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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연재-하이쿠 에세이③/김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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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425회 작성일 08-02-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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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하이쿠 에세이③



짧은 시, 긴 울림

김영식





1.

高麗舟のよらで過ゆく霞*かな(蕪村*)
こうらいぶねの よらですぎゆく かすみかな(ぶそん)
koraibuneno yorade-sugi-yuku kasumikana(Buson) 

조선의 배가
지나가는 바다의
봄 안개여

아름답게 장식한 조선의 배가 이 항구에는 들르지 않고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간다.
과거 일본에서 고려라 함은 좁은 의미로는 고구려, 넓은 의미로는 조선반도를 칭한다. 과거의 일본은 중국과 조선으로부터 문화를 받아들였기에, 조선으로부터 선진문물을 싣고 오는 배는 일본인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1707년부터 1811년의 기간에 12회에 걸쳐 이루어진 조선통신사절단* 방문시에는, 오백여 명에 이르는 통신사가 수척의 큰 배로 부산을 떠나 대마도까지 오면, 그곳부터는 무려 천여 척의 크고 작은 일본 배들이 오사카까지 호위를 하였다고 하니, 가히 바다 위의 일대 장관(一大壯觀)을 이루었을 것이다. 통신사에는 학자와 화가 등 많은 문화예술인이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 자신 시인이며 화가인 부송이 조선통신사 선단(船團)을 바라보며 가진 감회(感懷)는 여느 사람보다 더 깊었으리라 생각한다.
만물 소생의 봄날, 어느 항구 마을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멀리 조선의 배들이 지나가고 있다. 그 배는 싸우러 오는 배가 아니라 문화를 교류하고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오는 배이다. 봄날의 안개 낀 바다를 나아가는 배를 시인은 한일교류의 따스한 정으로써 받아들인다.
이에 비하여 훗날(1853) 일본의 개항을 요구하러 온 미국의 구로부네(黑船)는 대포를 장착한 크고 검은 전함으로, 일본인에게는 경악과 위협을 상징하는 이국선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1875년에는 구로부네를 흉내 내어 운요호(雲揚號)를 조선에 보내 강화도조약의 체결을 강요하게 된다. 구로부네와 운요호를 노래한 시는 없다. 그것은 정(情)의 확대가 아닌, 욕(慾)의 확대이기 때문이다. 통신사 배가 오사카 항에 이르면, 수많은 일본인이 연도에 늘어서서 환호로 영접하는 정의 교류를 꽃피웠지만, 구로부네와 운요호는 상대국민의 증오와 부딪쳐 단절과 충돌의 불꽃과 연기(火焰)를 일으켰다.
구로부네와 운요호는 한쪽이 무력으로 상대의 역사를 바꾼 상징으로 건조하게 그 이름이 남아있지만, 서로가 기꺼이 주고받은 교류의 상징인 조선통신사는 역사에는 물론, 일본 곳곳에 유적과 전통문화로, 또 일본인의 마음에 지금도 따뜻하게 흐르고 있다. 후쿠아먀(福山)의 어느 절에는 통신사의 글이 액자로 걸려있고, 통신사가 전해준 당인춤(唐人踊り)*은 미에(三重)현의 무형문화재로 존재하고 있으며, 조선통신사와 일본 막부와의 중개에 일생을 바친 아메노모리호슈(雨森芳洲,1688~1755)를 연구하고 기리는 교류회 (http://www. hoshukai.com)는 해마다 한일 간을 오가며 열리고 있다.
한류가 다시 흐르고 있다. 비록 대중문화가 일으킨 열풍이기는 하지만, 과거의 교류가 위로부터의 것임에 비하여, 지금의 한류는 아래로부터 대중 속에서 발생한 것임에 의미가 깊다. 주권이 대중에게 이전된 현 시대에 양국의 정치가는 대중의 뜻에 따라 정치를 펴나가지 않을 수 없다. 부송이 지금 살아있다면 다음과 같은 시를 짓지 않았을까.

韓国の飛行機飛んでゆく空の雲
한국에서의/ 비행기 날아가는/ 하늘의 구름

*霞: 안개는 무(霧)로도 쓰이나 하(霞)는 특히 봄 안개를 말한다.
*蕪村 (与謝蕪村 Yosa Buson, 1716~1783) : 에도 중기의 하이진(俳人)이며 화가. 낭만적 회화적 작풍으로 유명하다.
*명확하게 조선통신사 선단에 대한 것이라는 근거는 없으나, 제10회의 1748년이나 제11회의 1764년의 조선통신사 배가 부송의 나이 32세와 48세에 해당한다. 통신사 배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상정해도 무방하리라.
*위 그림은 조선통신사가 탄 죠슈한(長州藩)의 배
2.

行春や撰者*を恨む哥の主(蕪村)
ゆくはるや せんじゃをうらむ うたのぬし(ぶそん)
yuku-haruya senjawo-uramu utano-nushi (buson)

봄날은 간다
찬자를 원망하는
와카의 작자

천황이 직접 명해 만든 와카(和歌)집을 칙찬집(勅撰集)이라 하고, 찬자(撰者)는 많은 와카 중에서 좋은 것을 선별하는 자를 말한다. 오늘날의 신춘문예나 신인상, 그리고 기성문인의 경우에는 ‘올해의 좋은 시 100선’ 등이 이 칙찬집과 비슷하리라. 옛날에도 이렇게 매해 봄이면 많은 문인들이 자기의 시(와카)가 칙찬집에 뽑히는 것을 기대하며, 이제나저제나 노심초사 심사 결과를 기다렸던 것이다.
봄은 봄이로되, 낙선자의 마음에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올해의 봄도 그저 그렇게 자신의 주변으로 왔다가 그냥 지나가 버린 것만 같다. 그러나 봄은 다시 또 찾아온다. 내년을, 아니면 십년 후라도 봄의 욕망과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해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새 봄을 맞이한다면, 그의 마음은 이미 봄날인 것인데, 그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이를 깨닫게 되리라. 그도 그럴 것이, 당선의 환희를 노래한 시는 볼 수 없지 않은가. 좋은 시는 완결과 성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갈망이 치유와 희망을 향한 도정에 있을 때 샘솟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를 노래하는 마음은 명예라는 세속의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것이 이상(理想)일 터이나, 범인은 속세의 욕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괴로워하고 아쉬워한다. 공모에 떨어지면 자신에 대한 열등감은 더해가고, 심사위원에 대한 원망도 할 것이지만, 곧 그 마음을 떨쳐버리고 다시 본연의 순수한 길을 꾸준히 걷는 것이 문학인이 가야할 바른 길이다. 최근 각종 공모전에는 당선으로 영웅이 되겠다는 마음에 눈이 멀어 이중 당선과 표절을 서슴지 않는 자가 적지 않고, 낙선자의 원성과 비방이 인터넷에 난무하다. 또, 기성문인 중에는 글보다는 문단에서의 교제와 정치로 자신의 명예를 올리려고 노력하는 자를 많이 본다. 다들 좋아서 걷게 된 문학의 길이지만 그 길은 영웅대로가 아니라 한적한 오솔길이라는 걸 잊고 있다.
몇 년 전 글이 매우 좋다는 일본인 사이트를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아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는 문인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일반기업에서 일한 지 이십여 년이 넘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책을 읽고 감상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결혼을 한 후 가까운 집안 어른에게 인사를 드리자, 그 분의 단 한마디 덕담은, ‘출세를 하지마라.’였다고 한다. 무능력의 변명처럼 쓰이게 될 수도 있으니,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말이다.

行春や選ばれなくも春心
봄날은 간다/뽑히지 않았어도/봄날의 마음


3.

古池や蛙飛こむ水の音(芭蕉*)
ふるいけや かわずとびこむ みずのおと
furu-ike-ya kawazu tobi-komu mizu-no-oto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들어
나는 물소리

Old pond
A frog leaps in
Water' sound (Translation by William J. Higginson)

오래된 연못. 그곳에 돌연 개구리가 뛰어드는 소리가 나, 일순 적막함이 깨진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하다.

조용한 숲 속, 오래된 연못
나는 말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또, 비 온 후에 생긴 물웅덩이는 얼마 후 말라 없어진다. 연못의 영속성은 물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감으로써 유지된다. 고여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연못의 어딘가에서 물은 솟아나고, 어딘가로 물은 흘러나간다.
연못은 수면 아래에 물풀과 물고기같이 수많은 생명을 포용하고 있으며, 토끼와 같은 땅의 동물에게 생명 연장의 물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수륙양생의 개구리도 기꺼이 몸 안으로 받아들이며 ‘살아’ 있다. 개구리는 죽어 가는 생명(연못)에는 몸을 던지지 않는다. 죽은 연못에서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자라서 알도 낳지 않으리라.
‘오래된(古)’이라는 말은, 늙어 죽음에 가까운 적막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오래된 나무와도 같이, 그 ‘오래됨’의 저력, 번성, 질긴 생명의 힘을 느끼게 한다. 입(口)이 열 개(十)나 있으니, 古는 번성의 뜻이 아닌가.
개구리가 뛰어들어 물소리를 냄으로써, 우리는 오래된 연못(古池)이 가진 생명의 힘을 문득 새삼스럽게 느낀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바람의 존재를 알게 되듯, 오래된 연못이 가진 생명의 드러남은 개구리의 뛰어들므로 이루어진다. 연못이 주가 되고 개구리는 객이 된다. 북이 울리면, 북을 치는 사람이 우는 것이 아니듯, 개구리가 뛰어들어 물을 치면, 연못이 소리를 내는 것이다. ‘퐁’ 소리는 개구리의 뛰어들므로 인해 드러난, 연못이 크게 ‘숨 쉬는’ 소리이다.
적막함 속에서는 그저 멍해지거나 졸기만 하는 사람에게, 생명의 힘이 바로 여기 있다고, 오래된 연못(古池)은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를 들려준다.

내 말이 끝나고,
여운의 동심원도 사라지고,
이제 다시 적막(寂寞) 속으로


*芭蕉(松尾芭蕉, Matsuo Basho, 1644~1694)
하이쿠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일본의 대표적 하이쿠 시인(俳人)

*이 하이쿠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으로, 하이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한적유환(閑寂幽幻)을 바탕으로 한 바쇼풍(芭蕉風)을 체현한 최초의 구다.


김영식․
1962년 부산 출생
․2002년 ≪리토피아≫ 수필 등단
․‘일본문학취미’ 사이트 운영자(http://hobbian.netian.com)

추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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