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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정다운/솜을 물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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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정다운/솜을 물고 외 1편
정다운
솜을 물고
입술을 눌러도 아무렇지 않으니까
결국 깨물게 돼
얼린 두부를 꺼내 해동하다 보면
누르다 누르다 결국 터트리고 싶지
눈엔 눈물이 입안엔 무감각이 물려 있다
솜을 끼우면 된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애들이 제 입술을 씹고 부었을까
사랑니가 나와서 빠갰다
의사가 올라타서 뽑는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아닌가 올라탄 것도 모르고 무서웠나
영혼이 몸 밖으로 끌려 나가는 줄 알았는데
햇볕 아래 나오고 나니 조금 부끄럽다
사랑 앓는 일을 끝낸 기분이라고 올려야겠지
영어로 지혜가 터키어로 그저 스무 살이 이제 없어
다른 나라에선 무엇이 없는지 더 찾아서
안녕, 분별의 어금니야
그와 내가 들뜨는 동안 그것은 몸 안에서 욱신거리며
처음 보는 감정을 밀어 올렸다, 라는 말은
걔는 입사 하자마자 날 떠났어
내 울적한 얼굴 핑계나 대고 말야, 로 변질되었다
스물에 이빨을 뽑았다면
내 사랑이 뽑혔네 텅 비었네 하면서
우리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아니지 우리가 나쁘고 못생겨서가 아니라
첨부터 잘못된 영화만 골랐다는 것을
입에서 보송한 하얀 솜이 나오는 그런 영화였다는 것을
숨마 쿰 라우데라는 이름의 문제집
생각은 그만두고 유형을 파악하자
앞으로 나가지만 깊이도 파야하지
좌뇌형 언어 능력은 구매 설득 말고
수직적 변호에 쓰이면 좋겠어
하지만 아무래도 이과를 가면 좋겠어
사랑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게 되게 비싼 거라는 걸 알아줘 아니 몰라도 돼
인성도 철저한 플랜으로 길러지는 것
행복은 아침 녹즙처럼
갈아 넣어서 먹여줄게
꿀꺽 마시고 할 일 해
자기주도적으로 창의융합적으로
다 너의 인생
그리고 너는 나의 기쁨이야
*정다운 2005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나는 그때 다 기다렸다』, 『파헤치기 쉬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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