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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고찬규/달려라 얼룩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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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고찬규/달려라 얼룩말 외 1편
고찬규
달려라 얼룩말
1.
이게 말이 되냐고 묻겠지
말이야?
말이지 말 많았던 말
2.
말 위에 황금안장을 얹은
그녀는 K대 정문을 당당하게 통과했고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겐
미스코리아 간판이
아나운서 간판이
줄줄이 달린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녀의 갑작스런 낙마를 예상한 이는 없었으나
누군가의 화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친절한 종편 채널은
기억 저편의 활짝 웃는 그녀를 소환한다
3.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마술은 오래전 기획됐다
최루탄이 터질 때마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던 빌딩은
마침내 63층을 집어삼킨다
한때 도로를 점거했던 시위대는 이제
삼삼오오 한강변에 모여
추억을 곱씹으며 불꽃놀이를 즐긴다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던 어느 날
청계산으로 끌려간 사내가 죽음을 맛보고
맛만 보고 살아 돌아왔고
그날 밤 있었던 일은 다 같이 쉬쉬 하고 있다
그 와중에
마장마술로 메달을 딴 사내가 있다
4.
말을 타면 됐다 명문 Y대를 가볍게 패스한 이모의 코치를 따라 최초로 Y여대를 말 타고 들어갔다가 문제가 된 문제아가 있다 내부 조력자 몇몇이 담장을 낮춰 놓았던 터라 어떤 말이라도 담장을 뛰어넘는 건 일이 아니었겠지만 좀더 확실한 것을 원하던 문제아는 메달을 목에 걸고 명마를 타고 나타났다 은밀히 진행되던 계획이 세상에 드러난 건 생각지 못한 전혀 다른 곳에서 사고가 나서였다 딸랑이를 들고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좀 더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고 싶었던 이들은 머지않아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최고의 반도체 칩이 내장된 말의 행방에 대해선 모두가 함구했다
5.
말잔치 나라에선 자주
이게 나라냐? 묻는다
이게 말이 돼? 묻지만
말이면 다 되는 나라
말로 흥하다 낙마하는 기분?
말마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오추마 적토마 백마 흑마를 수시로 갈아타며
달린다 개 돼지는 금새 잊는다는 믿음으로
달리고 달린다 오늘도
채찍을 휘두르며
갈기를 휘날리며
속도를 올릴수록 얼룩은 지워진다
칠석
초승달 차오르다
봉숭아 씨방 터지던 날
흩어진 마음 모아
손톱달 떴다
그리움 안아
꼭
그만큼씩만 자라는
달,
*고찬규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숲을 떠메고 간 새들의 푸른 어깨』, 『핑퐁핑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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