으로 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포크는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펑크와 더불어) 접근이 용이한 음악으로써 여성 음악인이 선호해 온 양식이다. 또한 거칠고 강한 음악이 아니라는 점에서 ‘관습적인’ 여성성과의 괴리가 없는 것도 같다. 이는 동시대의 김추자나 펄시스터스 같은 분방한 관능성과도 정반대의 것이다.
이는 1970년대 한국 모던 포크의 생성기에 한국의 대학가에서 수용된 엘리티시즘을 대변한다. 청아하고 맑은 톤을 강조(혹은 일종의 왜곡)는 하는 것은 대학생의 순수함에 대한 동경에 다름 아니다. 이 시기 여성 포크 가수들(방의경, 현경과 영애, 뚜에아무와 출신의 박인희, 라나에로스포 출신의 은희, 그리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양희은 등)은 청바지와 긴 생머리로 대변되는 외양만큼이나 자연적인 사운드를 강조했다. 결국 포크는 남성이나 여성 모두 엇비슷한 섹슈얼리티, 즉 무성성(asexuality)을 표상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일면 조용하고 사색적인 면모는 보수적인 성적 정체성을 은연중에 재현하게 되고 오히려 성의 거세화로 향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이 점은 포크의 변하지 않는 명제가 되어왔다.
대표적인 포크 계열 뮤지션으로 (1970년대에 양희은이 있다면) 1980년대 이후에는 장필순이 있다. 물론 그녀의 행보를 ‘포크’라는 이름으로 묶기에는 문제가 많다. 초기작은 퓨전 재즈와 어쿠스틱 발라드의 어딘가에 위치할 뿐 아니라 최근만 해도 모던 록 지향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음악 창작 동아리 햇빛촌과 여성 듀오 소리두울을 거친 베테랑 신인 장필순은 1989년 솔로 데뷔작을 디렉터 김현철과 함께 하였고 세 번째 앨범(1992)부터 편곡자/프로듀서 조동익의 오랜 파트너쉽을 공고히 해왔다.
특히 4집(1994)은 그녀의 이정표로 삼을 만한데, 음악 스타일이 모던 록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통상적 평가대로 본인이 직접 작사와 작곡의 일부를 담당하기 시작해 ‘싱어송라이터=아티스트’라는 관행적 등식과도 부합하는 음반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통제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5집(1997), 6집(2002)은 일종의 정점에 이른다. 그러나 그녀가 강조하는 이미지는 이웃집 누나/언니 같은 친근한 인상에서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포크의 미학인 내면의 솔직한 고백,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시선과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조동진이 고문으로, 조동익이 수장으로 있는 ‘하나뮤직’에는 장필순 외에도 오소영이 있는데 그녀의 음악은 장필순의 경우보다 훨씬 고전적인 포크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어쿠스틱 기타 위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단촐한 구성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편안하고 아늑하면서도 이지적인 음악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손지연 역시 비슷하다.(그녀의 막후에는 1970년대 한국 모던 포크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양병집이 있다.) 또한 많은 민중음악 자장권 내의 여성 가수들의 양상도 역시 포크가 기대고 있는 섹슈얼리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살다 보면”이나 “민들레처럼”처럼 낙관과 긍정의 삶을 위한 메시지를 설파하는 권진원, 윤선애 등의 경우 ‘대지모’로서의 넉넉함과 포근함을 보여준다. 그것이 소시민적 소박함의 이데올로기를, 그리고 음악적인 진부함을 설파할지언정.
이상의 중성적․무성적 성향은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다소 거칠고 강한 록 음악 형태에서도 나타난다. 초기 허클베리핀 및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리스트였던 남상아가 그런 경우다. 보이시한 외모와 허스키하고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남상아는 특히 이런 매력을 대표한다.(남상아는 영화 출연을 하기도 했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컬트 드라마로서 인기를 얻은 <네 멋대로 해라>에서 음악적 공헌을 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성기완의 블루지한 기타 연주를 기반으로 한, 거칠고 블루스 하드 록과 그런지 록에는 실험적인 노이즈가 배양되며 때때로 부드럽고 캐치한 선율의 넘버도 포진되어 있다. 이런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현시하는 데에 남상아의 보컬의 위치는 말할 필요도 없다. 초기에 남상아가 몸담은 바 있는 허클베리핀은 현재 이기용(기타, 보컬)을 중심으로, 이소영(기타, 보컬), 김윤태(드럼), 장혁조(베이스)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의 행보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초기의 그런지(grunge) 및 펑크스타일 자장에, 다소 유연하고 섬세한 선율을 강화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소영의 보컬은 크게는 남상아와 닮은꼴의 보컬(내향적인 분노)을 들려준다.
4. 밴드 앞에 선 여성들, 다양한 목소리의 결
1990년대 중반 이후 여성의 음악 활동상에서 보다 주목적인 현상은 허클베리핀이나 3호선 버터플라이 같은 록 밴드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밴드는 멤버 각자의 역할이 중시되는 음악 형태이면서도 서로간의 조율과 화합이 중시되는 포맷이다. 이러한 밴드 형태는 여성의 음악 활동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양태를 일면 강조하는 듯 보인다. 이때 여성은 대개 밴드 ‘앞’에 선 보컬리스트인 경우가 많다. 반면 다른 남성 연주자(혹은 작곡가나 프로듀서)들은 ‘뒤’에 있다. 이런 ‘프론트우먼을 내세운 팝/록 밴드’의 효시격은 1995년 무렵 얼굴을 내민 삐삐밴드이다. 2인 남성 베테랑(강기영, 박현준) 앞에 선, 당시 신인 여성, 아니 소녀 이윤정은 빈티지 계열 패션에, 천방지축으로 악쓰거나 중얼거리며 노래 같지 않은 노래를 불러댔다. 기존 댄스 음악계를 조롱하면서, 진지하고 무거운 록의 강령 역시 비웃으며, ‘싸구려의 미학화/예술화’를 시도했다.
그 후 이런 형태의 혼성 밴드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정도 차는 있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기타 팝이 대다수였으므로 다른 사운드의 문제는 논외로 하고, 문제적이었던 여성 보컬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최근의 사례로 “낭만 고양이”(2002)를 통해 인기를 구가한, 시원시원한 ‘여걸형’ 체리필터의 조유진은 힘 있고 강렬한 가창으로 여성 록 보컬의 영역을 확장했다. 물론 더더의 전(前) 보컬 박혜경이나 스웨터의 이아립처럼 ‘청순(가련)형’ 이미지, 상큼하면서도 발랄하고 말랑말랑한 목소리는 최근 모던 록 여성 보컬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는데, 이들은 가창력이 있는 보컬은 아니지만 때로는 귀여운, 때로는 편안한 이들의 음색 속에 섬세한 신변잡기적 가사를 구현한다.
‘한국형 모던 록’의 대표주자, 여성 보컬을 내세운 밴드의 한 전형을 보여준 더더는 박혜경의 솔로 독립 이후, 새로운 보컬 한희정과 함께 3집(2001)을 발표하면서 2기를 맞이한다. 청아하면서도 허스키한 여린 결의 박혜경과 다르게, 한희정은 굵직하고 힘이 있는 결을 보여주었는데, 4집(2003)에 이르자 한희정이 한층 더 중요한 존재가 되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무엇보다 3집에서 보여준 묵직하고 낮은 톤에서 완화하고 가볍고 하늘거리는 톤을 보다 더 강화해 다양한 톤을 구사하는 보컬리스트로서 자리를 굳혔다. 이것이 항간에 유행한 ‘상큼발랄’ 프론트우먼 보컬의 음색을 수용한 것이든, 혹은 다양한 음색에 대한 욕구를 표출한 것이든 그 목소리의 양상에는 안정적인 터치와 감각이 잘 살아있다. 이처럼 체리필터를 비롯하여 더더, 스웨터는 모두 인디 씬과 무관하지 않지만 인디라는 시선을 회피하고자 하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리고 여성 보컬에 대한 기존 편견을 답습하거나 비껴간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인디 출신으로써 ‘셀링아웃’을 단행하며 주류 가요계로 진출한 자우림의 김윤아일 것이다. 김윤아는 단순한 ‘얼굴마담’ 역할을 넘어서서 곡을 쓰고 노래를 하는 밴드의 핵심인데, 여기서 보여주는/들려주는 그녀의 이미지는 다양하다. 친근한 이웃집 언니/누나 스타일부터 팜므 파탈적 악녀형 이미지까지를 동시다발적으로 전유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이중성에 대한 풍자(“김가만세”)부터 성형 천국에 대한 비아냥(“실리콘벨리”)에 이르는 비판적 스펙트럼 역시 대안을 기다리는 수용자에게는 호감을 가지게 할 요소다. 그녀는 자신의 솔로 앨범을 통해 고독, 불안, 그리움, 상처 등을 탱고, 보싸노바, 재즈 등 고풍스러운 여러 장르들로 포장하는 고급화 전략을 취하기도 했다. 한편 최근 발표된 자우림의 정규앨범(5집)은 펑크를 컨셉으로 내세웠다. 자의식 있는 밴드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제스처는, 그러나 과잉적일 만큼 발랄한 동요형식을 통해 상충적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교복 페스티시와 펑크 이미테이션 사이의 전유 전략에 대한 평가는 상극을 오갈 수 있는 문제이다. 김윤아만의 여러 가지 ‘가면’이 중요해지는 셈인데 이에 대한 평가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이처럼 밴드는 각 멤버의 역할이 강조되는 음악 생산 형태로, 노래를 부르는 일 이외에 연주나 작곡에 있어 여성의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솔로 가수의 경우보다 대안적인 형태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밴드 앞에 서 있는 여성 보컬은, 성 역할의 문제와 더불어 기존 여성 이미지의 확대 재생산/소비라는 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듯 보인다. 1996년경 등장한 주주클럽을 위시해 많은 보컬리스트들은 한동안 크렌베리스의 돌로레스 오리오던의 창법을 모방하였고, 엘라니스 모리셋을 또 하나의 전범으로 삼은 워너비(wannabe)들이 되었다. 이제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여성 보컬이 있는 말랑말랑한 록 밴드의 음악을 두고 모던 록으로 치환하는 (웃지 못할) 경향이 생겼다. 러브홀릭을 위시해, 도로시, 피비스 등 여성 보컬이 앞장선 밴드의 앨범들이 발표되었지만 이들에게서 더 이상의 매력은 찾기 어려워진 것 같다.
5. 부정형의 노이즈, 유동하는 아방가르드의 여성성
이상처럼 부드럽고 듣기 편한 음악만이 여성 음악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귀에 거슬리지 않고 편하고 부드러운 음악만을 여성적 음악으로 고착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아니, 오히려 그렇지 않은 음악에서 ‘여성적인’ 음악을 발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먼저 한국 인디의 선구적 밴드 옐로 키친을 사례로 들어보자.
옐로 키친의 초기 시절, 도순주는 최초의 인디 음반 (1996)에서 노이즈가 혼융된 그런지 록에 차갑고 이지적인 보컬을 담았다. 얼마 후 2인조로 재탄생한 뒤, 이들은 관습적인 록 음악 및 노래/목소리 구조를 해체하고 샘플링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테크놀러지(특히 컴퓨터) 친화적 음악을 선보였다. 그런지 및 노이즈 록에서 탈주해, 드림 팝/슈게이징 혹은 포스트 록으로 진화했다고나 할까.
딜레이되고 피드백되는 순환적이고 신비로운 이들의 음향에는, 내면으로 침잠하는 독특한 무드가 있다. 몽환적이고 나른한 동화적 세계로 접속하다가도, 변조된 드럼비트와 이펙트 걸린 기타의 불길하고 괴기스러운 세계로 순간적으로 혹은 동시에 접속한다. 그 위로 정체불명의 도순주의 (목)소리가 부유한다(목소리 아닌 목소리, 악기의 재발견!). 그녀는 왜곡된 보컬 음조를 통해, 내면으로 침잠하는 무감정적 응시와 내성적인 몰입(혹은 여성적 방식?)을 보여주면서 옐로 키친의 음악적 색채를 분명히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그/그녀는 고립주의적이었다. ‘어딘가 저 너머의 그 무엇’을 응시할 뿐 지나치게 내향적이고 폐쇄적이었다.
이런 몽환적인 음악성은 최근의 네눈박이나무밑쑤시기(이하, 네눈박이)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골방소녀’적 이미지와는 다소 이탈한다. 무엇보다도 폭넓은 장르 스펙트럼의 실험적인 교배가 특징이다. 세 명의 여성멤버(기타 2, 베이스 1) 및 남성 드러머로 구성된 네눈박이는 1998년 결성된 이래 5곡이 포함된 EP는 발매한 바 있지만 정규앨범(비트볼, 2004)은 결성 6년 만에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해체해버린 상태에서 정규앨범을 녹음한 특이한(?) 이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들의 전위성은 (옐로 키친의 음악을 드림팝 및 포스트록적으로 정의한 것과 비교해보면) 이들의 네오사이키델릭적 컨셉 때문이다. 나름의 과격함이 혼융되는 아방가르드 노이즈 잼을 펼치는데, 그러면서도 곳곳에는 재즈, 집시풍 폴카, 스페니시적 분위기까지 다양한 분위기가 감돈다. 포크적인 기타와 하늘거리는 보컬 음색의 애상적 노래도 있다. 사실 이러한 하드 록, 혹은 아트 록, 재즈적 터치는 한 곡 내에도 곳곳에 칩거한다. 이것은 반복을 통한 확장이 아닌,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탈함으로써 변화와 다양성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컬의 경우에도 다양한 톤으로 분기하는데, 무엇보다도 다소 낮은 음역의 카랑카랑한 보컬이 인상적이다. 이는 주술사의 주문, 하이톤 가성, 샤우팅 등처럼 다채롭게 변모한다. 작열하는 듯한 기타 노이즈와 늘쩍지근하게 말하는 듯한 보컬과 대화하듯 교차되기도 한다.
한 정점에는 8분 40초의 대곡(“Hymn to Him”)이 자리하는데, 이 곡은 정형화하기 힘든 화성이나 곡 구조 속에, 빠르고 강한 광폭 노이즈와, 예의 날카로운 보컬이 직조되며 다양한 무드로 이동한다. 그런데 이 불길하고 시끄러운 곡은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명상적 분위기로 인도한다. 옐로 키친이 동화나 자연의 코드와 몽환적인 음악이 조우한다면, 네눈박이의 음악에서는 주술의 세계, 디오니소스의 세계가 사이키델리아의 세계와 교차하는 것이다. 그 세계에는 여성의 섬세함이 투영되어 있다.
이제 네스티요나를 살펴볼 차례이다. 2002년 3월 부산에서 결성된 이래 현재는 4인조 멤버로 정착했는데, 2002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에 참가한 후, 홍대와 신촌 지역의 클럽에서 꾸준히 활동해오며 음악기반과 팬층을 다져왔다. 결성 2년여 만에야 데뷔 EP (쌈지, 2004)를 발표했다.
특히 여성 멤버 요나는 밴드의 핵이다. 재즈 피아노를 전공한 키보디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이며 작사 작곡자로서 네스티요나 음악의 기준점으로 작용한다. 재즈, 보사노바, 트립합, 사이키델릭 등을 종횡무진하는 밴드의 음악 성향과,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몽환적인, 섬뜩한 공격성을 오간다. 무대 맨 앞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며 관객석을 시종일관 째려보는 독특한 시선으로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라. 그러나 단지 한 가지 색깔로만 이들의 음악을 규정할 수 없다. 이러한 어두운 분위기는 박자나 이펙트의 변화 등으로 다양한 색채의 음악들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이는 멤버들 각각의 다양한 음악적 성향에서 비롯된다. 산뜻한 보사노바 리듬과 재지한 피아노, 영롱하게 부유하는 기타가 몽환적인 트랙(“이렇게”)부터, 어둡고 둔중한 로파이 트립합(“Secret”), 그로테스크한 피아노와 노이즈 넘치는 기타와 음산하게 스멀거리는 허스키 보컬이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곡조의 싸이키델릭 사운드(“If She Finally Comes”)까지 종횡무진한다.
이러한 부정형의 아방가르드 사운드들은 일종의 섬세하게 직조된 것들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면 여성적인 음악이라 이를 만한 것이 아닐까. 리프를 남근으로, 노이즈를 질로 비유하는 철학자의 견해를 따를 필요는 없지만, 남성적으로 간주되는 이항대립적 명확함이 없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부단히 유동적이고 다양한 접합의 결과물은 다소 난해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것은 새로움에서 오는 낯선 형태이기 때문에 파생되는 결과일 것이다.
6. 한없는 가벼움 속으로
최근 주류의 한 현상은 ‘뜨거운’ 흑인 음악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알앤비, 소울을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열창형 디바들을 보라. 이와 대비되는 ‘쿨한’ 트렌드로는 일본 시부야계 음악이나 프렌치 팝 혹은 라운지 팝 음악이 있다. 특히 이는 전통적인 밴드 형태가 아닌 혼성으로 이루어진 2, 3인조의 프로젝트인 경우가 많은데 보컬리스트는 여성이 많다. 조원선을 보컬로 앞세운 롤러코스터는 지누의 일렉트로닉한 음향의 프로듀싱 및 베이스, 이상순의 훵키한 기타로 구성된 3인조로 1999년 결성, 넉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관록의 밴드이다. 역시 혼성 3인조 프로젝트 클래지콰이는 작년 평단의 호평과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이 외에 라이너스의 담요, 포춘 쿠키. 하키 등 인디 뮤지션들도 이런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5인조 라이너스의 담요는 동화적 혹은 만화적 감수성을 들려주는데, 이는 아기자기한 노랫말과 사운드에서 비롯된다. 혼성 듀오 포춘 쿠키는 DJ 달파란이 프로듀싱을 맡은 첫 앨범(2004)에서 거품 목욕을 즐기는 여자의 나른한 환상(“Bubble Jelly Fish”), 달빛 아래의 향기로운 풍경(“Moon Walker”)을 묘사하는 식으로 동화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솔로 가수 하키의 경우(문라이즈, 2004)는 샹송 가수 제인 버킨 혹은 카히미 카리에를 즉시 떠올릴 만큼 여리고 부서질 듯한 발성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중성적이고 여유로운 보컬을 보여주거나(조원선), 부서질 듯 속삭이거나(하키), 귀엽고 상큼한 순진함을 드러내는(라이너스의 담요) 목소리와 사운드는 일본 시부야계 혹은 라운지 팝 음악이나 트위 팝, 프렌치 팝 등을 진원지로 거론할 만하겠지만 어찌 보면 그 어느 곳에도 없는 다국적 혹은 무국적적인 것이다. 또한 무겁지 않고 세련되며 지적인 음악(혹은 감상용 테크노)에서 현시하는 ‘한없는 가벼움’의 이미지는 만화나 동화 속의 소녀나 요정과 동일시되는, 성적으로 모호한 판타지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밴드가 평등함을 전제로 여성에 대한 불평등들을 낳기도 하는 반면, 이러한 프로젝트 형식을 가진 ‘일부’ 형태는 그러한 밴드 형식의 폐해에서 다소 벗어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7. 여성주의적 관점을 표방한 뮤지션들
여성 음악인의 한 극단에는 본격적으로 여성주의를 표방한 뮤지션들도 있다. 노래를찾는사람들 활동을 접고 솔로로 활동하면서 페미니스트 가수로 나선 안혜경은 이런 최초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페미니즘 록 밴드를 표방한 마고 활동을 비롯해, 석 장의 앨범을 발표한 바 있는데, 여성문제를 환경문제, 반전이나 사회문제 등과 결부시킨 음악을 보여왔다.
‘페미니스트 가수’라는 직함을 공공연히 발언하는 지현은 이 계보의 전형이다. 여성으로 사는 고단한 일상사는 물론 여성 자신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는데, 가령 “아저씨 싫어”는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반면, “Masturbation”이나 “Cut it Out”은 여성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직설적인 성찰에 다름 아니다.
위와 같은 여성주의적 지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와 일맥상통하는 컨셉을 가진 밴드도 있다. 4인조 올우먼 밴드 헤디는 헤디마마라는 이름으로 1997년 데뷔한 부산 출신의 밴드인데 2003년에야 첫 앨범 [You Complete Me]을 발표했다. 호모포비아를 꼬집는 “이반이야기”, 근친강간을 소재로 한 “숲” 등 많은 노래는 앨범 커버에서 보여주는, 도발적이고 기괴하다 못해 공포스러운 여신의 모습처럼 낯설기 그지없다. 어쩌면 이들이 주목받지 못한 것은, 앞서 이야기한 모던 록 밴드 같은 ‘수용 가능한 여성성’을 다소 거스르기 때문이 아닐까. 베테랑 송홍섭이 프로듀싱한 이 앨범이 하드 록 혹은 블루스 혹은 사이키델릭 록의 거칠고 분방한 음악에서 연원한다는 점에서 사운드상으로는 새롭지 않은지도 모른다. 사실 남성의 음악 스타일로 여성주의적인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논쟁은 오래된 숙제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음악을 하는 여성들의 유형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헤디는 유의미한 도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에서 언급한 형태의 음악은 대개 메시지 중심적인 경향이 많다. 이는 역전략으로써의 유의미성은 당연히 존재하지만 대안적인 음악인가의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8. 나오며:여성적인 음악을 위하여
이상으로 거칠게나마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비주류의 여성 음악인에 대한 지형을 살펴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몇 가지만 지적하고 글을 마치려 한다. 많은 뮤지션들은 대개, 통념 때문이든, 혹은 이를 이용한 전략 때문이든 여성의 이미지의 확대 재생산 및 소비라는 기존 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통념의 적극적인 ‘활용’ 혹은 이로부터의 ‘도약’과 ‘돌파’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대중음악 생산의 영역에서 여성이 소외된 영역들은 존재한다. 테크노/일렉트로니카의 DJ이나 턴테이블리스트는 여성이 흔치 않다. 또한 노래나 작사․작곡․편곡 이외에 프로듀싱을 비롯하여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 같은 기술적인 영역은 지금까지 여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테크닉 관련 문제는 록 음악 내에서의 여성의 위치처럼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개선될 문제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봉착하는 더 큰 난관이 있다. 그렇다면 ‘여성적인 사운드’가 무엇인가, 혹은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유의미한가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앞에서 어느 정도 암시는 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은 숙제로 남겨둔다.
최지선․
1972년 서울 생
․공저 오프 더 레코드, 인디 록 파일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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