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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최라라/어쩌다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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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신작시/최라라/어쩌다가 외 1편
최라라
어쩌다가
12월에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당신이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습니다
당신은 개나리가 되었습니다
개나리는 몸을 움츠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보면
개나리가 당신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개나리는 웃고 당신은 얼어붙어 있습니다
나의 적籍
아버지는 서당 다닌 지 사흘 만에 한글 다 깨우쳤다 하셨다 낯선 한자 내밀면 어깨너머로 배운 거다, 하시며 척척 읽어주곤 하셨다 아버지의 공식적인 학력은 무학, 그런데도 대학 졸업한 나보다 하늘을 더 잘 읽으셨다 하루종일 강변을 헤매다 돌아온 날이면 내 신발에 든 모래알을 꺼내 백열등 불빛 아래 널어두곤 하셨다 적을 두고도 나는 정처 없어 하는데 아버지는 적을 여의고도 한 번도 흔들리지 않으셨다
*최라라 2011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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