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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지난 계절 작품 읽기(소설)/이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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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62회 작성일 08-02-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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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계절작품읽기【소설】

‘그렇고 그런 자본주의의 현실’을
표상하는 기이한 소설작법
―박민규의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문학동네 2004년 겨울)

이정석(문학평론가)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를 찌르는 그런 종류의 책들만을 읽어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머리를 치는 일격으로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책을 뭣 때문에 읽지?…… 그 대신 우리는 우리에게 재앙과도 같은 영향을 주는,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처럼, 모든 이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를 깊게 비탄에 젖게 하는 그러한 책들을 필요로 한다. 책이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믿음이다.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근 만화적 상상력이 소설의 영토로 잠입해 들어와 한국소설의 지형도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의 한복판에 박민규가 있다. 박민규는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라는 다소 장난스런 제목이 달린 신작에서도 그 특유의 만화적 상상력에 기초해 재기 발랄한 서사의 유희를 맘껏 펼쳐 보이고 있다.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는 만화의 컷 같은 에피소드들이 산만하고 느슨하게 이어져 한편의 통일적인 이야기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일목요연하게 이 소설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그리 녹록치는 않지만, 굳이 이 작품의 기둥 줄거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지구를 떠나보지 않고선 세계의 정체를 알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의 ‘외출기(外出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 스무 살이 되던 날의 아침, 이 세상이 너무 “그렇고 그렇다.”고 생각하던 ‘나’는 “이 세계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지구를 떠났다가 그것의 진면모를 목격하게 된다. 그가 확인한 지구는 “전혀 둥글지 않았고,” “뭔가 복잡한 느낌의 납작함”을 지닌 한 마리의 거대한 개복치였는데, 그것이 내부로부터 축복처럼 거대한 빛을 쏟아내자 ‘나’는 “비로소 스스로를 긍휼히 여길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서사의 골간에 비추어 이 작품을 성장소설로 간주한다면,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는 가장 기묘하고 우스꽝스러운 성장소설의 하나로 손꼽힐 만하다. 지구를 떠나서 자기 눈으로 지구를 확인한 자만이 인류와 지구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풀어 이야기하자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를 벗어나 바깥에서 그 세상을 주체적으로 바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담은 대단히 희화적인 성장소설.
하지만 좀더 나아가 이 소설을 “이미 세계는-어떤 거짓말을 해도 그렇고 그렇게 들릴 만큼, 그렇고 그런 곳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나’가 시치미를 떼고 천연덕스럽게 펼치는 재기 발랄한 ‘구라’의 대행진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는 “무역풍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 세계의 마지막 구름”을 이용해 고무동력기를 타고서 창공을 날고,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일이 조금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270수만에 흑이 한 집 반 승을 거두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의 바둑강아지”라는 기발한 묘사가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고무동력기를 밀어줄 사람을 찾다 만난 남자가 ‘정력남’ “이대근 씨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정말 그가 “나 이대근인데”라고 답하고, 우연히 만난 비틀즈의 ‘조연’ 맴버 링고 스타가 개복치 여관과 지구 밖 ‘외출’의 후견인이 되는 것도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기존의 소설문법에 의존하지 않고 개연성과 무관한 만화적 서사의 붓칠로 개성과 재미를 갖춘 작품을 산출하는 소설작법이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자본주의의 문화적 부산물을 활용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능청스럽지만 그럴 듯하게 비판하고 있는 점도 미덕이라면 미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 소설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헐크 등 온갖 만화 주인공들을 다 불러들여 그야말로 만화적 영웅의 잔치판을 벌인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의 문제점을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사실 만화적 에피소드들을 걷어내고 나면, 󰡔지구영웅전설󰡕은 미국의 세계지배 음모라는 다소 진부한 정치적 통념을 단선적인 서사에 담아내고 있는 ‘그렇고 그런’ 작품이 되고 만다.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역시도 정신없이 펼쳐지는 에피소드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면 자본주의적 현실 비판이라는 그다지 새로운 것 없는 문제의식과 마주치게 된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앰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빨판을 가진 한 마리의 기생충”임을 알게 되는데, 이 자본주의의 기생충은 모든 의미를 빨아먹어 친밀한 소통과 사랑이 부재하는 그렇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실체와 유의미성을 자본주의의 블랙홀에 몽땅 흡수당한 채 고만 고만한 존재들이 무의미한 기표들이 되어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 자본의 세상이다.’
이처럼 다소 식상해 보이는 문제의식을 경쾌하고 활력 넘치는 만화적 서사로 포장하여 가볍게 요리하고 있는 점은, 뒤집어 보면, 이 소설의 단점이 아니라 매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대중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활용한 지적 트릭이나 일부러 진지성을 피해가며 아예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듯 한없이 가벼워지려는 작품의 경향에 대해 쓴소리를 뱉어내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 읽고 있는 작품이 만화가 아닌 소설인 한, 그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행위 자체도 충분히 존재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닐까.
만화적 상상력이 한국소설의 지형도를 어떻게 탈바꿈시키는지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번쯤, 문학은 왜 이리도 엄숙하고 고통스런 세계들에만 천착하는 걸까? 좀 밝고 명랑한 삶을 경쾌하게 다루며 시원한 웃음을 유발할 수는 없는 건가? 하는 불만을 가져본 적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만화적 상상력의 도래가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소설이 인간의 실존을 문제삼는 장르라는 고루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독자들은, 반가움과 비례해서 만화적 상상력이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거나 일회적 재치의 발산에 머물지 않고 깊이와 진지함을 동반하며 소설의 영토를 풍성하게 만드는 새로운 동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정석․
2004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등단
․숭실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추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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