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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한보경/개와 하모니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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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90회 작성일 20-01-0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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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한보경/개와 하모니카 외 1편


한보경


개와 하모니카



같은 시간 속에 어쩌다 서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생략된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한 적 없습니다
죽었다 깨어도 알 수 없는 무엇은, 개와 하모니카처럼
어쩌다 생략된 무엇입니다
똑같은 집을 짓고 똑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생략을 하지 않고도 생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와 하모니카처럼,
우연을 필연으로 뭉뚱거리는 어려운 버릇을 가졌습니다
폭압적인 우연과 무심한 필연의 사이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은
완벽한 생략의 무엇을 기다리기만 합니다
똑같은 시간 속에
똑같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처럼, 우리였을 거라고
우리여야 한다고 읊조리면
잠시 우리 속으로 들어 우리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 아닌 우리를 우리라고 함부로 엮어버리는 우리 속에 갇힌
오늘도 똑같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똑같은 이유를 알지 못하고도 바람은 무심히 불어옵니다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다고
거짓을 말하는 것은 
개와 하모니카처럼, 아주 어려운 생략입니다
내일도 바람은 불어올 것입니다
시간은 어디서에서든 날마다 자라고
시간 속에 집을 짓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비를 그을까요
똑같은 우리 속에 갇혀 똑같은 시간 속에
어쩌다 아직 서있습니다
전부입니다




굿바이, 시스터



하늘이 모처럼 파래서


파랗게 시린 뒤꿈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차곡차곡 파란을 즈려밟고 가기


참 좋은 시간이 온 것


굿바이, 시스터


결국 오고 마는 순간들처럼


늘 뒤에 서 있던 오래 젖은 슬픔들은 꾸득꾸득 말라갈 거라고


믿을 수 없이 가볍고 착한 비밀처럼


굿바이, 시스터


눈부신 파란들은 불쑥불쑥 다시 돋아나서


날카롭게 가슴을 찌르고 말 것인데


낮은 바지랑대에 건져둔 말갛게 씻긴 그림자마저


문득문득 흔들리는 봄날은,


굿바이, 시스터





*한보경 2009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여기가 거기였을 때』, 『덤,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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